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기지
서울특별시 용산구에 위치한 미군부대로, 주한미군 및 국군의 주둔지 가운데 하나이다. 통칭 용산기지라고 부른다. 현존하는 한국 내 미군 부대 중 가장 오래 되었고, 서울 도심에 있는 유일한 군사기지이다. 현재 평택기지로 미군 기지가 이전됨에 따라 일부 시설을 제외하고 모두 폐쇄 예정이고, 반환될 부지는 용산공원으로 조성될 예정이다.
용산기지 부지는 군사적으로 상당히 역사가 깊은 곳이었다. 일본과 청나라 등 외국 침략군이 주재했었고, 현재까지 주한미군이 기지로 사용하고 있는 곳이었다. 용산기지가 군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이유는, 용산구의 지리적 특징에서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용산은 한강과 접해있어 선박을 통한 물류이동이 용이하여 물류교역의 중심지였고, 이런 장점 때문에 조선군의 병참 기지가 있었고, 1595년 임진왜란 당시에는 왜군의 후방병참기지가 건설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구한말에는 1882년 임오군란을 진압하기 위해 파병된 청나라 군대 3천 명이 주둔했었고, 그리고 1884년 갑신정변 때는 일본군이 급진 개화파 인사들과 함께 인천으로 퇴각하면서 교전한 바 있다. 이후 일본이 청일전쟁,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면서 한반도에 일본군을 진주시키기 시작했고, 그중 20사단을 이곳 용산에 주둔시키게 되었다. 20사단이 주둔한 이곳은 향후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주조선일본군 사령부가 위치하게 된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하면서 미군이 일본의 군사 시설이 있는 이 곳을 접수했고, 그 자리에 보병 제7사단을 주둔시켰다. 이후 1949년 병력을 철수했다가 한국전쟁이 발생하자 1953년 8월 15일에 다시 이 곳에 복귀 및 입주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후 용산 미군기지는 "서울 속의 작은 미국"으로 불렸고, 반세기 넘게 금단의 구역이 되어왔다. 과거 한국이 본격적으로 경제성장을 하기 이전까지 용산기지는 기지 밖 지역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고급 시설과 자유로운 미국식 분위기로 기지에 처음 방문해보는 한국인에게는 상당한 충격을 선사해 주었다. 이 기지에는 한국 민간인은 현지 고용 군무원이나 초청된 인원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어서 당시 기지 출입증은 엄청난 권력의 상징이었다. 이 출입증만 있으면 미군기지 출입이 자유로워 드래곤 힐 호텔 같은 미군 휴양시설에서 스테이크 좀 썰어봤다고 주변에 자랑할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물론 한국도 경제 성장을 이뤄 오늘날에는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미군기지 부럽지 않은 생활을 할 정도로 경제 수준이 높아졌고, 오히려 지금의 미군기지는 주변 지역에 비해 건물이 상당히 노후화 된 곳이 많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한국 내의 작은 미국으로서 미국 문화를 순수히 체험해볼 수 있는 지역으로 여전히 한 번은 방문해보고 싶은 주변인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곳으로 남아있다.
용산기지는 용산을 비롯한 주변 지역의 문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기지 주변에는 미군을 위해 한국 주민들이 개업한 클럽이나 바와 같은 유흥시설이 즐비하게 들어섰고 이른바 기지촌을 이루었다. 그 유명한 이태원동 거리도 이 기지촌으로부터 발전되어 온 것이었다. 미군 군수품이나 PX에서 유출된 물품이 기지 밖 시장에서 자주 팔리기도 했다. 군복, 가방, MRE, 그외 미국 현지에서 볼법한 물품들이 비합법적으로 거래되었다. 경제발전 이전 가난했을 때에는 더더욱 심했다. "미제는 양잿물도 좋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현재 남대문시장에서 아직도 용산 미군기지에서 유출된 미군 물품을 판매하고 있다. 물론 현재는 용산기지 폐쇄작업이 진행되고 있어 날마다 그 숫자가 줄고 있지만.
군사독재 시절에는 한국 내에서 유일하게 독재 정부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구역이었다. 그 이유는 당연히 미군기지는 미군 영역으로서, 대한민국 정부가 관할권이 없기 때문. 따라서 미군기지에서만큼은 경찰도, 서슬퍼러기로 유명한 안기부도, 검찰도 들어갈 수 없는 구역이었기에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를 보여주는 몇 안 되는 영역이었다. 용산 미군기지 또한 서울 내에서 유일하게 독재정권으로부터 잠시나마 미국식 민주주의를 느낄 수 있는 해방 창구였고 기지 주변으로 전파를 탔던 미군 군사방송인 AFN Korea는 한국 정부의 간섭과 검열이 없어 한국인들이 많이 듣기도 했다.
기지 내에 유엔군사령부도 위치해있었기에 미군 뿐만 아니라 기타 외국군도 주둔해 있었는데 이런 군사, 안보적 중요성 때문에 특히 한남동을 중심으로 각국 대사관이 들어섰고 유엔빌리지 아파트 단지도 이들을 위한 외부 아파트로 쓰이기 시작하면서 유래된 것이었다.
이 지역에는 임오군란 때 청나라가 주둔하였고, 갑신정변과 일본 제국의 대륙 정복과 함께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군이 주둔하던 기지이다.
해방 이후 대부분의 일본군 시설이 미군과 연합군에게 시설이 점령 및 인수되었으며, 2020년 현재도 주한미군이 용산기지에 잔류 중이다.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총 80여만 평의 주한미군 기지로 메인포스트, 사우스포스트, 캠프 코이너, 캠프 킴, 국방부 등 여러 지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1945년 9월 미 극동군사령부가 오키나와 주둔 제24군단 예하 7사단 병력을 한국으로 이동시키면서 미군의 용산 주둔이 시작됐다.
2013년부터 용산기지 이전 사업을 시작해 미8군사령부, 유엔군사령부 등이 차례로 평택 미군기지로 이전했다.
카투사에게는 그야말로 파라다이스와 같은 천혜의 근무지였다. 물론 신축한 평택 미군기지보다는 시설이 못하지만, 누구도 무시못하는 점이 바로 접근성이다. 서울 도심에 있어 바로 앞에 남영역, 이태원역, 용산역이 있어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만약 본인의 거주지가 서울에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현재는 부대 시설 상당수가 경기도 평택시로 옮겨갔고, 남아있는 시설들도 굉장히 낡은 상태라 압도적인 접근성 외의 나머지 부분은 갈수록 단점이 되어가고 있다.
2022년 8월 기준으로 용산기지는 거의 페허에 가깝다. 기지 출입구도 몇개의 게이트들만 남기고 전부 폐쇄되었으며 철수 이후 버려진 건물들과 시설들은 전혀 관리가 되고 있지 않아 자라난 잡초로 인해 거의 야생 상태이다. 잔류 인원 역시 거의 없다는 것을 보여주듯 영내 순환 버스의 배차 간격도 45분으로 조정되었다. 음식점들도 드래곤 힐 랏지 지하의 미니 푸드코트를 제외하면 전부 문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