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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5장 경씨(慶氏)도 기울고 (7)
6경 반열에 오른 여섯 일족이 제각기 자신의 권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보이지 않는 싸움을 계속한 제(齊)나라에 가장 먼저 야욕을 드러낸 사람은 고지(高止)였다.
그는 전 재상 고고(高固)의 손자로 쇠퇴한 고씨 일족을 다시 부흥시키려고 애를 썼다. 사사건건 다른 일족들과 충돌하기가 일쑤였다.
이에 난조(欒竈)와 고채(高蠆)는 연합하여 고지의 집을 덮쳤다.
고지(高止)는 저항했으나 연합 세력에 패하고 연(燕)나라로 망명했다. 고지의 아들 고수(高竪)가 이에 불만을 품고 식읍인 노(盧) 땅을 근거로 반란을 일으켰다.
고채와 난조는 군대를 보내 고수를 토벌했고, 6경 중의 하나인 고지 집안은 몰락하고 말았다.
사람들은 옛 명신인 고혜(高傒)의 덕망을 존중하여 그 증손자인 고연(高酀)을 후계자로 삼아 그 대를 잇게 했을 뿐이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많은 공족 대부들이 난조(欒竈)와 고채(高蠆)를 두려워하게 되었고, 급기야는 줄줄이 타국으로 망명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제경공(齊景公)은 고지의 자리에 안영을 대신 올리려 했으나 안영은 여전히 극구 사양했다.
그런 중에 고채가 죽고 그 아들 고강(高彊)이 대를 이었다.
난조 역시 세상을 떠나고 그 아들 난시(欒施)가 난씨 일족의 당주에 올랐다. 두 사람은 모두 젊고 패기에 넘쳤다. 그들은 자주 술자리를 마련하여 야심을 불태웠다.
반면, 진무우(陳無宇)는 포국과 어울리며 동맹 관계를 유지했다.
어느새 제나라 조정은 고강, 난시의 연합 세력과 진무우, 포국의 연합 세력으로 나뉘게 되었다. 두 세력은 서로에 대해 의심하고 경계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난시와 더불어 술을 마시던 고강(高彊)이 시중들던 시동 아이를 책잡아 심하게 때렸다. 그때 곁에서 난시(欒施)가 부채질을 했다.
"아랫것들은 버릇을 가르쳐야 하오. 단단히 혼내주구려."
그 바람에 더 많은 매를 맞은 시동은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다음날 아침 일찍 정적이라 할 수 있는 진무우(陳無宇)의 집으로 달려갔다.
- 고강과 난시가 짜고 오늘 저녁 진씨와 포씨를 습격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진무우(陳無宇)는 경솔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시동 아이의 말을 그대로 믿었다. 아니 믿기로 결심했다.
'둘도 없는 좋은 기회다.'
그는 날이 갈수록 거만해지는 고강(高彊)과 난시(欒施)를 들이칠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즉시 가병을 모으고 갑옷과 투구를 걸쳤다.
"포국(鮑國)의 집으로!"
그와 연합하여 고강과 난시를 들이칠 계획이었다.
그런데 묘한 일이 벌어졌다.
가병을 이끌고 포국의 집으로 향하는 중에 거리에서 고강과 마주쳤다. 고강(高彊)이 이상하다는 듯이 갑옷 차림의 진무우에게 물었다.
"경(卿)께서는 가병을 거느리고 어디를 그리 급히 가십니까?"
당황한 진무우(陳無宇)는 애써 태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떤 자가 반역을 도모한다고 해서 그자를 치러 가는 길이오. 그런 그대는 어디 가는 길이오?"
"저는 난시(欒施) 집으로 술 마시러 가는 중입니다."
고강(高彊)이 지나간 뒤에 진무우(陳無宇)는 더욱 빨리 포국의 집으로 수레를 몰았다. 고강이 난시 집으로 가는 것은 필시 자신을 들이칠 일을 의논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진무우(陳無宇)는 포국을 만나 시동 아이의 말을 전한 후 앞일을 의논했다.
포국(鮑國)은 대경실색하여 가병을 모으는 한편 심복 부하를 난시의 집으로 보내 동태를 살펴오게 했다. 동정을 살피고 온 부하가 보고한다.
"난시와 고강은 한창 술 잔치를 벌이고 있는 중입니다."
포국(鮑國)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래도 시동 아이가 거짓 제보를 한 모양입니다. 우리를 기습한다는 자들이 술을 마시고 있을 리 없질 않습니까?"
그러나 진무우(陳無宇)는 고개를 저었다.
"고강(高彊)은 난시 집으로 가는 도중에 나를 만났었소. 내가 무장하고 있는 것을 보고 일부러 술 잔치를 벌이는 체하는 게 분명하오. 그들은 여기 동태를 살피고 있다가 우리가 무장을 푸는 순간 기습할 것이 틀림없소. 공연히 그들의 수단에 넘어가지 말고 속히 난시의 집을 들이칩시다."
