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주님 부활의 신비를 거행하는 저희가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제1독서
<그들은 그리스계 사람들에게도 주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였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11,19-26
그 무렵 19 스테파노의 일로 일어난 박해 때문에 흩어진 이들이
페니키아와 키프로스와 안티오키아까지 가서, 유다인들에게만 말씀을 전하였다.
20 그들 가운데에는 키프로스 사람들과 키레네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들이 안티오키아로 가서 그리스계 사람들에게도 이야기하면서
주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였다.
21 주님의 손길이 그들을 보살피시어 많은 수의 사람이 믿고 주님께 돌아섰다.
22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는 그들에 대한 소문을 듣고,
바르나바를 안티오키아로 가라고 보냈다.
23 그곳에 도착한 바르나바는 하느님의 은총이 내린 것을 보고 기뻐하며,
모두 굳센 마음으로 주님께 계속 충실하라고 격려하였다.
24 사실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이 주님께 인도되었다.
25 그 뒤에 바르나바는 사울을 찾으려고 타르수스로 가서,
26 그를 만나 안티오키아로 데려왔다.
그들은 만 일 년 동안 그곳 교회 신자들을 만나며 수많은 사람을 가르쳤다.
이 안티오키아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복음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22-30
22 그때에 예루살렘에서는 성전 봉헌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때는 겨울이었다.
23 예수님께서는 성전 안에 있는 솔로몬 주랑을 거닐고 계셨는데,
24 유다인들이 그분을 둘러싸고 말하였다.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 속을 태울 작정이오?
당신이 메시아라면 분명히 말해 주시오.”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이미 말하였는데도 너희는 믿지 않는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는 일들이 나를 증언한다.
26 그러나 너희는 믿지 않는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27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28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않을 것이고,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29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께서는 누구보다도 위대하시어,
아무도 그들을 내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
30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세상 살면서 누군가가 나와 일치한다는 기쁨을 누리고 싶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와 일치’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일치하는 것일까요? 십자가를 목에 걸고 성경을 읽으면 일치하게 될까요? 물론 그것도 일치의 하나의 방법입니다. 그런데 내가 그리스도께 일치하는 방법을 알 때 사람들을 나와 일치하게 하는 방법도 알게 된다는 게 핵심입니다.
세바시 1814회 ‘우울증과의 위험한 동거 7년, 기적적인 탈출 스토리’에서 『소중한 사람을 위해 우울증을 공부합시다』라는 책을 쓴 최의종 씨가 강연하였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회사에 있는 최의종 씨에게 아내가 전화했다고 합니다. 이상하게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슨 일인가 깜짝 놀라서 달려가 봤더니 몸이 아프기는 아픈데 어떻게 아픈지 정확히는 모르겠더라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 우울증이었습니다. 두 아이의 엄마이면서도 자살 충동을 끊임없이 느끼는 이 자매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몸을 움직일 수 없으니 집은 지옥처럼 변했습니다. 아이들도 오랫동안 빨래를 못 한 옷을 입고 학교에 다녀야 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최의종 씨도 아내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자신은 열심히 해 주었는데 뭐가 부족해서 우울증에 걸렸냐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운동하고 음식을 먹으라고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아내는 나아지지 않고 남편과의 사이는 더 멀어질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남편도 거의 우울증에 걸리게 됩니다. 아내가 죽고 싶은 마음을 주체하지 못할 때 구급차를 불러 응급실로 갔는데 그곳에서 쫓겨났습니다. 겉이 멀쩡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자신도 아내에게 그런 모습일 수 있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때부터 최의종 씨는 우울증에 관한 책을 사서 공부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모범을 보입니다. 먼저 쉬운 운동부터 아내가 보는 앞에서 합니다. 집이 헬스장이 되어갑니다. 아내는 남편이 자신을 위해 하는 그런 행동들에 미안해서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고 그러니 입맛도 좋아지고 7년이 지난 지금은 수영을 자신보다 잘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우울증을 함께 극복한 부모님을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일치의 핵심이 있습니다. 남편이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범’을 보이는 것입니다. 나도 우울증 환자가 되어서 극복해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내도 할 수 있다고 믿고 남편을 따라 하게 됩니다. 이것이 일치의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을까요? 모범을 보이지 않으면 우리가 따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의 일치는 그분이 아버지께 가시기 위해 하신 일을 따라 하는 것입니다. 최의종 씨는 이미 우울증을 극복한 이들의 책을 공부해서 그것을 따라 했습니다. 따라 하는 것을 아내에게 보여줬습니다. 이것이 아내가 자신에게 일치하게 하는 방법이었습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둘이 일치할 수 없습니다.
