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식 교수 누구도 인권에서 소외될 수 없음을 강조
다윗학교 여섯 번째 강좌에서 경북대학교 김두식 교수가 인권에 관한 주제로 강의를 진행했다.
김두식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화두가 되는 성적 소수자 문제 양심적 병역거부자 문제 등 민감한 주제로 강의를 시작했다.
성적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동성애차별 금지법을 한기총 에서 강하게 반대했었다.
신학적인 문제를 동반하기 때문에 쉽게 발언할 수 없는 문제이거니와 보수 기독교는 물론 많은 신앙인들을 어렵게 하는 문제이다.
이 뜨거운 감자를 김두식 교수는 무 자르듯 정의를 내리는 것보다 성경에서는 인권문제를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를 말하고 다양한 사례를 들어 이해하기 쉽고 다가가기 편하게 설명해 주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대다수 기독인들의 관념 속에는 동성애는 죄다.
동성애자는 창조 질서를 무너뜨리니 고쳐야 한다 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죄의 문제를 동성애에만 적용하여 사람 취급하지 않는 현실은 부당하다고 한다.
성경에는 수많은 죄악들이 열거 되어있다.
이혼 음욕 탐욕 등 이미 기성교회와 많은 성도들이 저지르고 있는 죄에는 무감각 하면서 성소수자들의 권리를 빼앗으면서까지 집착하는 문제를 제기했다.
반론의 여지가 있는 발언임에도 김두식 교수는 성적 소수자들의 편에 기꺼이 서기를 원했다.
같은 사람으로 이웃으로 보고 그들도 같은 권리를 누리기를 원했다.
우리의 편견이라면 편견일 수 있는 눈을 한 꺼풀 벗고 동성애를 보면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문제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성애자들이 서로를 사랑하고 상처받고 헤어지듯 마찬가지의 감정이며 이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특히 교회는 몸의 문제에 너무 치중한다고 했다.
즉 성결의 문제를 몸의 성결로만 축소한 나머지 진정한 성결의 의미를 놓친다고 했다.
여기에 집중한 나머지 다른 모든 부분들을 보지 못하고 편협한 사고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육체의 방탕함을 허락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성결에 대해 다시 한 번 성찰할 수 있었다.
양심적 병역거부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변론하였던 옛 기사를 자료로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우리나라에서 군대는 모든 남성들의 끝없는 이야깃거리며 가기 싫지만 가야 하는 삶의 부분이다.
가지 않으면 많은 불이익이 있으며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당연하게 여기는 국방의 의무를 여호와의 증인은 양심적 병역거부로 병역을 기피할 뿐만 아니라 종교와 관계없이 병역을 거부하는 이들이 있다.
교회는 전반적인 관점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이해하지 않으며 특히 종교가 다르기 때문에 이들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단과의 갈등 문제로 이해하며 해결하려는 이도 있다.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에서는 모든 인류가 포함된다.
인종 종교 지역 등 모든 것에 관계없이 인간 누구는 창조물인 까닭이다.
그리하여 대립 구도가 아닌 사랑으로 이 문제를 보아야 한다고 했다.
기독교 인중에도 양심적 병역 거부자가 존재하는 실례를 들며 평화주의 라는 기독교의 소중한 유산을 포기해서는 안 되며 우리가 싸울 곳은 법정과 감옥이 아니라 따뜻한 사랑을 보여 줄 수 있는 삶의 현장이어야 한다고 했다.
대체복무 입법화가 그러한 사랑을 보여 줄 수 있는 출발점이라고 했다.
국가폭력
인권을 보호하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이 유린하는 것은 사적관계가 아니라 국가이며 거대 권력이라고 한다.
입에 담지 못할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를 미디어에서는 수없이 비난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피해를 입히고 희생자를 낸 국가의 폭력에는 잠잠하며 무지한 우리의 태도를 꼬집었다.
국가폭력의 위험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했다.
20세기 국가 폭력으로 희생된 사람의 숫자를 언급하며 국가의 폭력은 그 희생과 범위가 크며 괴물이 된 어떤 살인범도 괴물로 변한 국가와 경쟁 할 수 없다 라는 비유로 국가 폭력의 위험성을 말했다.
예전과 다르게 폭력에 의한 국가의 통제는 약해진 대신 정보독점과 불균형에 기초한 국가 통제는 날로 강화되어 ‘만인의 만인에 대한 감시’가 될 정도라고 했다.
사적문제 사적보복
최근 개봉한 아저씨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을 꺼내며 사적보복 사적책임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왜 사적 보복에 나서는지 정부의 보복이 만족스럽지 않은지 질문을 던졌다.
이는 오늘 우리가 처한 현실과 맞닿아 있었다.
사회안전망을 갖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 조심하라고 부추기는 정부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최근의 정부 공익광고 예를 들었다.
조심조심 코리아 즉 조심하라고 하는데 광고의 내용은 스스로 조심하라는 이야기였다.
영화든 광고든 사고는 너의 책임이며 국가는 이런 사고에 아무 책임이 없다.
알아서 조심하라는 것이다.
산업재해를 막는 시스템 구축 노동자의 충분한 휴식과 보장 사회안전망 구축으로 시민안전확보가 만들어지고 홍보되어야 하는데 정부가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닌가 하고 반문했다.
더불어 교회는 어떠한지 문제를 꼬집었다.
공동체를 말하는 교회는 개인의 문제를 개인의 것으로 돌리고 있다.
개인의 어려움은 개인의 죄의 값으로 돌리고 성공만을 이야기하고 하나님의 영광이라 돌리는 공동체성이 사라진 교회문제를 지적했다.
인권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
뜨거운 주제부터 우리의 양심을 뜨끔하게 하는 문제까지 다양하게 이야기 되었다.
인권이라는 주제가 어렵고 힘든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곁에 있는 아주 가까운 문제임을 확인시켰다.
우리는 특히 기독인은 소수자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한국교회가 급성장하여 다수자가 된 것처럼 행동하지만 다수자가 아님을 인식하고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소수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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