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la Scriptura (오직 성서) : 진리냐 아니냐의 최종 권위는 오직 성서에 있다는 뜻으로 로마 가톨릭의 교권주의에 저항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즉, 진리의 판단기준은 성서이지, 교회가 아니라고 해석한 것이다.
Solus Christus (오직 그리스도): 인간은 스스로 구원할 수 없고, 오직 십자가에서 억조창생의 죄값을 다 받고 하느님의 의를 완전히 이룬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덧입는 것뿐이라는 뜻이다.
Sola Gratia (오직 은혜) : 구원에 필요한 예수 그리스도의 공효를 덧입는 것은 전적인 하느님의 선물로써 하느님이 인간 쪽에 아무런 조건을 찾지 않는다는 뜻이다. "믿음" 역시 하느님의 선물이며, 믿음은 구원의 은혜를 받는 '통로' 역할을 할 뿐이며 그것의 '대가'로 구원을 받지는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오직 은혜와 오직 믿음 교리는 인간의 종교적 행위를 강조하는 업적의를 비판하는 데 목적이 있다.
Sola Fide (오직 믿음) : 하느님이 내리시는 은혜는 오직 믿음을 통하여 받을 뿐이지 다른 어떤 것이 요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Soli Deo Gloria (오직 주만 영광 받으심) : 구원은 하느님이 시작하고 완성하시는 일이며 거기에 인간이 참여하는 부분은 없기 때문에 모든 영광을 하느님이 받으신다는 내용이다
(이 글은 위키피디아 백과사전 '종교 개혁' 항목에서 발췌 인용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흔히 들을 수 있는 '오직'은 '오직 성서' 즉 'Sola Scriptura'를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초기의 종교 개혁자들은 위의 다섯 오직을 갖고 있었으며, 이것은 지금의 모든 믿는이들의 신앙적 뿌리와 기초가 되었다.
글쎄요. 님이 그러시니까 모두가 그렇게 보이는 것은 아닌지요. 님은 항상 토론 끝에 EGW의 글을 들이밀면서 님의 주장을 그 말로 합리화하려는 행동을 보여왔지요. 모든 님의 이론의 배경은 EGW의 글이 아니던가요? 진정 님이 성경의 말씀을 보고 성령의 계시로서 깨달은 말씀을 하신 적이 있든가요? 모두 EGW의 글을 인용한 것 뿐이지 않습니까? 왜 자신의 눈의 들보는 깨닫지 못하시고 형제의 눈의 티를 빼라하십니까?
이 글을 올렸던 뜻은, 님이 캘빈과 루터의 종교개혁 초기의 그들의 신앙과 성경에 대한 진리를 의심하는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결코 그렇지 않음을 보여드리기 위한 것이 목적입니다. 님은 종교개혁자들이 후에 변질된 것에 대해서만 촛점을 맞추고 말씀하셨지, 그들의 순수한 깨달음이 무엇이었는지를 간과하고 계신 것 같더군요. 또한 이들이 없었으면, 개신교는 물론이고 안식교도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매우 강력한 종교적 통치 아래에서 지금의 교회들과 같은 생활은 전혀 불가능했을테니까 말입니다. 이들은 우리를 진정 율법적 종교생활에서 자유롭고 살아있는 믿음 생활로 이끌었다 하겠습니다.
