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 워크, 워크
홍정현
팀워크(teamwork)에 관한 글을 쓰자고 했다. 단어 하나를 소재로 정해 수필을 쓰는 글쓰기 모임에서, 팀워크를 꼭 ‘팀웍’이라고 발음하는 칠십 대 할아버지 친구가 팀워크, 아니 ‘팀웍’을 이번 글감으로 정했다.
팀워크. 그것은 협동이란 뜻. 협동이라면 ‘근면, 자조, 협동’이지. 앗, 이럴 수가! 내 무의식 속에서, 협동은 당연하다는 듯이, 근면과 자조를 대동하고 나타났다. 이것은 내가, 요즘 젊은이들 언어로 표현하자면 ‘옛날’ 사람이라는 증거이며, 또한 우리나라 공교육이 얼마나 무섭게 우리를 세뇌했는지 보여주는 증거다. 1980년대 초반에 초등학교(당시엔 국민학교)를 다닌 나는, 심지어 ‘꽃동네 새동네’라는 새마을운동 노래를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고 말았다. 우리 세대는 초등학교 때 새마을운동 노래책을 모두 한 권씩 받아 학교에서 계속 불렀다. 계속, 계속, 지칠 때까지 계속…. 그래서 그 노래들은 내 몸 구석구석 스며들어 나의 일부가 되었고, 새마을운동과 관련된 어떤 자극을 받으면 나도 모르게 그 노래들이 튀어나왔다. 마치, 러시아 생리학자 파블로프의 조건반사 실험에서 종이 울리면 개가 침을 질질 흘렸던 것처럼 말이다.
근면, 자조, 협동은 새마을운동의 정신이다. 새마을운동에 관한 획일화된 정보가 강제 주입된 내 뇌에선 협동은 무조건 근면과 자조를 데리고 나온다. 셋은 한 세트, 한 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이 지독한 ‘근면, 자조, 협동’ 팀은 70, 80년대 초등학교를 다닌 사람들의 뇌 속에 침투하여 여전히 기생하고 있다. 대단한 팀워크, 무서운 세뇌 교육이다!
이렇게 새마을운동 정신인, 협동의 지긋지긋한 팀워크에 관해 쓴 후, 나는 다시 본래의 팀워크로 돌아오려 했다. 하지만 원하는 영감은 찾아오지 않고, 팀워크 단어를 계속 반복해 말하다 보니, 같은 ‘워크’로 끝나는 단어, ‘문워크(moonwalk)’만 떠올랐다. 영어로 ‘work’와 ‘walk’의 발음은 차이가 있지만, 우리말로는 그냥 둘 다 ‘워크’이므로 자연스럽게 그리 연상되었다. 지금은 이 세상을 떠났으나, 생전의 아동 성추행 범죄로 여전히 매스컴의 주목을 받고 있는, 가수 마이클 잭슨의 유명한 문워크 춤. 문(달) 위를 걷는 듯 다리를 끌며 뒤로 걸어가는 춤.
달은 태양(항성)계 소속 지구(행성)의 위성. 그렇다면, 팀워크는 팀이란 위성 위를 걷는 듯 추는 춤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팀이란 위성이 도대체 무엇이냐고, 어디에 있는 위성이냐고, 많은 이들은 코웃음을 치겠지? 하지만, 그들은 과연 팀이란 위성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나는 그들의 반박에 기죽지 않겠다. 우주는 넓고, 우주 속 은하는 무수히 많으며, 각각의 은하에 포함된 태양 같은 항성들 역시 너무 많아, 그 항성들을 도는 지구 같은 행성 또한 무궁무진하게 많을 테니…. 그 수많은 행성에 딸린 달 같은 위성의 숫자? 하하, 당연히 위성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것이다. 고로, 그 많은 위성 중 하나에 내 마음대로 팀이란 이름을 붙여준다 한들 누가 뭐라 하겠는가? 나는 태양에서 약 3만 광년 정도 떨어진 어떤 항성에 딸린, 어떤 행성에 있는, 어떤 위성을 ‘팀’이라 부르겠다. 그리고 거기서 걷는 듯 추는 춤을 ‘팀워크’ 춤이라 말하겠다. 팀 위성의 중력은 달보다 크고 지구보다 작으므로(역시 상상이다) 그 위에서 걷는 춤은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 춤보다 더 무겁게 다리를 끌어야 한다. 이런 춤이 바로 팀워크 춤이다.
팀워크 춤에 대해 당당하게 써봤다. 사실, 당당하게 썼다고 했지만, 이렇게 써도 되는 건지 조금 움찔하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움찔거림을 사뿐히 ‘즈려밟으며’ 팀워크 춤을 출 것이다. 춤을 추며 나의 당당함을 표현하겠다. 이것이 팀워크 춤의 정신. 다른 이들에겐 허황되게 보일 수 있지만, 내가 좋아한다면 움찔하지 않는, 혹 움찔하더라도 바로 떨쳐버리는, 그런 당당함. 이것이 바로 팀워크 춤의 정신이다.
팀워크라 하니, 또 떠오르는 것은 팀 버튼(Tim Burton, 미국 영화감독) 감독. 개성 강한 그의 영화 중 팀워크에 관련된 영상이 있는 영화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다.
찰리는 초콜릿 공장에 초대받아 견학 가는데, 초콜릿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쌍둥이같이 생긴 ‘움파룸파’다. 새마을운동 노래를 자동 흥얼거릴 수 있듯이 나는 움파룸파의 노래도 바로 흥얼거릴 수 있다. 아들이 초등학생일 때, 이 영화 마니아였다. 아들은 집에서 그 DVD를 무한 반복 재생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강제 세뇌되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반복으로 인한 세뇌가 이렇게 무서운 거다. 움파룸파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칼군무(무리가 한 사람이 추는 것처럼 완벽하게 동작을 맞추어 추는 춤)’ 춤을 춘다. 그 춤은 북한의 매스게임처럼 정확했다. 그들의 팀워크는 정말 완벽했다. 이렇듯 완벽한 칼군무를 완벽하게 연출한 팀 감독의 업무 능력 역시 칭찬한다. 팀의 ‘워크(작업)’ 역시 움파룸파의 팀워크만큼 대단하다. ‘팀 워크(팀의 작업)’ 대단해!
말장난으로 가득한 이 글을 읽으면서, 어딘가 불편함을 느끼는 분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팀 위성에서 걷는 듯한 팀워크 춤을 추며, 이 글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계속 표현할 것이다. 그리고 팀 감독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 속 움파룸파들의 완벽한 ‘팀워크’에 감탄하며, 팀 감독의 능력, 즉 ‘팀 워크’를 칭찬할 것이다. 이런 나의 뻔뻔함은, 글의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 심각한 어려움 속에서도 꾸준히 글을 쓰려는 근면함과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스스로 발전하려는 자조(自助)적 의지에서 나온 것으로 ‘근면’과 ‘자조’의 ‘협동’체라 할 수 있다.
지금도 나는 팀워크 춤을 계속 춘다. 다시 힘주어 말하지만, 이 춤의 주제는 당당함이다. 중력이 지구보다 작고 달보다 큰, 팀 위성을 걸어가듯이 다리를 질질 끌고 있는 이 모습이, 과연 당당함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국산문》 10월호
2013 《한국산문》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