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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 모르지. 인간에겐 저주가 되던 행운이 되든 지가 원하는 것만 하는 게 귀신이니까. 무섭기도 하지만 한없이 어리석고 불쌍한 게 또 귀신이야. 오죽하면 자기가 죽은 줄도 모르고 떠돌아다니겠어?
낄낄댄다.
용현: …….
씬 90. 용현의 아파트.
욕실.
뜨거운 김…….
샤워를 하고 있는 용현.
시간 경과.
빗소리…….
거울 앞에 선 채 몸의 물기를 닦고 있는 용현.
몸을 조금 틀어 거울에 비춰 본다.
등 밑에서부터 둔부까지 이어진 징그러운 화상흉터…….
용현, 잠시 거울을 바라보고 서 있는데 갑자기 후두둑…….
하고 뭔가 떨어지는 소리…….
용현, 보면, 낡은 벽에서 떨어져 내린 타일 몇 개…….
다시금 거울 뒷벽에서 타일 하나가 저절로 툭 떨어져 내린다.
용현…….
빗소리…….
씬 91. 은수의 아파트.
피아노 앞에 우두커니 앉아 비가 내리는 밖을 바라보고 있는 은수…….
씬 92. 선영의 아파트.
베란다 쪽에 선 채 담배를 피우고 있는 선영. 밖으로 내리고 있는 비…….
부엌. 가스레인지 위에서 끓기 시작하는 물주전자…….
선영, 부엌으로 가 커피를 타려고 보면 텅 빈 커피 통…….
수납장을 열어 보는 선영.
커피를 찾는데, 한쪽에 놓여 있는 아이(진영)가 먹던 아동용 코코아.
물끄러미 바라보는 선영.
눈물…….
그 위로 들려오기 시작하는 어린아이의 노랫소리…….
(아이): 해와 달과 별들이 말씀대로 움직이고 째각째각 시간이 쉬지 않고 흘러가요…….
씬 93. 달리는 택시/차안/밤.
비…….
움직이는 와이퍼들 사이로 보이는 도심 정경…….
뒷좌석에서 들려오고 있는 어린아이의 노래 소리…….
(아이): 일초 이초 삼초 사초 오초 육초 치-일초……. 하나님의 시간이 쉬지 않고 흘러가요……. 해와 달과 별들이…….
백미러를 올려다보는 용현.
뒷좌석의 어린아이와 그 엄마…….
엄마, 애의 얼굴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고 노래를 계속 해 가는 아이…….
(아이): 해와 달과 별들이 말씀대로 움직이고 째각째각 시간이 쉬지 않고 흘러가요. 하루 이틀 삼일 사일 오일 육일 치-이일. 하나님의 시간이…….
노래를 들으며 계속 백미러를 올려다보는 용현…….
시간 경과.
비…….
움직이는 와이퍼들 사이로 보이는 새벽의 한적한 외곽도로 정경…….
그 위로 들려오는 용현의 목소리.
(용현): 어제 무슨 일 있었어요?
담배에 불을 붙여 물곤 창밖만을 바라보는 선영.
용현: 어디 아파요?
선영: 아니에요. 그냥…….
용현: (바라보다) 왜 나한테 얘기 안 했어요?
선영: ?
용현: 잃어버린 애가 있었다는 거.
선영: !
용현: 옆집 사람한테 들었어요. 그 얘기 듣고 나니까 문득 궁금해 지드라고요.
선영: 뭐가요?
용현: 내 부모는 날 버렸을까 아님 날 잃어버렸을까…….
선영: ?
용현: 고아거든요.
선영: !
용현을 빤히 쳐다보다 손가방에서 뭔가 꺼내는 선영.
용현에게 건넨다. 남자 스카프…….
용현: (받으며) 뭐예요?
선영: 어제가 애 생일이라 케이크 사러 갔다 같이 샀어요. 곧 추워지잖아요?
선영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용현.
선영, 미소…….
씬 94. 포장마차/새벽.
비…….
포장마차 비닐에 비친 우동들을 먹고 있는 선영과 용현의 그림자…….
씬 95. 용현의 아파트.
말쑥하게 차려입은 선영, 어수선한 용현의 아파트를 정리하고 있고 욕실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물소리…….
대충 정리를 끝낸 선영, 부엌으로 가 플라스틱 용기 하나를 집어 들곤 냉장고 쪽으로 가는데 샤워를 마친 용현이 욕실에서 나온다.
선영, 냉장고에 플라스틱 용기를 넣으며.
선영: 김치 좀 가져 왔으니까 두고 먹어요. (냉장고 안을 살펴보며) 휴……. 정리 좀 하고 살지.
용현, 옷을 챙겨 입기 시작하고 냉장고 안을 정리하기 시작하는 선영.
용현: 그냥 놔둬요.
선영: 어휴. 이 오래된 거 봐.
하며, 냉장고 정리를 하는데, 깊숙이 넣어져 있는 검은 비닐봉지 하나…….
선영, 무심결에 열어 보는데, 비닐들로 몇 겹으로 싸져 있는 봉지…….
열어보면, 여자 패물들…….
선영!
옷을 입다 선영 쪽을 바라보는 용현.
다가온다.
선영, 재빨리 비닐봉지를 원위치 시키는데 떨어져 나오는 여자 반지 하나…….
선영, 잽싸게 손바닥 안으로 숨기고…….
용현: 물 좀 꺼내줄래요?
선영: (태연) 네.
