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본 메세지] ---------------------
내게 허락한 시간이 딱 3일이었다.
첫 방문자에게는 3일간을 허락하는 것이 이들에 80년간 지켜온 생활속의
약속이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방문자라고 해서 3일간을 허락을 한다고는 하지만
본인사정이 괜찮으면 더 연장을 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곳에는 한국에서 온 방문자들이 많다고 합니다.
이들같은 경우엔 한달을 약속하고 오지만
더 연장해서 머문다고 합니다.
어제 9시경에 도착해서는 전혀 피곤한지도 모르겠고
아직도 부르더호프에서 듣던 노랫구절이 귓전에 맴도는 듯하고
머리엔 어젠 하루종일 그곳부터 이곳까지
스텔라가 만들어서 선물한 들꽃화관을 쓰고 다녔습니다.
이네들은 누가 무슨 옷을 입던 무슨 신발을 신고 옷을 입던 남에 대해 신경을
전혀 쓰지 않습니다. 겨울에 여름옷을 입던 옷을 훌라당 벗어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데
제가 너무나 예뻐서 그랬는지
흘낏흘낏들 쳐다 봅니다.
그러면 그러라지...
부르더호프에서 런던 빅토리아역을(국제 기차역 임)을 지나 런던을 통과해서
제가 지내는 시얼 그린역을 지나
이곳 프린센스 마리나 센터까지...
가을 들국화처럼 생긴 꽃으로 만든 것인데
부르더호프에서는 주변에 들꽃들 이용해서 이것을
많이들 씁니다. 이유는 있습니다.
어떤 행사나 그리고 이것은 "자유"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이를 보는 모든 이들이 행복해 하듯이
자유가 이런 것인가 봅니다.
저의 머리에 쓴 화관 덕분에
저는 기차역에서 제가 지내는 센터까지 이동네 사시는 노년분들이
차까지 테워주시면 예쁘다면서
친절하게 대해 줍니다.
이렇게 자유와 평화는 모든이들을 행복하게 만듭니다.
저는 덕분에 밤길에 혼자 숲길을 걸을려면
무서움을 덜고
이들과 정을 나눴습니다.
오늘 아침 8시부터 다시 시작한 나의 일과.
4시에 일을 마치고 부터 약간 노곤하고 몸이 쳐지는 것이 눕고만 싶었지만,
오랫만에 밥을 지어서 고추장 넣고 버섯 몇개랑 함께
한대접 비벼서 먹고 나니
힘이 불끈나는 것이
<부르더호프>에 기운이 나라가기전에
그곳에 기운을 나누어야겠다는 생각에
컴이 있는 활동실로 왔습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들어가기전에 또 서두가 길어지네요...
<부르더 호프>에 대해서는 한국에 있을때 몇권의 잡지들을 통해서
그곳에 대해 아주 조금 정보만 알고 있는 정도이고
이곳에 와서 인터넷을 통해서 대부분의 정보를 찾고 문의를 했습니다.
영어가 짧은 덕분에 주변에 있는 친구들이
한국에 <쉴터>에 문의를 하고
온갖 수선을 좀 폈습니다.
이유는 다 영어 때문이지만
이번 여행은 한국에서 보낸온 정보 보다는 제가
제 힘으로 해 냈다는 것이
참으로 대견하고 신퉁방퉁합니다.
암튼 작은 글씨로 된
영문을 해독(?)하느냐고 몇날 몇일을 고생하고
저의 엉터리 멜편지를 읽고는 서로 연락을 주고 받고...
덕분에 영어공부 많이 했습니다.
이래서 평소에 공부하라는 어른들 말씀을 귀 담아서 새겨 들어야 하는건데...
나중에 더 몇곱절 새겨 들어도
괜ㅎ 잖습니다.
덕분에 여러가지를 더 배워갑니다.
이젠 전세계 어디라도 갈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럼
부르더호프에서 일들을 나눠보겠습니다.
2002년 6월 2일 일요일 날씨 맑하기 어려움...
어제 아니지 어제가 뭐야 몇달전부터 시작한 부르더호프에 대한 공부
하지만 끝날줄 모르는 것이고...
내게 주어진 3일간을 알차게 쓰고도 싶고
초행길이니 이른 새벽
첫기차를 타고 나오싶었지만,
영국이라는 나라는 참으로 이상한 나라다.
주말에는 기차나 버스는 더 드문드문 다니고
내가 있는 이곳에서는 버스는 아에 운행 조차 하지 않는다.
이건 또 무슨 조화속인지
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대중교통이라는 것에 대한 의미가 없다 내가 보기엔...
그럼 어쩌랴 내가 이나라 국민도 아니고
아무도 뭐라는 사람 없는데 나만이 혼자서 이들의 교통정책을 갖고는
궁시렁 거려봤자 내 입맛 아프다.
일찍 가고 싶어도 일요일 첫기차가 7:56분이다.
이걸 타고 매리본역까지 나와서 다시 전철을 2번 갈아타고
오래 되서 그런지 참으로 음침한것이 지저분틱하다.
그리고 먼지 먼지 숨을 한번 제대로 쉴 수가 없다.
어디나 지하의 세계는 그런가 보다.
그냥 이해로 했다.
그리고 도착한 빅토리아 역.
이 역에서 유럽도 가고 어디어도 간다.
국제역 답게 크고 정신하나 없다.
노란사람. 검은 사람. 하얀 사람.
