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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형·C형 간염 치료의 대안, 차세대 인터페론 |
바이러스는 지상에 생존하는 생물 중 가장 미세한 단순 생물로 세포에 기생해야 생존할 수 있다. 하지만 한 개의 세포에 종류가 다른 두 개의 바이러스가 침투하면 어느 한쪽 바이러스나 둘 다 증식을 하지 못하는 결과를 빚는다. 이런 현상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 원인을 알게 된 시점은 최근 들어서이다. 학자들은 그동안 이런 현상을 ‘바이러스의 간섭현상’이라고만 불러왔다. 바이러스는 세포 속에 기생해야 살 수 있는 생물이라는 특징 외에 그 구조도 세포와 유사하다. 유전정보를 지닌 핵산의 주위를 단백질로 둘러싸고 있는 것. 세포 안에 침입한 바이러스는 자신의 유전정보는 숙주인 세포에게 주고 자신은 숙주(세포)의 유전정보를 취한다. 이렇게 되면 세포는 침입자인 바이러스를 자기편으로 착각하고 바이러스에만 영양분을 공급한다. 결국 날로 바이러스는 강성해지는 반면 세포 쪽은 쇠퇴하게 된다. 주객이 뒤바뀐 셈. 더욱이 숙주인 세포가 쇠퇴해 영양을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지면 바이러스는 새로운 숙주를 찾아 다른 세포를 공략한다.
인터페론의 등장 이렇듯 바이러스에 공격당한 세포는 결국 고사하며 바이러스만 끊임없이 증식하는데 이를 가리켜 바이러스 질환이라고 한다. 암을 비롯해 바이러스성 간염, 바이러스성 피부 질환, 광견병 등 지구상에 현재 알려진 바이러스성 질환만 800여 종에 이른다. 문제는 1980년 B형 간염 예방 백신이 개발된 것을 제외하고는 바이러스성 질병에 대한 예방 및 치료수단이 거의 없다는 것. 계절마다 사람을 괴롭히는 독감 역시 바이러스 질환이지만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이를 이겨내는 외에는 아직 특효약이 나와 있지 않은 게 현실이다. 바이러스를 공격하는 제품이 나왔으나 정상 세포까지 함께 죽이는 것이어서 사용이 불가능했다. 이런 가운데 1957년 영국의 아이작스와 린드만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달걀의 내막에 작용시켰을 때 세포 속에 바이러스와 그것에 대항하여 바이러스의 증식을 억제하는 인자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은 바이러스의 증식을 억제하는 이 인자에 ‘인터페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세포는 전혀 손상시키지 않고 바이러스의 증식만 억제하는 새로운 치료제를 발견한 것. 인터페론은 바이러스의 공격으로부터 세포를 보호하는 것 외에 그 기능이 아주 다양하다. 조직 배양에서나 골수에서의 세포분열 억제, T세포(면역세포)의 작용 조절, 자연살해세포(NK세포)의 식균작용 향상, 특수 암세포의 분열 억제 등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다. 그러나 임상실험이 계속되면서 이 약의 효과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천연두와 같은 피부 질환과 감기 바이러스에서는 좋은 결과를 내고 있으나 암 환자의 경우에는 20~30%밖에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 이런 점에서 인터페론은 ‘신비의 약’이라기보다 바이러스에 대한 특효약이라고 보는 게 옳다. 하지만 인터페론의 종류가 엄청나게 많은 만큼 그 기능에 대해 섣불리 어떤 단정을 내리기에는 때가 아직 이르다. B형과 C형 간염도 바이러스성 질환인 만큼 인터페론은 오랫동안 그 치료제로 사용되어왔다. 그러나 B형 간염의 경우 인터페론이 비대상성 간경변증 환자에게 사용될 경우 치명적인 합병증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 사용 빈도가 현저히 줄고 있다. 그래서 등장한 약이 항바이러스제인 라미부딘(제픽스)이다. 부작용이 비교적 적은 이 약은 약 10여 년 전부터 B형 간염 환자에게 널리 이용되어왔던 게 사실. 더욱이 이 약은 인터페론의 한계로 지적되었던 비대상성 간경변증 환자들에게도 효과가 있음이 입증되었다. 그러나 이 약에도 한계는 있었다. 라미부딘을 장기간 사용한 환자에서 돌연변이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약에 대한 저항성이 발생한 것. 라미부딘과 이 약의 내성을 가진 환자에게 쓰이는 아데포비어에서 치료 5년 후 각각 65%, 29%의 저항성이 나타났다.