용현에게 물을 꺼내주는 선영.
씬 96. 아파트 앞.
차로 향하는 용현과 선영.
차 문을 열려던 용현이 아파트 위를 바라본다.
선영, 용현의 시선을 따라 위를 올려다보면, 옥상에 선 채 두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는 은수.
강렬한 역광…….
씬 97. 달리는 차안.
맑은 햇살 아래 펼쳐진 화사한 국도.
차를 몰아가고 있는 용현과 옆자리의 선영.
별 말이 없는 두 사람.
선영, 담배만 피울 뿐…….
씬 98. 용현의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은수.
전과는 다르게 이번엔 아예 간이 옷장이며 용현의 소지품 등을 뒤져본다.
이 곳 저 곳을 뒤져보다 뭔가 이상한 느낌에 휙 뒤를 돌아보는 은수.
천장…….
낡은 벽지 한 자락이 깃털처럼 하늘거리며 떨어지고 있다.
은수, 불에 그슬린 흔적이 남아 있는 천장을 바라보는데 베란다 쪽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소리. 돌아보면, 플라스틱 집안에서 뭔가 불안한 듯 빠르게 왔다 갔다 하며 요동을 치고 있는 햄스터…….
가까이 다가가서 햄스터를 들여다보는 은수.
순간, 은수 옷자락에 스쳐 넘어지는 햄스터 먹이통…….
은수, 아랑곳하지 않고 용기 안에 들여다보는데, 바닥에 깔아놓은 나무껍질들 사이로 뭔가 보인다.
꺼내 열어보는 은수.
예금주란에 이 미정이란 여자 이름…….
은수!
씬 99. 개울가.
한쪽에 세워 놓은 차…….
용현, 개울가에서 세수를 하고 있고 담배를 피우며 주위 정경을 둘러보고 있는 선영.
선영: 안 차가워요?
용현: 차가워요. (용현의 옆으로 와 세수를 해보는 선영) 정신이 번쩍 나죠?
물에 젖은 얼굴로 용현을 바라보는 선영.
용현.
용현의 목을 바라보는 선영.
자신이 선물한 스카프…….
손을 내밀어 흐트러진 부분을 가지런히 해 주는 선영.
용현…….
씬 100. 시골 초등학교 앞.
스티커 사진기 안. 용현과 선영의 얼굴에 스치는 후레쉬 라이트…….
모니터에 스톱 모션으로 웃는 얼굴들로 찍힌 사진을 바라보는 용현과 선영.
씬 101. 이 작가의 아파트.
컴퓨터 앞에 앉아 완성된 원고를 최종적으로 살펴보고 있는 이 작가.
이내 디스크에 저장…….
디스크를 뽑아 든다.
이 작가, 흡족한 눈길로 디스크를 잠시 바라보다 책상 위의 낡은 노트를 집어 뒤적거려본다. 조그만 손 글씨들로 빼곡히 들어차 있는 노트…….
이 작가, 뭔가 생각…….
도심 정경을 배경으로 우울하게 서성이고 있는 은수.
어느 순간, 옥상으로 통하는 계단에서 들려오기 시작하는 발자국 소리……. 은수?
일단 한쪽으로 몸을 숨기는데, 이내 낡은 노트를 든 이 작가가 옥상으로 들어선다.
곧장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낡은 노트에 불을 붙이는 이 작가.
은수!
낡은 노트에 눈길이 쏠리고…….
이 작가, 노트에 불을 붙여 놓곤 담배를 피워 무는데 어느새 뒤에 와 서 있는 은수.
흠칫…….
놀라는 이 작가.
믿을 수 없다는 듯, 타들어 가고 있는 노트를 바라보는 은수.
이 작가, 당황…….
은수: 이 거 광태 오빠 노트 아니에요?
이 작가: (당황) 으, 응…….
은수: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이 작가: 으, 응. 전에 광태 아파트에서 불났을 때 꺼내놨던 건데…….
은수: (어이가 없다) 불난 아파트에서 그 노트부터 꺼냈었어요?
이 작가: 아……. 불 끄는 와중에 집어던져 놓은 거지.
은수: (타들어 가는 노트를 보는) …….
이 작가: 너한테 주자니 괜히 더 심란하게 만들 것 같고, 버리자니 꼭 내가 쓴 얘기 버리는 거 같아서 가지고 있었던 건데…….
은수: (쏘아본다) 그게 어떻게 아저씨가 쓴 얘기예요?
이 작가: 사실이 그렇지. 내가 걔한테 준 아이디어가 얼만데? 그거 그대로 갖다 쓴 것도 많아? 그리고 너도 노트 봤겠지만 그건 소설이 아냐. 손으로 끄적대다 만 거지. 넌 어떻게 볼지 몰라도 우리 같은 프로가 보면 완전 아마추어 습작노트야. 까놓고 얘기해서 나 같은 프로 만나서 그나마 그 정도 습작한 거지. 소설이 그렇게 쉽게 하루아침에 쓰여지는 줄 알아?
어느덧 재로 변한 노트…….
이 작가를 경멸하듯 쏘아보는 은수.
이 작가: 너……. 날 왜 그렇게 쳐다봐?
은수: (뭔가 할 말은 많은데) …….
씬 103. 달리는 차안.
달리는 차창으로 보이는 편의점.
가까워지고……. 이내 멈추는 차.
선영이 내린다.
용현: 이따 봐요.
선영: 수고해요.
출발하는 차…….