그럴듯했다. 포국(鮑國)은 의심을 버리고 진무우와 함께 가병을 거느리고 난시 집으로 향했다.
그 시각, 난시의 집에서는 한창 술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술잔이 서너 번 돌았을 때였다. 별안간 가재(家宰)가 뛰어들어오며 외쳤다.
"진무우와 포국이 가병을 거느리고 와 집 바깥을 포위하는 중입니다."
난시(欒施)는 기겁초풍했다.
"그럴 리가........."
고강(高彊)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까 내가 여기로 오는 도중 진무우(陳無宇)를 만났었는데, 그자가 하는 말이 '반역을 도모한 자를 치러 가는 중이다' 라고 했소. 그때는 농담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바로 우리를 치려는 수작이었구려."
"어찌하면 좋겠소?"
"정면으로 맞서 싸우기에는 너무 늦었소. 그대는 지금 당장 가병들을 불러내 무기를 내주시오. 궁으로 들어가 주공을 호위합시다. 이런 경우는 주공을 모시고 있는 자가 이기게 되어 있소. 포위가 더 단단해지기 전에 움직이면 궁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오."
난시(欒施)는 서둘렀다. 술상을 밀쳐내고 자리에서 일어나 가병들에게 무기를 내주었다. 뒷문을 열고 포위망을 뚫기로 했다.
고강과 난시는 이제 막 몰려들고 있는 진무우, 포국의 가병을 선제 공격하여 혈로(血路)를 열었다. 일제히 공궁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앗!"
뒤늦게 고강과 난시의 계획을 눈치챈 진무우(陳無宇)는 얼굴이 새파래졌다.
'주공을 빼앗을 생각이다.'
진무우(陳無宇)는 재빨리 방향을 틀어 고강, 난시와 마찬가지로 공궁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궁문에 먼저 당도하는 자에게는 일급 상을 내리리라!"
가병들은 기를 쓰고 달렸다. 멀리 공궁이 보였다. 일대의 군사들이 공궁 문 밖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고강(高彊)과 난시(欒施)의 가병이었다.
- 다행이다.
공궁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문을 지키던 병사들이 변란이 일어났음을 알고 재빨리 궁문을 닫아건 것이 분명했다.
진무우(陳無宇)와 포국(鮑國)이 궁문 앞에서 어쩔 줄 모르고 있는 난시의 가병을 에워싸려 할 때, 고씨 일족이 군사를 거느리고 그 곳으로 달려왔다. 이로써 두 패의 가병들은 엇비슷한 전력을 갖추게 되었다. 그들은 군사를 정돈하여 궁문 밖에서 좌우로 대치했다.
같은 시각.
제경공(齊景公)은 진무우와 포국이 한 무리가 되고, 고강과 난시가 한 무리가 되어 궁문 밖에서 큰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있었다.
"무슨 일로 싸우는가?"
하지만 궁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간의 경위를 알 리 없었다.
제경공(齊景公)은 일단 궁을 지키는 친위대를 불러 명을 내렸다.
"아무도 궁중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호문(虎門)을 굳게 닫아걸어라."
호문이란 공궁의 남쪽 문을 말한다. 궁문에 호랑이 그림이 그려져 있어 그런 명칭이 붙었다.
제경공(齊景公)은 다시 시자(侍者)를 불러 명했다.
"안영(晏嬰)을 들라 일러라."
어느 일족에게도 기울지 않고 조용히 중립을 지키고 있는 안영에게 이번 사태의 해결을 맡기려는 의도에서였다.
고강(高彊)과 난시(欒施)는 궁문 오른편에 진을 쳤고, 진무우(陳無宇)와 포국(鮑國)은 궁문 왼편에 진을 쳤다. 서로 공격하지 못하고 날이 저물도록 상대쪽 진영을 노려보기만 했다.
그 사이로 한 대의 수레가 나타났다. 제경공의 부름을 받은 안영이었다. 안영은 현단(玄端)이라고 하는 검은 색의 베로 만든 예복을 입었고, 위모(委貌)라고 하는 예식용 관(冠)을 쓰고 있었다. 한껏 정장(正裝)을 한 것이다.
고강과 난시, 진무우와 포국 등은 수레에서 내리는 안영에게 각기 사람을 보내 간청을 했다.
- 할말이 있으니 잠시 우리와 만나주시오.
안영(晏嬰)은 그런 그들을 흘깃 바라본 후 대답했다.
"나는 다만 주공의 부름을 받았을 뿐이다. 어찌 사적인 태도를 취할수 있으리오?"
수문장이 궁문을 열자 안영(晏嬰)은 빨려들듯 궁 안으로 들어갔다.
제경공(齊景公)은 안영을 맞이하여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네 씨족이 궁문 밖에서 싸움을 벌이고 있으니, 장차 이를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소?"
