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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위하여-05
주차장에는 이미 몇 대의 관광뻐스가 주차하고 있었고 여행객들이 아침식사와 화장실을 오가느라 분주하였다. 이러한 광경은 한국이나 어떤 다른 나라에서도 흔한 같은 모습이었다. 그는 그 관광 뻐스의 옆 면에 쓰여진 ‘푸른관광’이라는 한 글자를 보자 갑자기 반가웠다. 피로가 싹 가시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그 누구라도 잡고 말하며 반가움에 노닥거릴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지나가며 겨우 들을 수 있는 거리에서 한국말을 듣고만 있었다.
“예. 벨리하튼빌에서 기다릴 겁니다. 틀림없이 픽업하여 토론토까지 와서 전화해 주십시오. 부탁해요.”
안내원인듯한 사내가 휴대폰으로 크게 말하고 있었다. 그는 관심을 끄고 있었다. 그냥 그 말이 흘러 귀로 들어왔을 뿐이다. 들으려고 하지 않았었다. 팀하튼에서 커피 트리플 트리플을 사서 나오며 그는 그 ‘푸른관광’이 그가 오던 길을 따라 동쪽으로 가고 있음을 부러운 듯 보았다. 아마도 토론토를 거쳐 오타와 몬트리얼 그리고 퀘벡까지 갔다 돌아갈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들은 긴 여행을 하는 것이다. 적어도 2주 이상의 긴 여행일 것이다.
그가 창문을 다 열어젖히고 차창으로 들어오는 일요일 아침의 싱그러운 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시며 즐길 때 17번째의 CD에서 ‘운명으로 만난 나와 당신. 영원까지 함께 합시다’ 하는 노랫말이 트롯의 리듬을 타고 밝고 화사하고 싱그러운 청명한 하늘로 빠져 흩어져 나갔다.
바디 컨디션이 좋았다. 씽씽하였다. 기분도 아주 좋았다. 여름날 특히 일요일 아침은 자주 이렇게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드는 것이 캐나다 날씨이다.
다시 커피 생각이 났다. 더 정직하게 말하면, 담배 생각이 났다. 그는 주머니를 뒤졌지만, 준비해 온 2갑의 담배가 다 떨어졌음을 알고 다가오는 팻말의 벨리하튼빌로들어가는 진입로로 차의 방향을 바꾸었다. 페트롤 케나다나 엣소를 붙인 주유소에서는 담배를 살 수 있다. 고속도로 휴게소는 번갈아 가며 두 주유소가 깨스를 감당하고 있다. 이런 것도 경제적 폭력이다. 유전 유익이다. 어쨌든 담배가 필요했다. 운전을 하며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우는 자유스럽고 편안한 기분은 아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낭만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멋진 기분을 만끽할 수가 있음을 체이스는 익히 알고 가끔 즐겨왔다. 그걸 포기할 수는 없었다.
진입로 입구에 있는 주유소에는 항상 팀하튼이나 로컬브랜드 커피점이 있었다. 그곳은 다행스럽게도 팀하튼이었다. 조용한 아침 시간대라서 주변 동네 사람들이 스프와 도넛으로 아침을 때우기 위해 군데군데 의자를 차지하고 있었다. 방금 뽑아낸 구수한 커피향이 코를 자극하였다. 그의 커피는 역시 라지싸이즈 트리플 트리플이었다. 커피를 받아서 창가에 난 자리에 앉았다. 담배를 피우기 전에 이곳의 평화스러운 아침 기분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조미정은 당황했다. 아니, 황당하였다. 르자이나(Regina)호텔에서출발하기 전 컨티넨탈 브릭페스트라며 구운 베이컨 한쪽과 구운 토스트 하나를 급히 먹었던 것이 배탈을 나게 만들었다. 한국을 출발하면서 혼자였기에 누구에게라도 새롭게 웃으며 화장실 다녀올 테니 기다려 달라고 하기엔 마음이 내키지 않았고 왁자지껄하는 중에 들은 말로는 30분 휴식한다기에 마음 놓고 볼 일을 보고 손 씻고 나오니 기다려야 할 뻐스가 보이지 않았다. 밖앗 전체를 둘러보았지만 숨어있는 것이 아니라 미정이 내렸다 승차하지 않았음을 확인하지 않고 뭐가 바쁜지 그대로 떠나 버린 것이다. 처음에 황당했던 마음이 서서히 불안해지며 점차 두려움이 엄습해 오기 시작하였다. ‘자.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나?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곳이 어디쯤인지도 모른다. 누구에게 어떻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나? 영어도 되지 않는다. 울고 싶었지만, 울어서 될 문제가 아니었다. 온몸에 힘이 빠지기 시작하였다. 미정은 입구 쪽에 햇볕받이로 세워둔 철 기둥을 잡고 비틀거리는 몸을 지탱했다. 그때 허름한 미군 점퍼를 입은 키가 큰 사람이 차에서 내려 성큼성큼 휴게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얼굴 생김이 한국 사람 같았다. 최소한 동양 사람이었다. 지푸라기였다. 미정은 힘을 내어 문을 밀고 들어갔다. 그 사람은 창가에 막 앉아 종이컵을 입에 대려고 하였다. ‘저 지푸라기를 잡아야 돼!’ 미정의 본능이 소리쳤다.
