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40] 김관해 (金官楷) - 여생도 최선을 다하리라 13. 세계순회사로 떠나다 1 1981년 11월 세계순회사로 임명을 받고 중동 및 북아프리카 선교 국가를 향해 떠났다(1982년 3월 16일). 준비한 메시지는 ‘천국 실현을 위하여’, ‘하나님의 뜻으로 본 80년대의 세계 선교와 인간의 책임’이었다. 이 두 가지 내용을 영문으로 만들었다. 이슬람교를 국교로 하고 있는 중동권에 들어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큰 숙제를 가지고 있었다.
2 나는 중동 여러 나라를 순회하면서 온갖 정성과 깊은 영혼의 눈물과 피와 땀을 쏟았다. 언어와 풍속, 사상과 문화배경이 다른 이방인들을 만나 그들에게 하나님의 뜻과 사정을 전해야만 했다.
3 또한 그 어려운 이슬람 국가에서 7년여 젊은 생애를 아낌없이 불태우며 원리를 전하고 있는 미국, 일본, 독일, 영국, 오스트리아 등 여러 나라의 선교사들을 만나 격려와 위로를 해야 했으며, 이슬람 국가에 대한 새로운 선교 방법을 모색해야 했고, 서투른 언어로 그들에게 하나님 아버지의 심정과 뜻을 전해야만 하였다.
4 제1차로 쿠웨이트, 요르단, 레바논, 사이프러스, 튀르키예, 이집트, 바레인, 수단, 북예멘, 튀니지, 이스라엘, 그리스, 사우디아라비아를 순회하였고, 제2차로 그리스, 튀르키예, 바레인, 수단, 이스라엘을 순회하였다. 순회가 끝나면 미국에 가서 순회 결과를 보고 하였고, 이 개개의 국가에 대한 보고는 서면으로 현지에서 선생님께 상세히 올렸다.
5 “세상을 한 번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라고 하시며 순회를 떠나보내셨던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올리게 된다. 많은 것을 배웠고 보았다.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고 사막을 지나면서 자신의 생애에 두 번 올 수 없는 값진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억천만 금의 돈이나 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비견을 얻을 수 있었다. 6 하나님은 불쌍한 한민족을 사랑하셔서 위대한 진리의 스승 문선명 선생을 보내 주시고 동방의 빛이 되는 원리를 주셔서, 이 한국을 세계 인류의 심정의 조국으로 만들어 주셨다.
7 세계에 널려 있는 선교 국가들의 모든 식구들은 선생님을 진리의 아버지로 추앙하며, 통일교회가 출현한 한국을 위하여 자신들의 모든 정성을 쏟아 진심으로 그리워하고 있다. 이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할 일인가. 선생님은 이제 마지막으로 사랑의 혁명이 남아 있다고 하였다.
8 하나님을 중심한 사랑의 혁명은 전 인류를 하나로 통일하여 하나의 세계를 만들게 할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의 뜻이며 약속이기 때문이다. 나는 분명히 보고 확인했다.
9 세계 도처에는 한국에서 나온 통일원리를 주축으로 하는 통일주의의 물결이 넘실거리고 있다. 이 통일주의는 진정한 사랑주의로서 인류의 영적 기갈을 채워 줄 것이다. 순회하며 느꼈던 온갖 감격된 사실들을 거저 흘려버릴 수 없어 엮은 것이 ‘영광과 폐허’란 졸작이다. 먼 훗날까지 선교 행적을 되새기는 사도행전이 되리라 믿고 싶다. 10 1983년 미국에서 하나님의 날을 보내고 새로운 명에 의하여 미국 각주(콜로라도, 유타, 켄사스 등 6개 주)를 1차로 순회하게 되었다. 그 후 미국을 떠나 한국에 돌아왔다. 11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것은 열사(熱砂)의 나라 중동과 오지의 아프리카 식구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마음먹고 하려고 했던 일들이다. 모든 것이 주마등처럼 스쳐가고 있다. 한국의 생수 판매 문제, 스포츠 선교(태권도), 이스라엘의 다이아몬드 사업 등 이젠 지나간 역사가 되었다.
12 선생님께 올린 보고서, 식구들에게 쓴 편지, 통일세계에 투고한 순회기들, 그때 순회사 시절은 이젠 추억으로 남고 말았다. 정상은 분명 아름다울 것이다.
13 그러나 깊은 골짜기는 더 매력적이 아닐는지. 정상의 웅대함은 깊은 골짜기에 내려가 보아야만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신념으로 싸워온 길, 여생도 결코 좌절치 않고 신념을 가지고 최 선을 다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