운전을 해가며 백미러를 올려다보는 용현. 멀어져 가는 거울 속 선영의 모습…….
씬 104. 택시회사 주차장/밤.
차, 서고…….
용현, 차에서 내리는데, 용현에게 다가오는 사내(형사) 둘.
형 사1: (다가와선) 김 용현 씨 맞죠?
용현: ?
시간경과.
차 앞에 선 채, 형사들과 얘기를 나누는 용현.
용현: 암튼 그날 밤 대판 싸우고 다음 날 들어가 보니까……. 전부 걷어 가지고 사라지고 없었어요.
형사1: 그 후로 무슨 연락 같은 거 없었어요?
용현: 전혀.
주위를 둘러보는 용현.
한쪽에 모여 선 채 수군대고 있는 영범과 몇몇 기사들.
용현…….
형사1: 가족들 얘기론 이미정씨는 어디에 있든 항상 식구들하고만은 연락을 했다던데 최근에 가족들과도 연락이 끊겼다는 게 좀 이상하지 않아요?
용현: (짜증) 그래서 이렇게 수사하고 있는 거 아닌가요? 그 걸 왜 나한테 묻죠?
형사1: 직장을 갑자기 옮겼던데…….
용현: (짜증) 걔……. 지네 친구들 돈 긁어 가지고 튄 거 아시죠? 그 것 때문에 나까지 의심받고 결국 그 술집 때려치우고 여기 온 거 아닙니까? 저도 피해자예요?
형사2: 암튼 신분증 좀…….
용현: 예?
끓는다.
씬 105. 편의점/새벽.
한산한 가게.
카운터에 앉아 뭔가 만지작거리고 있는 선영.
용현의 냉장고에서 나온 여자 반지…….
시간 경과.
용현을 기다리는 듯 편의점 앞에 서 있는 선영.
차 한 대 없는 어두운 거리…….
몇 번 시계를 들여다보고 서성이다 담배를 피워 물곤 어둠 속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는 선영.
씬 106. 아파트 계단/새벽.
혼자 어두운 계단을 오르는 선영.
문득 위를 보면, 계단 위에 서 있는 은수.
선영…….
씬 107. 은수 아파트/새벽.
흥분한 얼굴로 선영에게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는 은수.
은수: 불난 와중에 그 노트부터 빼돌린 거야. 그 거 가지고 그대로 베껴 먹고 있는 거구. 당장 사람이 죽어 가는데……. 도둑놈. 그런 게 무슨 작가야?
선영: (무심) …….
은수: 혹시 광태 오빠 아파트에 난 화재도…….
선영: ?
은수: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잖아? 광태 오빠 글 쓰는 거 도와주는 척 하면서 얼마나 그 얘길 탐을 냈었는데……. 질투하고…….
선영: (피곤) 너 그런 생각하느라 지금껏 잠 못 잔거야?
은수: ?
선영: (일어선다) 그만 자자. 피곤해.
은수: 언니 인제 내 얘긴 아예 안 듣는 거야?
선영: 오늘은 피곤하다고 그랬잖아?
은수: 그 사람한텐 그런 식으로 얘기 못 하지?
선영: (짜증) 너 자꾸 왜 그래? 바보 같이.
은수: 그 사람 햄스터 키우지?
선영: ?
은수: 그 안에 한 번 봐. 뭐가 숨겨져 있는지.
씬 108. 아파트 계단/새벽.
어두운 아파트 계단을 오르는 용현.
기분이 별로 안 좋은…….
용현, 이내 계단을 다 올라가는데 예의 끼이익……. 소리를 내며 어둠 속에서 저절로 조금씩 움직여 가는 그 세발자전거…….
용현, 계단에 올라서자마자 갑자기 자전거를 확 걷어차 버린다.
용현, 그래도 직성이 안 풀리는 듯 자전거를 아예 지근지근 짓밟기 시작하는데, 계단 옆 은수의 아파트에서 흘러나오는 은수와 선영의 다투는 소리…….
용현?
(은수:) 그 사람 앞에서 꼬리치고, 유혹하고……. 됐다 싶으니까 남편도 그렇게 만든 거 아냐?
씬 109. 은수 아파트/새벽.
은수의 뺨을 후려치는 선영.
선영: 니가 뭘 안다고 그래?
은수: (선영을 빤히 쏘아본다) 그 날 새벽에 다 봤어.
선영: !
은수: 둘이서 뭔가 차에 싣고 나가는 거…….
선영: !
은수: 만날 입버릇처럼 남편 죽이고 싶다고 했지? (눈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그 사람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이용해 먹고 뒷감당 어떡하려고? 그 사람 심상치 않은 사람인 줄도 안대며?
선영: 상관없어.
은수: (눈물) 그래. 언닌 이제 다 상관없지? 걸리적거리는 게 하나도 없으니까. 다 언니 뜻대로 돼서 행복하지? 나 같은 건 어떻게 되든, 잃어버린 애가 돌아오든 말든 다 상관없지?
선영: …….
씬 110. 복도/새벽.
은수의 아파트 앞에 서 있는 용현.
심각…….
씬 111. 용현의 아파트/새벽.
심각한 얼굴로 아파트 안으로 들어서는 용현.
본능적으로 냉장고 쪽으로 가 안에 숨겨둔 패물들을 확인하곤 곧장 햄스터 쪽으로 간다.
햄스터 집안에 든 통장을 확인하는 용현.
뭔가 이상…….
