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모델
"내 몸매 부럽다고 굶지 마세요"
 
[파리·밀라노 패션위크 휩쓴 모델 최소라, 에트로 등 24개 쇼 올라]
독해야 살아남는 모델 세계
'날 안쓰면 후회'란 각오로 살빼… 4주간 물만 먹고 179㎝, 47㎏로
굶어서 망가진 몸은 회복 안돼… 그래도 쇼 좋으니 또 살빼겠죠
 
지난달 7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16 봄/여름 패션위크에서 루이뷔통 컬렉션 의상을 입고 런웨이에 선 모델 최소라. /YG케이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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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 최소라(23)가 런웨이를 걸을 때마다 동그랗게 튀어나온 어깨뼈가 흔들렸다. 천 조각 하나 걸친 하얀 갈대가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듯했다. 지난 9~10월에 열린 파리와 밀라노 패션위크에서 그는 돌체앤가바나, 마르니, 에트로, 미쏘니, 프라다 등 스물네 개 쇼에 섰다. 혜박(30)·한혜진(32) 등이 본격적으로 해외 진출을 시작했고, 김성희·수주·신현지·최소라 등이 현역으로 뛰고 있지만, 이번 시즌 최소라가 거둔 성과는 세계 톱모델을 넘볼 만큼 압도적이다.
최소라는 2012년 '도전 슈퍼모델 코리아'라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했다. 2년이 채 지나기 전 루이뷔통 크루즈 컬렉션으로 파리에서 데뷔했다. 영어를 말하지도, 알아듣지도 못하는 그는 루이뷔통 수석 디자이너인 니콜라스 게스키에르에게 "아임 낫 스피킹 잉글리시"라고 말하고 무작정 걷기만 했다.
"제 몸엔 단점이 많아요. 서양 모델보다 종아리도 짧은 데다 휘었고, 골반도 작아요. 그렇다고 다른 동양인 모델처럼 쭉 찢어진 눈에 높은 광대뼈, 각진 턱뼈를 갖고 있지도 않지요. 그런데 다른 모델들은 체구가 작고 아무 화장이나 어울리는 백지 같은 얼굴의 저를 부러워해요. 사람은 자기가 갖고 있지 않은 걸 사랑하기 마련이죠."
데뷔 후 첫 시즌이랄 수 있는 지난해 뉴욕·밀라노 패션위크에서 캘빈 클라인, 3.1필립림, 알렉산더왕, 프로엔자 스쿨러, 펜디 등의 무대에 올랐다. 캘빈 클라인 메인 쇼 최초의 동양 모델이었고 모델즈닷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신인 모델 톱10으로 뽑혔다. 두 번째 시즌에선 '밝힐 순 없지만 상처를 많이 받아' 패션위크에 서지 못했다. 세 번째 시즌을 맞으면서 '나를 안 쓰면 후회하도록 만들어주겠다'는 생각으로 살을 뺐다. 아침에 일어나면 차 한 잔 마시고 하루종일 오디션 보러 다니고, 집에 돌아오면 차 한 잔 마시고 잠들었다. 그렇게 한 달을 보낸 뒤 파리와 밀라노 런웨이를 장악했다. 그는 "원래 육식주의자이고, 맵고 짜고 단 걸 잘 먹는다. 패션쇼 백스테이지에 가면 샐러드, 샌드위치부터 고기까지 먹을 게 준비돼 있다. 딱 하나만 집어 먹을까 고민했던 적도 많지만 한 조각에 내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잡았다"고 했다.
최소라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원래 독해요?"란 질문이 불쑥 나왔다. "첫 시즌 때 장염에 걸린 채 알렉산더왕 쇼에 갔어요. 계속 토하고 아파서 죽을 것 같았죠. 스태프가 와서 '괜찮아?'고 물었는데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아주 괜찮다'고 했어요. 조금이라도 이상한 기미를 보이면 돌려보내요. 그 스태프는 제 건강이 아니라 제가 무대에서 토해 쇼를 망칠까 봐 걱정했던 거예요. 빈자리 채울 모델은 많으니까. 이 냉정한 세계에선 독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어요."
런웨이에 선 최소라를 보고 여자들은 그의 몸무게와 다이어트법을 궁금해했다. "말라서 부럽다"고도 했다. 패션위크가 끝난 뒤 최소라는 SNS에 긴 글을 올렸다. 179㎝에 47㎏. 키와 몸무게를 공개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글은 '저처럼 빼지 마세요'로 끝을 맺는다. 한 달간 물만 마시면서 살뿐만 아니라 건강도 잃었다. 온몸에 붉은 반점이 생기고 건조해졌으며 입안 곳곳이 헐었다. 패션쇼 기간에만 세 번 쓰러졌다. 그는 "쇼가 끝난 뒤 음식을 먹기 시작했는데, 몸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망가진 몸은 원래대로 회복되지 않는다. 여긴 현실과 다른 곳이고, 어쩔 수 없는 곳이다"라고 했다.
"먹고살자고 하는 건데, 일하느라 먹지 못하는 게 얼마나 웃겨요. 그런데 다음 시즌이 되면 또 살을 뺄 것 같아요. 미칠 정도로 힘들어도 쇼에 한번 서면 다 잊히니까. 음악이 나오면 심장이 쿵쾅대다가 큐 사인이 들리면 온몸에 소름이 돋고, 런웨이 끝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면 머릿속이 새하얘지고…. 전 더 많은 쇼에 서고 싶어요."
변희원 기자,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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