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살아가는 이야기
백아절현(伯牙絶絃)
석야 신웅순
백아절현은‘백아가 거문고 줄을 끊었다'는 자신을 알아주는 벗의 죽음을 슬퍼한다는 뜻이다. 진정한 친구를 이르는 말이다.
인생에 백아와 종자기 같은 친구가 있다면 참으로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친구 같은 사람이 있다.
같은 시대에 서로 다른 지역에서 태어나 타향인 공주에서 서로 모르고 대학을 다녔다. 그는 공주 사대를 나는 공주교대를 나왔다. 그는 신춘문예로 문단에 나왔고 나는 시조문학으로 나왔다. 그쯤에서 그를 만났다. 이후 나는 국문학 대학 교수로, 그 친구는 물리학 고등학교 선생으로 그러면서 그는 창작으로 나는 학문과 창작으로 몇 십년을 지냈다. 그는 내 가슴 속에 오랫동안 떠나지 않는 정감 있는 지기로 남아 있었다.
어느날 그와 주고받은 문자이다. 내 시답잖은 작품을 본 모양이다.
선생님의 주옥 같은 작품 앞에 잠시 머물고 있습니다.
언제나
분홍 메꽃
혼자인
저쪽은
소프라노 목소리인지
테너 목소리인지
늘그막
이름도 못 가진
내 사랑
청산별곡
-신웅순 「메꽃」-아내 36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서울에서 권혁모 올림
권선생님, 오랜만입니다. 건강하시고 편히 계시지요? 졸시를 읽어주시니 그만 도 고마울 따름입니다. 늘 건강하소서. 석야 신웅순
신웅순 선생님, 한때 공주 청양 부여에 머물었던 곳이기에 금강 흐르는 그곳 이 언제나 그립습니다. 늘 선생님의 작품에 매료됩니다. 좋은 봄날 되십시오.
작품 칭찬이 아닌 작품 속의 내 마음에 대한 공감이지 않았을까 싶다. 이후 두어 번인가 통화를 했다. 이심전심이 이런 것이구나 생각했다.
전번 친구의 시조집 『아버지의 솜사탕』을 부쳐왔다. 「11월」작품을 서예로 써서 보냈다. 요번에는 내가 시조집 『모란꽃 엽서』를 붙였다. 얼마 후 진심어린 장문의 독후감을 내게 보내주었다. 보답 차원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사실 시조 학문 연구나 창작에 공감해주는 이가 없어 많이도 외로웠다. 그래도 해야할 일이라 생각해 시조 이론에 매진했고 시조 창작에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것을 알아준 이가 멀리 있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흰구름 같은 권시인이었다.
곱고 고운 정답고 정다운, 그립고 그리운, 이제는 물들만치 물든 세월의 전송 을 받으며 석야 선생님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시의 행간에 꼭꼭 숨겨 놓 은 마음 속의 결을 읽었습니다.
어떻게 이렇듯 비단처럼 가느다란 사색이 실끈을 엉킴 없이 풀어갈 수 있을 까요? 읽어가는 내내 온통 마음을 휘젓고 있었습니다.… 중략…
“늙으막 / 뒤늦게 찾아와/ 첫눈 내리는 내 사랑” 앞에선 ‘사랑’이라는 언 어도 먹먹하기만 합니다. 누구든‘첫눈’이 펑펑 쏟아져 내릴 테지만 유독 선 생님의 그 ‘첫눈’은 “저녁도 못 건너고/ 새벽도 못 건너는” 아픔인가 봅니 다.
<대금> 앞에서는 서늘할 만치의 무한경에 이르게 됩니다. 에밀레종 소리와 그믐달로 뚜우욱 떨어지는 오동잎도, 결국은 길을 찾으며 쫓겨 가는 구름 한 장의 허무였네요.
<겨울 백자> 앞에서는 “은하수 너머의 내 고향”을 /떠올리게 하였네요. 얼 마나 아득했으면 은하수 너머에 고향을 머물게 할까요? 이쯤이면 시성의 경지 라 하여도 과하지 않겠지요? … 중략…
시를 통하여 알아낸 사실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본성부터 효심이 가득하셨습 니다. 훌륭한 남편이자 누이의 동생이었습니다. 지나온 시공의 삶의 무대는 결 코 화자를 외면하지 않았음이 이를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하략…
예술을 알아주는 단 한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말이 있다. 이만의 지음(知音)만도 내게는 커다란 감격이었다.
시인들이 제일 기뻐하는 것은 작품에 대한 칭찬일 것이다. 못난 것도 아닌데 칭찬에 인색한 사람들이 많다. 칭찬은 격이 올라가면 올라갔지 어디 덧이라도 나는 것인가.
내 작품에 대한 권시인의 공감은 나를 감동하게 했다. 칭찬으로는 이렇게 나를 감격하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깊숙히 숨겨둔 내 마음을 이해해주어서 일 것이다.
남명 조식과 대곡 성운은 마음을 알아주는 평생지기였다. 남명은 한사코 지리산 속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대곡이 물었다.‘그 곳에 가면 무엇이 그리 좋은가’하고 남명의 대답은 간명했다.‘지리산에 들어가면 눈이 푸르러진다’고.
이런 정신 세계를 시인들은 죽을 때까지 놓지 말아야할 것 같다. 거기에 무슨 티끌이 끼어들 수 있다는 말인가. 진정한 백아절현은 이런 것이 아닐까.
-2026.4.26.석야 신웅순의 서재, 여여재
첫댓글 아름다운 시심을 알아주는 정다운 벗,
두 분 우정과 의리가
남녀 사랑 이상으로 눈부시고
멋지십니다.
향기가 나는 친구가 있고 지음을 알아주는 친구가 있더군요.
나를 인정해주고 존중해주는 친구.
님의 문자에는 네임처럼 솔향기가 납니다.찾아주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