한국말, 미국말, 영국말, 중국말, 프랑스말, 일본말, 그리고 암튼
다인종 다국적인 말일 왕왕 거리며 들린다.
다들 하늘에서 돈이라도 떨어지는지 다 천장을 쳐다본다.
왜냐면 기차역 시간표가 천장에 매달려 있기에
이것을 보고 자기가 갈 플랫홈과 시간을 알수가 있다.
매표소에 가서 내가 갈 <스노우 다운>역과 3일간 오프라인을 신청을
하고 돈을 지불했다. 우리도 그런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나라는 싱글티켓보다 리턴티겟이 저렴도 하고 편리하다.
그리고 당일 리턴이 아니고 몇일 간을 오프라 해서
신청을 할 수도 있다.
약 45.000원을 지불했다. 이곳에서 소요시간은 2시간정도 이다.
내가 탔던 기차는 갈아타지 않고 한번에 가는 것이라
내심 안심이 되었다.
근데 참으로 이상타.
부르더 호프를 찾아가는 이길이
생각보다 그리 긴장이 되지 않고
평안함을 지나쳐서 약간의 나른함까지 온다...
그리고 이나라는 기차내에서 방송이라는 것이 없다.
자기가 알아서 타고 내리고 해야한다.
물론 기차내에서 방송을 해도 어디가 어딘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눈늘 똥그랗게 뜨고
역마다 역이름을 봐야지 아차 했다가는...
11:50분경에 시노우다운역에 도착했다.
아주 작은 역이다.
나와 어떤 친구도 한명 내려주고는 기차는 도보로 행하니 간다.
이곳에서 20분 정도 더 가면 도보라해서 프랑스에 가는 사람들이
이것을 많이 이용들 한다.
기차역에 도착해서 전화를 하고 했는데...
어디가 뭐가 있는지 알아야지, 아까 나와 내린 친구를 마중나왔는지
역에 있던 친구에게 전화가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을 하고
부르더에 전화를 했다.
내가 도착했다고 나를 데려가 달라고
그러니 그가 너를 데리러 갈 사람을 찾아서 보내겠다면서
그곳에서 잠시 기다려 달라는 친절한 분의 음성이 나를 편안케한다.
주변엔 온통 순초록색이다.
나무들도 우거지고 공중전화가 있던 곳 저편엔 이곳 마을 남자들이
모여서 운동을 운동센타라고 표시되어있다.
사람하나 없다 나말고는...
몇대의 차가 헹하니 가고
승용차가 한대 오더니 그곳에 머리에 수건을 쓰고
내게 웃어주는 걸 보니
그분들이다.
70세정도 되어보이는 부부가 나를 마중 나오셨다. 환한 미소와
환영한다는 말을 건넨다.
참으로 나늘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이곳이다.
여자들은 머리에 수건을 쓰고 흰색의 남방을 입고 조끼와 치마를 입는다.
우리네 중고학생들 교복입을 것 같은 느낌이든다.
신발은 다들 제각각이다.
허름하기는 말해 무엇하리 남루하다. 하지만 신발기능에는 아무지장이
없다. 구멍이 나면 어떠랴 환기가 잘 되어서 좋을 텐데...
모든 이들이 첨보는 나를 환영한다. 이들의 손은 참으로 거칠다.
특히 여자들의 손은 무슨 쑤세미와 악수를 나누는 듯하다.
그리고 어디서 일을 하다가 오는지
물이 묻어있고 그치만 환한 미소로 몇몇이는 한국말로 인사를 하며
나를 더 반긴다. 이 반김에는 거치레의 느낌이거나 형식적인 인사가 아니라
자연스러움이고 따스함이 훔씬 묻어난다.
나를 마중나왔던 분들의 집으로 먼저갔다.
집안 들어섰다.
가난하다.
생활하는데 기본적으로 있어야 할 것들만이
있다.
그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들어서니 그 집앞에 보이는 환한 풍광이다.
하두 여러사람과 인사를 해서 나는 누가누군지를 모른다.
사람이름 외우기엔 영 빵점인데다 외국인들 이름은 더군다나...
환영인사를 나눈사람만 해도 십여명
잠시 그 집에서 앉아 윗저고릴 벗어 놓는데
나를 초대한다는 사람이 있어
그 집으로 안내되었다.
나중에 안 내막이었는데
내가 나의 소개서를 보내면서 내가 여자임을 밝히지 않았던 실수가
있었다. 그래서 이분들이 내 이름을 보고는 남자인지를 알고는
나의 호스트의 배정엔 혼란을 주어서 잠시
내가 이집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잠시 머뭇거리게 되는 시간이 있었는가
보다. 나와 인테넷 멜을 주고 받았던 분이
인사를 나누면서 우리는 한참이나 웃고
새론 호스트를 소개되어지고 내방이 정해지고 침대시트가 새로 갈아지고
그러는 동안 나를 마지한 쉴라라는 분이었다.
40대초반 정도 되어보이는 이분도 누구나와 같은 복장을 하고
배 고프지 않나 차는 무엇을 마시겠느냐?
이런저런 얘기를 한참 나누고
벽에 붙어 있는 가족사진을 설명해 준다.
이집 또한 첫방문한 집이나 다름없이 가난함과 빈곤함이 물씬 풍긴다.
하지만 생활하는데는 전혀 불편함이 없다.
이곳엔 어디에나 작은 화분이나 꽃병들이 참으로 많다.
꽃들을 무척이나 좋아하는가 보다.
