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신 56/191226]포항 앞바다 “1박2일”
뭐, 꼭 ‘유재석(현재는 트로트가수로 화려하게 변신하여 유산슬로 활약하고 있다고 한다) 사단’만 ‘1박2일’을 하라는 법이 있나? 연예인은 아닐지언정 우리 친구 예닐곱 명이 몰려다니며 인증샷 찍을 때에 일제히 손가락 두 개를 V자로 앞세우면 1박2일인 것을. 지난 월, 화요일이 그랬다. 전주에서 한 차, 남원에서 한 차, 월요일 오후 1시 반, 6명이 모인 게 경주 근처 함월산含月山 기림사祇林寺 주차장 앞. 시장이 반찬이라고 산채비빔밥을 경주법주쌀막걸리와 맛있게 해치우고, 관람에 나섰다. 문화재 관람표 3000원은 왜 그리 아까운지. 아무래도 우리는 문화시민이 아닌 모양이다.
들어보지도 못한, 이 자그맣고 아담한 기림사는 스토리가 풍부한 절이다. 달(月)을 머금은(含) 산(山)자락에 자리잡은 기림사는 신라 선덕여왕때 원효元曉스님이 작명을 했다. 부처가 득도한 후 가장 오래 머물렀다는 기림정사에서 ‘기’를, 원래 절이름인 임정사에서 ‘정’자를 택했다. 대적광전大寂光殿의 수수하고 낡은 편액과 빛바랜 단청의 공포가 연꽃무늬 창살과 함께 절의 역사를 말해준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헌다벽화獻茶壁畫를 월요일 박물관 휴관으로 보지 못한 게 무척 아쉽다. 지혜의 빛으로 세상을 비춰준다는 대적광전의 비로자나毗盧遮那佛 삼불좌상은 향나무로 틀을 만든 후 그 위에 진흙을 발라 만든 불상이라 한다. 1990년경에 지어진 삼천불전三千佛殿에는 3000부처가 모셔져 있다. 항상 어디에나 계신다는 과거-현재-미래의 부처를 상징한다. 깊은 산속도 아니고, 민가 주변에 있어 우리에게 더욱 친근한 절, 주지스님이 시인인 듯, 나무마다 시판詩板이 걸려 있어 눈길을 끈다.
숙소 ‘서브 머린 Sub Marine’ 호텔은 바로 바닷가 옆. 평일이기에 방 하나에 9만원이지만, 연말연초에는 4배로 뛰어 37만원이라 한다. 전망이 죽여준다. ‘시 뷰Sea View’라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하고 ‘오션 뷰Ocean View’가 맞춤이다. 부단히 일렁이는 저 흰 포말의 파도와 파도소리. 역시 침침한 눈이 다 시원해지는 겨울바다, 우리는 친구도 좋지만, 이 해가 가기 전에 이 바다를, 이 파도소리를 들으려고 불원천리 이곳에 왔다. 마침내 ‘포항지기’ 친구가 새 친구 유모씨와 함께 나타나 단체인증샷을 찍다. 그 친구가 강추한 포철 근처의 일송정 횟집. 한 상에 3인, 세 상이 준비돼 있다. 마지막으로 남원의사, 호인 중의 호인이 단독 드라이브로 마침맞게 도착. 아홉 명의 건배가 아름답다. 방어회 등 모듬접시에 일동은 흔쾌히 취했다. 대한민국 응급외과의사의 으뜸 이국종씨가 아줌마사장과 포즈를 취한 사진이 이채롭다. 모듬회와 함께 한 만찬, 참 맛나게 잘 먹었다. 역쉬 친구는 잘 두고 봐야할 일이다. 숙소 비용은 미우가, 저녁값은 우포가 쏜다니, 황감할 일이만 고마운 일이다.
