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감독 박칼린을 만나기 위해 찾은 뮤지컬 [RENT]의 프레스콜 현장은 공연준비에 분주하다. 노란 패딩 점퍼에 청바지, 운동화 차림의 그가 허리 높이의 계단도 없는 무대를 훌쩍 뛰어오른다. 각 위치에 서서 모니터링을 마치더니 무대 좌측 끝 편에 위치한 오케스트라 핏트로 들어간다.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에게 필요한 요구사항을 외쳐대며 공연 전 그 특유의 소란함에 가담할 법도 하건만 그렇게 직접 여러 걸음 돌아다니며 공연장의 소리를 들어보고 나서야 지휘자석에 앉았다. 공연 내내 고개를 돌려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뮤지컬 [명성황후]로 유명해진 그는 한국인 아버지와 리투아니아계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두 나라를 오가며 자랐다. 첼로와 보이스 전공으로 입학한 California Institute of Arts에서는 세계 민속 타악기를 다루며 노래를 했고, 서울대 대학원 국악작곡과를 다녀 우리 타악기와 창에도 능하다. KBS 드라마 [파리공원의 아침], MBC [베스트극장]에서 주연을 맡기도 했으며 4년째 아리랑 TV에서 사회를 보고 있다. 그리고 이 경험들을 바탕으로 서울예대와 동서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오페라 하우스 139호, 지휘자실에서 만난 박칼린은 맨 얼굴에 편안한 옷차림의 꾸밈없는 모습이었다. 작품 홍보를 위해서 인터뷰를 한다고 사심없는 표정으로 말하는 그는 "일요일날 좋았구요, 토요일도 좋았는데, 화요일날 안좋았고, 어제도 안좋았어요."라며 공연 진행 상황을 일일이 설명한다. 전날 공연이 마음에 걸려서 한숨도 못잤다는 그의 눈가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지만 그 한마디 한마디는 활기에 차있다.
음악, 저절로 시작되다
어려서부터 부모님 손을 잡고 공연을 보러다녔다. 무용과 피아노를 배웠고 아홉 살이 되어서는 첼로를 잡았다. 학예회의 연주를 맡은 아홉 살의 그에게 연출자 선생님이 "칼린은 무대에 서야겠구나."하며 1인 6역을 주어 뮤지컬을 시작했고, 자신을 통역자로만 알고있던 명창 박동진 선생이 "너 소리해야 쓰겄다."해서 소리를 배웠다. 스승으로 모시고 싶던 [명성황후]의 편곡자 피터 케이시의 아낌없는 칭찬은 지금껏 음악을 하는데 큰 힘이 된다. "아무 말도 안했는데, 놀 수 있는 판을 펼쳐주는게 너무 신기해요. 내가 도대체 어쨌길래 저 사람들이 저렇게 길잡이가 되어주는지."라고 이야기하는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들이 아직까지도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최근 13년 동안은 뮤지컬 무대에만 매달렸다. 그러나 음악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으로는 그의 짧은 밴드생활을 꼽는다. European Kar Company, EKC라는 팀. 월드 음악을 아무도 하지않던 때에 한국, 아프리카, 인도, 중동 음악에 능한 네 명이 모여하던 것을 '퍼포먼스 월드뮤직 팝 뉴에이지 아방가르드'로 거창하게 소개하고 나서, 그래도 분위기가 잘 맞았다며 즐거운 미소를 짓는다. 밴드에서 함께 활동하던 한 멤버를 색소폰 불던 '아저씨'라고 부르는 그에게 그때가 언제냐고 하니 86년도란다. 의자에 깊숙이 기대어 앉아 기분좋게 하는 그의 이야기가 길어지는 이유를 알 것 같다. 86년은 그가 정확히 스무 살이 되던 해. 오랜만에 하는 어렸을적 이야기가 좀처럼 끝나지 않는다. 그의 말투를 유심히 들어보았다. "유럽차는 조금만 움직여도 다른 나라에 들으가잖아요. 우리 음악이 그래가꾸 팀 이름이 그렇그든요. 온데 방방곡곡 다 돌아다니는 음악. 참, EKC는 처음에 오리지날로 멤버들 이름 앞 글자를 따서 만들었어요." 아직 영어 억양이 남아있는데도 우리 말투보다 훨씬 정겹게 느껴진다.
선택, 그 나머지는 나의 몫
그는 음악을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다. 결혼하자마자 남편과 일 년 반을 떨어져 지내게되어 결국엔 좋은 친구사이로 만족하게된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렇게 항상 일을 염두에 두다 보니 늘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하루를 마치고 나면, 그 날 편히 잠을 잘 수가 있을지, 아니면 이어지는 악몽들 때문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울지 그가 제일 잘 안다. 그래서 일하는 동안은 거기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온 몸의 세포에 자극이 오도록.