그리고 벽들엔 새, 나비, 꽃뜰을 복사해서 색칠한 그림들이 군데군데 붙혀져 있습니다. 아이들 그림도 많이 눈에 띱니다.
제가 보기엔 이 모두가 아이들이 그린것 같습니다.
그리고 군데군데 가족사진들이 많이 붙여있습니다.
참으로 가족이 많다.
다 세워 보지는 않았는데 보통이 한가정에 아이들이 기본으로 4명이다.
대가족도 이런 대가족이 없다.
나는 첨엔 가족사진이고 이사람은 내 자매고 남자형제이고 해서
이네들식의 형제자매라고 불리우는가 했더니
그게 아니고 정말 피를 나는 형제자매다.
그치만 걱정이 없다. 아이들이 많다고 해서
왜냐명 간난아이부터 이들을 돌봐주고 키워주는 데가 마을에 채 5분거리에
있고, 이들이 자라면 가는 학교가 있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13-14살까지 이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는
그담에는 자기가 결정을 해서
외지에 나가서 공부를 하고 싶으면 더 할 수가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이들의 교육부부엔 관심이 있었는데
이부분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담에 기회가 되면 다시 방문을 해서 다시 보리라 맘을 먹고 있다.
그리고 쉴라와 마을 전체를 소개를 받았다.
한건물 건물마다 이들의 숙소다.
방이라고 해 봤자 침대하나와 간단한 책상 넣을 수 있는 정도이고
가족공동의 거실과 주방인데 주방이라고 시설이 따로 이런저런 것이
배치 되어 있거나 하지는 않다.
간단하다.
왜냐면 공동식사를 하기에 공동주방에서 음식을 만들어서 함께
식사를 한다.
이들에게는 정확한 역할이 다 있다.
눈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아주 정확하게 자기일에 대해 최선을 다하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절대 서두르거나 뛰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어찌보면 느긋도 하고 한가롭게 보입니다.
세탁실, 주방, 함께 모여서 모임과 회합이나 식사를 하는 곳, 학교, 주거공간, 수영장, 아이들 장나감을 만드는 나무블록을 만드는 공장(세계적으로 알아주는 거라고 합니다. 왜냐면 이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이 아이들이고 그리고 돈보다는 아이들의 건강과 안정성을 추구해서 만든다고 합니다.),
운동장, 농장, 말농장, 체육관 그리고 숲과 풀밭이다.
젤먼저 도착해서 군데군데 건물들이 있었는데 이것들이 이들이 사용하는
주거공간입니다.
그리고 제게 인상적인 곳은 평화의 공원이었습니다. 이곳은 아이들 학교 바로 옆에 있었는데 이공원은 아이들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계획을 하고 이마을 어른이 함께 도왔다고 합니다.
이 공원을 만들었던 아이들 가슴속의 그 평화라는 것은 세계의 평화였습니다.
평화의 공원을 들어서자마자 보였던 대한민국의 지도.
한반도가 반이 갈라지고 철책선이 있고 그 가운데를 무지개가 선을 이어줍니다.
참으로 저를 슬프게 만듭니다.
그리고 쿠바, 미국의 테러사태, 아일랜드 그 특징을 본따서 만들어 놓았습니다.
세계의 모든 어린이들이 함께 평화를 나누고자 하는 기원이 깃든 곳이 바로 이곳이었습니다.
2;30분에 오늘 결혼모임이 있다고 합니다. 함께가자고 해서 얼른 그러자고하고 따라 나섭니다. 속으로는 초대 받지 않았는데 가도 괜찮을까해서 걱정도 되고 복장도 그렇고해서 그렇지만 아무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함께 모여서 식사를 하는 공간이기도하고 회합을
하는 곳인데 가운데 작은 테이블이 있고 꽃과 초와 마이크가 있고
그것을 중심으로 둥그렇게 의자를 배치해서 다들 와 앉습니다.
이런 형태가 이들 선호하고 가장 이상적인 대화의 형태라 해서
항상 이런형태로 자리배치를 해서 앉는다고 합니다.
마을에 모든 식구들이 모이는가 봅니다.
거진 100여명이 어디에서 왔는지들 모였습니다.
아이들은 눈에 띠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청소년들도 있습니다.
누군가 선창으로 노래가 시작되고 마이크에서 누군가 질문을 하고
대답을 하고 가끔씩 웃기도 합니다.
저는 전혀 알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이것이 이들의 결혼모임 중에 하나라고 합니다.
이현장은 지금 미국 부르더호프에서 결혼식 모임을 하는데
이곳에서는 전화선을 통해서 그곳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함께 공감대를
형성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눕니다.
첨 보는 저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것이 당연하게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들에게는 결혼이라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것이라 합니다.
이들에게는 이혼이나 파혼이라는 것은 없으며
모든 이들이 함께 지켜보고 기쁨을 나누고 즐거워들 합니다.
그 이유는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어리벙벙하기는 하지만
저도 조용히 이들과 함께 움직입니다.
잠시 웨딩모임이 끝나고 나와서 아이들이 모래 놀이를 하는곳에서
함께 놀다가 제 방이 배치가 되고 가방을 옮겨 놓았습니다.
"쉐라"라는 22살내기와 함께 사용하는 방입니다.
이 친구는 부모님이 다벨이라는 곳에 사시는데 지금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합니다. 혼자서. 쉐라는 미국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이친구의 식구는 형제자매가 9명이고 이라고 합니다.