햄스터 집 주위를 살펴본다.
넘어진 채 조금 엎질러진 채 바닥에 조금 쏟아져 있는 햄스터 먹이……. 용현……. 두 눈을 질끈 감는다.
분노…….
씬 112. 아파트 복도/새벽.
선영, 자기 아파트 문을 열려다 말고 문득 용현의 아파트 쪽을 바라본다. 불이 켜져 있는 아파트…….
용현의 아파트로 발걸음을 옮기는 선영.
복도 중간쯤에 멈춰 선다.
잠시 망설이다.
돌아서는데, 형편없이 찌그러진 채 옥상으로 통하는 계단 위에 팽개쳐져 있는 세발자전거…….
선영…….
다가가 찌그러진 자전거를 만져 보다 힘없이 벽에 기대앉는다.
담배를 피워 무는 선영.
어두운 계단…….
담배연기……. 멀건 선영의 표정…….
계단 쪽에서 들려오는 흥얼거리는 소리, 발자국 소리…….
선영?
이내 흠씬 취한 이 작가와 송 씨가 계단을 올라온다.
이 작가: 두고 보세요. 이번 소설만 나오면 저 완전히 재기합니다.
송 씨: 아……. 잘 됨 좋지.
이 작가: 오늘은 제가 뭐……. 없는 살림에 오입도 못 시켜드리고…….
송 씨: 야. 은수 듣는다. 목소리 좀 낮춰.
옥상으로 통하는 계단에 앉아 있는 선영을 못 본 채 복도를 돌아 이 작가의 아파트로 향하는 두 사람.
이 작가: 암튼 제가 오늘은 제 냉장고에 있는 술까지 다 털어 대접하고……. 다음번엔 확실히 쏩니다.
송 씨: 야. 됐어. 됐어.
이 작가: 아……. 형님 힘이 컸죠.
송 씨: 힘은 무슨.
이 작가: 삼십 년 전 비극의 유일한 증인. 이발소 김 씨. 그 거 아닙니까.
송 씨: 너 취했냐? 내가 왜 김 씨야? 송 씨지.
이 작가: 아……. 소설 속에서.
송 씨: 그대로 쓰지 왜?
이 작가: 여기 사는 사람 다 저주받는다는 얘긴데 어떻게 다 실명을 씁니까.
송 씨: 나도 저주받나?
이 작가: 아. 참. 끝까지 살아남는다니까요? 이발소 김씨는.
하는데 갑자기 깜박…….
거리기 시작하는 복도의 형광등들…….
송 씨: (둘러보며) 뭐야? 이거.
이 작가: 하……. 암튼 이 아파트 사람 살 데 못 돼.
계속 깜-박…….
이는 형광등들…….
계단.
여전히 계단 어둠 속에 앉아 있던 선영, 천장을 올려다본다.
계속 깜박이는 형광등…….
씬 113. 용현의 아파트/새벽.
욕실.
역시 깜박…….
거리고 있는 형광등…….
샤워를 막 끝내고 물기를 닦아내고 있었던 듯 알몸으로 거울 앞에 서 있는 용현.
깜박거리는 등을 올려다보고 있는 그 무표정한 얼굴…….
씬 114. 아파트 복도 끝.
은수의 아파트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피아노 소리……. 화사한 햇살이 드는 복도 끝에 선 채 담배들을 피우고 있는 용현과 상철.
상철: 들어보니까 그 계집애 그 거 여기저기서 긁어간 돈이 꽤 되데? 하……. 고 거.
용현: …….
상철: 참 형사들이 뭐래?
용현: 내가 미정 이를 마지막 본 사람이란 거지. 뭐.
상철: 암튼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라.
용현: 뭘?
상철: 아니. 짭새들이 나한테 와서 니 소재 물어보는데 모른다고 그럼 더 이상하잖아? 그래서 걔들한테니 소재 알려준 거야.
용현: 근데 뭐?
상철: 니가 괜히 오해할까봐. 그래서 일부러 들린 거야. 자식아. (웃음) 갑자기 헷까닥하면 못 말리는 놈인데…….
그 말에 상철을 쏘아보는 용현.
전혀 딴 사람 같은 그 표정.
상철, 갑자기 머쓱…….
한데 복도 반대편 끝.
아파트에서 나와 계단 쪽으로 걸어오는 선영.
두 사람의 시선, 그녀에게로 쏠리고…….
상철: 잘 빠졌네.
하는데, 그 말에 다시 상철을 쏘아보는 용현.
상철: 왜?
시간 경과.
피아노 소리…….
반대 편 복도 끝.
끝에 기대 선 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용현.
멀리 밑으로 보이는 아파트 뒷숲…….
선영이 걸어 나오고 있다.
아파트로 이어진 계단을 담배를 피우며 천천히 걸어 내려오는 선영…….
용현, 잠시 그 모습을 내려다보다 돌아서는데, 어느덧 뒤에서 그런 용현을 지켜보고 서 있는 은수.
용현…….
은수,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 버리고…….
씬 115. 이발소.
노을…….
빈 가게.
창 쪽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송씨.
용현이 가게 안으로 들어선다.
전혀 모른 채 여전히 졸고 있는 송씨.
용현, 졸고 있는 송 씨를 보곤 사진 액자가 걸려 있는 벽 쪽으로 간다.
젊은 송 씨 부부와 애를 안은 점박이 부부의 흑백사진을 바라보는 용현…….