B형 간염 새 치료제 ‘페가시스’ 하지만 기존 인터페론에 비해 더욱 개선된 차세대 인터페론 제제 페가시스가 개발됨으로써 이런 저항성의 문제를 해결하고 좀더 나은 치료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약은 치료 기간에 내성 돌연변이 균주의 발현이 없었고, 48주간의 치료를 통해 기존 인터페론이나 라미부딘과 같은 항바이러스 제제에 비해 우수한 치료 효과를 나타냈다. 실제 임상실험 결과 B형 간염 e항원 양성 환자의 중요한 치료 지표인 e항원 혈청 전환율(48주 치료 후 24주 경과)은 라미부딘 치료군이 19%인 반면, 페가시스 단독 치료군은 32%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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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형 간염 e항원 음성 환자(48주 치료 후 24주 경과)의 간수치(ALT) 정상화율은 페가시스 단독 치료군 59%, 라미부딘 치료군은 44%였다. 또한 B형 간염 DNA 반응 면에서도 페가시스 단독 치료군이 더 우월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국립보건연구원(NICE)이 B형 간염의 1차 치료제로 페가시스를 인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B형 간염보다 환자 수는 턱없이 적지만 간과할 수 없는 질환이 또 있다. C형 간염이 바로 그것. C형 간염은 주로 환자의 혈액을 통해서 전염되며, 혈액투석, 문신, 귀를 뚫는 행위, 비위생적인 침술 행위, 칫솔질 등으로 전염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C형 간염으로 진단받은 환자의 약 50%가 수혈이나 침 등을 맞은 병력이 없는 점으로 미뤄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다른 중요한 전염 경로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C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만성화 경향이 높아 급성 간염의 약 80%가 만성 간 질환을 유발하므로 일단 감염된 것으로 확진되면 치료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치료의 목적은 간염 바이러스를 제거하고, 감염의 진행을 억제해 간 섬유화나 간 경변으로 가는 것을 막는 것이다. 특히 B형 간염과 달리 C형 간염은 예방 백신이 개발되지 않아 효과 좋은 치료제 개발이 급선무였다.
C형 간염 치료의 새 장 열다 사실 B형 간염 치료제로 쓰이는 페가시스는 C형 간염 치료의 유일한 치료제이던 인터페론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하지만 페가시스의 등장으로 C형 간염의 치료는 새로운 전환기를 맞게 된다. 페가시스는 인터페론에 폴리에틸렌 글리콜(Polyethylene glycol, PEG)을 부착해 인터페론의 약효 반감기를 길게 한 페그 인터페론(Pegylated interferon) 제제로 로슈사가 개발해 2004년 국내에 처음 발매된 약품이다. 지금껏 만성 C형 간염의 유일한 치료제였던 인터페론은 치료 성공률이 10~15%에 불과했다. 그 후 인터페론 치료에 리바비린(ribavirin)을 병용하면서 치료 성공률(48주 치료)이 31~43%로 높아지긴 했으나, 성공률이 드라마틱하게 높아졌다고는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1주일에 3회씩 주사해야 하는 불편함과 약물의 부작용 등이 더해지면서 C형 간염은 일종의 난치병으로 인식되었다. 