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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2-25
기생 라합의 구원 / 야베스 목사
5월21일은 부부의 날입니다.
세상에는 신비한 것들이 아주 많지만 부부처럼 신비한 존재도 찾아보기 쉽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가정에서 태어나 성장하여 청년이 되고, 성년이 되어 부부로 만난 것입니다.
부모자식간에는 ‘천륜’이라 합니다.
부부로 만나 결혼하는 것을 ‘인륜지대사’라고 합니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가장 큰 일은 하는 것은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을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일입니다.
서로 좋아서 죽지 못할 정도로 좋아해서 결혼했는데 결혼한 날로부터 싸우기 시작하는 것이 부부입니다. 그러면서 서로서로 알아가면서 자식을 낳고 키우면서 서로서로에게 훈련을 받고 신뢰해가면서 세워가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이런 부부가 넘어야 할 7가지 고개에 대하여 이야기했습니다.
첫째 고개는 환상의 고개로 신혼부터 3년쯤에 갖가지 어려움을 비몽사몽간에 웃고 울며 넘어가는 “눈물고개”
둘째 고개는 타협의 고개로 결혼 후 3~7년 동안에 서로에게 드러난 단점들을 타협하는 마음으로 위험한 권태기를 넘어가는 “진땀나는 고개”
셋째 고개는 투쟁의 고개로 결혼 후 5~10년을 사는 동안 진짜 상대방을 알고 난 다음 피차가 자신과 투쟁하며 상대를 포용하는 현기증 나게 넘어가는 “비몽 고개”
넷째 고개는 결단의 고개로 결혼 후 10~15년이 지나면서 상대방의 장, 단점을 현실로 인정하고 보조를 맞춰가는 돌고 돌며 넘어가는 “헛바퀴 고개”
다섯째 고개는 따로 고개로 결혼 후 15~20년 사이에 생기는 병으로 함께 살면서 정신적으로는 별거나 이혼한 것처럼 따로따로 자기 삶을 체념하며 넘어가는 “아리랑 고개”
여섯째 고개는 통일 고개로 결혼 후 20년이 지나면 과거에 있었던 모든 것을 서로 덮고 새로운 헌신과 책임을 가지고 상대방을 위해 남은 생을 바치며 살아가는 “내리막 고개”
일곱째 고개는 자유의 고개로 결혼 후 30년이 지나면 완숙의 단계로 노력하지 않아도 눈치로 이해하며 행복을 나누며 넘아가는 “천당 고개”
이렇게 일곱 고개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지금 어느 고개를 넘어가고 계시는지요?
일곱고개를 넘어가는 동안 갖가지 상황과 문제들을 만나면서 갈등하고 연민하면서 어려운 삶의 고개를 넘어가게 됩니다.
어려운 고개를 넘어갈 때마다 서로에게 인내하고 보듬어주면서 아껴주는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서로를 향한 부부의 마음만은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족보에 등장하는 여인들 중에서 또 한 사람을 만나려고 합니다.
그 사람은 기생 라합입니다. 기생 라합이 구원받는 장면을 함께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1. 구원의 하나님의 능력을 잘 들은 여인입니다.
여호수아2; 9-10절에 보면 라합은 자신의 집에 들어온 정탐군에게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고 말합니다.
여리고성 주민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의 광야생활을 마감하고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성으로 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원해내기 위하여 애굽에 10재앙을 내려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낸 이야기, 홍해를 갈라서 뒤쫓아 오는 애굽인들을 몰살시키고 구원시킨 이야기, 40년 동안 광야 생활할 때 능력으로 입히시고 먹이신 이야기이며, 요단강 건너편에 있었던 아모리 족속들을 몰아내고 아모리 족속의 두 왕인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이야기를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의 당사자들이 곧 있으면 요단강을 건너서 여리고성을 점령하기 위해서 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서 자기들에게로 온다는 소식은 여리고성민들에게는 천청벽력과 같은 소리입니다.
천둥이 울리고 땅이 꺼지는 지진이 일어나는 소리처럼 들렸습니다. 이 소식은 여리고성민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습니다. 쥐 죽은 듯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어떤 대책도 세울 수 없었습니다. 여리고성민들의 마음이 주눅 들어서 간담이 녹았다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럴 정도로 이들에게 있어서 너무나 충격적인 소식이었습니다.