3명은 미국의 부루더에 있고 그 나머지는 다벨에 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혼자 생활하는 이유는 자기는 치과 간호사일을 하고 싶어서
일주일에 한번씩 이곳과 가까운 곳에 있는 학교를 다니고
그 나머지 시간엔 이곳에서 일을 합니다.
키가 아주 크고 쾌할합니다.
일요일 저녁과 수요일 저녁식사는 함께 모여서 식사를 하지않고
가족들과 함께하는 식사하는 날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인지 다들 분주하게 뭔가를 굽습니다.
날이 아주 좋아서 그런지 다들 바베쿠를 하는지 연기가 폴폴나고 있습니다.
오늘 저녁식사는 저와 스텔라를 올리버라는 분 집에서 초대를 해주셨습니다.
그 집에도 대 식구입니다. 12명정도 인것 같습니다.
할머니와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자녀들인데 다들 성장을 해서 그런지
조요합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청소년들이 이곳에도 있습니다.
다들 자리에 앉고 무슨 노래를 할까를 얘기를 나누더니
노래책을 주섬주섬 꺼내서 노래를 합니다.
어느집에도 티브이는 없었습니다. 왜 이들의 커무니케이션을 방해하고 물란한 과장된 성과 폭력들 그리고 뉴스라고 하는것 들도 과장되고 거짓된 거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들도 라디오들은 갖고는 있었습니다.
티브는 없었지만 함께 모이는 곳에 아주 큰 스크린이 있어 함께 슬라이드도 보고 웃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리고는 시작된 저녁만찬입니다.
닭고기 튀긴것과 샐러드와 올리브 드레싱해서 감자 삶은 것과
그리고 차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참으로 달게 아주 맛나게 먹었습니다.
차를 마시면서는 새 얘기를 합니다. 새벽에 일어나면 무슨새가 그리도 곱게
울더라 그리고 저한테 관심을 갖고 어디서 왔는지 이름이 무엇인지를
묻고 함께 웃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또 새를 주제로 얘기를 해서 그런지
독일어로 된 새의 주제를 한 노래를 2-3곡 더 불렀습니다.
왜냐면 할머님이 계시는데 그 분이 독일어로 된 노래를 좋아하신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한시간 남직한 저녁식사가 마쳤습니다.
각자들 알아서 조용히 또 움직입니다.
남은 음식을 정리하는 아이들 그리고 아버지는 설거지를 합니다.
뜨거운 물에다가 세제를 풀고 닦고 맑은 물에 그것들을 헹구어 내어서
엎어 놓으면 이집에 아들인 친구가 그 것들을 정리합니다.
그리고는 한쪽에서는 피리를 불고 연주를 합니다. 피리는 학교에서 기본적을 배운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다른 악기를 선택해서 배운다고 합니다.
그리고 모여서 이야기를 합니다.
오늘 저녁에 무슨 모임이 있다고 합니다.
가보니 이곳 마을 식구들 모두가 모였습니다.
나지막한 언덕이고 잔디가 있고 몇개의 벤치가 있고 다들 편안하게 둥그렇게들
앉습니다. 다들 모이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만히만 앉아 있어도 행복합니다. 뭐가 뭔지 몰라도 그냥 이곳이 괜히 맘에 듭니다. 저 앞에는 무슨 집인가 물었더니 이웃집이라고 합니다. 할머님들이 3-4분정도 계십니다. 이분들은 모두 휄체어를 이용을 합니다. 연세가 많으셔서 걷지를 못하시는가 봅니다.
얼마 시간이 지나니 다들 모였는지
누군가 선창으로 노래를 합니다. 천상인지 천하인지 구분이 가지 않습니다.
마치 천사들의 합창 같습니다. 주변의 경관과 이들의 자연스럽고도 평화스러운 분의기가 그렇게 만드는가 봅니다. 어떤이는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어떠이는 기타를 연주하고 어떤이는 피리를 붑니다.
자기가 생각나고 불어보고 싶은 노래가 있다면 선창을 하면 다들 함께 따라서 노래를 합니다. 이렇게 몇분간 노래를 하더니 어떤분이 주머니에서 쪽지를 꺼내서
뭔가를 읽어 내려갑니다. 저는 무순 말인지 이해를 하지 못하고 그냥 듣고 주변 사람들 얼굴들과 모습들만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조용합니다. 다들 무순 생각들을 하는지 골똘합니다.
그리고는 마칩니다.
나중에 산책을 하면서 스텔라에게 물었더니.
그분이 읽어준것이 전설, 설화같은 옛날 이야기를 읽어 주었다고 합니다.
내용은 이러한 내용 이었습니다.
어느 마을에 강이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 강을 건너야 하는데 강을 건널 방법이 없었는데 그마을에 아주 키가 큰 거인같은 분이 한면 살았다고 합니다. 그분이 사람들에게 강을 건너주눈 일을 하는데 어느날 작은 아이가 강을 건너겠다고 해서 강을 건너는데, 이 작은 아이가 점점 무거워 지고 강을 건너주는 거인의 어깨가 점점 무거워지고 해서 그는 자꾸만 강속으로 빠져가고 있다는 얘기랍니다.
이들이 슬퍼함은 지구를 걱정함이고 아이들을 걱정합니다.
이 아이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그리고 어린이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그들은 잠시 그렇게 생각들을 했는가 봅니다.
전설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스텔라와 저는 마을 산책을 했습니다.
이런저런 질문거리가 많았던 저는 주변 경관을 볼 세가 없었습니다.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어찌나 재미나고 그리고 오랫만에 수다다운 수다를 떨었던지요.