사진 속 갓난애에게로 눈길이 쏠리는데…….
졸린 눈을 뜨는 송씨.
송씨: 어? 언제 왔어?
용현: (당황) 아, 예.
송씨: (하품) 왜?
용현: 월세 드리려고 나가는 길에 들렸어요.
호주머니에서 현금을 꺼낸다.
송씨: (기지개) 어……. 벌써 그렇게 됐나?
씬 116. 택시회사/새벽.
도색실 앞.
편의점 앞/새벽.
언제 나처럼 가게를 나서자마자 담배를 피워 무는 선영.
주위를 둘러본다.
인적 하나 없는 어두운 새벽 거리…….
어둠 속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는 선영.
씬 120. 골목/새벽.
선영, 담배를 피우며 걷는데 주위에 어른거리기 시작하는 자동차 불빛…….
뒤를 돌아보는 선영.
강한 자동차 불빛…….
다가가는 용현의 차에서 보이는 하얀 선영의 얼굴…….
씬 121. 달리는 차안/새벽.
용현, 차를 몰아가고 있고 그 옆에 앉아 있는 선영.
말이 없는 두 사람.
왠지 서먹한 분위기…….
즐겨 먹는 과자를 꺼내 한 입 톡 베어 먹는 용현.
용현을 바라보는 선영…….
용현: 왜?
선영: 왜? (웃음) 웬 반말?
용현: 편하잖아. 칠 사년 생이라며? 편하게 얘기해. 한 살 차인데. 뭐.
웃으며 용현의 얼굴을 바라보는 선영.
용현?
선영: 술 마셨어?
용현: 조금. 나 내일 비번인데 어디 바람이나 쐬러 나가지? 말 놓은 기념으로.
선영: (웃음) 어디?
용현: (미소) …….
씬 122. 이 작가의 아파트/새벽.
프린터에서 출력되고 있는 소설…….
이 작가, 몇 장을 집어 들어 흡족하게 읽어보는데 용현의 아파트에서 들려오기 시작하는 교성…….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이 작가…….
씬 123. 아파트 복도/새벽.
용현의 아파트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교성…….
어두운 아파트 복도 중간에 미동도 없이 서 있는 은수…….
고요…….
씬 124. 용현의 아파트.
늦은 아침 햇살…….
용현, 한 쪽에 자고 있고 베란다 쪽에서 햄스터를 살펴보고 있는 선영.
고개를 돌려 용현이 자고 있음을 확인하곤 햄스터 집안으로 손을 넣어 바닥에 깔아진 나무껍질들을 걷어내 보는 선영.
통장이 보인다.
선영?
조심스럽게 꺼내 펼쳐보는데…….
한 쪽에서 자는 척하며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훔쳐보고 있는 용현…….
시간 경과.
말쑥한 차림의 선영.
거울을 보며 입술에 루즈를 칠하고 있고, 베란다 쪽에서 햄스터에게 물을 주고 있는 용현.
선영: (루즈를 칠하며) 지성이야.
용현: 귀엽잖아?
선영: 흐……. 난 징그러. 그런 걸 뭐 하러 키워?
용현: 이래 뵈도 대단한 놈이야? 외로울 거 같아 다른 놈을 넣어 주면 사정없이 물어 죽이고 어떤 땐 일주일 동안 집 비우고 돌아와도 끄떡없이 살아 있는 놈이야. 대단치 않아?
선영: 몰라. 난 암튼 징그러.
햄스터 등가죽을 집어 들어 가까이 들여다보는 용현. 미소…….
씬 125. 아파트 이면도로.
차로 다가가는 말쑥한 차림의 용현과 선영.
선영이 문득 발걸음을 멈추곤 위를 올려다본다.
용현, 따라 보면, 아파트 옥상 위에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은수.
강렬한 역광……. 두 사람…….
씬 126. 달리는 차안.
시원한 도로.
아름다운 풍광…….
차를 몰아가고 있는 용현과 옆자리의 선영.
용현, 웃어 보인다.
선영, 미소…….
그러나 왠지…….
씬 127. 민속마을/씬 33의.
산자락 아래 펼쳐진 조그만 마을.
아주 오래된 옛날 집들…….
인서트.
마을 전경이 보이는 진입로…….
마을을 바라보고 서 있는 용현과 선영.
시간경과.
아주 오래된 돌담길을 거니는 용현과 선영.
선영이 용현의 운동화 끈을 메어주었던 바로 그…….
용현: 여기였지?
선영: ?
용현: 내 운동화 끈 메 줬던 데가?
선영: (웃음) 별 걸 다 기억해?
용현: 그 게 제일 기억에 남아.
선영: 왜?
용현: 엄마처럼……. 그렇게 자상한 여잘 만나본 적이 없었거든.
선영: 엄마?
용현: 응. 얼굴은 기억할 수 없지만 내게도 엄마가 있었다면 그렇게 자상했을 것 아냐.
선영: (웃음) 난 그렇게 자상한 엄마가 못 되는데…….
시간 경과.
돌담 너머로 한 토담집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두 사람.
사람이 살지 않은 듯 마당에 잡초만 무성하다.
시간경과.
토담집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있는 용현과 선영.
바람…….
담배를 꺼내 무는 선영.
선영: (담뱃갑을 내밀며) 피워?
용현, 담배 한 개비를 뽑아들면 불을 붙여주는 선영.
선영: (불을 붙이곤) 사람이 안 산 지 오래 됐나봐?