"고강(高彊)과 난시(欒施)는 조상 대대로 총애를 받아온 것만 믿고 교만함이 궁문을 치려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병(兵)으로써 궁문을 열려고 하는 자는 반역이나 다름없습니다. 그 죄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또 진무우(陳無宇)와 포국(鮑國)은 주공의 명이 없는데도 제멋대로 군사를 일으켰습니다. 이들의 죄 또한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고강과 난시의 죄가 더 크구나. 누구를 내보내 저들을 다스릴까?"
"먼저 신(臣)이 나가 저들을 타이르겠습니다. 그래도 듣지 않는다면 대부 왕흑(王黑)으로 하여금 친위 병사를 지휘하게 하십시오."
안영(晏嬰)은 왕흑의 호위를 받으며 호문 밖으로 나갔다.
고강 측과 진무우 측이 일제히 안영을 바라보았다.
안영(晏嬰)은 그들 한가운데 우뚝 서서 큰소리로 외쳤다.
"양측은 모두 무기를 버리시오. 주공의 명 없이 병(兵)으로써 공궁을 범하는 자는 반역이나 다름없소. 이 문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사람은 병사를 물리치고, 갑옷을 벗고, 의관을 고치시오. 그렇지 않으면 결코 이 안으로 들어갈 수 없소이다."
여기서 안영(晏嬰)의 말을 듣고 그대로 병사들을 물렸더라면 별탈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고강의 체내에는 아직 술기운이 남아 있었다. 그는 오로지 제경공을 차지해야 한다는 생각에만 집착해 있었다.
불콰한 얼굴로 고강(高彊)은 안영에게 말했다.
"우리는 진무우와 포국이 주공을 범하려 하기에 지켜드리기 위해 달려온 것이오. 그대가 주공의 안전을 생각한다면 어서 궁문을 열고 우리를 들여보내주시오."
"궁중 경비는 시위대(侍衛隊)에게 맡기면 되오. 그대의 임무는 나라와 백성을 지키는 일이오. 자신의 임무를 소홀히 하는 자에게 어찌 궁중을 내줄 수 있겠소?"
안영(晏嬰)의 호령에 고강은 할말을 찾지 못했다.
분노를 이길 수 없다는 듯 고강(高彊)은 뒤편의 부하들을 돌아보며 명령했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 궁문을 쳐라!"
고강과 난시의 가병들이 일제히 함성을 내지르며 호문(虎門)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때를 맞추어 왕흑(王黑)이 지휘하는 궁중 시위대가 활을 쏘았다.
교전이 벌어졌다. 화살이 엇갈려 날았고, 창과 창이 부딪쳤다.
호문 왼편에 진을 치고 있던 진무우(陳無宇)는 잠시 망설였다.
'이 틈을 이용하면 궁 안으로 들어가 주공을 차지할 수 있다.'
이런 마음이 들었다. 호문 앞에는 예복 차림의 안영만이 버티고 서 있을 뿐이다. 더할 나위없이 좋은 기회인 것이다.
실제로 진무우(陳無宇)는 서서히 병사들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영과 말을 주고받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까지 접근했다.
"안자(晏子)!"
진무우와 안영은 사적인 자리를 가질 정도로 친밀한 사이였다. 친근한 어조로 안영에게 부탁했다.
"난을 진정시키지 않으면 안 되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주공을 지켜야 하오. 어서 문을 여시오."
그러나 안영(晏嬰)은 요지부동이었다.
"궁 안으로 들어가려면 먼저 그 갑옷부터 벗고 예복으로 갈아입으시오.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이 문 안으로 들어갈 수 없소."
"그대는 내 편이 아니오?"
"나에게는 사직만이 있을 뿐이오."
진무우(陳無宇)의 표정이 변했다. 자신의 부탁이 거절당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진무우(陳無宇)는 고강이 저질렀던 우를 범하지는 않았다.
'호문을 공격하면 조정의 적(敵)이 된다.'
이런 생각과 동시에 그는 방향을 틀었다. 고강, 난시를 향해 돌격 명령을 내렸다. 백중세이던 싸움은 진무우와 포국이 왕흑 편에 가세함으로써 급변했다.
고강, 난시가 몰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점차 후퇴하여 녹문(鹿門)이라 불리는 공궁 동쪽 문으로 쫓겨갔다. 이때 그들에게 결정적인 패인을 안겨준 세력이 나타났다.
- 백성들이 우리들을 향해 돌팔매질을 하고 있습니다.
고강과 난시는 악정을 펼쳐왔다. 그들은 백성들의 인심을 완전히 잃고 있었다. 그 대가를 지금 혹독히 치르는 것이었다.
결국 고강(高彊)과 난시(欒施)는 시가전에서도 대패하였다. 더 이상 만회는 불가능했다. 가병들은 흩어져 달아났고, 고강과 난시도 성밖으로 탈출했다. 두 사람은 오늘 하루의 일이 꿈이기를 바랐으나, 이것이 어찌 꿈일 것인가.
그들은 밤이슬을 맞으며 국경을 넘어 노(魯)나라로 달아났다.
'고강(高彊)과 난시(欒施)의 난' 은 이렇게 종식되었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