평화, 신, 종교, 인생, 사랑 그리고 부르더의 삶에 대해서 다른세상이다 이곳은 내게. 그치만 이들은 전혀 아무것에도 거침이나 불편함이 없다. 무엇이 문제가 되랴. 세상을 살아가는데...
이들에게 하나의 걱정거리가 생겼습니다.
80년 역사상 단한번도 이런일이 없었는데 부르더호프에 5명의 암환자가 생겼다고 합니다. 미국에 영국에 호주에 이들은 하나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지금 함께들 슬퍼하고 있습니다. 간절히 기도도 하고 있습니다.
이건 또 다른 하나님의 말씀인지도 모르겠다고도 합니다.
그래서 지구의 전설의 얘기를 나누면서 슬퍼들 했는가 봅니다.
이들이 세상의 평화를 기원하면서 살아가듯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참으로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이곳입니다.
이제야 숨통이 터지는듯 합니다.
근데 참으로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다들 기독교 신자들입니다. 아주 철저한 그런데 어디에도 십자가나 예수상이나 사진을 한개도 찾아 볼수도 없습니다. 성경책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리고 교회도 예배시간도 없습니다.
이상도 하지요. 하지만 이들은 저에게 이들의 역사에 대해서 아주 자세하게 그리고 친절하게 쉽게 설명해줍니다. 그 흔한 십자가 사진이 어디에 있는가 하면
우리들 맘에 그리고 저 푸룬 들판에 나무에 모두에게 나누서 있는데
달리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도 이해가 아직까지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도요...
첨에 저에게 호스트가 되어주신 분에게 저는 불교신자라고 밝혔습니다.
그것은 저는 기독교인들이 너무나 교회에 대해서 종교에 대해서 믿어라 그래야 천당을 가고 복을 받고 암튼 우리네 기독교식의 강요함과 무질서함 속에서 나오는 종교성에 대해서 저는 개인적으로 반감을 갖고 있고
또한 종교를 강요하는 것이 싫고 또 이곳이 기독교를 모태로 해서
나에게 오는 어떤 종교적인 강요성를 벗어나고자
밝혔습니다.
근데 이네들이 저에게 부처에 대해서 가르챠 달라고 하고 함께 나누자고 먼저 하네요.
예수는 이들이 예수이이 부처인가 봅니다.
그냥 이들은 철저하게 믿습니다. 예수를.
80년 전에는 독일에서 시작힌 부르더가 나찌에 피박에 피해 파라구아이(?)로
미국에 영국에 호주에...
암튼 부르더호프역사에 대해 많이 듣기도 듣고 이해도 했는데
갑자기 우리말로 하려니...
이들에게는 개인재산이 따로 없습니다. 이들은 돈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모른다고 합니다. 왜 돈이 필요도 없습니다. 이곳에서는. 이들에게는 멤버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이 멤버는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들의 의견의 100프로를 갖고 왔을 때만이 이들의 결정과정이고 일치의 과정입니다. 내가 문제가 있으면 그 상대방과 함께 이야기로 해서 해결을 해 나간다고 합니다.
암튼 천상인것도 같고
아주 다른 세상에서 지낼 3일이 될것 같습니다.
다만 이곳에 있는 저는 행복합니다.
그리고 가치있는 삶에 대해서 알게 해줍니다.
부르더호프에서는요...
어찌 되었든 이들의 내가 보고
또 중요한 나의 모습을 내가 봅니다...
2002.6.3
7:20분 아침식사가 시작됩니다.
대부분이 6:45분정도에 아침을 먹습니다.
보통 아침일이 7시 30분에 시작을 하기 때문입니다. 근데 노인분들이 계신집에서는7시 20분에 아침식사를 한다고 합니다.
스텔라, 수지, 쉴라, 옴마(92세된 할머니) 그리고 한분 ?, 그렇게 함께 한 아침식사
주로 내가 질문을하고 모든분들이 경청을 하시고 그에 따른 답을 주신다. 나는 주로 내 삶에 관한 질문들이지만 이분들은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성심 성의껏 답하고 신에대한 충성과 사랑이다. 대단들 하다.
맹목적이다. 이유도 토도 없다. 그냥이다.
나는 그럴수 없다.
알아야한다 이유를.
왜 그런지가 궁금하다.
이런 역사가 이들을 지켜내고 앞으로도 영원할 것이다.
우리들과 함께...
빵과 홍차와 지츠 잼, 사과 이런것들이 이들의 아침식사인가 보가.
무엇을 먹어도 맛나다.
그리고 시작한 일. 3일간 내게 이들의 삶을 경험하기로 했으니 여러가지의 일들을 주어진다고 한다. 맨 시작한 주방일. 2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친구한테 쉴라가 질문을 한다. 무엇을 도와야 하느냐고,
테이블 걸레질을 모두 하라고 한다.
이 일을 한 30분정도 했나.
이곳은 참으로 깨끗하고 청결하고 정갈하다. 음식만드는 기계들로
가득차있고 아주 크고 넓직한 공간이다.
그리고 이곳에서의 일은 마치었다.
그리고 다음일이 있는 곳으로 쉴라가 안내를 해주었다. 세탁실 책임자에게 소개가 되고 인사를 서로 나누고 내게 주어진 하얀 남방들을 옷걸이 걸기, 그리고 수건개기, 어느 한가정의 집의 빨래감을 개고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주머니에 이들의 정리 방법대로 정리를 해서 이름이 적힌곳에다 갖다가 둔다.
