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인터넷 뉴스에
"국내로 유입되는 '차이나 머니(중국계 자금)'가 급증, 최근 5년 만에 44배로 불어났다." 는 기사를 읽으며
시장조사차 자주 중국을 찾던 때가 그리웠다. 지금은 이런저런일들로 인해 갈 수가 없지만 오래전 중국에 갈 때마다
특히 중국어를 몰라서 허둥대던 때를 떠올리고는 지난 6월 서울역 롯데마트에서의 일들이 생각 났다.
2014.6.28. 오후 3시
그날 인사동에서 런치 모임이 있어 잠깐 참석했다가 서울역으로 와서 대전행 기차를 타기 전에 물을 사려고 역사에 있는
롯데마트로 갔다. 그런데 매장 여기 저기에 일본인, 중국인들이 쇼핑하는 모습이 눈에 띄어 잠시 걸음을 멈췄다. 그들 대부분이
이동 중에 잠시 들어온 것으로 약간의 먹을 것을 산 후 입구 출구를 몰라서 허둥대는 것을 보니 새삼 오래전 내 생각이 나서 였다.
몇몇은 아차하는 순간 차도로 나오자 경비원이 급히 달려가서 손짓으로 그곳이 아니라고 다른 곳으로 지시를 해도 미처
못알아듣는지 일행끼리 고개만 갸우뚱 거리는 그들. 오래 전 생소동 시장조사차 생소동 회원들과 중국과 일본을 자주
드나들던 때를 떠올리며 그때가 더욱 그리워졌다.
언젠가 심양으로 시장조사 갔을 때도 잊혀지지 않는다.
2006년 10월 24일. 서탑에서 점심식사후, 카페지기 양사장님은 대련으로 가시기 위해 짐을 가질러 호텔로 향했고,
나는 한세상님과 함께 오애시장으로 향했다. 시내버스를 타보고 싶던 터에 한세상님께 말씀드렸더니 길도 알겸 좋다고
찬성하셔서 인근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그러나 표지판이 중국어로 써져있어서 도무지 어느방향인지 알수가 없었다.
한세상님과 나는 한참 동안을 표지판에 노선을 일일이 가르키며 이 방향이라커니 저 방향이라커니 궁리하다가
마침 뒤에 서있던 행인한테 버스 노선을 물었다. 그동안 틈틈히 익힌 중국어를 발휘할 기회이기도 해서였다.
'칭~원,워스~ 한꾸어 런~,(양사장님은 항상 이렇게 말문을 시작하셨다.)
쭈오 지루처 크이 취 우아이스창?"
성조는 아예 생각지도 못한 채 단어만 얼버무려 간략히 중국어로 묻자 그는 나를 한번 힐끔 쳐다보더니 건너편 정류장을
손으로 가르키며 말했다.
"저쪽에서 263번 타세요." 아니, 이게 웬일!
그는 더듬대는 나의 중국어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유창한 한국말로 무뚝뚝하게 대답하는게 아닌가.
나참..한국말을 할 줄알면 진작에 알려 주던지.. 내가 중얼중얼 하자 한세상님이 피식 웃으시더니 말씀하셨다.
"심양은 조선족이 많아서 말조심 해야 겠네요.."
그날 시내버스는 먼길로 돌아서 가는 듯했다. 한참을 걸려서 오애시장에 도착하니 상가는 대부분 철시 중이었다.
오후 3시30분 인데...
하는 수없이 건너편으로 되돌아 나와서 246번 시내버스를 타고 호텔로 향하는 수밖에. 호텔앞에 도착해서는
곧바로 태원가로 향했다. 태원가는 심양역을 향해서 가니까 찾기가 쉽다.
태원가에서 월마트에 들어가니 낯익은 모습들이 보였다. 해피맨님과 정은이아빠님..저만치에는 기차여행님과
한밭님도 보였다. 해피맨님과는 연태와 청도를 몇번 같이 간 때문에 격의없이 지낸다.
월마트에서는 생필품을 몇가지 구입했다.
Colgate치약,쵸콜렛,볶은콩, 잠바등.. 잠바는 58위안으로 저렴한 거에 비해 품질은 만점.
<중략>
외국에서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우리 생소동의 추억이 묻어나기는 마찬가지.
지난 8월15일 교황 방한, 대전 월드컵 경기장에서 교황님 미사 집전하실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날 영어 통역안내원으로 자원봉사를 자청, 행사에 갔었다.