반면 새롭게 개발된 페가시스는 인터페론에 비해 효과가 높을 뿐 아니라, 주1회 투여로 사용이 간편하고 부작용이 적어 C형 간염 치료의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B형과 C형 간염 치료에 모두 승인을 받은 페그 인터페론은 현재 페가시스가 유일한 형편이다. 페가시스의 임상시험에서 페가시스와 리바비린 병용 요법으로 12주간 치료했을 때 항바이러스 반응이 있는 환자(전체 대상자의 86%)는 치료가 종료된 후에도 치료 성공률이 높았다. 이는 치료 개시 후 12주가 되었을 때 페가시스를 이용한 C형 간염 치료의 성공 여부를 예측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치료 성공률이 높은 환자에겐 치료 동기를 부여하는 효과를, 치료 무반응 환자에겐 일찍 치료를 그만두게 함으로써 비용절감 효과를 줄 수 있게 됐다. 기존 인터페론 치료의 경우는 치료 후 24주가 지나서야 치료의 성공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더욱이 페가시스는 간수치(ALT)가 정상인 경증의 만성 C형 간염환자에게도 사용할 수 있다는 승인을 받은 유일한 페그 인터페론 약품이기도 하다. 경증의 만성 C형 간염에까지 적응증이 확대됨으로써 훨씬 더 많은 환자가 치료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됐으며 간 조직검사를 받지 않고서도 치료를 시작할 수 있게 됐다. 이는 C형 간염환자들이 치료를 받기까지 불필요하게 낭비했던 시간이 그만큼 단축됐음을 의미한다. 즉 간 손상이 진행되기 전에 치료를 받음으로써 환자의 치료율을 극대화할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여러 차례의 임상시험 결과, 페가시스는 치료가 어려운 환자를 포함한 여러 환자군에서도 치료효과가 우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유전자 제2형 또는 3형 C형 간염 환자를 페가시스와 리바비린 800mg 병용요법으로 6개월간 치료하자, 치료 성공률은 84%에 이르렀으며 기존의 리바비린 용량을 800mg으로 감소시킬 수 있었다. 이런 모든 임상시험을 마친 환자를 2년간 추적 관찰한 결과, 페가시스-리바비린의 병용 치료를 받은 환자의 99.4%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았다. 이는 페가시스에 의한 C형 간염의 치료 효과가 매우 장기간 지속된다는 것을 시사하며 멀지 않은 장래에 C형 간염 완전 정복의 가능성도 기대해볼 수 있다는 뜻이다 |
간경변, 합병증 막아야 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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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몽 교수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부산대 병원 |
간경변증은 어떤 원인이든지 간염이 오래 지속되면서 간세포가 파괴와 재생을 되풀이하는 가운데 자연적인 기본 구조가 흐트러져 원래와는 다른 구조(재생 결절과 섬유조직)로 바뀌고 동시에 간(肝)에 섬유성분(콜라겐)이 증가해 굳어버린 상태를 말한다. 이는 피부에 화상을 입었을 때, 처음에는 벌겋게 염증이 일어나지만, 나중에는 울퉁불퉁한 상흔을 남기는 것과 같은 이치다. 원인에 따라 다르기는 해도 만성 간염을 앓는 환자 중 20~30%는 간경변으로 진행할 수 있다. 간경변이 발생한 간을 직접 보면 표면이 매끄럽지 못하고 울퉁불퉁해 누가 보더라도 한눈에 알 수 있다. 간이 단단해지고 커진 경우 복부에서 손으로 만질 수 있다. 일단 간경변증으로 진행하면 간경변증의 원인이 없어지는 경우 호전될 수 있으나 정상 간으로 완전 회복되지는 않는다. 일부 환자는 복수, 복막염, 위, 식도정맥류 출혈, 간뇌증 및 간암으로 고생하게 된다.
