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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 권위 있는 새 교훈 말씀/ 마가복음 1:16-45 요절/ 마가복음 1:27 | 2024. 3. 17 | |
마가복음 제 2 강 |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우리가 스승의 말을 따르는 것은 스승의 권위를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스승의 권위가 무너지면 제자는 스승의 말을 따르지 않을 겁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셨을 때 그들이 즉시 따를 수 있었던 것도 예수님의 권위에 압도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을 때 많은 사람들이 놀라고 귀신 들린 자가 치유된 것도 예수님의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배우고 은혜 입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신 후 예수님은 제일 먼저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해변으로 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혼자 일하시지 않고 함께 일할 사람들을 찾으셨습니다.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는 갈릴리 바다에 열심히 그물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삶의 현장에서 생존을 위해 성실하게 일하고 있는 어부 시몬과 안드레를 어떤 말씀으로 부르셨습니까?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나를 따라오라’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어느 누가 나를 따라오라고 할 수 있습니까? 나를 따라오라는 것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라는 겁니다. 나를 따라오라고 명령하실 수 있는 분은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의 인생을 책임지실 수 있는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나를 따라오라고 명령하신 예수님은 성육신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나의 모든 것을 아시고 나의 인생을 책임져 줄 수 있는 분이시기에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나를 따라오라고 하신 예수님은 참으로 권위 있는 분이십니다. 나의 창조주요 생명의 주인으로 권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은 나를 따라오라 Come, follow me라고 명령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라고 한 것은 충격적입니다. 당시는 학생이 스승을 찾아가 엄격한 훈련을 통과해야만 제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주도권을 가지고 제자감을 부르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라.”
오늘날에도 예수님은 제자감을 부르십니다. 강찬솔 목자는 정부와 의료계의 충돌로 인해 휴학해야 했을 때 마음이 많이 힘들 수 있었습니다. 재수하고 대학에 들어왔는데 또 휴학하면 경쟁에서 더 밀리게 될 것 같아 불안과 두려움에 빠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주님의 부르심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의 인생을 책임져 주겠다.” 그는 새벽기도를 하는 가운데 그를 제자요 성경선생으로 부르시는 주님께 그의 청춘과 인생을 드리겠다고 결단했습니다. 믿음의 결단을 드리자 불안과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용기충천하여 새내기들에게 전도하고 일대일 양도 얻고 복음역사에 열정을 쏟았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따라오라”고 명령만 하신 것이 아니라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는 사람을 죄의 바다에서 건져내 살리고 사람을 돕고 키우는 목자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시몬과 안드레가 알아 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어부이기에 ‘사람을 낚는 어부’라는 말에 귀가 번쩍 트였을 것이며, 그 말이 매우 매력적으로 들렸을 겁니다. 물고기를 낚는 어부의 삶은 생활인의 삶입니다. 물고기는 삶을 유지하는 수단이 됩니다. 하지만 사람을 낚는 어부의 삶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의미 있는 삶입니다. 사람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입니다. 물고기를 낚는 삶은 인생의 의미와 행복을 주지 못합니다. 하지만 사람을 낚는 어부의 삶은 가치 있는 삶이요 행복한 삶입니다. 생활인의 삶은 죄 가운데서 살다가 멸망하게 될 절망적인 삶입니다. 하지만 사람을 낚는 어부의 삶은 죄에서 벗어나 생명을 얻는 삶이요 죽어가는 영혼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희망찬 삶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위대한 존재입니다. 사람은 좋은 직장이나 멋진 애인이나 많은 돈이나 많은 권력으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죄와 죽음에서 벗어나 생명을 얻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길 때 행복합니다. 하지만 죄로 인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은 하나님을 예배하기보다 돈의 우상과 쾌락의 우상과 권력의 우상과 성공의 우상을 추앙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어떤 종교로도 어떤 이념과 철학으로도 사람을 살리지 못하고 행복한 삶으로 인도하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사람을 살리고 행복한 삶을 살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놀라운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목자의 직분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직분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시몬과 안드레는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은 그 아버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그들의 반응은 즉각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곧 그물을 버려두고 따랐습니다. 그들은 ‘말도 안 되요’ 하거나 ‘생각해볼께요’ 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즉시 결단했습니다. 옛생활을 청산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시몬과 안드레는 어부라는 직업을 내려놓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아버지를 내려놓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어떻게 그런 모험을 할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에게서 권위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권위에 압도되었습니다. 예수님에게서 사랑이 흘러넘쳤고 예수님의 말씀에 권세가 있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예수님 안에서 참 소망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생활인의 삶에 많이 지쳐 있었습니다. 열심히 고기를 낚았지만 참 의미를 찾지 못했습니다. 내일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오늘도 그물을 던지고 내일을 위해 그물을 정리하며 의미 있는 삶을 갈망하는 그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은 한줄기 빛과 같았고 희망과 비전을 주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가슴이 뛰고 스피릿이 솟구쳤습니다. 우리의 전도와 일대일 성경공부를 통해 청년대학생들이 희망을 발견하고 예수님을 따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 안에서는 누구나 소망이 있습니다. 시몬의 소망은 물고기를 많이 잡아서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요 부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소망은 이루어져도 실망하고 이루어지지 않아도 실망합니다. 