용현: (둘러보며) 그런 거 같지?
선영: 평생 이런 데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용현: 난 별롤 거 같은데?
선영: 왜? 좋잖아. 조용하고 공기 좋고…….
용현: 글쎄. 암튼 한 곳에 너무 오래 사는 건 별로야. 재미없잖아?
선영: (바라본다) …….
시간경과.
잡초만 무성한 빈 토담집 마당.
선영, 마당 가운데 선 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고, 여전히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있는 용현.
한동안 말이 없는 두 사람.
바람…….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들…….
씬 128. 민속마을 근처/토속 음식점.
나무 밑 평상 위에 앉아 닭죽을 먹고 있는 용현과 선영.
늙디 늙은 할머니가 물을 가져온다.
할머니: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왔어?
선영: ?
용현: (당황) 아……. 예. 좀 바빴어요.
할머니: 안에 들어 가서들 먹지? 쌀쌀한데.
용현: 괜찮은데요. 뭐.
할머니: 뭐 좀 더 갖다 줘?
용현: 아뇨. 음식 맛은 그대로네요?
할머니: 그럼. 그 맛이 어디 가. (선영을 흘끔 본다) 그럼 쉬엄쉬엄 먹다들 가.
용현: 예.
할머니, 선영을 흘끔 한 번 더 쳐다보며 가게 쪽으로 사라지고, 용현, 왠지 머쓱…….
한데, 개의치 않고 닭죽만을 먹는 선영…….
시간경과.
붉은 노을…….
상위의 빈 소주병들……. 소주를 한 잔 들이키곤 선영에게 잔을 권하는 용현.
선영: 오늘은 일 나가지 말라는 거야?
용현: 까짓 거 하루 안 나간다고 짤리나? 아님 굶어 죽어?
선영, 웃음……. 술을 받아 한 잔 쭉 마신다.
선영: 그래. 까짓 거 하루 쉬지. 뭐.
담배를 피워 물곤 노을을 바라보는 선영.
용현, 술을 들이켜고…….
시간경과.
연못 물 위에 휘영청 떠 있는 달…….
식당 주차장 근처의 공터…….
비틀대며 물가를 서성대고 있는 두 사람.
많이들 취해 있다.
갑자기 끽끽거리기 시작하는 선영…….
용현: ?
선영: 왜 그런 생각을 못 했을까?
용현: 무슨?
선영: 이렇게 하루 정도 농땡이 칠 생각. 늘 잠 못 자고 편의점에서 일해야 한다는 게 지긋지긋 했었는데도 그런 생각은 한 번도 못 했어. 무슨 큰 돈 버는 것도 아닌데…….
용현: (웃음) 같이 농땡이 필 사람이 없었겠지.
선영: 암튼……. 너무 바보같이 살아온 거 같아. 이젠 좀 잊을 건 잊고……. 편하게 좀 살고 싶어. 단 하루를 살더라도…….
용현: 편하게…….
선영: 응. 항상 편하게 좀 살고 싶었는데……. 그 게 안 돼. 부모복도 없고 결혼생활도 아이도……. 모든 게……. (웃음) 팔자가 센 건가?
용현: (웃음) 편하게 사는 법 가르쳐 줘?
선영: 뭔데?
취해 건들대며 잠시 선영을 바라보는 용현.
용현: 고등학교 때 전교에서 제일 싸움 잘 하는 놈이 하나 있었어. 나도 싸움이라면 자신 있었는데……. 그 놈한테만은 안 돼드라구. 더 쪽 팔린 건 그 놈이 집안도 엄청 좋고, 공부도 꽤 하는 놈이었다는 거지. 근데 이 새끼가 날 볼 때마다 고아 어쩌고 하면서 놀리는데 내가 뭐로든 당할 수 없는 놈이니까 이건 학교 가기 싫은 정도가 아니라 내가 너무 비참해 보이는 거야. 살기가 싫을 정도로……. 미치는 거지. 그래 하루는 그 놈한테 학교 뒤 야산에서 맞짱을 뜨자고 해놓곤 칼을 숨겨 가지고 나갔지…….
선영: ?
용현: 결국 그 놈을 죽여서 산에 묻고 나니까 편안해지는 게……. 내가 살겠드라구. 아무도 몰라. 지금까지도……. 그게 내가 세상을 편하게 사는 법이야.
역시 취해 건들대며 잠시 용현을 빤히 쳐다보는 선영.
선영: (웃는다) 간단하네?
용현: 너무 간단하지. 운명이네 팔자네 다 개소리야. 난 철들면서부터 내 부모가 누군지 내가 어떻게 고아원에 던져졌는지 한 번도 궁금해 해본 적 없어. 그 부모라는 인간들이 날 패대기친 걸 가지고 내가 왜 운명 어쩌고 돌려서 생각해야 하냐구? 웃기잖아? 엄연한 사실을 놔두고 있지도 않은 팔자 탓을 하는 게.
선영: 내가 바본가? 난 왜 그렇게 편하게 생각을 못 하지?
용현: (빤히 쳐다본다) …….
선영: 왜?
용현: 어쩜 나 보다 세상을 더 편하게 사는 것 같던데?
선영: ?
용현: 내가 그렇게 평범한 놈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날 만나준 걸 보면…….
선영: 무슨 소리야?
용현: 고아에…….
선영: 그 게 뭐 어때서?
용현: 사람도 죽였잖아.
선영: 한 가지만 물어봐도 돼?