루터와 캘빈으로부터 시작된 성경의 진리의 열림은 우리에게 많은 빛을 비추었으며, 이로 인하여 더욱더 많은 말씀의 사도들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들의 변질보다는 이들의 시작에 감사하여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이들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있었겠지만, 자신을 세상과 종교의 협박 안으로 내어 놓은 자들은 이들이 아닙니까? 이들은 순교를 무릅쓰고 성경을 세상 사람들에게 열어 놓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자들을 사용하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사람들이 모두 알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하. 알았다면 열심히 지켰겠지요라는 말로 안식교리를 합리화할 수는 없지요. 하나님의 창조 이후, 아담의 타락 이후 죄가 죄되지 않는 죄는 없습니다. 만약 그런 논리가 성립된다면, 주님이 이 땅에 성육신 하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죄값을 치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죠. 죄는 언제나 죄 그 자체입니다. 죄가 사하여 졌어도 죄는 죄지 죄가 선이나 다른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율법은 알았으나 주님의 십자가를 모를 때 그 죄는 용서받지 못하나, 십자가를 알았을 때 더이상 그 죄에 대하여 하나님은 묻지 않으십니다. 그것이 '이신칭의', 믿음으로 의롭게 됨입니다. 따라서 루터는 죄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깨달음과 동시에 그는 그의 모든 죄 문제가 해결된 것이며, 씻음 받았고, 구원 받았으며, 무엇보다도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된 것입니다. 그 믿음으로 더이상 율법과는 관계없어졌으며, 오직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의롭게 된 것입니다. 이 사실을 루터는 깨달았으며, 이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도 첫번째 진리인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날마다 죄 가운데에서, 또한 율법의 굴레 아래에서 살게 되며, 참안식을 누리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첫댓글 그런데 님의 그동안의 주장이 <오직 성서>가 아닌것을 스스로는 모르는 것이 문제입니다
글쎄요. 님이 그러시니까 모두가 그렇게 보이는 것은 아닌지요. 님은 항상 토론 끝에 EGW의 글을 들이밀면서 님의 주장을 그 말로 합리화하려는 행동을 보여왔지요. 모든 님의 이론의 배경은 EGW의 글이 아니던가요? 진정 님이 성경의 말씀을 보고 성령의 계시로서 깨달은 말씀을 하신 적이 있든가요? 모두 EGW의 글을 인용한 것 뿐이지 않습니까? 왜 자신의 눈의 들보는 깨닫지 못하시고 형제의 눈의 티를 빼라하십니까?
이 글을 올렸던 뜻은, 님이 캘빈과 루터의 종교개혁 초기의 그들의 신앙과 성경에 대한 진리를 의심하는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결코 그렇지 않음을 보여드리기 위한 것이 목적입니다. 님은 종교개혁자들이 후에 변질된 것에 대해서만 촛점을 맞추고 말씀하셨지, 그들의 순수한 깨달음이 무엇이었는지를 간과하고 계신 것 같더군요. 또한 이들이 없었으면, 개신교는 물론이고 안식교도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매우 강력한 종교적 통치 아래에서 지금의 교회들과 같은 생활은 전혀 불가능했을테니까 말입니다. 이들은 우리를 진정 율법적 종교생활에서 자유롭고 살아있는 믿음 생활로 이끌었다 하겠습니다.
루터와 캘빈으로부터 시작된 성경의 진리의 열림은 우리에게 많은 빛을 비추었으며, 이로 인하여 더욱더 많은 말씀의 사도들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들의 변질보다는 이들의 시작에 감사하여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이들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있었겠지만, 자신을 세상과 종교의 협박 안으로 내어 놓은 자들은 이들이 아닙니까? 이들은 순교를 무릅쓰고 성경을 세상 사람들에게 열어 놓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자들을 사용하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사람들이 모두 알도록 하신 것입니다.
루터는 안식일계명을 모르고 죽었습니다(알았다면 열심히 지켰겠지요)그러나 그는 향후 부활하여 구원을 받을것입니다 알지 못하는 시대에는 죄가 죄지 않습니다 (그대신 다른 9계명들을 열심히 순종할때입니다)
하하. 알았다면 열심히 지켰겠지요라는 말로 안식교리를 합리화할 수는 없지요. 하나님의 창조 이후, 아담의 타락 이후 죄가 죄되지 않는 죄는 없습니다. 만약 그런 논리가 성립된다면, 주님이 이 땅에 성육신 하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죄값을 치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죠. 죄는 언제나 죄 그 자체입니다. 죄가 사하여 졌어도 죄는 죄지 죄가 선이나 다른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율법은 알았으나 주님의 십자가를 모를 때 그 죄는 용서받지 못하나, 십자가를 알았을 때 더이상 그 죄에 대하여 하나님은 묻지 않으십니다. 그것이 '이신칭의', 믿음으로 의롭게 됨입니다. 따라서 루터는 죄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깨달음과 동시에 그는 그의 모든 죄 문제가 해결된 것이며, 씻음 받았고, 구원 받았으며, 무엇보다도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된 것입니다. 그 믿음으로 더이상 율법과는 관계없어졌으며, 오직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의롭게 된 것입니다. 이 사실을 루터는 깨달았으며, 이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도 첫번째 진리인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날마다 죄 가운데에서, 또한 율법의 굴레 아래에서 살게 되며, 참안식을 누리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