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카페에서 열심히 활동하시는 훌륭한 목사님들은 양심 기준이 정말 독특한 것 같습니다.
양심이 무엇인가요? 공적으로 알려진 사전적인 의미는 귀찮아서 안 찾아볼 것인데, 제가 생각하는 양심의 의미는 세상에서 사람이 지켜야 하는 도덕적인 기준입니다. 기준이 무엇인가요? 자나 저울과 같은 지표이잖아요. 목사님들이 도덕이라는 단어의 뜻도 모르지는 않겠지요. 저는 귀찮아서 도덕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검색은 안해볼 것이기는 한데, 워낙 이곳의 목사님들의 생각이 독특해서 도덕이라는 단어의 뜻도 모를까봐 살짝 염려되기는 합니다.
양심이라는 것은 한 사회에서 모든 사람 또는 많은 사람 또는 거의 모든 사람이 사람은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고 암묵적으로 약속되어 있는 행동 기준입니다.
이곳 목사님들의 지적인 수준은 훌륭하실 텐데, 일반적인 기준과는 독특하게 다른 점이 있어서 예를 들어서 알기 쉽게 예를 들겠습니다. 워낙 생각이 독특한 터라서 그리고 마치 다른 세상에 살다 오신 분들인 것처럼 보여서 예를 안 들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도둑은 도둑 그 한 사람에게는 자기 좋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도둑이 남의 돈을 훔친다면 도둑질 당하는 사람은 아무 이유 없이 재산을 손실 당하는 것이니까 나쁜 일입니다. 도둑의 행위에 의해서 한 사람은 행복하고 한 사람은 불행해지는데, 이런 일은 적어도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는 일어나면 안 된다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합의하는 감정이며 행위기준입니다. 적어도 다른 차원의 세계에서는 이렇게 하는 일을 권장할지는 몰라도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이런 일은 일어나면 안 된다고 말하고 동의합니다. 한 사람의 도둑은 혼자서 행복할 일이지만 그의 도둑질 행위에 의해서 아무런 제도적 개연성 없게 다른 사람은 재산을 상실하는 이런 일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런 일은 수없이 많습니다. 생명을 해치는 일에 대해서 아무런 이유 없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해치는 일을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는 하면 안 된다고 합의하고 있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개연성 없이 해치는 행위를 우리는 범죄라고 규정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못하게 막습니다. 한 개인에서 많은 사람으로 확장하면 사회, 나라의 사안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 나쁘다고 하는 것이 정상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열심히 활동하시는 훌륭한 목사님들은 이상하게도 나쁜 짓을 하는 사람에 대해서 나쁜 짓을 한다고 말하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마치 두눈박이 사람들이 사는 사회에 외눈박이 사람이 방문하여서는 두눈박이 사람들이 장애인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것과 같습니다. 재미 있는 세상입니다.
이곳에서 열심히 활동하시는 목사님들이 원래 살던 세상에서는 남의 돈을 훔치는 것이 권장되고 남을 해치는 일이 양심적인 세상인 것 같습니다. 더이상 그런 기준을 가진 분들이 그 세상에서 우리 세상으로 넘어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분들이 많아지면 덩말 두눈박이 사람들이 장애인이 되고야 말 것입니다.
첫댓글 양심은 일정한 기준이 없고, 환경과 상황에 따라 기준이 바뀝니다.
살인을 금하는 사회에 사는 사람은 살인을 하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되지만, 전통적으로 식인을 하는 사회에서는 살인을 하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경우가 단적인 예입니다.
또 평상시에 살인을 하면 죄책감을 느끼지만 전시에는 폭탄을 던져 수많은 적군을 죽이고도 아무런 죄책감을 가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자랑스러워 합니다.
그러므로 선악을 평가하려면 양심의 잣대로 하지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서 해야 합니다.
그렇게 볼때에 인간의 행위 거의가 죄인 것을 알수 있고,
회개밖에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인간의 모든 행위와 도덕의 표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말씀에 어긋나면 모두 죄입니다.
양심은 감정과 의식 사이에 작용하여 자기 존재를 조정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회개를 하면 양심이 살아나고, 양심이 깨끗게 되면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이 선명하게 들립니다.
성경은 양심에 대해서 매우 중요하게 언급하고 있는데(신약 성경에서 수십회, 구약에는 양심이라는 단어가 없음)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딤후 1:9)"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을 볼 수 있죠. 결국 믿음 만큼이나 중요한 가치로써 양심에 무게 중심을 두었죠.
지적하신 것 처럼 양심없이 행동하는 목사들이 적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목사들 가운데서도 성령을 받지 않은 자들이 더러 있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양심이 더럽기에 자기 성찰도, 반성도, 절제하는 능력도 없는 목사들이 있는 것은 목사직 자체가 비성경적 권위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목사가 되는 과정에는
신학대학 나와서 전도사가 되고 더러는 풍족하게 유학도 하고 목사가 되는 순탄한 과정만을 경험한 사람이
성도들의 아픔과, 고통과, 삶의 어려움을 어루만지고 감싸 안을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 입니다.
인생에 큰 고통을 경험한 사람만이 그보다 작은 고통을 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