회전문이 사람을 가두어 안으로 밀어 넣습니다. 인형 같은 아가씨들이 눈을 반짝이며 서있는 매장마다 익숙해진 화장품 냄새가 진동하고, 시간을 죽여 버린 멍청한 시계들이 가득한 시계코너를 거쳐 점점 더 알 수 없는 미로 속으로 빨려들어 갑니다. 주머니 속, 경솔하게 짤랑거리는 동전을 마른 손으로 꼭 쥐어 진정시키고 욕망을 실어 나르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라 저 높은 곳으로 올라갑니다. 백화점채로 준다고 해도 들여놓을 곳도 없다는 걸 알지만 허영의 문은 자꾸만 열리고 지갑을 살지게 해달라고 그리하여 몸과 마음이 풍요롭게 되기를 간구하며 기도하지요. 돌아가는 문은 여지없이 우리를 절망 속으로 다시 밀어 넣습니다. 온갖 것을 다 팔아도 그곳에서 우리가 살 수 없는 것이 있다면 희망입이다.
백화점 매장에 들어서면 우선은 물건의 목쯤에 매달려 있는 가격표를 뒤집어 봅니다. 그리고 재빨리 무엇엔가 견주게 되는데 그 가격이 나에게 주게 될 타격이라든가, 다음 달 갚아야 될 신용카드 사용액이라든가 부터 시작해서 저 옷을 사면 구두는 어떤 것을 신어야 어울릴 것이며, 머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것 등입니다. 심지어는 배우자까지도 바꿔야할지도 모른다는 우스운 생각을 하게 되지요. 간혹 우리는 남들과 대화하면서 분수를 알아야 한다든가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등 제법 이치에 닿는 말을 하지만 제 일 앞에서도 그리 행동할 수 있는지는 불확실합니다.
그것을 허영이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겠지만 문득 문득 일기도 하는 아름다움이나 우아함에 대한 동경은 거의 본능적이라 할 만큼 강해서 우리를 시험하고 인내하는 싸움터로 내몰기도 합니다. 작은 지방 도시에 그런 매장이 들어서지 않는 것을 보면 아직은 사람들의 인내심이 허영을 이기고 있다는 것을 장사꾼들이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것을 시장성이니 소비자 욕구수준이니 하고 대단한 듯 말하지만 간단히 말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만하지 않다는 말의 경영학적 표현일 뿐입니다.
내가 터키에 출장을 오면 간혹 들러서 물건을 사는 아웃렛 매장이 있는데-그 가게도 회전문으로 바꿨습니다-그곳 물건이 그럭저럭 좋은데 비해 물건 값이 현지인들 수준에 맞게 책정되어 그리 비싸지 않다는 것 때문입니다. 물론 이곳 역시 아무나 드나들며 살 수 있는 곳은 아니고 중산층 정도는 되어야 마음 놓고 물건을 고를 수 있는 곳이지만 경제력 차이가 있는 우리로서는 비교적 마음껏 구매를 해도 부담이 되지 않습니다. 더구나 터키의 화폐가치가 하락한 올해는 참 싸다는 걸 느낍니다. 그렇다고 충동적으로 구매를 한다는 말은 아니고 꼭 필요한 것 한두 가지 사는 정도입니다. 이곳에도 세계적인 유명 브랜드는 다 모여 있어서 이 잡듯 옷깃을 샅샅이 살펴보지 않으면 어느 나라에서 만든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 정도면 원산지가 문제가 되던 시절은 지나서 품질만 좋으면 그만이지 어디에서 만들었는지는 문제도 되지 않습니다.
서른 해 전쯤 영국의 유명 백화점에 갔을 때 한국제품을 보고 크게 기뻐한 적이 있었지만 얼마 후에는 그 자리에 태국이나 중국제품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보고 우리 제품을 사려면 그 만큼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으쓱 하기도 했지요. 여전히 선진국 제품은 고가여서 살 수가 없었지만 사야 할 이유도 없었지요.
이번 출장길에도 우리가 만든 어린아이 옷을 선물용으로 사왔지만 솔직히 국내에서는 중가품이어서 크게 부담스런 정도는 아니었지요. 그러나 선물을 받게 될 이들이 생각하는 제품의 수준은 놀라울 것입니다. 한국이라면 모든 면에서 자신들보다 앞서가고 있다고 알고 있으니까 메이드 인 코리아가 주는 또 다른 기쁨과 만족감을 말로 다 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사는 양주에서 전철로 서너 정거장만 가면 백화점이 있지만 실상 그곳에는 내가 살만한 물건도 없거니와 지갑을 꺼내 아무렇지도 않게 지불할 능력도 되지 않습니다. 그곳에 가는 이유는 지하엔가 1층엔가 있는 서점과 음반가게에 들르기 위해서 일 뿐 다른 층은 지나치기 위해 들르는 것이지 뭘 사려고 한 적은 없습니다. 나이가 먹어서는 있는 것도 처분하기 힘든데 뭘 산다는 것은 낭비라는 생각에 다른 매장에는 가 볼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물론 좋은 물건, 탐나는 물건들이 그득합니다. 이제는 견물생심의 이치도 물리칠 때가 되었으니 가본들 헛걸음이요, 힘만 쓰는 일일 뿐이니 아예 얼씬거리지도 않습니다. 좋은 것과 소유하는 것 그리고 사용하는 것은 다르니까요. 허영도 젊음과 함께 더러는 사라지기도 하나 봅니다.
문이라는 게 안팎으로 드나들게 되어 있어서 다 마찬가지이기는 하지만 특별히 회전문을 드나들 때는 꼭 안으로만 떠밀어 넣는다는 느낌을 많이 받기도 합니다. 언제는 나오려다 말고 다시 안으로 들어간 적이 있었지요. 하마터면 만지작거리던 물건을 살 뻔했습니다. 혼자 웃었습니다. 회전문의 효과란 이런데도 있는가보다 하고 말이죠. 심리적인 효과도 있을 법해서 결국 돌고 돌아서 다시 그곳으로 들어오라는 수작일 법도 합니다. 뭘 그렇게까지 생각하느냐고 하겠지만 우스갯소리로 해보는 것이니 심각하게 듣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아무래도 그런 곳에 드나들 때는 돌아서 나가는 것보다는 들어가는 것에 마음이 더 끌리니까요. 어쨌거나 백화점 밖으로 나오면 화장품 냄새가 몸에 배 꽤 좋은 곳에라도 다녀온 것 같은 착각도 때로는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