蘇州賈氏(소주가씨)
▣ 由 來
始 祖(시 조) : 賈維鑰(가유약)
賈氏(가씨)는 本來(본래) 中國(중국)의 姓(성)으로 堯帝(요제)가 그의 둘째 아들 公明(공명)을 賈侯(가후)에 封(봉)했으므로 나라이름을 따라 姓(성)을 賈氏(가씨)로 하였다.
우리나라 賈氏(가씨)는 蘇州賈氏(소주가씨) 單本(단본)으로 始祖(시조) 賈維鑰(가유약)의 字(자)는 無便(무편), 號(호)는 紙白堂(지백당)으로 明(명)나라 神宗(신종)때 樞密院使(추밀원사), 兵部尙書(병부상서), 太子少傅(태자소부), 文淵閣太學士[문연각태학사: 北京(북경)의 宮中(궁중)안에 있던 藏書(장서)의 殿閣(전각)에 所屬(소속)된 官職(관직)]를 지내고, 壬辰倭亂(임진왜란)이 난 이듬해인 1592年(宣祖25年) 薊療按察使(계요안찰사)로 王(왕)의 命(명)을 받아 李如松(이여송)과 함께 援兵(원병)을 이끌고 朝鮮(조선)에 들어왔다.
그는 安州(안주)等地(등지)에서 倭軍(왜군)과 싸워 功(공)을 세우고 宣祖(선조)29年까지 4年間(4년간) 從軍(종군)하고 돌아갔다. 그러나 이듬해 丁酉再亂(정유재란)이 일어나자 遊擊將軍(유격장군)인 아들 賈祥(가상)과 兵部從事官(병부종사관)인 孫子(손자) 賈琛(가침)을 데리고 다시 朝鮮(조선)에 들어와 素沙(소사) 南原(남원) 戰鬪(전투)에서 큰 戰功(전공)을 거두고,
1600年 釜山浦口(부산포구)에서 아들 賈祥(가상)과 함께 壯烈(장열)하게 戰死(전사)하였다.
孫子(손자) 賈琛(가침)이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屍身(시신)을 거두고 蔚山(울산) 西生鎭(서생진) 都督洞(도독동)에 무덤을 만들고, 朝鮮(조선)에 歸化(귀화)하여 安東權氏(안동권씨) 權純(권순)의 딸과 婚姻(혼인)하여 蔚山(울산)에서 터를 잡고 蘇州賈氏(소주가씨)의 뿌리를 내렸다.
- 始祖(시조) 賈維鑰(가유약)의 墓所(묘소)는 慶南(경남) 蔚山(울산) 西生鎭(서생진) 都督洞(도독동)에 있다.
▣ 人物
賈琛(가침)이 1647年(仁祖24) 죽은 뒤 賈晟(가성), 賈昊(가호), 賈昺(가병), 賈遂(가수) 네 아들이 忠南(충남) 瑞山(서산)으로 터를 옮겨 定着(정착)했다.
1851年(哲宗2)3代의 忠孝(충효)를 기리는 祠堂(사당) (崇義祠:숭의사)과 旌門(정문)이 忠南(충남) 泰安郡(태안군) 南面(남면)에 세워지기도 했는데 賈氏(가씨)들은 以後(이후) 瑞山一帶(서산일대)를 中心(중심)으로 忠孝(충효)의 家統(가통)을 이어왔다.
賈行健(가행건)은 始祖(시조)의 14世孫(14세손)으로 天性(천성)이 어질어 道德君子(도덕군자)의 稱頌(칭송)이 높았으며 憲宗(헌종)때 水軍兵馬僉節制使(수군병마첨절제사)를 지냈고 그의 아들 賈日永(가일영)은 哲宗(철종)때 蔚珍縣令(울진현령)에 올랐다.
忠良科(충량과)에 壯元及第 (장원급제)하고 高宗(고종)때 嘉善大夫(가선대부)를 歷任(역임)한 賈中永(가중영)도 賈行健(가행건)의 아들로 蘇州賈氏(소주가씨)의 家門(가문)을 빛냈다.
以外(이외)에도 프랑스 艦隊(함대)의 江華島(강화도)占領(점령)때 義兵(의병)을 일으킨 賈翊健(가익건)과 舊韓末(구한말)의 淸白吏(청백리)賈廷魯(가정로)도 알려진 人物(인물)들이다.
朝鮮憲宗(조선헌종)때의 名臣(명신)賈行健(가행건).그는 忠淸道(충청도) 安興兩陣(안흥양진)의 水軍兵馬僉節制使(수군병마첨절제사)가 되었는데 安興地方(안흥지방)은 全鰒(전복)과 海蔘(해삼)이 地方特産(지방특산)으로 宮中(궁중)에 올리는 進上品(진상품)이었다. 嚴冬雪寒(엄동설한)에도 百姓(백성)들은 차가운 바닷물에 드나들며 海蔘(해삼), 全鰒(전복)을 따다 官家(관가)에 바쳐 서울로 올려야했다.
賈行健(가행건)은 이같은 民弊(민폐)의 是正(시정)을 中央(중앙)에 强力(강력)히 建議(건의)해 領議政(영의정) 金左根(김좌근)이 이를 받아들여 進上貢納(진상공납)을 廢止(폐지), 百姓(백성)들의 고달픔을 덜게했다.
훗날 고을 住民(주민)들은 돌과 구리로 各各(각각) 碑石(비석)을 세워 그 功積(공적)을 새겼다고 한다. 그도 아버지만큼 善政(선정)을 펴 그가 蔚珍(울진)을 떠날 때 郡民(군민)들은 10餘(10여)길이나 되는 巖壁(암벽)을 갈아 그의 功積(공적)을 새겼다.
▣ 世居地
現在(현재) 忠南(충남) 瑞山(서산), 洪城(홍성), 唐津(당진), 禮山(예산), 一帶(일대)에 많이 居住(거주)한다. 其中(그중)에도 泰安邑(태안읍)이 中心地(중심지)인데 入鄕祖(입향조)는 賈琛(가침)의 아들인 賈晟(가성)等(등) 4兄弟(4형제). 그들은 賈琛(가침)이 世上(세상)을 뜬뒤 故國(고국)인 中國(중국)으로 돌아가고자 뱃길이 가까운 泰安半島(태안반도) 安興灣(안흥만)에 到着(도착)했으나, 그때 中國(중국)은 明(명)나라가 亡(망)하고 淸(청)나라가 들어서는 亂世(란세)이므로 結局(결국) 歸還(귀환)을 抛棄(포기)하였다.
-忠淸南道 瑞山市 南面 一圓
-忠淸南道 瑞山市 以北面 堂山里
-忠淸南道 瑞山市 太安面 一圓
▣ 本貫 沿革
本貫所在地 : 中國(중국) 江蘇省(강소성)
蘇州)(소주)는 中國(중국) 江蘇省(강소성) 南東部(남동부) 太湖(태호) 東岸(동안)에 位置(위치)한 고장으로 옛 이름은 吳縣(오현)이며 오랜 歷史(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일찍이 春秋戰國時代(춘추전국시대)에 吳(오)나라의 國都(국도)로 發展(발전)하였고, 歷代(역대)에 걸쳐 周邊地域(주변지역)의 行政中心地(행정중심지)로 알려진 곳이다.
▣ 人口數
統計廳(통계청)의 人口調査(인구조사)에 依(의)하면 蘇州賈氏(소주가씨)는
1985年에는 總 1,733家口 7,623名,
2000年에는 總 2,812家口 9,025名이 있는 것으로 調査(조사)되었다.
[출처] 姓氏의 故鄕-1 蘇州賈氏(소주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