한가정의 빨래감을 정리하다보니 이네들의 살림살이가 더 적나라하게 보인다.
갓난아이가 있는 가정인가 보다. 그리고 젊은 부모와 아이가 2-3명이 더 이ㄲ느가 보다. 옷들도 다 오래되었고 유행이나 멋하고는 거리가 멀다.
오래되다 못해 낡기도 했다.
하지만 옷의 기능에는 아무지장이 없다.
그러면 된거지.
마치 빨래공장 같다.
할머니 몇분도 이곳에서 일을 함께했다. 어떤 할머니도 여기에 온지 얼마되지 않느다고 오늘이 첨이라고 하면서 나를 반긴다. 자기는 미국 부르더호프에서 왔다고 한다.
빨래는 집에서 하지 않고 이렇게 모든집에 빨래는 이곳에서 함께 모아서 한다. 다만 집에서는 색깔을 분류해서 마치 양파 자루 같이 생긴 주머니에 색깔 별로 넣어서 이곳에다가 갖다가 주면 된다.
공산당고 아니고 이상타 혹시 주변에 무슨 감시 카메라가 있나? 도대체 여찌된 영문인가? 사연인가?
아침만 각자 집에서 먹고 7시 30분부터 시작되고 10시에 20분간 쉬는 시간을 갖는다.
12시에 점심시간이다.
함께 모두 모여서 식사를 한다. 식사전에 누군가 선창으로 노래 한개를 부른다 그리고 1분정도 조용히 있다가 식사가 시작된다. 130명정도가 이곳에서 산다고 하니
이분들이 함께 모여서 식사를 하는 장관도 볼만하다.
그러나 어수선하거나 큰소리가 나거나 하지는 않다.
이들의 역사가 독일에서 시작을 해서 그런지 노래의 대부분이 독일 노래이고 이들의 또 대부분이 독일어를 조끔씩 할 줄 안다고 한다.
그리고 1시부터는 남자들은 일을 시작을 하고
여자들은 2시부터 일을 시작을 한다고 한다.
점심식사후에 나는 스텔라와 산책을 했다.
오늘 5시 30분경에 독일로 8일간 여행을 갔던 13-14세의 아이들 18명과 인솔자 10명이 돌아온다고 한다. 이들의 여행이 참으로 중요한 여행이라고 한다.
이 어린이들이 독일을 간 이유는 부르더호프의 역사 공부를 하러 갔다고 온것이고 이들은 보고 배우고 느끼고 오는 모든것들이 이들에게는 중요한 공부이고 일이라고 한다. 이곳에 가게된 이유와 왜 갔는지 그리고 이 아이들이 자금마련방법에 대해서 자세히 스텔라가 얘기를 해주었다.
이곳에 간 어린이 들은 이제 이곳에서 태어나고 성장하고 그리고 결정을 하는 시가일것이다. 어쩌면 평생의 기억으로 간직되고 평생의 삶을 결정하는 시기의 어린이 들일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중요한 여행일것이다.
이들은 학교공부를 마치고 이들의 농장에서 일을 했다고 한다.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살아있는 역사공부를 대단하다.
역사에 대한 중요성이야 말해봤자 내입만 아프지.
오후에 일은 나무블록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을 했다.
나무불록 귀퉁이를 아이들이 다치지 않게 다듬는 연마질을 했다. 이어폰을 끼고 하는데도 귀가 멍하다. 하지만 공장은 청결하고 정갈하다.
누가 관리하거나 감독을 하는이가 없다. 그런데도 다들 열심이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누구나 다 일을 한다.
일이 아니라 함께 모여서 놀이를 한다고 하는것이 맞는것 같다.
일을 마치고 조금지나니 독일로 여행를 갔던 어린이들이 돌아왔다.
대단한 환영이다. 그리고 미국에 부르더호프에 갔던 한가족도 돌아왔다.
어린이들에게 이런한 역사공부는 참으로 소중한 경험과 교육이다. 무엇이 과연 반백년을 넘어 한세기를 가까이 이들을 지켜왔겠는가?
바로 이러한 교육이 있었고 신념이 있었다.
그래서 이들에게 어린이들이 중요하고 노인들이 중요하다고 하는건가 보다.
이들이 믿고 말하는 신이 이들과 함께 하는가 보다. 정말로...
나와 함께 방을 쓴 세라와 수다를 떨었다. 늦게까지 가족들 사진도 보여주고 이곳에서 왜 사는지등등의 얘기도 하면서 쉐라의 목소리가 커서 그랬는지 아랫층에서 벽을 몇번 쳤다. 나는 깜짝 놀래서 그만 조용히 하자고 하니 쉐라가 괜찮다고 한다 이 친구들도 어떤날은 음악을 크고 틀고 쓰끄럽게 한다고 한다.
그에 대한 답으로 쉐라도 방바닥을 발로 두번 쾅쾅 내리쳤다. 그리고 또 시작했다.
쉐라는 22살이란다.
스텔라가족(나의 호스트가족들)은 나를 참을 반기고
매사 매분마다 나를 챙기고 신경를 써주신다.
그리고 내게 많은 기운을 붇돋아 주신다. 고마운 분들이다.
뭐라 표현할 수는 없지만 내가 평소에 그리고 생각했던 그러는 삶이 이곳에 있었다. 이건 꿈이 아니었다.
참으로 세상 밖, 우주 저편의 사람들처럼 보이지만
지극히 평범하다 못해 단순하다.
그리고 예수밖에 모른다. 그리고 어린이, 노인뿐...