시몬은 예수님 안에서 참 소망을 발견하고 소망이 가득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많은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더 많이 가진 자들과 비교하며 상대적 박탈감에 빠져 불평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다 가지면 만족하고 행복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 어떤 것도 돈도 권력도 명예도 지식도 우리에게 참 만족과 행복을 주지 못합니다. 세상에 속한 것들은 우리의 참 소망이 될 수 없습니다. 참 소망은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소망 그 자체이시며 그를 믿는 자에게 놀라운 소망을 주십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참 소망으로 붙들고 살 때 어떤 시련도 견딜 수 있고 세상을 넉넉히 이기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21-28절은 예수님의 권위가 어떻게 증명되었는지 잘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가버나움 회당에 들어가 말씀을 가르치실 때 뭇 사람들이 그의 교훈에 놀랐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서기관들 다시 말해 율법선생들이 주로 가르쳤는데 사람들의 마음을 텃치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가르쳤을 때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텃치했습니다. 서기관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을 터인데 왜 그들의 가르침은 권위가 느껴지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식적으로 가르치는 데서 끝났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을 대하는 그들의 마음은 뜨겁지 못했고 냉냉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백성들을 향해 뜨거운 마음을 가졌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대하듯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였습니다. 또한 서기관들은 율법조항을 가르치는데 그쳤지만 예수님은 율법의 핵심인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가르쳤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그 본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가르침에 권위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권위는 귀신 들린 사람이 깨끗하게 됨으로 드러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때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소리 지르며 예수님에게 반발했습니다.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귀신은 지식과 능력이 많은 실체이기에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압니다. 그는 예수님의 인성도 알고 신성도 압니다. 그는 예수님을 가리켜 나사렛 예수라고 했고, 하나님의 거룩한 자라고 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그를 멸하려 온 분이시라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에게 바로 굴복하지 않고 저항합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 안에 귀신이 역사하고 있음을 아시고 꾸짖었습니다.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그러자 더러운 귀신은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왔습니다.
사람들은 다 놀라 서로 물었습니다. 27절을 보십시오.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귀신들이 나가는 것을 보고 ‘이는 어찜이냐 권세 있는 새 교훈이로다’하며 놀라움을 표현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권세 있는 새 교훈입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말씀을 통해 귀신을 쫓아내심으로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예수님은 귀신을 제압하고 사람을 깨끗해 할 수 있는 영적 권세자이십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귀신 축출과 치유의 역사를 통해 나타납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귀신 들린 자들이 있습니다. 귀신들렸는지 아니면 질병으로 앓고 있는지 분간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모든 질병과 문제를 귀신 문제로 보고 귀신과만 싸웁니다. 그들은 어떤 질병이든 귀신의 정체를 알고 귀신을 쫓아내기만 하면 그 사람이 깨끗해지고 건강해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는 인간의 책임을 피해버리는 잘못된 세계관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귀신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모든 문제를 의학적 심리적 문제로만 보고 치유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영적 세계에 대해서 무지한 자들의 세계관이며 잘못된 생각입니다. 어떤 경우는 귀신에 잡혀서 질병이 생기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는 바이러스나 세균으로 인해서 질병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질병이 귀신으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의학적 심리적인 요인으로 인한 것인지 분별해서 그 사람에게 맞는 치료를 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정확하게 아시고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치유하시는 선한 목자이십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귀신과의 싸움은 필연적입니다. 귀신들은 사단의 부하들이며 지금도 우리의 속에서 그리고 우리 가까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하는 것입니다. 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야 합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로 무장해야 합니다. 우리가 영적 무장을 철저히 함으로 이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악한 세력을 몰아내고 한 생명을 살리고 더 많은 생명들을 살려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9-31절은 예수님께서 제자의 가정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회당에서 나와 곧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아마도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시몬의 집에 가셨던 것 같습니다. 그 집에 들어갔을 때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었습니다. 그녀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열이 올라 꼼짝할 수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병으로 고통 하는 분을 그대로 두고 식사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그녀의 열병을 치유해달라고 예수님께 간청했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가까이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여인의 손을 잡아 일으키신 것은 사랑과 긍휼의 표현입니다. 예수님이 사랑의 텃치를 하자 바이러스가 떠나가고 여인은 온전히 회복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의 가정문제를 해결해 주셨을 때 제자들은 힘이 나고 제자로서의 자긍심이 높아졌을 겁니다. 또한 열병에서 나음을 받은 여인은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고자 예수님과 제자들을 풍성한 음식으로 식사대접을 했습니다.