“저 혹시 한국 사람 아니세요?”
체이스는 깜짝 놀랐다. 그는 컵을 입에 대려다 말고 고개를 들어 보았다. 의자 뒤쪽에 서 있는 하얀 캡을 쓴 40대로 보이는 중년 여성이었다. 눈이 크고 얼굴이 맑았다. 놀라며 느낀 것은 참 아름다운 여자구나 였다. 그때 번개같이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글레드 스톤에서의 귓가로 흘러들어 온 대화였다. 왜 그런 생각이 먼저 떠올랐는지는 그도 몰랐다. 의외의 여러 곳에서 한국 사람들을 얼마든지 만날 수 있는데, 왜 그런 생각이 먼저 떠올랐는지는 그도 몰랐다. 그 여성은 여행객 차림이었다. 흰 캡에 얇은 물색 점퍼와 그 속에 네비블루 면 티셔츠. 회색 면바지 그리고 흰색 나이키 운동화. 그는 헤블레스럽게 입을 벌려 웃지는 않았다.
“예. 맞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곳에…”
더 말하려다 멈췄다. 그 여성이 반색을 하며 앞 의자에 앉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곳까지 오셨어요?”
“제가 물어야 할 말인데, 먼저 묻는군요. 저는 토론토에서 출발하여 골드스톤까지 가는 중에 커피 생각이 나서 잠깐 들렀습니다. 어떻게 이곳에 계십니까?”
그 여성은 주저하였다. 처음엔 반가웠겠지만, 아마도 선뜻 내키지 않음이리라.
“아. 잠깐. 제가 커피 한잔 사가지고 올게요."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았다. 어떤 커피를 좋아하는지도 묻지 않았다.
곧 그는 라지 싸이즈 따블 따블 커피를 손에 들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가장 보편적인 커피였다. 그녀가 처음서부터 끝까지 눈길을 놓치지 않고 보고 있었음을 체이스가 알 턱이 없었다.
“커피 따블 따블입니다. 보통 이것을 좋아할 것 같습니다. 저는 좀 특별히 트리플 트리플을 즐겨 마시지만, 일반적으로는 따블 따블을 마시더군요.”
그 여성은 말없이 커피를 받아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깊게 한숨을 쉬며 눈을 들어 체이스를 바라보았다. 그 눈에는 눈물이 어려있었다. 그 눈은 깜박이지도 않고 체이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를 읽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녀는 핸드백이나 여행용 가방 지갑 등 아무것도 들고 있는 것이 없었다. 빈손이었다. 그녀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토론토에 오래 사셨어요?”
“10년째 살고 있습니다.”
“언제 토론토로 다시 돌아갈 거예요?”
“골드스톤까지 같다가 다시 토론토로 돌아갑니다.”
“여기서 거기까지 얼마나 멀어요?”
“제 생각으로는 한 시간 정도. 아마 1시간 30분이면 충분히 일을 마칩니다. 즉 지금부터 한 시간 삼십 분 후면 토론토로 돌아간다는 말입니다.”
“토론토까지 얼마나 걸려요?”
“제가 어젯밤 9시 30분에 토론토에서 출발했으니 여기서부터 토론토까지는 약 14시간 정도 걸릴 겁니다.”
“어휴~ 그렇게 멀어요? 주무시지 않고 다시 토론토로 돌아간다는 말이에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로부터 듣고 나니 정말 먼 길이었다. 그리고 이런 취조 같은 질문이 그렇게 대답하지 못할 정도로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묻는 그녀의 새로운 질문이 계속되길 바라고 있었다. 그제야 잠에 대한 걱정이 살아났다. 그러나 표할 수는 없었다.
“벤쿠버에서 여기까지는 얼마나 걸려요?”
첫댓글 좋은글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함께 해 주신 고송원 님, 감사합니다.
사느라 바뻐서 답글이 늦었습니다.
늘 건강하고 즐거운 날들 되시길 바랍니다. 멋진 주말 보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