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는 주로 외국영화를 선호하였지만 지금은 한국영화에 더 치우치는 편이다
그것은 재미도 있고 우리나라 디지털문화를 선도하는 나라답게 촬영과 편집
기술의 놀라운 발전으로 그만큼 우리의 영화가 괄목성장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며칠 전, 영화 매니아인 친구의 추천도 있고 해서 오랜만에
좋은 평판을 받고 인기있는 외국영화 '유스(Youth)'를 관람했다.
영화 ‘유스’는 알프스에 있는 고급 호텔에서 휴가를 보내는 두 노인의 드라마다..
작곡가 겸 지휘자 프레드(마이클 케인)는 삶의 목표를 잃고 은퇴를 선언했다.
오랜 친구인 믹(하비 케이틀)은 같은 곳에서 새 영화 구상에 바쁘다.
의욕을 잃은 프레드는 산책과 마사지, 사우나와 건강체크로 무료한 시간을 보낸다.
그때 영국 특사가 찾아와 “여왕 앞에서 대표곡 ‘심플 송(Simple Song)’을 연주해
주십시오, 기사 작위도 드릴 겁니다”하고 청하였으나, 그는 딱 잘라 거절한다.
노년을 대하는 상반된 두 노인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인생의 의미를 생각케 한다.
마이클 케인과 하비 케이틀 등의 유명 배우의 열연과 주제가를 부른 한국이
낳은 소프라노 조수미의 직접 출연, 영화의 끝 장면을 장식한다. 전설이 된
아르헨티나 축구 스타 마라도나와 조수미가 같은 영화에 나와 흥미를 더해 준다.
2014년 ‘그레이트 뷰티(The Great Beauty)’로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 외국어
영화상을 휩쓴 파올로 소렌티노(이탈리아)는 음악을 사랑하는 감독이다.
‘유스’는 늙음 말고도 인생의 여러 재료들을 아름답고 경이롭게 잘 섞어 막힘
없이 뭉뚱하게 그렸다. 우정, 사랑, 통증, 상실, 성적 욕망, 지혜, 환멸 등등…
딸 레나(레이철 외이즈)와 함께 호텔에 투숙한 프레드는 몸과 마음이 지쳐
우울한 나태에 빠져 있다. 레나도 남편과 헤어진 상처를 다스리는 중이다.
프레드는 사탕 포장지 같은 것을 마구 손가락으로 비비면서 과거의 음악
인생을 회상한다. 정반대로 믹은 마지막 명작을 뽑아낼 꿈에 부풀어 있다.
아침마다 “소변은 잘 보았나?”묻는 사이지만 두 노인은 사뭇 다르다.
한 사람은 과거에 붙잡혀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여전히 미래를 꿈꾼다.
믹이 준비 중인 영화제목은 ‘생의 마지막 날’이다.
프레드가 그루터기에 앉아 아래에 있는 소떼를 바라보며 지휘하는 대목부터
명장면이 수두룩하다. 소 울음과 방울 소리, 바람과 고요, 새 떼의 비상이
모두 악기처럼 들려온다. 대자연이 빚어내는 즉흥적인 교향곡이다. 영화는
주인공들의 인생을 살아온 깊은 정서를 단단히 뭉쳐서 던진다.
가장 고요한 장면이 가장 멀리 울려 퍼지듯이, 인간의 말을 들어내야 풍경이
일어선다. 수영장과 사우나에서 알몸으로 있는 사람들을 비추는 장면은
야릇하게 느껴지지 않고 월리암 터너가 그린 풍경화처럼 뿌옇게 다가 온다.
노년은 정신이 흐려지면서 또렷해지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철학자 김형석선생(당년 97세)은 작년 신문 인터뷰에서
“살아보니 인생의 절정기가 철없던 청년기가 아니라 인생의 매운 맛, 쓴 맛을
다보고 무엇이 좋고 무엇이 소중한지를 알 수 있는 시기, 곧 ‘60대 중반에서
70대 중반’이다”라고 했던 말이 생각나며 실감 있게 다가왔다.
또 임보 시 ‘세월에 대한 비유’를 다시 끄내 보게 되었다.
“세월이 거북이처럼 느리다고/ 20대의 청년이 말했다/ 세월이 유수처럼
흘러간다고/ 40대 중년이 말했다/ 세월이 날아가는 화살이라고/ 50대의
초로(初老)가 말했다/ 세월이 전광석화 라고/ 70대 노인이 말했다/
한 평생이 눈 깜짝할 사이라고/ 마침내 세상을 뜨는 이가 말했다.”
‘유스’는 언젠가 맞게 되는 인생의 끝에 대한 대리 체험이다.
이 영화의 주제를 한마디로 정리하라면 “당신도 늙음을 모른 척하지 말게,
자네도 멀지 않았어!”이다. 오늘 이 영화를 보는 당신도 멀지 않았다고.
노년도 긴 시간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유머러스한 장면에서는 실컷 웃다가
가슴 한쪽이 서늘해진다. 누구나 알고도 모른 척하는 늙음,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의 진행을 스산하고 담담하게 말한다.이 호텔에 온 미녀(미스 유니버스)를
바라보는 두 노인의 시선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놓치지 말아야 한다.
엔딩이 참 아름답다.
첫댓글 글쿤요
이영화 송탄에 오면 꼭 봐야겠군요
잘읽었읍니다
감사합니다
볼만한 영화입디다.
@恩波 은파님!
답글 주셔서 매우 방가방가군요
@부락산 저는 게을러서 그런지 ~
또한 제 손을 떠나 어디 올린 글은 그때부터 제 글이 아니고
읽는 분의 느낌대로 받아드려지는 그분의 글이라고 믿기에!
@恩波 네 그래요 글이란
읽는사람에게 해석에 자유가 허락되는
아주 폭넓은 아량이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