어제는 ‘하.사.시.’를 함께 전하고 있는 카타리나란 자매가 드디어 하.사.시. 10권을 다 읽은 것을 알았습니다. 벌써 다시 2권째 읽고 있습니다. 그래서 카톡으로 축하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런 답글이 왔습니다.
“읽은 날은 죄를 덜 짓고…. 못 읽는 날은 죄를 더 짓고 있습니다~”
음식을 먹으면 배가 부르고 안 먹으면 배가 고프듯이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차이를 느끼지 못하면 기도한 게 아닙니다. 그래서 이렇게 보냈습니다.
“기도의 효과를 느끼고 있으면… 기도하고 있는 것임.”
그러니 장문의 글이 왔습니다.
“이거는 확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제 기도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주님께서 죄 많은 저를 늘 도와주고 계심을요…. 그래서 미사 중에 주책맞게 자주 웁니다….^^ 내게 해를 끼친 이웃을 위해 미움을 기도로 올리니 화해로 결실을 맺게 해주시는 주님의 기적을 보면서 또 감사로 기도합니다…. 요즘은 기도의 힘이 너무 큰 것을 알기에 죄인인 제가 그 기도라는 것을 할 수 있게 기회를 주시는 주님께 감사하고 즐겁고 기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다 전 요셉 신부님 덕분이에요!!^^”
제 자랑하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저도 카타리나 자매가 저와 더 일치함을 느끼게 되어서 그렇습니다. 실제로는 그리스도와 일치한 것이지만. 저는 제가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모범을 보여주었고 그 자매는 그것을 따라 한 것 뿐입니다. 그런데 또 누군가가 저와 일치하는 기쁨을 느낍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내가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법을 모를 때는 누군가를 나와 일치하게 하는 법을 알 수가 없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일치는 비난이나 강제로 시키는 게 아닙니다. 누군가가 나와 진정으로 일치하는 기쁨을 느끼고 싶다면 내가 그리스도께 일치하는 모범을 보여주는 길밖에 없습니다.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실제로 이런 체험을 한 적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순시기에 정말로 바쁜 시간을 보냈습니다. 외부 강의도 많았고, 특히 본당에서 성삼일을 보내면서 완전히 녹초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부활 대축일 성야 미사를 끝내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딱 일주일만 아프고 싶다.’
놀라운 것은 다음 날부터 아픈 것입니다. 우선 고개를 돌리기 힘들 정도로 목이 너무 아팠습니다. 아파서 좀 쉬어야겠다 싶었지만, 계속 일정이 있어서 쉴 수 없었습니다. 아픈 목을 부여잡고 억지로 힘들게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러면서도 ‘괜찮겠지’라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주 금요일부터는 목감기가 찾아왔습니다. 말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여기에 자전거 타다가 넘어져서 몸 곳곳에 찰과상을 입고 말았습니다.
일주일만 아프고 싶다는 말은 그냥 아무것도 안 하면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아파도 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 더 힘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짐했습니다.
“함부로 말하지 말자.”
우리 신앙인들이 함부로 말하는 것이 하나 있는 것 같습니다. 바로 주님께 하는 헛된 맹세입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주님께서 내가 원하는 대로가 아닌, 내게 필요한 대로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했다가는 더 힘든 삶을 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 속을 태울 작정이오? 당신이 메시아라면 분명히 말해 주시오.”라고 말합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이미 다 보여주셨습니다. 당신의 말씀을 통해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고, 당신의 놀라운 기적을 통해 하느님 나라의 표징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만을 청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님의 양이 될 것을 이야기하십니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주님의 양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주님을 이끄는 것이 아닌, 주님이 우리를 이끈다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이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자기 뜻만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주님을 뜻을 먼저 찾고 실천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이때 영원한 생명을 받을 자격이 주어집니다.
오늘의 명언: 모두를 믿지 말고 가치 있는 이를 믿어라. 모두를 신뢰하는 것은 어리석고 가치 있는 이를 신뢰하는 것은 분별력의 표시이다(데모크리토스).
사진설명: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