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톨릭농민회가 농촌생활공동체 ‘뿌리님’으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면, 도시생활공동체에는 활동가 ‘꽃님들’이 있다. 현재 광주, 대구, 서울, 부산 등 9개 교구에 약 239개(2012년 말 기준) 공동체를 꾸린 도시생활공동체는 도시와 농촌을 잇는 징검다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도농교류를 위한 교육은 물론, 농촌공동체와의 결연 활동, 소 입식 운동, 활동가 연수 등 눈코 뜰 새가 없다. 또 본당 활동가 임기가 끝나면 환경과 생태계 회복을 위한 다양한 후속 모임을 꾸린다. 그러나 가장 중심적인 활동은 무엇보다 본당 우리농 매장 운영이다. 우리농 매장은 전국에 237개 본당 매장, 21개의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직매장이 있다. 이 중에서 활동가들이 운영하는 것은 본당 매장이다. 도농교류, 본당 생활공동체를 위해 뛰는 꽃님들 “국 끓일 건데, OO 있어요?” “그래도 여기 것이 제일 맛있는 것 같아요.” 우리농 매장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대화다. 사계절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먹을 수 있는 세상인데 찾는 것마다 없을 때, 소비자들은 짜증을 내기도 한다. 제철 농산물만 취급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을 해도 당장의 편의보다는 먼 이야기다. 올 때마다 찾는 것이 없어 헛걸음을 하게 되면 다시는 매장에 오지 않게 된다. 반면, 오히려 없는 것이 많고, 고집스럽게 원칙을 지키는 것이 훨씬 믿음직스럽다면서 단골이 되는 경우도 많다.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매장이니 믿고 찾는다는 이들도 있다. 유기농임을 감안해도 가격이 크게 비싸거나 시기에 따라 차이가 나지도 않고, 어떤 것은 시중 농산물보다 싸다는 평가도 한다. 그런 손님들은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기도 한다. 우리농 매장의 활동가들은 이렇게 하루에도 몇 번씩 냉탕과 온탕을 오간다. 활동가들 입장에서 우리농촌살리기운동과 가톨릭농민회가 추구하는 생명농업의 가치를 스스로 받아들이는 것과 다른 이들을 설득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서 무척 힘이 든다. 비료나 농약은 물론 화석연료를 쓰지 않으니 비닐하우스에서 온열기구를 사용해 재배하는 농산물은 매장에 들여놓을 수 없다. 또 소비량이 어느 정도 확보되어야 그나마 생산된 농산물을 골고루 들여놓을 수 있는데, 농산물이다 보니 소비가 불확실한 것도 받을 수 없고, 날씨의 영향도 크게 받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이런 불편함을 받아들이기보다, 익숙한 살림과 식습관이 우선일 수밖에 없다. ‘활동가’라 쓰고 ‘봉사자’라 읽는다 우리농 매장 활동가들의 고군분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생명운동 활동가로서 기꺼이 대가 없이 봉사하고 있지만, 가정과 일 나름의 삶이 있는 상황에서 전적인 투신은 어려운 일이다. 또 본당 매장의 경우, 활동가들의 재교육과 양성에 투자되는 비용이 적다 보니, 임기동안 버티는 일조차 힘겹다. 당연히 활동가들의 수나 동력은 점점 떨어지게 된다. 활동가의 수가 적어지고 일은 점점 힘들어지는 악순환이다. 설상가상 힘들게 지켜온 본당 매장이 여러 사정으로 한순간에 없어지는 경우도 있어, 소비자 차원의 생명운동 확산이 지속되기 어렵다.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을 펼치고 있는 교회 내에서조차 본당 내 우리농 매장이 ‘생명운동의 한 축’이 아닌 성물방과 같은 ‘매장 운영’으로 인식하는 까닭이다.