주님은 그를 따르는 제자들의 가정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좋으신 분이십니다. 주님을 따르고자 할 때 가장 걸리는 것은 가정문제입니다. 저도 수년간 가정문제로 마음이 무겁고 이것만 해결해주시면 주님께 더욱 충성하겠다고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부모와 형제들을 돌아보지 않는 매정한 분이 아니십니다. 주님은 가족들의 구원을 위한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십니다. 부모님을 잘 돌보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우리를 이해하시고, 병으로 누워계시는 부모님을 주님께서 사랑의 손으로 만져주시고 치유해 주십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자들의 가정을 돌봐주시고 구원으로 인도해 주시는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저물어 해질 때였습니다. 이는 안식일이 지나갔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안식일 법에 의하면 병 고치는 것이 금지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안식일이 끝나자마자 많은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예수님께 데려왔습니다. 예수님은 하루 일과를 마치고 쉬셔야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병자들을 외면하지 않고 환영하시고 일일이 한 사람씩 고치시며, 많은 귀신들을 내쫓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각 사람이 병으로 고통 하는지 아니면 귀신 들려 고통 하는지 분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병의 원인을 찾아내고 근원적으로 치유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최고의 의사요 영적 권세자이십니다.
우리는 어떤 병이든 예수님께 나아가 예수님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불치병에 걸려도 암에 걸려도 우리는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울증이나 조울증에 걸려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정신질환에 걸리고 귀신에 들렸다 하더라도 인생이 망한 것은 아닙니다. 최고의 의사요 영적 권세자이신 예수님 안에서는 누구든지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병과 연약함 가운데 있든지 예수님을 믿고 기도함으로 봄과 같이 활기찬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한적한 곳으로 가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날마다 새벽을 깨워 기도하시고 때마다 기도함으로 위로부터 능력을 덧입으셨습니다. 우리는 올해 열두 제자를 양성하고 세계선교에 열정을 드리고자 기도제목을 붙들었습니다. 봄학기 30명의 양들을 얻기 위해 전도에 힘쓰고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우리의 교회가 살아나고 우리의 가정이 살아나고, 캠퍼스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시몬과 제자들이 일어나 보니 예수님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가는 곳을 알았기에 그곳으로 가서 예수님을 만나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주님을 찾아요!” 그들은 예수님이 엄청 좋아하시며 당장 사람들에게 갈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뜻밖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38절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예수님은 사람들의 요구를 따라 움직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전도에 있다는 것을 확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전도하러 왔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전역 더 나아가 유대까지 복음을 전파하고 확산시키는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가자고 하셨고, 제자들에게도 개척정신을 심으셨습니다.
40-45절은 예수님께서 한 문둥병자를 치유하신 사건입니다. 한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했습니다.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그는 나병을 낫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하지만 나병은 하나님의 형벌로 알려졌기 때문에 그는 병이 낫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 알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은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예수님은 그가 깨끗해지고 건강해지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환부에 손을 내밀어 터치하셨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나병환자를 터치하는 것이 금지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율법을 뛰어넘어 그에게 터치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곧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 졌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어떤 병도 치유하여 깨끗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곧 그를 보내시며 엄히 경고하셨습니다.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가 깨끗하게 되었으니 모세가 명한 것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예수님은 그에게 침묵을 명하시고 그가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섬세하게 도와주셨습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지 못하고 자기에게 일어난 일들을 널리 퍼뜨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고 한적한 곳에 계셨습니다. 은혜를 간직해야 할 때가 있고, 은혜를 간증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최고의 권위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는 것은 인생 최고의 로또요 축복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부르심에 즉시 결단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 제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