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1. 시적 묘사의 힘 – 유진 시인의 특징적 시 세계
유진 시인은 현대시 이론에 충실하며 묘사 훈련에 매우 성실한 시인
단순 기록이 아닌 사물에 태클을 걸며 사유하는 태도
비유와 이미지화 능력이 뛰어남
→ 예: 호랑나비의 교미 = 족보 기록, 나팔꽃 웃음 = 사리 형상화
말이 많지 않고 짧고 밀도 높은 언어로 선명한 묘사
2. 풍자와 해학 – 사회적 감수성 있는 시인
「척」, 「스몸비족」 등의 시에서 사회 비판적 시선 존재
→ 가족 간의 갈등, 체면 사회 풍자
→ 스마트폰 좀비 풍경의 유머와 자기반성 유도
참여시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시인
시 = 내면의 압력을 해소하는 도구, 압력밥솥의 추 같은 역할
3. 음악적 배경의 시적 활용
유진 시인은 첼리스트 → 음악 전문 용어를 시어로 적극 활용
→ 월광 소나타, 콘트라바스, 사생화 등
시의 리듬보다 은유적 이미지에 집중
낯설지만 명확한 표현으로 주제 집중도 높음
4. 가족과 존재의 무게 – 감정의 깊이
*「어머니의 소금밭」, 「낙타 무릎」*에서 부모 세대의 고통과 희생을 묘사
→ 육체의 고통 = 영혼의 희생 = 자식의 운명
시인의 내면적 울림과 한국적 정서가 결합
→ 서구적 묘사에 한국적 한(恨)과 감정의 발효가 느껴짐
5. 결론 – 문단을 넘어 문학사로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 시의 길을 치열하게 추구
묘사의 한계를 넘어서 정서, 통찰, 실험성을 갖춘 시인
향후 문단사 아닌 문학사에 남을 가능성이 있는 시인
풍자와 연상 상상력의 은유로 묘사력이 뛰어난 시집/ 유진:시인뉴스 포엠
풍자와 연상 상상력의 은유로 묘사력이 뛰어난 시집
-정숙 시집 『척』
유진
1.
우선 현학적이고 철학적인 서두는 접어두고 가장 기본적인 현대시 이론을 가지고 유진 시인의 시집을 살펴보다가 무릎을 치며 반가웠다. 그 이유는 오랜만에 현대시 공부를 열심히 한 시인을 만났다는 기쁨이었다. 모든 사물에 태클을 걸고 사유하면서 묘사 훈련을 쉬지 않고 진행하고 있는 시인, 먼저 그런 시 몇 편으로 접근해보기로 한다.
진초록을 구워대는 염천 화단에서
호랑나비 한 쌍 교미 중이다
도라지 꽃대를 허공으로 밀어 올리며
서로를 확인하는 날갯짓
예술보다 아름답게
종교보다 거룩하게
유고한 잎맥의 문서에
또 한 번
고결한 유잔자를 기록하는 중이다
-<족보> 전문
까르르르 쏟아지는 열댓 살 웃음이
담장을 넘어가던
그 여름
단 한 번 뜨거웠던 몸
똘망똘망 새까만 사리를 품었습니다
-<나팔꽃> 전문
시는 묘사라고 한 마디로 정의하기도 하는데 이 묘사라는 괴물 때문에 시를 쓰는 분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 건 사실이다. 묘사를 하려면 색다르면서도 손뼉을 칠 정도로 알맞은 비유가 있어야 하고 그렇게 비유를 잘하려면 상상력과 사물을 통찰할 수 있는 직관력과 사고력이 있어야 한다.
상상력 즉 사물을 이미지화하는 일에도 등급이 있다. 그냥 자신의 일상과 경험에 대한 기록의 재생상상력이 있고 그런 경험, 체험들을 적당한 비유로 이미지화한 연상 상상력이 있다. 필자도 그렇지만 체험을 기록하고 나열하는 재생상상력에 머무는 경우가 많은데 자신의 시 세계와 묘사를 더 혹독하고 끈질기게 연마하고 훈련하지 않으면 숨은 원석을 더 빛나게 세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진시인은 노랑나비 한 쌍에서 족보를 찾아내고, 나팔꽃 웃음에서 사리를 볼 수 있는 참신한 상상력과 그 시안에 박수를 치고 싶다. 그리고 신선하고 세밀한 형상화를 위해 상상력을 발동하느라 말이 많지 않아도 짧은 언어로 밀도 있게,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아 묘사가 선명하다는 것이다. 자칫 기발한 묘사에 중점을 두느라 허황한 상상력으로 횡설수설이 될 수도 있는데 많은 말하지 않고 깔끔하게 묘사하는 능력에 유진시인의 시력을 다시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2.