오랜만에 아줌마 도우미들의 분내도 맡아본 노래방 이야기야 굳이 하지 않아도 되리라. 흔한 일이지만, 요즘엔 모두 백수이자 자유인이기에 노래방 출입하는 일도 쉽지 않다. 굳이 또 갈 필요성도 느끼지 않지만 말이다. 곳곳에서 종종 열리는 당구 번개팅이 대세인 것을. 한 친구는 그 아수라장 판에도 저녁술이 과했는지, 코를 골며 자고 있다. 매구 한 박스야 순식간에 사라진다. 팁을 먹고 사는 도우미들의 손장난이 짓궂지만, 애교와 통과의례로 봐주자. 문제는 그 다음이다. 친구들에게 양주를 선사하고자 가져온 친구의 성의를 봐서라도 새벽 2시까지 마셔주는 게 예의 아니겠는가. 비주류파는 슬그머니 옆방으로 가 잠을 청하고, 그 가운데, 남원에서 오후 4시 단독으로 출발한 친구는 내일 출근이 신경쓰여 곧장 돌아가다니? 그 먼 거리(300여km)를 이 야밤에 또 혼자서 운전을 하다니? 친구의 무사귀환을 빌면서 우리는 잔을 부닥친다. 주사酒肆가 심한 친구도, 코를 심하게 고는 친구도 오늘만큼은 기분이니까 봐줘야 할까? 파도소리와 함께 1박의 잠을 청한다.
아침, 해안 둘레길을 산책하며 오고가는 대화 속에 우정이 싹튼다. 아하-, 너는 스포츠와 함께 살았구나. 아하-, 너는 글쓰기가 취미이자 특기구나. 아하-, 너는 여자 꼬시기에 신들리듯 늙어갔구나. 아하, 너는 뒤늦게 농사와 농기계 다루기에 취미가 붙었구나. 아하-, 너는 아직도 현역으로 계열사에서 돈을 버는구나. 혹시 눈이 먼 돌문어가 바 해변가 바위에 달라붙어있는지 유심히 살피며, 바닷바람과 그 내음새를 흠흠거리며 맛보기에 바쁘다.
숙취한 다음날 아침, 황태북어국을 먹어보셨는가? 오직 친구들이 속풀이를 위하여, 등치가 황소만한 친구가 섬세하게도 끓여 ‘바친’ 해장국에 고맙다는 말조차 잊고 허겁지겁 숟가락을 꽂는다. 우재, 청암 친구에 이어 새로운 쉐프의 탄생이다. 이런 호강이 어디 있을까? 그 친구는 출발할 때 쌀과 김장김치를 가져왔다. 그저 입만 갖고 따라온 나는 염치가 없지만, 할 수 없다. 이런 경우가 바로 ‘염치불구廉恥不拘’. 이 자리에 어찌 라면이 빠지랴. 맛있다. 재밌다. 즐겁다.
포항의 오어사. 무슨 절 이름이 이럴까? ‘나 오吾, 고기 어魚’, 나의 물고기, 듣자니 처음이다. 유래가 무척 재밌다. 원효와 혜공스님이 공력을 실험하고자 살아 있는 물고기를 삼켰다던가? 똥이 되어나온 두 마리의 물고기 중 한 마리가 상류로 기어 오르자, 스님들은 ‘저게 내가 삼킨 물고기’라고 우겼다던가? 경상도 지역의 오래된 절들은 대개 원효스님의 일화가 한두 가지 있을만큼, 원효의 자취는 크고 많고 깊다. 일행 중 ‘설총이 원효의 아버지이지’?라 하여 모두 웃다. 큰 스님, 선지식善知識 원효의 사상은 일심一心과 화쟁和諍, 두 단어로 요약된다. 일심은 인간은 누구나 불성佛性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런 마음의 근원을 회복하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며, 불교의 다양한 종파들이 서로 존중하며 통합되어야 한다는 것이 화쟁이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원효불기元曉不羈’라는 말은 원효가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았다는 뜻으로, 부처와 중생은 차별되지 않고 평등하다며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무수한 대중을 교화하는 무애행無碍行을 하고 다닌 선각자인 원효와 유서깊은 절, 오어사. 절과 호수 주변으로 조성된 오어지 둘레길 8km를 시간에 쫓겨 걸어보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전주팀은 비즈니스에 쫓겨 11시에 출발하다.
