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참 즐거버서예."
한나절이 다 가도록 손에 잡히는 것 없었기에 불쑥 '문양역'으로 갔다. 그 곳에 가면 나처럼 나선 이들이 더러더러 있다. 하나 같이 바쁠 일 없는 걸음새로 긴 터널 안으로 빨려들었다간, 영락없이 소쿠리 테 같이 생긴 두어 시간짜리 산행 길로 접어든다.
앞선 사람이나 뒤선 사람이나 서로 말 나눔은 드물었으나, 한 차에 실려 왔다는 그 하나에 동류의식을 갖는다. 어느 지점에서 선두가 멈추면 따라 멈춘다. 그러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그제야 함께 하는 사이임을 웃음 하나로 내 보인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이란 말 절로 입증 된다.
길 중허리에서 그만 행렬을 놓치고 말았다. 그렇다고 크게 애탈 것도 없었다. 기왕지사 처진 걸음, 내 평시 걸음으로 걸었다. 걷다가 쉬고, 쉬다간 걸으며, 생각나는 대로 노래를 불렀다. 가사와 곡이 제대로인지 아닌지는 상관 않았다. 그저 내 심중 따라 불렀다.
" 그 노래 한 번 더 불러 주시면 안될까예? " 하며 뒤를 좇아 온 이가 말을 건넨다.
그도 부담 됨 없었다. 부르던 그대로 다시 불렀다. 그 이도 함께 불렀다.
'사 -랑 의 노 래 들 려 온 다 - 옛 - 날 을 말 하 는 가 기 쁜 우 리 젊 은 날 - 사 -랑 의 노 래 들 려 온 다 - 옛 - 날 을 말 하 는 가 기 쁜 우 리 젊 은 날 - 금 빛 같 은 달 빛 이 동 산 위 에 비 치 고 정 - 답 게 속 삭 이 던 그 때 그 때 - 가 재 미 로 워 라 ~'
거듭거듭 부르는 노래는 어느 결에 하나가 되어 있었다. 몸도 마음도 같이 하였다. 거기엔 어떠한 겨눔도 따짐도 강요도 걸림도 어색함도 없었다. 그저 사계(四季)의 맞물림처럼 이어져 갔다. 어느 난코스에선 손을 잡고 오르기도 하였고, 내려서기도 하였다. 조금의 사림도 내세움도 없었다. 있는 그대로에서 물 흐르듯 하였다. 인간만사 다 이러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어느새 다다른 곳은 역사(驛舍) 안, 그 사이에 하나였던 몸과 마음, 순식간에 따로 되었다. 비로소 서로 나뉜 모습 보일 때, 저 쪽에서 먼저 다소곳이 이러한 말 남긴다.
" 오늘 하루, 참 즐거버서예."
나 역시도 그러하였으나 그에 따른 솔직한 표현 못한 채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를 먼저 보내고 다음 차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역사 밖 하늘엔 'E. Toselli'의 세레나데가 그가 남긴 말과 함께 황혼 속으로 서서히 묻혀 갔다.
* 사림 : 망설임의 비표준어
2009,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