살림살이는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이다.
무엇이든 함께한다 이들은...
화요일 4. 6. 2002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시간에 맞쳐서 움직이는 하루일과다.
6:45분 싱글인 사람들의 아침식사에 초대 되었다. 이곳에는 가족들과 떨어져서 혼자서 사는 사람들이 모인다. 그리고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아침이라 더 그렇지만 조용하다.
함께 모여서 식사하는 공간에 한켠의 긴테이불에 앉았으니 족히 20명정도는 되는가 보다. 이곳에 모인 사람이. 노래 한구절 부르고 속으로 기도는 하는지 잠깐 침묵이 흐르고는 시작된 식사.
이곳 부르더의 주방장은 20대초반의 젊은 언니다.
그 사람이 모든 음식만든일을 주관하고 일을 정해준다.
한끼에 130명의 식사를 마련하는 일이 쉽지 않을 터인데...
물론 주방에서 일을 하는 사람ㅇ들이 여럿이 있기는 하지만 용하다.
모두들 자기에 맞은 일을 묵묵히 열심히들 한다.
일은 다 돌아가면서 한다고 한다.
대개 아침일과 오후에 일이 다르다고 한다.
어제 월요일부터 여름일을 새로 시작되어서 새로 모든이들이 새일을 배정 받아서 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새일처럼 낯설고 어순선하지는 않아 보인다.
식사를 마치고 나면 진광경이 펼쳐진다.
컵만 모아서 나르는 사람이 있고 포크, 나이프, 그릇, 접시들을 치우고 다함께 알아서 일들을 다 한다. 물론 노는 사람들도 있다. 포크류등만 설것이 하는 수레가 와서 그것만 닦는 사람도 있고 그사람은 그것만 치우러 다니고. 설것이 기계에서는 설것이가 되어지고 이러니 일이 쉽다. 함께하니 더 쉽다.
그리고 난 오후일은 나무불록공장에서 어제와 같은 모서리 다듬는 일을 한다.
5시에 일을 마치고 주변 산채을 혼자 했다.
그저 평범한 시골마을이다.
감시 카메라가 있다. 어디에 입구에 2대가 잘 돌아가고있는가 보다.
암튼 이제 이것은 나와는 상관없다.
나도 이네들 삶에 젖어든다.
7시에 저녁식사는 특별한 날이란다.
왜 어제 독이로 부루더역사를 찾아서 갔던 13-14세의 친구들이 집으로 돌아왔기때문에 만찬을 즐겼다. 테이불보가 깔리고 양초가 켜지고 샐러드와(토마토,양상추, 당근 그리고 드레싱)그리고 이곳에서 만든 피자(한판에 소시지를 넣고 만든것과 버섯을 넣고 만든것을 한판에 만들어 내놓았다) 그리고 디저트는 아이스크림과 드레싱이 이 모든것들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만들었다고 한다.
매번 식사때 보면 몇명의 남자들이 주변을 돌아다닌다 왜냐면 음식이 떨어졌는가를 살펴서 부족한 것을 알아서 미리 채워준다. 누구를 불러서 더 달라고 소리를 지르거나 먹다가 가서 덜어 오늘 일이 전혀 없다. 부족하면 채워주고 함시 배부르게 먹을수 있도록 배려하고 신경을 쓴다. 어느 누군가는 항시...
잠시 짬이 있어 동네를 산책을 하다가 학교를 다시 둘러 보았다.
내 늘 관심사가 아이들 교욱이기도 하지만
유럽에서 뿐아니라 부루더호프를 인정하지않는 사람들도 이네들의 어린이 교육에 대해서는 인정을 한다고 하던데.
그것이 궁금해서 학교를 가보니 아가들이 주고 생활하는 어린이방 이곳은 보지를 못했다. 아이들이 자고 있을것 같아서...
그리고 교실 3개가 둘러 보았다. 교실방마다 특별한 것은 없다.
의자가 둥그렇게 모여져 있고 책상은 없다. 다만 책들과 장나감이 눈에 띄이고 자유스럽다. 그리고 오래된 것들이 대분분이다.
가장 저학년 교실에서는 이들이 어딜 올라가는 것을 좋아해서인지
층을 분류해서 올라가서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는 체육실처럼 만들어진 실내 놀이장이
우리네 학교 운동장 만한것이 있어서 이곳에서 아이들이 모여서 놀이도 하고 춤연습도 하는것을 함께 지켜보았다.
스텔라한테 화관을 선물받았다.
참으로 예쁘다. 내가 만일 결혼을 한다면 이런식으로 화관을 만들어서 쓰고 싶었는데... 참으로 귀한 선물이다 내게.
첨엔 이것을 쓰려니 쑥스러웠지만 전혀...
많은 사람들이 오늘은 화관을 만들어서 쓰고있다. 오늘의 만차과 저녁행사를 위해서 .
8시부터 시작한 8일간의 독일여행과 부르더의 역사를 슬라이드로 보는 날이다.
그에 대한 설명은 물론 아이들이 직접 소개한다.
무엇을 보고 듣고 했는지를 설명들한다.
나는 무슨 말인지는 알아 들을 수 없었지만 감동적이다.
이들의 역사공부와 140명의 되는 사람들이 함께보고 웃고 슬퍼한다.
오늘은 쉐라가 수다를 떨수가 없단다. 오늘 아침에 아랫층에 사는 친구들을 만났는데 어젯밤 너의 얘기가 흥미진진하고 무지하게 신나던데 나는 잠이 필요했다고 하더란다. 그래서 오늘은 더 이상 이야기를 할 수 없단다.