이런 소리가 들려왔는데 설상가상으로 이스라엘 군사들 중에 몇 명이 여리고성을 정탐하기 위해서 여리고성에 잠임해 왔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자신들의 성을 정탐하기 위해 간첩들이 들어왔다는 소식은 온 여리고성을 온통 뒤집어놓는 소식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꼼짝도 못하고 집밖을 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소식을 들은 사람들 중에 기생 라합이라는 여인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라합은 이런 소식을 듣고 반드시 하나님이라는 분이 계시고 그 분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자신들이 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이대로 가만히 앉아만 있다가 다른 사람들처럼 몰살을 당할 것인가요?
아니면 다른 살 수 있는 길은 정녕 없는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부모님, 형제들, 식속들까지 다 살릴 수 있는 길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길은 여리고성을 정탐하기 위해서 자신의 집에 들어온 간첩들을 도와주고 그 간첩들에게 하나님의 긍휼을, 은혜를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쥐구멍에도 햇빛들 날이 있다는 말처럼 간첩들을 도와주어서 그들의 도움을 받으면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그 가정을 살리는 위대한 생각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이런 생각은 자신의 민족을 배반하는 길이고, 자신의 족속을 몰살시키는 길이 될 수도 있는 아주 위험한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몰살당하는 것보다는 살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찾아보는 것이 당연한 위치입니다.
자신이 자기 민족을 배반하건, 배반하지 않건 곧 이어서 자기 민족은 위대한 하나님의 능력 앞에 무기력하게 전멸당할 것은 앞이 훤하게 보이는 뻔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만히 앉아서 전멸을 당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래서 라합은 용기를 냅니다.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섭니다.
자신의 집에 들어온 간첩들을 숨겨줍니다.
그 간첩들을 찾아내라고 아우성 질러대는 군사들에게 ‘그들이 여기 온 것은 사실이기는 하지만 곧 나갔다’고 거짓말까지 하면서 간첩들을 살려주었습니다.
간첩들을 찾는 군사들이 돌아간 다음에 지붕 위 삼대 속에 숨겨둔 간첩들에게 찾아와서 자신들의 처지를 소상하게 말씀드리면서 여리고성을 전멸시킬 때, 자신과 부모님, 형제들, 식솔들을 진멸시키지 말고 구원해 달라고 애원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을 살리는 수 있도록 다짐을 하라고 합니다.
자신들을 죽이지 않고 반드시 살려주겠다는 다짐을 하지 않으면 곧 여리고 병사들에게 알려서 당신들을 죽이겠다고 협박까지 하면서 다짐을 받아냅니다.
그 다짐으로 여리고성이 함락되고 여리고성을 전멸시킬 때 라합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은 단 한 사람도 죽임을 당하지 않고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여리고성을 전멸시킬 때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라합과 그의 가족들이 죽음을 당하지 않고 살아날 수 있었던 요인들은 무엇일까요?
1. 똑 같은 소리요 똑 같은 사건들이지만 자신을 살릴 수 있는 소리요 사건으로 들었습니다.
목사의 설교가 똑 같은 설교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은혜로운 말씀으로 듣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성도는 자신을 때린다거나 험담한다거나 하면서 부정적인 말씀으로 듣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것은 듣는 사람들의 영적인 상태, 마음의 상태가 어떤가에 따라 다르게 들립니다.
말하는 이에 대하여 마음이 활짝 열려 있는 사람은 말하는 이가 어떤 말을 하든지 좋은 말로 들립니다.
말하는 이에 대하여 섭섭한 마음이나 좋지 않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그가 어떤 말을 하든지 자신을 때리고 치고 모욕하는 말로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들의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우리의 영적인 상태를 주님의 말씀과 은혜로 다스려야 합니다.
그래야 좋은 말로, 영혼을 살리는 말씀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2. 살 수 있는 생각, 긍정적인 생각을 했습니다.
대부분의 여리고성민들은 이스라엘이 들어온다는 사실 때문에 자신들은 꼼짝없이 죽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들을 몰살시킨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이런 생각이 정답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라합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라합은 이스라엘백성들이 들어온다는 것, 특히 간첩들이 자신의 집에서 머물고 있다는 것은 좋은 징조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들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처럼 똑 같은 사건이요 똑 같은 소리이지만 어떻게 듣는가에 따라서 자신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 있는 소리로 들을 수도 있다.