척이 마을을 이루네
척이 척을 갉아 먹네
아이가 부모를, 부모가 아이를
남자가 여자를, 여자가 남자를
깁스를 한 척들이 아슬아슬 걷네
다물지 못하는 입들이 뭉게구름이네
-<척> 부분
우산을 쓴 게임이 물웅덩이를 밟으면
오른쪽 왼쪽으로 철벅
튀어오르는 빗물을 가방에 집어넣고
전속력으로 뭉개버리는
하루, 하루, 하루
나를 점령한 내가
잠들기 전까지는 숙여야 해
-스몸비족 부분
그 많던 참여시 시인들은 요즘 다 어디로 갔을까?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고 세태를 풍자하고 울부짖던 시인들이 자신의 야생을 잠재우고 있으니 세상이 조용하다. 그래서 오히려 풍자와 해학이 깃든 시들이 반갑게 다가오기도 한다. 예로부터 우린 척할 줄 알아야한다고 배웠다. 좋아도 안 좋은 척 싫어도 좋은 척 그것은 인내와 참을성이라는 교훈으로, 가훈으로 깊이 새기며 배우고 그렇게 살아야 했다. 유진시인 역시 그렇게 배운 것을 실천하느라 가슴에 못이 많이 박혔으리라 짐작한다. 그래서 시인은 시가 있어 압력밥솥의 추처럼 시로 숨을 쉬며 뱉어낼 수가 있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길거리에서,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에 빠진 사람들이 마치 좀비 같다는 표현에서 대부분 머리를 끄덕이면서 자신을 되돌아보기도 하면서 재미있다며 실소를 흘릴 것이다. 풍자는 해학을 곁들이기도 하니까.
3.
더구나 유진시인은 첼로 연주자로서 <월광 소나타> <흡수골 변주> <왈츠의 사생화> <콘드라바스를 듣다> <우울 소나타>음악적 전문 용어를 시어로 곰삭히고 수용하여 음악가로서 자신만의 특성을 살리고 있다. 시가 리듬에 치중하기보다 그림에 가까운 묘사, 특히 비유 중에서도 어려운 은유법을 잘 구사하여 낯설게 하면서도 낯설지 않은, 주제에 집중이 잘 된 표현들이 맛깔나면서 선명하다는 사실입니다.
4.
밤새도록 별이 빠져죽은 수평선을 열고
튀어 오른 햇덩이가 경이롭지 않다
웃음과 울음은 크기가 같다고
몸으로 알아버린 아흔 세 살의 바다
머리도 꼬리도 뜯겨나간 토막 기억들
시커먼 덩어리가 되어 튀어나오기도 하는
그 바다에는
늙은 적 없는 남편과 두 아들이
스무 해 너울을 건너가고 있으므로
-<어머니의 소금밭> 부분
첩첩 모래 물결 지날 때마다
수천 번 접고 숙였을 아버지의 허리
수천만 번 주저앉고 꿇었을 어머니의 무릎
긴 눈썹에 젖은 눈 가린 채
낮추고 꿇고 살과 뼈로 만든 물혹을 깎아 간신히
상수의 바늘귀를 통과했을 것이다
-<낙타 무릎> 부분
시는 깨달음과 발견의 미학이라고도 했던가? 위 두 편의 시에서는 부모라는 운명적인 한을 풀어 놓으면서 자신의 미래도 어쩔 수 없이 그 길로 가야하리라는 암묵적 제시가 느껴진다. 그래서 <척>이라는 시집의 무게가 더 묵직하게 느껴진다. 자칫 묘사라는 늪에 빠져 말장난에 가까워져 가벼워 보일 수 있는 시인의 한계를 더 깊이 있게 넓혀주고 있다. 다시 말하면 서구적인 묘사에 한국적인 정서를 보여주어 곧 더 잘 발효된 재울음의 징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5.
이상으로 가장 단순하고 쉬운 방법으로 시집 <척>을 접근해 살펴보았습니다. 유진시인은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묵묵히 그러나 치열하게 자신만의 독특한 시의 길 찾아 문단사가 아닌 문학사에 길이 남을 시인이 되길 기대해봅니다. 축하드립니다. -유진
▲정숙 시인
경산 자인 출생
경북대 문리대 국어 국문학과 졸업
경주 월성 중학교 전직 국어교사
1993년 계간지<시와시학>으로 신인상 수상.
<신처용가>1996 <위기의 꽃>2002 <불의 눈빛>2006 <영상시집>2005<바람다비제>2009 <유배시편>2011과 [DVD] 출간 2012<시선집-돛대도 아니 달고>2012 제7시집<청매화 그림자에 밟히다>2015 전자시집 <그가 날 흐느끼게 하네>2019 <한국대표서정시100인선, 청매화 그림자에 밟히다>(2019) 제 8시집<연인, 있어요>(2020)
2010, 1월 만해 ‘님’ 시인 작품상 수상 시집<바람다비제>, 2015년 12월 23일 대구 시인 협회상 수상, 2020, 2월 경맥문학상 수상
포엠토피아. 시마을 , 서부도서관, 청도도서관, 북부도서관 시강의, 본리도서관, 대구문학아카데미 현대시 창작반 강의
범물 시니어 복지회관에서 내 인생의 꽃에 대한 강의
시와시학시인회 회장역임, 현대불교문인협회 대구지회 회장 역임,2021,용학도서관 현대시의 이해와 현대시 창작 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