이들은 반드시 이 역사를 지켜낼 것이다. 내가 보기에...
풍성한 식탁과 지칠 줄 모르는 열기와 열정 정역들 낼 이면 나는 내 삶의 지라로 돌
아가지만 정말 잘 쉬고 많을 걸 느껴본다.
내 삶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늘 고민하고 끄달려 왔는데
나의 미래는 바로 이곳에 있었다.
이들과 함께 내가.
더 이상 고민하지 말자 다만 어떻게 풍성하게 삶의 질을 높일 것인가를 고민해야지
내 생김새에 모양새에 집이 있어야 하고 울타리가 있어야 하는것은 아니었다.
간적적인 경험이지만 지극히 평범하게 그러나 이 평범함은 많은 것을 비우고 버리고 남 담에 왔었고 그리고 지켜진다.
이곳에도 분면히 모순과 미움과 질투와 번뇌가 함께 있을것이다.
왜 인간이 모여서 살아가는 곳에 반드시 오는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함께 모여서 100프로의 결의와 이해와 설득의 시간을 갖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철저한 신이 이들을 단순하게 가난하게 이끌을 것이다.
많은 것을 비울때만이 그 만한 것이 채워진다.
아니 또 아니채워지면 어떠랴...
내가 내 삶에 만족하거늘...
수요일 5일 6월 2002년
7시 20분 수지네 아침식사에 초대되었다.
아침식사 시간에는 이집에 어른이신 분이 계시기에 이곳에 와서 다들 아침인사를 한다. 그리고 마을 어린이들도 창가에서 지나가면서 다들 인사를 하면서 지나간다.
이 풍경은 우리네 아침인사법하고 같다.
이러무로써 어른신공경을 배우것일게다.
식사와 함께 신과 종교와 내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나눴다.
그리고 시작한 아침일 오늘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공장에서 장난감 모서리 다듬는 일일을 했다.
10시경 티타임이다. 옹기종기 모여서 얘기를 나눈다.
20분이 후딱간다. 이곳에서 2달정도 머무르고 있는 한국분을 만난다. 짬짬이.
이분의 얘기를 빌리자면 이곳에서 생활하다보면 이들의 무서운 힘을 느낀다고 한다. 이들은 이들만의 생각과 철학이 있다고 한다. 이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미국,호주, 영국과의 자유로운 통화를 위해 전용전화선을 따로 갖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비행기도 갖고 있다고 한다.
이들이 중요하다고 결정하는 곳에는 과감하게 투자를 하고 움직인다 모두가.
그게 뭔지는 함께 모여 일을 해보고
꽉 막힌 사람만이 아는 것일게다.
가족간의 왕래난 이야기의 중요성은 누구나가 다 이해가 되는것이다.
나는 성경을 잘 모른다.
그치만 이들은 성경세서 말한대로 그것을 그대로 100프로 믿고 그래도 하라는대로 살고 있었다.
점심식사후 나는 가방을 꾸리고 스텔레와 마지막 시간을 갖었다.
얘기의 주제는 한결같이 평화요 사랑이다.
사람이 사는데는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이고 이웃이다. 그리고 이웃과는 커무니케니션이 필요하다.
기차역 시간까지 계산을 해서
저녁식사를 어떤것을 준비 해주면 좋겠느냐고 물으면서
샌드위치에 후식 과일까지 내ㅍ프긴까지 챙겨준다.
눈물겹고 고맙다.
나는 이들에게 아무것도 해준것도 없이 그냥 방문객일뿐인데...
헤어질때는 안녕이라고 말하는것이 아니고
see you again이라고 하는거라고 한다.
기차역까지 데려다 주면서
어떻게 가는줄은 아느냐고 기차시간은 아느냐고
담에 또 오라고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잘 가라고 인사를 건네준다.
3일간의 짧은 체험이지만
내 가슴에 아마도 영원히 남을 것이고 아주 특별한 내 삶의 전환점을 갖다준 그곳이의 생활이다. 글쎄다 3일동안 이들을 다 배우고 알아가기에는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3일면 어쩌랴 서로가 언어가 통하지 않으면 또 어쩌랴.
우리에게 뜨거운 가슴이 있었고 사랑이 함께했거늘...
내 머리에 스텔라가 만들어준 화관을 쓰고 사람들에게 평화를 나고 싶어서 이곳까지 쓰고 왔다.
비가 종일 내린다. 춥고 으시시하다.
신이 있음을 이제 완전히 믿기로 했다.
난 개인적을 신이있다 없다에 대해서는 긍정도 부정도 없었다. 다만 내가 여기에 있음을 먼저 확인하고 믿고 볼 뿐이었다.
<부르더호프> 뭐라 한 마디로 결론을 짓기 어렵다.
내게 아낌없이 이들이 알고 있는 신에 대해서 그리고 부르더호프에 대해 얘기해 주고 그리고 나의 지친 맘을 위로하고 격려해 주었다.
그리고 내가 이들의 생활을 체험하고 싶다고 하니 이들과 함께 일을 한것 그리고 식사를 함께 나눈것 이것이 전부다. 이건 내가 함께 동시대에 이들과 함께 숨을 쉬고 세상를 나누고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든다.
이제 나는 어찌 살아야 하는건가?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끌어안고 사랑한다고 고백을 할 수도 없고
어떻게 이들에게서 배운 사랑은 내가 전 할 수가 있는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