용현: 뭐든지.
선영: 이 미정이란 여자가 누구야?
용현: 누구?
선영: 그 통장주인.
취해 건들대며 선영을 빤히 쳐다보는 용현…….
어둠…….
비…….
흙구덩이 속에 처박히는 미정의 시체…….
선영: 그 여자도 편한 대로 한 건가?
씨익 웃으며 어깨를 으쓱…….
해 보이는 용현.
용현: 전에 동거했던 여잔데……. 처음엔 좋았지. 잘 챙겨주고…….
선영: 엄마처럼?
용현: (웃음) 운동화 끈을 메줄 정돈 아니었고……. 암튼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 줬지. 옷이면 옷, 보석이면 보석……. 근데 결국엔 날 이용해 먹으려 들더란 말이지. 날 핑계로 여기저기서 돈을 꿔 들이고……. 다른 놈하고 작당을 하고선……. 암튼 뭐……. 다 좋은데……. 날 돌게 만든 건 조금도 날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야. (빤히 쳐다본다) 뭘 알고 싶은데?
선영: 용현씬 날 사랑해?
용현: 사랑?
취해 건들대며 서성이기 시작하는 용현.
용현: 글쎄. 헷갈려…….
선영: 뭐가?
용현: 지금껏 살아오면서 한 번도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는데 말이야. 널 보면……. 헷갈려……. 그게 뭘까? 한 번도 이렇게 헷갈려 본 적이 없는데…….
선영: (웃음) 세상엔 정말 운명 같은 게 없을까?
용현: 없어. 그 건 헷갈릴 일이 없지.
선영: 처음에 아파트 옥상에서 나 봤던 거 기억나지?
용현: 응.
선영: 그 날 밤……. 옥상에서 뛰어 내리려고 거기 갔던 거 알아?
용현: ?
선영: 어떻게 됐을까? 그 날 밤 용현씰 안 만났다면……. 죽었을까?
용현: …….
비틀거리며 웃는 선영…….
담배를 꺼내 물곤 용현에게도 권한다.
한 개비를 뽑아 무는 용현.
예의 불을 붙여주는 선영.
비틀대며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
미친 사람들처럼 끽끽대기 시작한다.
씬 129. 모텔방/밤.
어둠.
밤비…….
숲 속에 서 있는 한 모텔 전경.
인서트.
어두운 모텔 방.
몹시 취한 선영, 침대 위에 걸터앉아 있고 창 쪽에 건들거리고 선 채 밖을 내다보고 있는 용현.
한동안 말이 없는 두 사람…….
장대비…….
주머니에서 뭔가 꺼내 한 입 톡 베어 무는 용현.
항상 먹는 그 과자…….
과자를 먹는 용현을 쳐다보는 선영.
용현: ?
선영: 그 과자……. 진영이가 제일 좋아하던 건데…….
용현: ?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벗기 시작하는 선영. 순간, 선영의 옷에서 떨어져 나오는 반지 하나.
용현의 냉장고에 있던 바로 그…….
용현!아무 것도 모른 채 비틀대며 욕실 쪽으로 향하는 선영.
욕실 안으로 들어가고…….
반지를 집어 드는 용현.
시간 경과.
욕실.
거울 앞에 속옷 차림으로 우두커니 선 채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선영.
우울한 얼굴…….
욕조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선영…….
선영과 남편의 부부싸움…….
캐비닛 안으로 숨어 들어가는 겁에 질린 진영…….
샤워기를 트는 선영의 손…….
끼이익…….
하며 뿜어져 나오는 물소리…….
얻어맞으며 캐비닛에 부딪히는 선영.
끼이익…….
돌아가는 캐비넷 손잡이…….
잠긴다.
물줄기에 머리를 갖다 대는 선영…….
벽에 머리를 부딪치며 바닥에 쓰러지는 선영…….
선영의 얼굴 위로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물…….
정신을 차리는 선영.
빈 아파트…….
어느덧 기울 있는 해…….
후다닥 일어나 캐비넷으로 가 문을 열어보는 선영…….
비명…….
계속 물을 맞고 있는 선영.
눈물…….
캐비넷 내부…….
아이가 죽어가며 긁어댄 선명한 손톱자국들…….
어두운 방.
욕실에서 샤워소리 들려오고 있고…….
침대에 걸터앉은 채 선영의 옷에서 나온 반지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용현…….
이내 샤워소리 사라지고 조용…….
빗소리…….
선영이 욕실에서 나온다.
여전히 반지만을 들여다보고 앉아 있는 용현…….
선영!
용현: 이거 어디서 났어?
선뜻 대답을 못 하는 선영.
자리에서 일어나 선영에게 다가가는 용현.
선영을 쏘아보는, 전혀 다른 사람 같은 그 눈빛…….
용현: 묻잖아? 어디서 났냐구?
선영: 샤워해.
하며, 선영, 자리에 누우려는데 어깨를 확 틀어잡는 용현…….
잔뜩 쏘아본다.
선영: 어디서 났냐고 내가 물어봐야 하는 거 아냐?
용현: 뭐?
선영: 냉장고 청소하다 발견한 거야. 고의는 아니었어. 더 얘기해?
용현: 너 처음부터 다 계획적이었지?
선영: ?
용현: 내가 필요했어? 남편을 죽이려구?
선영: !
용현: 은수하고 하는 얘기 다 들었어. 누구든 필요했어? 아무나? 그 게 나야?
