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빨간 사과
이종영ㅣ시인
매년 5월이면 아픈 기억 하나 떠오르기에 그 사연을 소개하고자 한다. 몇 년 전 봄. 회사 동료는 부탁할 것이 있다며 휴게실로 나를 불러내었다. 그리곤 느닷없이 시를 한 편 써달라고 했다. 고향 친구의 8살 된 정민 이란 여자아이가 지금 뇌종양에 걸려 OO 대학병원에 입원치료를 받고 있기에 조금이라도 희망을 실어주기 위함이라 했다. 자세히 이야기를 듣고 보니 자식을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가슴이 메어 왔다. 이제 8살 된 어린 것이 무슨 잘못이 있기에 저리도 크나큰 아픔을 겪는단 말인가? 차라리 기쁜 일이나 축하할 일로 부탁을 했다면 조금은 나으련만 무슨 글로서 저 어린 것에게 희망을 줄 것인가? 생각하니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왔다.
"서정민" 안산 석호 초등학교 1학년생이다. 정민 이의 작은 두뇌를 삼 분의 일까지 차지한 거대한 혹 덩어리의 병명은 "뇌종양"이었다. 청천벽력 같은 병명을 알고 입원하기 전까지 정민 이는 학교생활이며 학원 생활에 대하여도 도랑도랑 이야기하던 아이였다. 그동안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자꾸 어지럽다는 정민이었다. 그래도 학교는 가야 한다며 등을 떠밀던 엄마 아빠는 오늘도 죄인이라며 눈물로서 정민에게 용서를 빈다고 들었다. 그저 잠만 자려 하는 정민 이를 진찰하신 의사 선생님은 뇌 수막염일지 모른다며 OO 대학병원을 추천하여 주셨다. 호흡 보조기를 단 힘없는 정민 이를 태운 구급차는 급히 OO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하였다. 곧바로 검사가 시작되었다. 계속되는 MRI 촬영과 피검사를 위해 핏기 하나 없는 가느다란 팔에서 피를 뽑을 때도 정민 이의 모습은 풀잎처럼 고왔으니 검사를 마치고 응급실로 돌아온 정민 이는 계속 잠만 잤다.
그런 시간이 길어질수록 인공호흡기를 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의사 선생님께서 급히 정민 아빠를 찾으셨다. MRI 촬영과 모든 검사 결과 정민에게 내려진 진단은 "뇌종양"이었다. 정민 이의 작은 두뇌를 삼 분의 일까지 차지한 거대한 혹은 뇌의 시상 부를 압박하여 뇌압 증가로 인한 혼수상태에 빠지곤 했다. "우리 강아지 눈떠봐, 엄마야" 정민 엄마는 그렇게 울고 또 우셨다. 온몸에 주삿바늘을 꽂은 채 누워있는 정민에게 대하여 의사 선생님께서는 비관적인 말씀을 하셨다. "선생님 제발 우리 정민 이를 살려주세요." 정민 엄마는 의사 선생님을 붙잡고 애원하였다. 일주일 전부터 머리가 아프다는 정민 이를 정민 엄마 아빠는 그저 몸살 정도로 생각하였다. 급히 시골에서 올라오신 정민 할머니께서는 이리도 "짧게 살려고" 하시며 오열하셨다.
"왜 그동안 종양의 증상을 발견하지 못했나요?" "참으로 아쉽게도 태어날 때부터 종양이 뇌 한가운데로 자랐다는 겁니다." "자라는 각도가 옆으로 조금만 치우쳤어도 아이가 균형을 잃고 쓰러진다거나 고통을 호소했을 겁니다." "그러나 이젠 종양이 커질 대로 커져 뇌압이 높아졌고 그것이 시상하부를 압박하기 때문입니다." "불행한 것은 종양의 뿌리가 의식을 관장하는 시상 부에서 시작되었다는 겁니다." 또한 수술이 성공한다 하여도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기간은 짧으면 3개월 길면 2년 정도입니다." “살아 있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 그 어느 것 하나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실이다. 미련과 포기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밝고 환한 빛의 세계로 훨훨 날아오르든가 아니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어둠의 땅으로 떨어지든 정민 아빠는 결정해야 할 시간이다.
밝은 날을 염원하며 걱정하는 시간 속에 얼핏 잠이 들었을까 중환자실에서 보호자를 찾는 전화벨이 울렸다. 급히 달려간 중환자실 "정민이가 너무 약해졌습니다. 호흡도 약해지고 심장 박동도 힘듭니다. 앞으로 20분 이상 지탱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심폐소생술인데 그렇게 되면 아이의 갈비뼈가 심하게 상하게 됩니다." "정민 이를 더는 힘들게 하는 것은 싫습니다." 인공호흡기를 제거하고 모든 주삿바늘을 떼어낸 정민 이의 몸은 너무도 야위었다. 하얗게 창백한 정민 이의 얼굴에 정민 엄마 아빠는 입맞춤한다. 가냘픈 두 어깨를 쓸어안고 정민 엄마 아빠는 오열한다. "사랑하는 정민아 엄마 아빠의 가슴을 이토록 찢어놓고 지난 8년의 기쁨을 접어야만 하는 거니, 어머니 당신의 손녀를 제가 끝내 지키지 못했습니다." "쏟으신 그 정성 손길 안 닿은 데 없으시건만 눈물 훔친 날 몇 날인가요?" 정민 아빠는 그렇게 통곡하였다.
빨간 사과 / 이종영
사과 꽃 닮아 예쁘고
맑은 하늘처럼
언제나 기쁨 주는
사랑스러운 정민아
파란 하늘 바라보는
사과 꽃 속엔
새 콤 달콤한 꿈이 있어
언제나 행복하지
꽃잎 떨어질 땐 아파
눈물도 조금 나오지만
초록 사과는 슬프지 않아
왜냐하면
가을엔 밝게 웃는
정민이 닮은
빨간 모습으로
만나게 될 테니까.
* 예쁜 정민이 건강하기를 바라며 시인 이종영 아저씨가
위에 글 "빨간 사과"는 정민 이의 빠른 쾌유를 비는 마음으로 액자로 만들어준 글이다. 적어도 가을까지만이라도 살아있기를 바라는 마음과는 달리 정민 이는 어린이날을 하루 앞두고 “엄마 아파”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고 말았다. 정민 이의 영정 옆에 함께 놓인 빨간 사과 글을 바라보는 모두가 하나같이 소리 없는 눈물만을 흘릴 뿐이었다. “서정민” "부디 아픔도 고통도 없는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마음껏 뛰어놀기만을 기도할 뿐이다." "죽음도 삶의 한 여정이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은 어디에 머무는가 째깍째깍 흘러가는 죽음의 소리 생에서 멸로 향하는 소리에 귀를 열고 있는가? 우린 쉼 없는 초침 소리에 맞추어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러기에 매 순간 깨어있어라." 능행 스님의 -이 순간에서-
* 좋은 만남 2012년 5월호 연재
첫댓글 가슴 아픈 사연입니다.
빨간 사과의 희망도 채우지 못한 채
그리 빨리 가야했나요?
알다가도 모를 하늘의 섭리를 깨닫지 못하는
우리네 인간으로서는 그저 눈물로 화답할 따름입니다.
좋은 글 잘 감상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