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가 봄이던 어느 날, 지난해는 봄의 전령사들까지 너무나 가혹했다. 바깥세상은 아예 모든 것을 차단하고 있었다. 강 건너 유채꽃이 피어날 무렵, 강서를 갔다가 참담한 꼴을 보았다. 꽃이 막 피기 시작하던 수십만 평의 유채밭을 이유 없이 갈아엎고 있었다. 태어나 열매도 맺지 못하고 땅으로 되돌아가는 게 아쉽고 속상하여 못 볼 걸 본 것인지 한참 동안 속내가 심히 아렸다. 몇 주가 지나서 이웃에 있는 장미공원으로 발품을 한다. 설마 하고 향기만이라도 건지고 싶어 내 둔탁해진 정신과 함께 장미가 피어나길 바라며 발길을 재촉해 본다.
건강미가 탱탱하게 흐르는 블루문장미라는 명패 앞에 섰다. 보라색이 만연하게 보이는 이 장미는 우뚝 올라온 자태가 눈이 부시다. 연한 보라색으로 꽃술을 감싸고 있는 꽃잎이 멋 부린 아가씨들, 처럼 활기차 보였다. 유난히 짙은 향기가 마음 깊이 채워주는 느낌마져 든다. 멋지고 특이한 장미 이름 앞에서 여자와 꽃이 왜 비교기 되는지 알 것 같았다. 이제 막 곧게 올라오는 수줍은 장미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블루문의 의미가 가만가만 스쳐 지나간다. 푸른 달과 닮아서였을까. 은은한 장미는 군더더기 하나 없이 이제 막 꽃술을 열기 시작한다. 활짝 핀 장미는 진분홍에서 연보라색으로 차츰 푸른빛이 감돌아 보인다. 엷은 보라색 장미로 우뚝 자라면서 미스코리아처럼 장미 중의 장미로 활기가 넘쳐난다.
어떤 연유로 장미꽃에 이러한 이름을 넣었을까 하고 그들 앞에서 눈길을 뗄 수 없다. 불루문 장미는 보라색 제비꽃과 팬지에서 파란 색소의 유전자를 추출하여 장미에 이식한 것이라니 정말 놀랍다. 겹꽃 장미가 유럽에서는 존재조차 없었다. 겹꽃 장미는 18세기 중국에서 월계화 품종과 핑크색 장미가 나왔다고 했다. 바닷가에서 잘 자라던 월계수는 본시 장미과의 원종이라 하였다. 그 많은 장미종에서도 향긋하고 매혹적인 장미류가 많지만, 끊임없이 화훼농장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엄청 애를 쓴다, 그런 이유로 힘든 과정을 거쳐 태어난 블루문 장미는 꽃집에서도 최상의 대접을 받는다.
신이 처음 장미를 만들었을 때 사랑의 큐피트는 장미꽃이 너무 예뻐서 키스하다가 벌에 쏘였다. 이것을 지켜본 여신 비너스는 큐피트가 안쓰러워 벌을 잡아 침을 빼내어서 그 침을 장미 줄기에 꽂아두었다고 한다. 그 후에도 큐피드는 장미의 아름다움에 취해 가시에 찔리는 아픔을 무시하고 여전히 장미꽃에서 헤어나질 못했다는 전설처럼 장미의 아름다움은 꽃 중의 여왕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장미공원의 많은 장미 이름표를 보면서 역시 꽃 중의 꽃이 블루문 장미가 아닐까 여겨본다.
장미의 전쟁이나 장미의 눈물이 왜 생겨났을까 하는 이야깃거리들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한다. 절대적인 미를 가진 장미도 시간이 흐르면서 시들고 한때의 찬란했던 것들도 이름만 남는 형상이 되고 만다. 장미가 부귀, 영화, 영광, 세력을 의미한다면 이것은 결코 영원하지 못하다는 뜻으로 보인다. 장미의 전쟁을 보면 두 가문의 문장이 장미라는 상징에서 온다. 랭커스터 가문은 붉은 장미, 요크 가문에는 백장미란 이름을 붙였다. 이들 가문은 모두 잉글랜드 왕가의 분파로 생겼다. 희비극의 주인공으로서 꽃의 왕조를 누리고 있던 집안과 집안의 싸움이었으니 할 말이 없다. 절대적인 미를 가진 장미도 시간이 흐르면서 시들과 한때의 때를 참 잘 맞춘 것이 다행 중 다행이다.
블루문 장미를 이 공원에서 만나듯 해마다 다른 특색의 장미들도 함께 마주한다. 오월이 오면 멀리 나서지 않아도 이곳에서 짙은 꽃향기와 신록을 찾아 나설 수 있다는, 걸로 만족했다. 장미공원이 강변과 가까이에 있어 장미가 필 무렵이면 갈잎떨기나무꽃도 강줄기를 따라 하얗게 돋아난다. 다양한 장미는 찔레를 통해 몸맵시가 달라지고 개량된다니 신비롭다. 찔레는 순수 그 자체로 살아간다. 강바람을 좋아하고 청순하며 온갖 시련을 견디면서 불굴의 억셈을 가지고 있다. 수수한 모습으로 매혹적인 달콤한 향기를 지녔다. 어린 시절이 푸르디푸른 봄날의 끝자락에서 추억을 손짓한다. 그때만 해도 금방 사라지는 꽃보다 새순의 살찐 줄기를 찾느라 이리저리 훑어보았던 때가 더 많았는데.
얇은 찔레꽃은 피자마자 씨알을 거둔다, 갈대숲 사이마다 듬성듬성 찔레나무가 강나루를 지켜주듯 서 있었지만 꽃필 시기를 놓쳐 만발한 찔레꽃을 제대로 보질 못했다. 다행히 장미가 피면 덩달아 찔레꽃들도 여기저기에서 무리 지어 피운다. 달달댄 고향 냄새가 지천으로 퍼져 나간다. 찔레꽃이 봄의 끝자락 풋 바람 속에서 눈송이처럼 하얗게 줄기를 채우고 파르르 떨고 있다. 그리 멀지 않은 둥치마다 찔레꽃까지 몸을 낮추니 블루문 장미가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불루문은 몇 년 만에 보름달이 두 번 뜨는 달, 울의 두 번째의 달 moon으로써 배신자의 달이라고 하던 글이 생각났다. 그 대신 행운을 주는 달이라 여긴다. 한 달에 두 번 뜨는 겹친 달이 블루문이란 낯선 이름처럼 불루문 장미는 또 다른 푸른색 행운을 장미에 붙여준 칭호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