선영: 오늘 그 말하려고 여기 오자고 했던 거야?
용현: 다음은 뭐야? 날 이용해 먹고……. 그 다음은? 도망가거나 다른 놈하고 붙어먹으려는 거지?
선영, 용현을 빤히 쳐다본다.
이미 뭔가 정상이 아닌 듯 한 용현…….
선영: 내게 누군가 필요했을 때 용현 씨가 나타났을 뿐이야.
용현: (갑자기 뺨을 때린다) 그러니까 내가 아무 것도 아니란 소리 아냐! 너……. 날 하찮게 본 거지? 고아에, 빈털터리에…….
목에 두르고 있던 머플러를 풀어, 디미는 용현.
용현: 조금만 잘 해줘도 금방 혹할 것 같고……. 너……. 나 우습게보고 접근했던 거지? 이용하기도, 버리기도 쉬우니까.
선영: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용현: 너 날 무시했던 거지?
이미 제정신이 아닌 용현, 계속 선영의 뺨을 툭툭 때리며…….
용현: 넌 개만도 못한 년이야. 알아?
선영: !
용현: 남편 죽이고……. 애, 잃어먹고 찾을 생각도 안 하는……. 넌 개만도 못 해. 난 너보다 백 배, 천 배 깨끗해. 알아? 은수……. 너……. 둘 다 정신병자들이야.
선영: 그러는 넌?
용현: ?
선영: 정말 날 사랑해서 이러구 있는 거야? 나야말로 아무 것도 아닌 거 아냐? 어느 여자가 평생 널 모성애로 감싸줘? 니가 아무리 찾아도 그런 여잔 없어. 니 엄마 빼곤. 그래도 난 널 이해하려고 노력했어. 내가 잘못한 게 뭔데? 그 지옥 같은 데서 너라면 그냥 그대로 살겠어? 내가 너한테 못 해준 게 뭔데? 시작이야 어쨌건 외로워 보이고 불쌍해서…….
용현: 불쌍해? (때린다) 불쌍한 건 너야!
이번엔 맞받아 용현의 뺨을 후려치는 선영…….
선영: 정신병잔 바로 너야!
용현: 뭐? 이게 근데…….
갑자기 확 달려들어 선영의 목을 조르기 시작하는 용현.
선영, 고함을 지르며 필사적으로 저항한다.
입을 틀어막으며 더욱 바짝 목을 조르는 용현.
광기로 번들거리는 붉게 충혈 된 용현의 눈…….
어느덧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선영이 버둥대며 컥컥대기 시작한다.
아예 스카프로 선영의 목을 감아 확 조이는 용현…….
불게 충혈 되어 가는 선영의 눈…….
그 위로 스치는 짧은 하나…….
밤.
미금아파트 뒷숲…….
하염없이 울며 죽은 애를 묻은 구덩이를 메우고 있는 선영…….
완전히 바짝 선영의 목을 조여 가는 용현.
점점 늘어져 가는 선영의 몸…….
이내 움직이지 않는다.
용현…….
빗소리…….
시간경과.
어두운 방.
담배를 피워 문 용현, 침대 위에 누운 채 반지를 만지작거리고 있고 그 옆으로 누여져 있는 선영의 시체…….
고요…….
빗소리……. 핸드폰 벨소리가 울린다.
용현?
주위를 둘러보는데, 선영의 손가방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벨소리…….
그대로 누워 있는 용현.
계속 울리는 벨소리…….
씬 130. 편의점 앞/새벽.
비…….
우산을 받쳐 든 은수, 핸드폰을 귀에 댄 채 서 있다.
계속 울리고 있는 신호음…….
이내 전화를 끊는 은수.
주위를 둘러본다. 걱정…….
씬 131. 숲 속/새벽.
어둠…….
장대비…….
용현, 군용 삽으로 구덩이를 파 들어가고 있고 그 옆으로 비를 맞고 누워 있는 선영의 시체…….
이내 구덩이를 다 파고 선영의 시체로 다가가는 용현.
그녀의 손가방을 뒤진다.
지갑을 꺼내 펼쳐보는 용현.
선영의 신분증…….
용현, 신분증을 꺼내다 보면, 그 뒤로 껴 있는 사진 한 장…….
라이터를 켜보는 용현.
선영과 진영이 활짝 웃고 찍은 사진.
아파트 복도에서 세발자전거를 탄 진영을 뒤에서 밀어주고 있는 선영…….
용현…….
잠시 바라보다 신분증과 함께 사진을 태우기 시작한다.
타들어 가는 사진…….
구덩이에 던져지는 선영의 시체…….
씬 132. 아파트 계단/복도/새벽.
어두운 계단…….
빗소리…….
술에 흠씬 취해 비틀거리며 계단을 오르고 있는 이 작가.
비에 흠뻑 젖은 모습…….
이 작가: 개새끼들……. 오라 가라 할 땐 언제고……. 팔릴 가망성이 없어? 이 개새끼들……. 늬들이 뭘 알아. 좋다 이거야.
하며, 계단을 다 올라서던 이 작가, 갑자기 털썩 무릎을 꿇으며 복도에 주저앉는다.
이내 나지막이 흐느끼기 시작하는 이 작가…….
씬 133. 아래층 계단/새벽.
빗소리…….
비에 젖은 모습의 용현, 주위를 살피며 계단을 오르는데 위쪽에서 신음소리처럼 들려오는 이 작가의 흐느낌 소리.
용현?
발걸음을 멈추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