간경변은 간염의 ‘흉터’ 간은 약 3000억개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는데, 간 기능을 정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20% 이상이 생존해야 한다. 즉 염증에 의해 간세포가 계속 죽어 나가도 정상적인 간 기능을 지닌 간세포가 20% 이상만 생존하면 특별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실제로 많은 간경변 환자에게서 증상이 없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그러나 20% 이하가 되면 증상이 나타나며, 증상이 나타나면 상태가 급격히 나빠진다. 간세포가 죽으면 그 자리를 탄력성이 큰 섬유질이 대신하게 된다. 이를 ‘섬유화’라고 하며 간경변이라고 이름붙인 것도 이 섬유화에 의해 간이 딱딱하게 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염증에 의해 간세포가 죽어 나가고 섬유화가 진행하는 정도에 따라 간경변의 심한 정도가 결정된다. 섬유화가 진행되는 가운데에서도 생존한 간세포가 계속 증식하여 위기를 탈출하려는 노력이 계속된다. 즉 간세포가 증식하기는 해도 정상적으로 증식하지 못하고, 섬유화가 일어나는 공간에서 증식하기 때문에 결절 모양을 띠게 된다. 이것을 재생 결절이라고 하는데,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주위 혈관을 압박하는 악영향도 끼친다. 경변이 온 간의 표면이 울퉁불퉁한 것은 바로 재생 결절 부위는 튀어나오고, 섬유화 부분은 움푹 들어가기 때문이다. 간경변이 생기는 주요인은 간세포 파괴, 재생, 반흔 등을 수반하는 간의 염증 때문이다. 간 염증의 원인으로는 B형 간염 바이러스, C형 간염 바이러스, 알코올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그 외에도 간 담석에 의한 만성 담관폐쇄 혹은 담관염, 자가면역간염 등이 있다. 최근에는 비만, 당뇨병, 고지혈증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비알코올지방간 질환도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간경변증은 초기에는 간 고유의 기능을 정상적으로 유지하기 때문에 대부분 증상이 없다. 그러나 바이러스 간염과 같은 원인이 계속 남아 있는 경우에는 피로, 쇠약, 식욕 저하, 메스꺼움 같은 간염의 증상이 있다. 후기에는 간경변이 많이 진행되고 간 기능을 정상적으로 수행하지 못하게 되면서 여러 가지 특징적인 증상이 나타난다. 앞가슴에 거미 모양의 혈관이 두드러지고 손바닥에 붉은 반점이 생김, 겨드랑이나 사타구니의 털이 빠짐, 남성의 경우 여성처럼 유방이 커짐, 하지에 출혈 반점이 자주 생김, 배꼽 주위에 큰 정맥이 두드러짐, 비장 비대, 복수 혹은 하지 부종, 소변 색깔이 어두운 노란색 또는 갈색을 띰, 황달, 정신이 맑지 않음, 검고 끈적거리는 변 혹은 토혈 등이 바로 그것이다.
문제는 합병증 하지만 간경변증이라고 해서 모두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환자는 초기 간경변증으로 평생을 문제 없이 사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단순히 간경변증이라고 진단받고 낙담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현재의 간경변 상태가 얼마나 심한지, 또한 진행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다. 처음으로 진단받을 당시의 상태는 환자마다 다르며, 진행 속도도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4∼6개월마다 검사를 받아 변화를 관찰해야 하며, 적어도 1∼2년 이상 경과를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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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경변증이 있을 때 간의 남은 기능은 복수, 간뇌증, 황달, 알부민치, 혈액응고 시간 연장의 정도를 종합적으로 평가해 A, B, C로 나눈다. A는 초기 간경변증으로서 복수, 간뇌증, 황달이 없으며 알부민치나 혈액응고 시간이 거의 정상인 경우이다. 전혀 증상이 없으며, 간 기능도 정상인 경우가 많다. 다만 초음파 검사 등으로 경변이 의심되는 경우로서 일반 생활에는 전혀 지장이 없는 상태다. 이 시기의 환자들은 검사를 받지 않으면 잘 모르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간경변이 진행될 수 있다. 따라서 간 이상의 징후(간염 수치가 올라간 환자, 간염 바이러스 보유자, 집안 내 간 질환 환자가 있는 경우 등)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검사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검사는 혈액 검사 및 간 초음파 검사를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 C는 간경변증이 진행되어 간 기능을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없는 상태로 복수, 간뇌증, 혹은 황달이 있고 알부민치가 낮아지고 혈액응고 시간이 연장되는 경우이다. 간경변 중기에 각종 합병증이 나타나기 시작해서 말기가 되면 대부분 한두 가지 이상의 합병증으로 고생한다. 대표적인 합병증으로는 복수, 식도 혹은 위 정맥류 출혈, 간뇌증 등이며, 간암이 발생할 위험이 크다. 간경변증 환자의 추정 생존 기간은 진단 당시의 간 경변 정도에 비례한다. 즉 초기인 경우는 10년 이상 생존할 확률이 70~80%이다. 생존 확률은 진행 속도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으며 가장 중요한 것은 원인을 치료하고 간경변증 악화 요인을 제거하는 것이다. 말기인 경우는 10년 생존할 가능성이 30% 이하이며, 간뇌증이 반복적으로 오거나 복수에 복막염까지 발생한 환자는 불과 1∼2년 내에 사망하게 된다.
