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초석: 교회신문 > 제 1201호 두려움이란 모르는 데서 오는 고질병이다 (호6:1~3)
길을 가다 외국인을 만나면 슬그머니 피하게 됩니다. 행여 길이라도 물을까 봐서요. 어쩌다 해외여행이라도 가면 공항에서부터 살짝 두렵습니다. 영어로 뭘 물어볼지 몰라서 그런 겁니다. 영어 공포를 떨치는 길은 영어를 배우는 겁니다. 배우면 외국인을 만나도, 외국에 나가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 두려움은 결국 배우지 않는 데서 오는 겁니다. 알려고 하지 않는 게으름에서 비롯된 고질병입니다. 부지런히 수영을 배우면 물이 두렵지 않습니다. 부지런히 자동차 정비를 배우면 차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도 두렵지 않습니다. 알면 두려울 게 없고, 아는 자는 자유하고, 지배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며 누리게 됩니다.
그렇다면 인생살이가 왜 두려운지 아십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몰라서 그런 겁니다.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는 게으름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당부하십니다.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호6:3). 이제라도 게으름을 떨치고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어떻게요? 부지런히 성경을 읽으면 됩니다. 성경은 하나님에 대해 증거하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5:39).
또한 하나님을 알려면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성경은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2:1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 충만을 얻는 길은 부지런히,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입니다(살전5:17). 게을러서 기도하지 않으면 성령이 소멸되고, 성령이 소멸되면 하나님을 알래야 알 수가 없고, 그러면 모든 것이 두렵게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이 우주 삼라만상을 지으신 분이고(창1:1),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며(창2:7),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시는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눅18:27). 그분은 당신의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신 분입니다(요1:12~13).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하나님이 늘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멀리 서서 지켜보시는 것이 아니라, 간혹 깜빡깜빡 잊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딜 가든지 늘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려울 것이 없는 겁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명하셨습니다. ‘어디로 가라’고 딱 정해주신 것이 아닙니다.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막막했을 겁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늘 자기와 함께하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창15:1).
이삭의 종들이 우물을 팔 때마다 물이 솟구쳤습니다. 그러자 그랄 목자들이 자기네 것이라고 우겼습니다. 그럴 때면 이삭은 다투지 않고 다른 우물을 팠고, 거기서도 물이 펑펑 나왔습니다. 이삭이 수맥을 잘 찾아서가 아닙니다. 이유는 하나님이 이삭과 함께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창26:24).
야곱은 도망자였습니다.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받은 야곱은 형을 피해 외가로 도망칩니다. 도망길에 벧엘에서 돌베개를 베고 자려는데 그때 하나님이 나타나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찌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28:15). 그가 금의환향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형들에 의해 애굽의 노예로 팔린 요셉, 왜 안 두려웠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가는 곳마다 형통했고, 노예 신분에서 애굽의 총리대신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그 이유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창39:23).
우리는 예배 시간마다 “그는 여호와 아브라함의 하나님, 그는 여호와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요셉의 하나님, 그는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라고 찬양합니다. 맞습니다. 믿음의 선친들과 함께하신 하나님은 여러분과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는 느브갓네살 왕이 세운 금신상에 절하지 않아 풀무불에 던져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들은 회유하는 느부갓네살에게 아주 멋진 말을 남깁니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단3:17).
그들은 능히 불 가운데서 건져내실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알았기에 평소보다 칠 배가 뜨거운 풀무불 따위는 두렵지 않았던 것입니다. 실제 하나님은 불 가운데 함께하사 그들을 지키셨습니다. 증거 말씀입니다.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네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단3:25).
그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사43:1~3).
우리가 불 가운데를 지나도 하나님이 건져내실 것이고, 우리가 물에 빠져도 하나님이 물을 갈라 길처럼 걷게 하시고, 우리가 사자굴에 빠져도 하나님이 사자의 입을 막으사 편히 잠자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왜냐?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부모도 내 자식을 건드리는 자를 가만 놔두지 않을 텐데, 하물며 하나님이 당신의 것, 당신의 자녀를 건드리는 자를 가만 놔두시겠습니까? 분명히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 택하신 기업이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신32:9~10).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녀도 다윗이 담대할 수 있었던 것,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던 느헤미야가 도비야와 산발랏이 훼방하고 협박해도 담대할 수 있었던 것, 기드온의 300명 용사로 메뚜기처럼 많은 미디안 군사를 다 쳐부술 수 있었던 것, 다 하나님이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은 지금도 여러분과 함께하십니다.
다시 말하지만, 두려움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 오는 고질병입니다. 가나안 땅을 탐지하러 갔던 열 명은 하나님을 잘 몰랐기에 자신들을 메뚜기에 비유하며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늘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잘 알고 믿었기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민14:9)고 외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수1:5~6).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그러므로 이제 담대하게 고백하십시오.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히13:6).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사12:2). 할렐루야!
두려움은 삶의 암적 존재다
두려움은 무지의 산물이다
♣ 은혜로운 찬양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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