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종소리가 들려온다. 새해 첫새벽을 알리는 종소리, 그것은 멀리 경상북도 안동군 일직면 조탑리 작은 함석지붕의 시골예배당 종지기인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이 세상을 향해 던지는 작지만 큰 외침이다.
“그래요, 간신히 겨우 겨우 사는 것이 가장 잘 사는 거지요.”
권정생 선생의 목소리는 가늘고 힘이 없다. 그런데 내 귀에는 그 목소리가 이 지구를 울리는 큰 울림처럼 들려온다.
내가 권정생 선생의 ‘간신히 겨우 겨우 사는 것이 가장 잘 사는 것’이란 말은 들은 것은 지난 연말 세상을 떠난 농부철학자 전우익 선생(나는 선생의 이름 앞에 ‘철학자’란 말을 꼭 붙이고 싶다)의 책 『호박이 어디 공짜로 굴러옵디까』를 읽고 있을 때였다. 글은 눈으로 들어오는데, 그 글 속에 소개된 권정생 선생의 말은 이상하게도 내 귀를 통해 작은 목소리로 전해져오고 있었다. 그리고 오래도록 그 목소리는 종소리처럼 웅웅거리며 커지기 시작하여 지구를 들썩이게 하는 큰 울림으로 들려왔던 것이다.
나는 그 큰 울림과 함께 권정생 선생의 아름다운 동화 <강아지 똥>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주 짧은 동화인데도 그 울림은 우주적인 큰 철학을 담고 있다. 너무 유명한 동화라 많은 사람들이 그 내용을 알고 있겠지만,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은 미미한 존재인 강아지 똥이 자신의 몸을 녹여 민들레꽃을 피운다는 이야기에서 나는 우주를 움직이는 생명의 소리를 들었다. 점은 우주라는, 작은 것은 큰 것이라는 도저히 수학적 개념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철학적 메시지가 그 작은 이야기 속에 담겨져 있는 것이다.
2005년 새해를 맞으면서 난 각종 신문의 신춘문예 당선자들 글을 볼 수 있었다. 문학 청년시절에 숱한 가슴앓이를 하던 신춘문예, 그 떨림의 순간들이 아직도 내 가슴을 설레게 한다.
그런데 얼마 전 나는 어느 여류 시인으로부터 신춘문예와 관련한 권정생 선생의 이야기를 듣고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권정생 선생은 1969년 동화 <강아지 똥>으로 월간 『기독교 교육』에서 제정한 제1회 아동문학상을 받았으며, 197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무명저고리와 엄마>라는 동화가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권정생 선생이 바로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을 때의 일이다. 당시 너무 가난했던 그는 신춘문예 시상식에 입고 갈 옷이 없었다. 수상자라면 당연히 양복을 입고 가야 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했는데, 그에게는 집에서 일상적으로 입는 작업복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행히도 그의 어려움을 알고 있던 이웃 사람이 양복을 빌려주었다. 양복은 몸에 잘 맞지 않더라도 걸치면 되는데, 구두는 발에 맞아야 걸어 다닐 수가 있었다.
그런데 권정생 선생은 시상식 전날까지 구두를 구하지 못하였다. 결국 그는 몸에 잘 맞지 않는 양복에 집에서 신고 다니던 검정 고무신을 신고 시상식장에 나갈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 현장을 직접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상상으로만 생각할 뿐이다. 당시 몸에 잘 맞지 않는 양복에 검정 고무신을 신은 권정생 선생을 보고 웃었을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대체로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한 부류는 많은 사람들이 희극배우 같은 그 모습을 보고 코미디처럼 웃었을 것이고, 다른 부류는 비록 적은 사람이지만 감동의 눈길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나는 권정생 선생의 검정 고무신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 그 검정 고무신이야말로 그의 분신에 다름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 60여 년의 세월을 마치 검정 고무신처럼 살아왔던 것이다.
권정생 선생은 1937년 일본 혼마치(本町)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8년 6개월간 살다 고국으로 돌아왔다. 집안이 너무 가난하여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무장수, 고구마장수, 담배장수 안 해본 것이 없었다. 열아홉 살 때는 결핵을 앓았고, 늑막염과 폐결핵이 점점 신장결핵, 방광결핵으로 깊어져 평생을 병고에 시달리며 살아왔다. 그러면서 그는 시골예배당 종지기로 일하며 틈틈이 동화를 썼다. 지금까지 약 100여 편의 동화를 써서 10여 권의 책을 펴냈다.
현재 권정생 선생이 살고 있는 집은 10평도 채 안 되는 토담집인데, TV드라마로도 방영된 장편동화 『몽실언니』의 원작료 70만 원을 받아 지은 것이라 한다. 마루도 없고, 거실 겸 부엌에는 책이 무더기로 쌓여 있다. 그리고 댓돌 위에는 검정 고무신 한 켤레…….
지금도 권정생 선생은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니는 것이다. 그는 어쩌면 평생 동안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녔는지 모른다.
“내 몫 이상을 쓰는 것은 남의 것을 빼앗는 행위야. 내가 두 그릇의 물을 차지하면 누군가 나 때문에 목이 마라 고통을 겪는다는 걸 깨달아야 해. 그래야 올바른 세상이 되지.”
평생 검정 고무신을 고집해온 권정생 선생의 삶의 철학은 ‘내 몫 이상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느 비 오는 날 처마 밑에 뒹구는 강아지 똥을 보고 처음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는 권정생 선생, 그는 동화 <강아지 똥>처럼 그의 몸을 녹여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동화)을 피워 올리려 많은 사람들에게 향기(동화의 감동)를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