"난 유별나게 까다로워요. 우리는 몸파는 사람들이거든요. 물감을 바르려면 직접 손으로 찍어야하죠. 빨간색이 필요한데 손이 떨린다고 해서 그 옆에 있던 파란색을 같이 묻혀선 안돼요. 선을 긋는 것도 손이 하지 기계가 하지는 않는다구요."라며 좋은 연습을 까다롭게 오래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그의 이런 유별남은 연습시간에 가장 잘 나타난다. 배우들이 [명성황후]때부터 장난 반 투정 반으로 붙인 '마녀'란 별명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가 있다.
배우들을 연습시키는 그에게는 독특한 버릇이 있다. 잘못된 점에 대해 한 번 얘기해서 고쳐지지 않으면 다시 한 번 지적을 하고, 그 다음에는 아예 무시를 한다. "그러면 우린 집에 가서 열심히 연습을 하죠. 다음 날 찾아가서 확실히 고쳤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니까. 욕하고 혼내기보다 우리가 스스로 반성하게 해주는 스타일입니다." 그와 연습한지 5년째인 배우 김도형의 이야기다. 남들에게만 기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 자신에게 엄격한 사람임을 알기에, 배우들은 그의 꾸중을 고맙게 받아들이는 편이다. 배우 최정원의 경우, 그가 잡아주는 목소리와 톤으로 무대를 이끌어간다며 더 혹독하게 시켜줬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다.
'balance', 삶의 필수적인 요소
반평생을 음악과 함께 살아온 그가 꼭 음악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냥 하필, 어릴 때부터 무대 생활을 하다보니까 이렇게 흘러왔어요. 사실 무엇을 하는가는 별로 신경을 안쓰거든요. 어마어마하게 많은 양의 접시를 나만큼 깨끗하게 닦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접시닦이도 괜찮아요."라며 음악 이외에 좋아하는 일들을 늘어놓는다.
그는 요리, 승마, 비행을 즐겨한다. 일과 그 사이에서 '발란스'를 맞추려고 항상 노력하는 편이다. 중학교 때부터 그려오던 그림을 보여주며 '발란스'에 대해 설명하는 그의 표정이 일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만큼이나 진지하다. "그림의 전체적인 형태가 어느 정도 균형이 맞아야 하구요, 끌리는 공간을 펜으로 칠하면서 흑과 백의 발란스를 맞춰가는 거예요. 한 칸을 검정으로 칠했으면 그 바로 옆은 하얗게 두는거죠. 그렇게 한참을 그려서 여백을 채우고 나면 꼭 오른쪽 아래에 'balance'라고 쓰고 날짜를 적어요. 이렇게 그린 게 지금까지 수 백장이 넘어요." 그는 항상 어떤 식으로든 깨달음을 얻어간다.
최근에 새로 깨달은 것이 있다면 자신이 사회생활에 있어서 그 '발란스'를 유지하지 못하고 지냈다는 점. "저보다 훨씬 어린 친구한테 야단 맞았어요. 배우들 이름 좀 제발 외우라고. 저는 한국 이름이 어려워서 잘 못외우거든요. 그랬더니 사람들한테 접근하는 방법인데 왜 그걸 안외우냐고 해요. 일만 하고 집에 가지말고 사회생활 좀 하라는 거죠."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에 충격을 받아 다음 날로 수십 개의 이름을 모두 외워버렸다고 한다. 그런 말을 듣고있자니, 방금 전 '균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며 빈틈을 보이지 않던 그 사람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나를 알기, 마음가짐의 완성
연기상 수상 경력도 가지고 있는 그이지만 음악감독 일을 하면서부터는 무대에 잘 서지 않았다. [명성황후] 미국 공연 이후로는 극중인물이 아닌 '음악하는 박칼린'으로만 지냈다. 마음에 드는 역할이 있으면 언제라도 오디션을 보겠다고 말하는 그는 요즘, 모처럼 자신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있다. 공들여 작품을 쓰듯이, '내가 좋아하는 것? ①국악, ②...'하는 식의 문답들을 A4 용지 몇 장에 걸쳐 기록하며 마음가짐을 달리한다.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는 이러한 습관은 저널을 즐겨쓰던 열네 살 때부터 계속된 것이다. 열네 살의 그가 자신을 표현할 이름을 찾다가 고른 이름, 22(twenty-two)를 지금껏 간직하고 있는 그는 조금 다른 방식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박칼린 알아가기'에 열중한다.
스스로도 아직 확실히 모른다는 '박칼린에 대한 이야기'를 접으며 스텝 중 한 명이 조심스레 귀뜸해준 '마녀(魔女)'라는 별명을 떠올려본다. 18세기 마녀사냥 때야 지독한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했다지만, 그는 자신에 관한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스스럼없이 들려주었다. 남보다 나를 다그치는데 더 잔인하고, 순전히 자신과만 싸운다는 박칼린. 쓸데없는 악독함을 지닌 사람이 아니라, 좋은 뮤지컬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신이 지닌 마력(魔力)과 같은 힘을 발휘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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