금주는 기본 간경변증의 치료는 간경변증의 진행을 예방하는 것과 합병증, 즉 복수, 정맥류 출혈, 간부전, 간뇌증을 치료하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만성 간염이 오래되면 일반적으로 염증 반응도 약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간경변증이 이미 있음에도 B형 간염 바이러스, C형 간염 바이러스, 알코올에 계속 노출되어 심한 염증 반응을 나타내는 경우는 간경변증이 빠르게 진행된다. 따라서 만성 C형 간염 환자가 간 기능을 비교적 잘 유지하고 있으면 심한 혈소판 감소증 등의 금기증이 없는 경우 인터페론과 리바비린 병용 치료를 함으로써 간경변증의 진행을 예방하거나 호전시킬 수도 있다. 합병증이 있는 간경변증은 대부분 치료할 수 없다. B형 간염으로 인한 간경변증의 경우 인터페론 치료는 위험할 수 있으며 염증 반응이 심한 경우 항바이러스제로 치료할 수 있다. 정상 간 기능을 보존하고 있지 않은 간경변증(비보상 간경변증)인 경우에도 항바이러스제 치료로 간 상태를 호전시킬 수 있다. 간경변증 환자의 간염 치료 여부는 이점과 해로운 점을 잘 검토해 결정해야 하므로 반드시 의사와 상의해야 한다. 알코올성 간경변증은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건강한 사람에게서 하루 알코올 48g(소주 4잔, 맥주 4컵) 이상의 음주는 알코올에 의한 합병증(간경변증, 간암, 조기 사망)의 위험성이 증가한다. 음주에 의한 간 손상은 지방간, 알코올간염, 간경변증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이미 만성 간 질환이 있는 환자가 안전하게 섭취할 수 있는 알코올 양이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모른다. 따라서 무조건 금주하는 것이 현명하다. 금주하는 것이 만성 간염이 간경변증으로 진행하는 것을 억제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다. 대부분의 약물이나 섭취한 물질은 간에서 대사나 해독 과정을 거쳐 몸 밖으로 배설된다. 간은 이러한 대사 작용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여러 약물이나 물질에 의한 독성에 매우 취약하다. 만성 간 질환이 있는 경우 간 기능은 다양하게 영향을 받는다. 약물에 의한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약물을 매우 주의 깊게 사용해야 한다. 약물을 사용하기 전 간 독성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간 독성이 알려져 있으면 독성이 적은 약으로 대체해야 한다. 비스테로이드성 항염증제는 만성 간질환 환자에게는 되도록 사용하지 않아야 하며 진통제가 필요할 때는 하루 2g 이하의 아세트아미노펜을 복용하는 것이 좋다. 아세트아미노펜 또한 용량에 따라 간 독성이 있을 수 있다. 특히 만성 음주자나 금식 상태에서는 하루 4g 이하의 상용량에서도 간 독성이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간경변 환자는 단백 요구량이 증가하고 고단백 식이에 잘 견디며, 특히 영양 불량 환자에서 고단백 식이는 의식상태를 호전시킨다. 간뇌증 환자에게는 전통적으로 단백 제한을 하였으나 단백 제한은 간경변증 환자에게 나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이 방법은 바람직하지 않다. 단백질 영양 결핍은 간경변증 환자의 20~60%에서 나타나며 이는 간경변증의 심한 정도에 따라 비례한다. 흔한 원인은 식욕감퇴, 오심, 흡수장애, 염분 및 수분 제한, 단백 제한 등이다. 간경변증 환자는 간 상태에 따라 되도록 하루 체중 1kg당 1.0~1.5g의 단백을 섭취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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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관적, 긍정적 태도를 간암은 간경변증의 합병증 중 하나이며 주로 B형 간염 혹은 C형 간염에 의한 간경변증에서 흔히 발생해 주요 사망원인이 된다. 증상이 나타난 후 간암으로 진단되면 대개 치료가 불가능할 정도로 진행된 상태가 흔하며 생존 기간이 2∼6개월이다. 그러나 조기에 발견하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치료할 수 있으며 생존율이 높아진다. 따라서 증상이 없어도 정기적인 검사가 필요하다. 