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국내에서는 모노크롬 회화가 유행이었고, 민중미술이 부상하기 직전이었다. 당시 트렌드와 전혀 동떨어진 문제에 관심을 가진 것은 당시의 유행이나 사조에 대한 반발이었을까? “글쎄요, 딱히 반발이라기 보다는, 모더니즘의 미학을 존중하면서도 획일적인 표현방식에 대해서는 거부했어요. 학교에서도 무슨 토론이 주어지면, 다양한 입장이 논의되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어서 거의 의도적으로 매번 반대급부를 제기하곤 했어요. 순수미술을 좋아하고 존중하면서도 과연 미술이 삶과 연계돼 있지 않다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질문도 늘 가지고 있었고. 어찌 보면 그런 내 자신의 고민과 질문을 해결해준 도구가 바로 보따리였어요.” 트렌드를 따르지 않고 분명한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는 것은 예술가라면 누구나 추구하는 것이지만, 실제 그렇게 되기는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김수자는 소중한 작가다.
작가의 이름, ‘수자’는 인도어로는 ‘바늘’을 의미한다

보자기를 꿰매는 행위는 바늘을 통해 이뤄진다. 그래서 그의 작품세계 한 축엔 ‘바늘’이 있다. 그는 1999년부터 일본 도쿄에서 시작해 상하이, 델리, 뉴욕, 카이로, 라고스, 런던, 파리 등에서 ‘바늘 여인’을 찍어 왔다. 이 영상에서 작가는 군중 사이에 서서 등을 돌리고 가만히 서 있다. 옆으로 바삐 지나가는 사람들 때문에 그의 몸은 인파 사이를 꿰뚫고 지나가는 바늘의 역할을 한다. 작가 자신의 몸을 ‘바늘’로 제공하고 이 세상 사람들 사이를 엮어주는 철학적인 행위가 해외에서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 “인도에 가서 작업할 때, 제 이름 ‘수자’가 인도어로 ‘바늘’이라는 뜻이라고 들었어요. 충격적이었죠. 너무 신기하죠?” 그는 바늘과 자신이 처음부터 운명이었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보따리나 바늘이나 한국 여인 김수자에게 너무나 익숙한, 일상용품이다. 이미 있는 흔한 오브제를 택한 점에서 그는 현대미술의 큰 궤도에 있지만, 그의 작품에 사용된 물건은 물건 자체보다는 그 물건을 사용했던 사람들의 삶과 현대미술의 첨단적인 면을 언급하기 위한 결정적인 도구다. 그래서 ‘레디 메이드’라기 보다는, ‘레디 유즈드(ready-used)’ 오브제라고 해야 한다. ‘눈에 안 보이는’ 사람의 삶을 눈에 보이도록 환원한 물건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