안내석에는 우리말 안내원 4명과, 영어, 일어, 중국어 통역 각 1명 씩 배치되어 안내하는데 너무나 놀라웠던 건
외국인 중에도 중국인이 특히 많아서였다.
한국에 거주하는 중국인도 많았지만 미사를 보기위해 그 전날 한국을 찾은 중국인도 많았다.
입장객이 거의 다 입장하고 한산할 즈음, 일어, 중국어 통역이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였는데 중국인 인듯한
젊은 남성이 와서 영어로 티켓, 이라고 물으며 그 다음은 더듬 더듬 거렸다. 내가 영어로 물었다. 그가 영어를 하기에.
"아유 차이니스? " 그러나 그는 알아듣지 못한건지 머리를 극적거리는 시늉을 했다. 다시 일본인이냐구 물었다.
"아유 재패니스?" 역시 못알아들었다. 아무리 봐도 중국인 같았는데 중국인이 아니라고 하니까 속수무책.
티켓 창구가 길 건너편에 있으니까 그리로 가면 된다는 말 정도는
나도 중국어나 일본어는 가능하기에 알려주려고 했던건데 중국인도 일본인도 아니라고 하니까 어쩔 수 없었다.
영어는 "티켓" 이라는 말만 하는 것 같고..
뒤 자리에 서있던 대전시청 관련자 직원들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하는 수없이 볼펜과 종이를 꺼내서 약도를 그려주고
손짓으로 그쪽을 알려주면서 보냈다. 그런데 잠시후, 나는 머리를 탁쳤다. 아이구 참내!!
내가 그에게 영어로 물어본 것이었다. 중국인이냐고 물을 때는 중국어로 "니스 쫑꾸어런?" 했어야했는데 말이다!!
일본인이냐고 물을 때도 일본어로 "니혼진 데쓰까? 라고 물었어야 했는데, 영어로 일본인이냐구 물어보았으니 그가 알턱이
없었던 것이다.
이렇듯 외국인을 대할 때는 외국에서는 물론이고 국내에서조차도 언어 소통에 혼돈을 하는 것 같다.
한세상님이 하루 일정 설명 (2010.3.27 심양 한양호텔 로비 )
영구항- 귀국 승선을 앞두고 한세상님이 짐을 일일이 점검하고 계심 (2010.3.29)
[에필로그]
생소동에서의 시장조사는 정말 참 즐겁고 잊을 수없는 낭만 여행이었다. 바다로 이어져서
더욱 선상여행까지 할 수있어서 좋았던 거 같다.
언제 또 생소동 회원들과 함께 할 수있을지는 알 수없지만 그때가 늘 그립고 또 그리움의 대상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마음의 고향처럼.
첫댓글 리아님
어머니 건강은 요즘 어떠하신지요 ?
추석연휴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
님은 먼곳에님 반가워요.. 요즘도 여행 많이 다니시지요?
모친은 여전해요.. 님은 먼곳에님도 추석 연휴 좋은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오랫만에 시장조사 인솔하던 사진을 보니...
세월참 빠름니다 벌써 10년전에 일들 이네요..지금 내 나이가 60이 훨신 넘었으니까요..
중국 참으로 그리운 곳입니다 특히 연태는 한 50여회 같었나..제2의 고향 같은곳입니다..
요즈음 일본을 주로다니고있지만 마음은 항상 중국 다니던 시절을 그리워 합니다..
그때 힘들때 만났던 수많은 분들 언뜻 생각나는 분들만도 한 2백여분은 되는 것 같슴니다..
수천명의 사람들과 수많은 중국 도시를 다니면서도 즐거 웠던것은 배를 타고 여행하면서
많은 대화 그리고 음식을 함께 먹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십년이지나도 그분들이 생각나고 그분들과 일부는 아직도 서로연락을 하면서 지내고..
그 모든건 배 여행이였기에 가능한 일이 였던것 같슴니다..
마치 친동기간 같이 오랫만에 만나면 너무나 반가운 그런 인연을 맺어준것이 생생 중국여행 이였읍니다..
일본은 벌써 200 여회를 넘게 다니고 있지만 사람을 사귄것은 불과 몇분..생생 같았으면 수백분은 더 친분을 쌓았을 텐데..
그모든건..배 여행이였기에 ..그리고 생생 이였기에 ..가능 했던것 같슴니다.
어느 순간 잠깐 지나친 사이라고 해도 늘 그립고 생각이 난다면
그것은 정말 좋은 인연인거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