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지경리의 크리스마스
상봉터미널이 없어진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갑자기 추억이 버스처럼 지나갔습니다. ‘영종여객’을 띠로 두른 녹색 버스가 떠오르면서요. 영종여객은 기쁨과 슬픔을 운행해주던 시외버스였습니다. 그걸 타고 휴가 갈 때는 비행기를 타듯 행복했고요, 그걸 타고 부대로 돌아올 때는 도살장으로 가는 구르마같았죠. 맞습니다. 영종여객은 제가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지경리에서 군대생활 할 때 타고 다니던 버스입니다.
언젠가 비가 많이 온 후에 도로작업하러 부대 밖으로 나갔는데, 지나가던 영종여객 버스 안에서 누가 먹다 남은 닭다리를 던져주었죠. 그걸 좋다고, 우리 군인 아자씨들, 횡재했다고 함께 먹었던 추억. 누가 그러더군요. 초코파이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군대에서 먹는 거라고요. 군대에서는 뭐든 맛있었으니까요. 지금 입맛이 없다면 배가 부른 까닭이죠. 그래서, 비가 오고 눈이 와서 부대 밖으로 도로작업을 나갈 때면 가장 행복했습니다. 저 버스를 타면 집에 가는데, 하는 아련한 그리움이 군대생활로 메마른 마음을 잠시 적셔주었으니까요.
그 영종여객이 먼지를 뿜고 가던(그래서 그 길가 버드나무는 항상 회색이었죠) 그 길로 어느 해 크리스마스 때는 군용트럭을 타고 합창경연대회를 갔던 적도 있었습니다. 아마 교회에서 주관한 것 같은데, 성탄절 날 사단에서 크리스마스 합창대회를 연 겁니다. 그래서 각 부대마다 연습을 했죠. 저희도 당시 동자승(?)같이 생긴 군종병의 지휘 아래 매일 밤이면 창고를 개조해서 만든 세평 짜리 교회에서 연습을 했어요.
일과 끝나고 남들 쉬는 시간에 그 추운 교회에 모여 우리는 행복하게 연습을 했죠. 그런데 하필이면 왜 그렇게 어려운 노래를 선곡했는지!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라니! 넘 어려웠어요. 당연히 입상도 못했죠. 그래도 크리스마스 합창대회라고, 설레는 마음으로 트럭을 타고, 호로로 가렸을 뿐 뒤가 휑하게 뚫린, 당연히 난방도 없고 승차감도 1도없는, 그 트럭을 타고 달달달 떨면서 노래하러 갔던, 어둠 속을 뚫고 갔던 그 추억은 지금도 따뜻하게 남아있네요. 마치 캄캄한 어둠 속을 비춰주던 그 차의 헤드라이트처럼요.
또 어느 크리스마스 때에는 회식한다고 막걸리랑 돼지고기 나눠 주더니, 고참 하나가 술 취해 또라이가 되서 “집합!”. 이윽고 벌어진 한 따까리. 영하 20도 땅바닥에 누워 좌우로 김밥말이를 하며 보냈던 크리스마스. 그래도, 크리스마스가 되면 행복했어요. 내 생애 아마 가장 어둡고 추웠고, 그래서 그리움이 깊었던 지경리의 크리스마스. 그래도 그 추운 겨울을 견디게 했던 건 따뜻한 크리스마스였습니다. 트리의 꼬마 전구가 희망처럼 반짝반짝거리듯이요. 오늘도 어둡고 춥고 배고픈 곳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메리 크리스마스!☺
(2023년 12월 24일 주일 주보에서)
▲ 언제나 군복 벗을까, 날짜를 셌던 청춘인데, 지금 보니, 다시 이 시절로 가고 싶네요
첫댓글 "영하 20도" 생각만 해도 ~~~~
그 얼마나 추우셨을까요?
그렇게 혹한속 힘든 군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몸 튼튼 마음튼튼 강철같으신 체력으로
단련되셔서 오늘의 멋지시고 스마트하신 목사님 덕분에 항상 은혜의 영광속에 크리스마스가
낼 모레로 다가왔습니다.
축복의 성탄선물로 그시절 그 때로 타임머신을 타고 6일체험을 하시는
선물 받으셔도 좋으실듯 합니다.
주일은 말씀을 전하셔야 하니까요 ㅎㅎ
존귀하신 우리목사님 메리 메리 크리스마스♥
참 잘생겼다는 생각을 하며 봅니다^^
지경리의 겨울 추위가
안방까지 느껴지는 것 같네요.
이제, 제발 속히 통일 되어서
군인이 필요 없는 시대가 되었으면 합니다.
꿈 같은 소망입니다.
그래말이예요. 왜 그렇게 어려운 노래를!
뭐든지, 일단 재미있어야 하는데요ㅎ
메리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