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6·29 의미
6·29 민주화선언은 1987년 6월 29일 대통령 후보였던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표위원이 당시 국민들의 민주화와 직선제 개헌요구를 받아들여 발표한 시국 수습을 위한 특별선언이다.
2. 6·29 선언의 배경
전두환 대통령의 도덕성·정통성 결여를 지적하는 직선제 개헌요구와, 전두환의 4·13 호헌조치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나온 선언이다.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는 대규모의 가두집회로 대항했고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터지면서 경찰력이 마비되고 군대 투입설까지 나도는 국면이 전개되었다. 이에 노태우는 8개항의 민주화조치를 발표하였고, 이로써 신군부의 군사독재를 청산하는 전기가 마련되었다.
3. 6·29 선언 주요내용
①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통한 1988년 2월 평화적 정권이양,
② 대통령선거법 개정을 통한 공정한 경쟁 보장,
③ 김대중(金大中)의 사면복권과 시국관련사범들의 석방,
④ 인간존엄성 존중 및 기본인권 신장,
⑤ 자유 언론의 창달,
⑥ 지방자치 및 교육자치 실시,
⑦ 정당의 건전한 활동 보장,
⑧ 과감한 사회정화 조치의 단행 등이다.
♡ 이 선언은 민중항쟁에 의한 급격한 변혁이나 지배층에 의한 점진적인 개혁과는 달리 양자의 타협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4. 6·29 선언의 경과
1985년 2·12총선 이후 야당과 재야세력은 간선제로 선출된 제5공화국 대통령 전두환(全斗煥)의 도덕성과 정통성의 결여와 비민주성을 비판하면서 줄기차게 직선제 개헌을 주장하였다. 이에 전두환은 1987년 4월 13일 일체의 개헌논의를 금지하는 호헌조치를 발표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울대학생 박종철(朴鍾哲)이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국은 대결국면으로 치달았다.
6월 10일 전국 18개 도시에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가 주최하는 대규모 가두집회가 열리고, 학생과 시민들의 시위가 연일 계속되었다. 26일 전국 37개 도시에서 사상최대 인원인 100여만 명이 밤늦게까지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경찰력이 마비되자 정부는 한때 군 투입을 검토하였으나 온건론이 우세하여 국민들의 직선제 개헌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하였으며, 6·29선언이 발표되었다.
※ MBC 다큐멘터리(6.29의 진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https://youtu.be/OGXHMcfs6mA?si=zCKozMkR_hX_Q6HQ
5. 6·29 선언의 결과
10월 27일 국민투표로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졌고, 12월 16일 대통령선거에서 민정당 후보 노태우가 36.6%의 지지를 얻어 당선되었다.
* 출생-1932년 12월 4일
경상북도 달성군 공산면 신용동 용진마을
(現 대구광역시 동구 용진길 172)
* 사망
2021년 10월 26일 (향년 88세)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 묘소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동화경모공원
* 재임기간
제13대 대통령
1988년2월 25일~1993년 2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