서울 이촌동 우리농 직매장 김정이 씨는 “심지어 격무에 시달리다 쓰러지는 실무자도 있다”면서, “당장 이촌동 매장만 해도 공동출자한 당사자들이 봉사를 하는데도 집안일과 개인 일이 겹쳐 휴일 업무가 곤란한 적이 많다”고 털어놨다. 양천성당 매장의 한 활동가는 “안타깝게도 운동 차원에서 의지와 지식을 가지고 활동에 결합하는 것보다 인맥이나 본당 봉사 차원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또 “우리농 매장 운동이 별도의 과외 활동처럼 인식되고 있다. 본당 차원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사목회나 사제의 의지에 따라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아쉬움을 표했다.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손영준 사무총장은 도시생활공동체 활동가들의 열의에도 불구하고 지속되지 못하는 또 하나의 문제는 활동 시기가 철저히 임기 중심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비슷한 목적을 가진 다른 조직에서는 짧으면 5년, 10년가량 지속적으로 경력과 연륜을 쌓는 것이 일반적인데, 도시생활공동체 활동가들의 경우 2년 임기 단위로 움직이게 된다는 것이다. 손 사무총장은 이런 상황에서 가장 힘든 것이 ‘활동가들의 양성과 재교육’이라고 말했다.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기초교육, 심화교육 등이 단계적으로 이뤄지고 고민의 내용도 깊어져야 하는데, 임기가 바뀌면 현장에서 일하지 않으니 교육 때마다 매번 대상자들이 바뀌고, 수준도 그 이상을 넘어서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절박한 과제, 전 교회적 인식 전환과 조직 개편 매장 운영을 경험한 활동가들과 손영준 사무총장은 이런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면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의 새로운 시기를 준비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관건은 활동가들의 주체적 운영을 보장할 수 있는 새로운 조직 체계다. 손영준 사무총장은 그간의 고민을 바탕으로 물품 공급을 위한 대안은 중소 생협과의 연대, 도시생활공동체 활성화를 위해서는 소비협동조합을 제시했다. 손영준 사무총장은 올해 하반기에는 농촌과 도시 공동체가 함께 갖고 있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실천적 대안을 이끌어내기 위한 논의를 시작할 예정이라면서,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처음의 형태였던 우리농 생협으로의 전환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농은 교회 내 협동조합으로 출발했지만 점차 본당생활공동체로 바뀐 것”이라고 설명하며 “같은 뜻을 가진 이들이 스스로의 결단에 의해 조직하고 역할을 수행하는 협동조합적 운영이 이뤄져야 한다. 지금과 같은 상태에서는 회원들의 의지가 있어도 주체적 운영이 어렵다”고 말했다. 물론 본당과 연대하는 것은 기본이지만 본당 산하 단체로는 제 역할을 하기 힘들다는 판단이다. 이촌동 매장 김정이 씨는 “이촌동 매장의 경우 개인 활동가들이 공동출자한 형태이기 때문에 협동조합 전환 제안을 받고 있지만, 개별적인 움직임이 아니라 전국본부 차원의 결정에 따라 전반적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들은 우리농 본당 매장 운영이 어느 정도 한계 상황에 이르렀다는 데 동의했다. 물론 지금도 활성화된 매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처럼 교구나 본당 차원의 지원이 없고, 전적으로 활동가들의 ‘봉사’에 의존하는 형태라면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운동을 전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직 개편에 앞서 우선시되어야 할 것은 전 교회 차원의 우리농촌살리기운동에 대한 교육과 홍보다. 명실상부 교회 내 운동임에도 불구하고 사제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비싼 유기농산물을 파는 매장’ 쯤으로 인식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은 교회가 주도해야 할 ‘생명운동’이다. ‘유기농산물’이라는 결과물을 둘러싼 맥락은 소외된 관계와 생태계의 회복, 창조질서의 보존, 공동체의 복원이다.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의 새로운 20년의 전기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이것은 온 교회의 고민이 되어야 할 것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