똑 같은 사건이요 똑 같은 일이지만 자신을 죽이는 일이 될 수 있는가하면 자신을 살릴 수 있는 사건이요 일이 될 수도 있다.
똑 같은 컵에 물이 반쯤 담겨 있을 때 어떤 이들은 ‘물이 반밖에 없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아직도 반이나 남았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전자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부정적인 사람입니다.
후자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긍정적인 사람입니다.
부정적인 사람은 죽이는 사람이고, 긍정적인 사람은 살리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부정적인 사람인가요. 그러면 죽이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긍정적인 사람인가요. 그러면 살리는 사람입니다.
똑 같은 사실이지만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여리고성민들은 모두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했던 라합과 그의 온 가족들은 살아났습니다.
그러니 우리들도 이미 똑 같은 사건이이요 말이요 일이라고 할 때 이왕이면 우리들을 살릴 수 있는 말로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들을 살릴 수 있는 사건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선택해야 될 몫입니다. 우리들이 죽음을 선택할 수도 있고, 구원과 삶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이 아니라 구원과 삶과 은혜와 축복을 선택하는 사람입니다.
3.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라합이 지붕 위 삼대 속에 숨은 간첩들에게 올라가서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도록 여호와로 내게 맹세하고 내게 증표를 내라 그리고 나의 부모와 나의 남녀 형제와 그들에게 속한 모든 사람을 살려 주어 우리 목숨을 죽음에서 건져내라”고 합니다.
자신을 선대한 라합의 말을 들은 간첩들은 “네가 우리의 이 일을 누설하지 아니하면 우리의 목숨으로 너희를 대신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땅을 주실 때에는 인자하고 진실하게 너를 대우하리라”하면서 구원을 약속했습니다.
이 사건을 히브리서11;31에서는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라고 해석하였습니다.
곧 라합이 간첩들은 숨겨주고, 정탐군을 찾으려고 하는 병사들에게 거짓말까지 하면서 돌려보내면서 간첩들을 살려준 것을 믿음으로 영접하고 평안히 돌아갈 수 있도록 선처해 주었기 때문에 구원을 받았다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라합은 믿음으로 산 여인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라합은 비록 기생으로 천한 직업을 가지고 살았지만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말을 듣고 믿음으로 살았을 때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가족들, 식솔들까지 구원해내는 위대한 일을 한 여인이 되었습니다.
또한 라합은 유대지파의 군장이었던 살몬과 결혼하여 유대지파에 편입되는 영광까지 누렸습니다. 아마 이 살롬은 두 사람의 정탐군 중에 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정탐군이었는데 라합의 집에서 기거하면서 라합이 자신들을 어떻게 숨겨주었고, 살려주었는지를 생생하게 생각하면서 비록 기생이지만 라합과 결혼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어찌되었든지 라합은 살몬과 결혼하여 낳은 아들이 보아스입니다. 이 보아스는 룻과 결혼하여 오벳을 낳았습니다. 오벳은 다윗의 할아버지입니다.
그러니 라합은 세상에서는 기생으로 천하게 사는 사람이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가장 존귀한 여인으로 세워지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가장 먼저 목격한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아니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이 막달라 마리아도 기생이었습니다. 일곱 귀신이 들려 온갖 고생을 당했던 여인입니다.
하지만 생명의 주인되시는 예수님을 만나서 일곱 귀신이 쫓겨나고 기생의 직업을 청산하여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초대교회에 없어서는 안되는 귀중한 믿음의 어머니, 여인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우리들의 삶도 기생 라합의 삶과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세상적으로 볼 때 떳떳하게 내세울 수 있는 권력도, 명예도, 학식도 없습니다.
가진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빈털터리와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했던 라합과 자신의 모든 가족들을 살리는 위대한 일을 한 사람이 되었던 것처럼 우리들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면 우리들로 인하여 우리의 모든 가족들이 구원받고 하나님의 위대한 백성으로, 일꾼으로 세워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면 자신뿐만 아니라 온 가족들, 식솔들까지 구원받아 하나님의 신령한 축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지고 하나님의 교회는 부흥하게 될 것입니다.
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