남은 팀 3명은 ‘기회는 찬스chance’라는 말처럼, 우리나라 문화해설의 으뜸 유홍준씨가 ‘문답사(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약칭)’에서 극찬한 감포의 감은사지 3층석탑을 보고자 ‘말’을 달렸다. 아버지인 문무왕文武王의 은혜恩에 감사感한다는 뜻으로 신문왕神文王이 682년에 지었다는 감은사感恩寺는 폐사지가 되었을망정, 우리 신라 석탑의 전형 감은사 3층석탑은 동탑과 서탑으로 우뚝 서 1천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었다. 대단하다. 13.4m나 되는 그 장대한 크기가. 멋있다. 그 위용이. 그때 그 신라인들은 어떻게 쌓았을까? 금당金堂 아래 용龍이 된 아버지가 다닐 수 있도록 수로水路를 파놓았다는 것은 비단 전설일까? 익산 미륵사지의 동탑-서탑과는 또다른 맛과 멋이 있다. 동해를 바라보는 높은 대지에 굳건히 발을 붙이고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오른 모습은 실로 한국석탑을 대표할 만하다는 것을 느꼈다. 오기를 참 잘했다. 유홍준의 상찬이 결코 빈말이 아니었음을 실감했다.
역대 숱한 왕들의 무덤(왕릉)이 있었지만, 수중릉水中陵도 1기基가 있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으리라. 문무대왕릉이 그것이다. 다큐 프로에서도 보았으리라. 사실일까? 아닐까? 명실공히 삼국통일을 한 임금은 무열왕 김춘추가 아니고, 그 아들 문무왕이었다. 아버지와 외삼촌 김유신의 업적을 이어받아 고구려를 마저 멸망시키고, 호시탐탐 노리는 당나라의 야욕을 일거에 물리친 임금이 바로 문무왕. 그는 죽어서도 저 쪽바리 왜놈들의 침략을 막고자 동해의 용이 되고자 했다. 화장火葬을 한 임금도 그가 처음. 화장하여 유골을 해변가 큰바위 사이에 묻어달라고 했던 문무왕. 그 불멸의 호국정신을 우리의 대통령은 기억하고 있을까? 아베와의 경제전쟁에서 우리가 이겨야 하는 이유를 아시는가? 지소미아의 폐기가 아닌 보류, 이것이 과연 올바른 판단일까? 그대로 밀어붙이면 왜 안되는 걸까? 그런저런 생각을 하며 봉길해수욕장의 대왕암을 바라보며 인증샷을 찍지만, 입맛은 쓰고 썼다. 해물짜장과 짬뽕 한 그릇에 배가 남산만큼 불렀다. 포만감에 잠이 오지만, 갈 길이 바쁘다.
돌아오면서 느낀 한 가지. 경상도 내륙지역(함양-거창-대구-경주-포항)을 88올림픽도로로 거쳐오면서, 전라도 지역과 확연히 다른 것 하나는 산골이든 들판이든, 무슨 공장들이 산업단지 마냥 많다는 것이고, 도로마다 큰 화물차들이 엄청 많이 다닌다는 것. 경주와 포항 근처는 자동차공장이 있으니까 수많은 하청업체들이 있어 그렇다해도, 다른 지역에도 무슨 공장들이 그리 많은지 정말 놀랐다. 진짜 전라도지역과는 ‘켐’이 안되는 모습을 보고는, 경상도 출신(PK, TK) 정치인을 비롯한 대통령의 지역차별정책으로 인한 것이라고 생각하니, 분노가 부글부글 피어올랐다. 안전운전을 담당하신 장기사의 마음도 마찬가지, 이구동성이었음을 불문가지. 하여, 말했다. “못해도 30년은 잡아야 허는디, 그리야 겨우 비뚜러진 운동장이 조금 평평하게 될랑가 모르는디 말이여” 헐!
어쨌거나,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처럼 일박이일, 친구들 잘 만나 참 잘 했다잉. 모다 애썼어. 운전하느라, 요리하느라, 같이 술 마시느라, 주사 끝 말다툼허느라. 도우미 분내 맡느라, 한 턱 쏘느라. 고마워. 해피 뉴 이어여이!
첫댓글 우와,다시금 우천의 기억력과 문장력에 감탄을 금한다. 특히 문화재 설명은 정말 어렵다.한마디로 우천을 친구로 든 것이 나의 가장 큰 재산중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