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말한다
"HODIE MIHI CRAS TIBI
오늘은 나, 내일은 너"
대구 가톨릭 성직자묘역
입구에 나붙은 경구다.
노년에 든 지인분들께 죽음을
묵상할 수 있는 글 올립니다.
죽음에 관한 한자말은 ‘사망 서거 타계 별세 영결 영면 영서 운명 임종 작고 등 다양하다. 높임말이 발달한 우리나라에서는 될 수 있는 대로 높임말을 써서 죽음을 알린다. 서거는 대통령 같은 정치 지도자나 종교 지도자, 위대한 예술가 등 사회적 공헌이 큰 사람의 죽음을 일컫는 말로 사용된다. 별세는 세상을 이별한다는 뜻으로 윗사람의 죽음을 가리킬 때 가장 많이 쓰는 말이다. 타계는 귀인의 죽음을 말하는데 서거를 쓸 정도는 아니지만 사회에 적잖은 이바지를 했거나 어느 정도 지명도가 있는 인물에 쓰인다는 점에서 별세와 차이가 있다. 영면은 영원히 잠든다는 뜻이고 영결은 영원히 이별한다는 뜻이다.
비슷한 말로 ‘영원히 떠나간다는 뜻의 영서永逝라는 말도 쓰인다. 운명은 목숨이 끊어진다는 뜻이고 임종은 마지막에 다다랐다는 말이다. 작고는 고인이 되었다는 뜻으로 죽음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종교마다 죽음을 뜻하는 말이 따로 있다. 가톨릭에서는 죽음을 좋은 끝맺음이라는 뜻의 선종이라고 하고 개신교에서는 하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뜻의 소천이라고 한다. 불교에서는 승려의 죽음을 고요한 곳에 들어간다는 뜻의 입적이라고 한다. 돌아간 사람의 가족에게 애도의 마음을 전할 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뜻은 ‘예를 다하여 돌아가신 분이 저승에서 복을 받기를 바랍니다.’이다.
물론 불교와 유교 문화권의 영향 아래 있는 우리나라에서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말이지만 명복을 빈다는 말에는 고인이 저승에 가서 염라대왕으로부터 심판을 잘 받고 복을 누리기를 빈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러기에 개신교에서는 불교의 내세관이 담긴 명복을 빈다는 말 대신에 ‘하나님의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부활의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같은 말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난 4월 27일, 천주교 서울대교구 정진석 추기경이 선종했다. 1931년 출생한 정 추기경은 2006년 3월 베네딕토 16세 교황에 의해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로 김수환 추기경에 이어 추기경에 서임됐다.
5월 1일 오전 10시 명동성당에서는 정 추기경의 장례미사가 열렸다. 정 추기경이 누워있는 삼나무 관에는 성경책 하나만이 덩그렇게 놓여 있었다. 삼나무 관에는 추기경의 공식 문장紋章이 새겨져 있었다. 문장은 중세 유럽의 귀족들이 자신의 가문을 표시하던 상징으로 당시는 주교들도 귀족들처럼 한 지방의 영주를 겸했기에 800여 년 전부터 문장의 전통을 받아들여 각 주교는 자신들이 만든 문장을 공문서의 표지로 사용하고 있다. 각 주교의 문장에는 출신과 사목 임지, 직위와 개성, 사목 목표 등을 상징하는 다양한 코드가 숨어 있다. 정 추기경의 문장에는 무궁화와 남북한을 상징하는 작은 별 둘,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큰 별이 들었다.
문장 아래에는 그의 사목 지침인 옴니부스 옴니아Omnibus Omnia라는 라틴어가 쓰여 있다.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을’이라는 뜻의 이 말은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복음을 전했던 사도 바울의 말이다. 바울은 만나는 이가 누구든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들과 자신을 동질화하려고 이렇게 말했다.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갈라지고 찢긴 세상을 향해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을’이라는 가르침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정 추기경의 마지막 가시는 길이야말로 선종이었음을 기억하며 우리도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까지 아름다운 마무리를 향해 믿음으로 달려가야 하겠다.
정 추기경
인간적인 고뇌
여전히 그분에 대해서
풀지 못한 복잡한 느낌이
나에게 달라붙어 스멀대는 건
솔직히 부인하기 힘들다.
박선영 전 국회의원
나이가 들어서일까. 아이들을 짝 지우는 일을 마무리하면서 드는 생각 때문일까. 앞일을 생각하기보다는 나를 돌아보면서 과거를 반추하고 그 사람의 지나온 흔적과 그의 가족관계 등에 관심이 간다. 일반인보다는 특히 유명인들 이름으로 남은 자든 이름으로 알려진 사람들 말이다. 정진석 추기경이 돌아가셨다. 많이 편찮으시단 얘기는 진작 들었었다. 내가 천주교인이기도 하고 그분이 이사장으로 계시던 곳에서 근무하는 동안 쓰라린 경험도 했고 그 이후에도 이런저런 인연이 있어 개인적으로는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이 뒤섞이지만 교인으로서 그분의 명복을 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침, 여전히 그분에 대해서 풀지 못한 복잡한 느낌이 스멀대는 건 솔직히 부인하기 힘들다. 오늘 아침엔 좀 더 솔직해지고 싶다. 정 추기경의 할아버지는 우리나라 초기 ‘조선공산당원’이었다. 그래서 일본경찰에 체포, 감옥생활을 하기도 했다. 정 추기경의 아버지는 해방 후 월북했다. 납북이 아니라 월북. 물론 연좌제는 없다. 6·25 동란이 터지자 서울공대생이던 정 추기경은 신학생을 거쳐 신부가 되었고 그의 뛰어난 머리와 성실성은 신부, 성직자라기보다 학자로서의 면모를 돋보이게 했다. 수십 권의 책을 썼고 라틴어와 이태리어에도 능통했다. 영어는 물론이고. 90 평생 그가 겪었을 인간적 고뇌는 아무리 내가 이해한다 한들 그 고뇌의 깊이를 어찌 필부들이 헤아릴 수 있겠는가. 그의 명복과 영원한 안식을 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침, 내 마음은 참 무겁다. 납덩이가 꽉 들어찬 것처럼. 우리 가톨릭이 특히 가톨릭 신부 수녀들이 좌경화되고 친북 성향까지 보이며 많은 신자들을 쉬게 만든 그 배경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그 원인이 뭘까 하는 점 때문이다. 가난한 자와 과부 고아를 돌보고 가장 작고 미천한 자에게 행함이 곧 나에게 하는 것이라며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했다. 그런데도 어찌하여 신부들의 정의구현은 그렇게 이상한 정의관에 물들어 이렇게 나라를 뒤흔들어 왔는지. 이 아침, 정진석 추기경의 타계 소식에 내 마음이 참으로 무겁다. 그가 정의구현사제단은 아니었어도 그 사제단 또한 그 아래 있었으니…. 그래도 나는 여전히 성호를 긋는다. 주여, 저는 죄인입니다,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