현재로서는 간경변증을 완치할 방법은 없다. 그러나 초기 간 경변의 5년 및 10년 생존율은 99% 및 77%에 이른다. 많은 간경변증 환자가 낫고자 하는 조급한 심정으로 근거가 없는 약물을 남용해 도리어 간 상태를 나쁘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특효약을 찾아 많은 비용을 들이면서 모험을 하기보다는 상태를 악화시키는 요소들을 제거해 간 기능의 보존을 위해 힘쓰는, 객관적이고도 합리적인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 또 간 질환은 장기적인 관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사고 및 생활방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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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살인자’ 간암, 그러나 치료법은 많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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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식 교수 연세대 의대 영동세브란스병원 내과 |
간암은 만성 간 질환 환자에게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국내 만성 간 질환의 주 원인은 B형(60~70%)과 C형(15~20%) 간염 바이러스이고, 알코올성 간 질환도 점차 증가해 C형 간염과 비슷한 수준에 와 있다. 만성 간 질환에서 간암이 잘 생기는 이유는 오랫동안 간세포가 파괴되고 재생되면서 간세포에 유전적 변이가 생기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간암이 장기간의 만성 간 질환을 앓고 난 후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고, 간암 환자의 60~80%는 간경변증이 동반된 상태였다는 점은 이런 추측의 근거가 된다. 하지만 B형 간염 바이러스 보유자 중에는 드물게 10대나 20대에 간암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고, 또 간 조직이 정상인 경우도 있으며, 만성 간 질환 환자의 간세포 유전자에 B형 간염 바이러스의 유전자가 끼어들어 있는 경우가 종종 발견되고 있어 B형 간염 바이러스 자체가 직접 간암을 유발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진단 기법이 발전하지 않은 과거에는 간암이 아주 심각해진 다음에야 발견돼 수개월 이내에 사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나 현재는 만성 간 질환 환자에 대한 정기적 초음파 검사가 시행되기 때문에 간암의 조기 발견 확률이 높아졌고, 그에 따라 치료에 성공하는 환자도 많아졌다. 그러나 간경변증이 심해 간암과 주변 간 조직이 확연히 구분되지 않는 경우와 같이 정기적인 초음파 검사에서도 간암이 발견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정기검진, 예방접종이 최선의 방어책 모든 간 질환이 그렇듯 간암도 증상이 거의 없다. 간은 그 표면에만 신경이 있기 때문에 간 표면을 압박할 정도의 아주 큰 간암이라면 일부 불쾌감을 느낄 수 있지만, 이 경우에도 증상이 없는 경우가 더 많다. 간암이 만성 간 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한 규칙적 검사나 정기 신체검사에서 우연히 발견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증상이 나타난 후에 발견되는 간암은 이미 상당히 진행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로 나타나는 증상은 우상복부 동통, 복부 팽만, 체중 감소, 식욕 부진, 피로 등이다. 간암이 꽤 진행된 환자의 배를 만져보면 오른쪽 갈비뼈 밑에서 간이 크고 딱딱하며 우툴두툴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간혹 간 표면에 돌출해 있는 간암이 파열되면 대량 출혈이 일어나 배가 심하게 불러오면서 쇼크 상태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비교적 잘 지내던 간경변증 환자가 갑자기 황달이 심해지거나 복수가 많이 차면 간암을 의심해야 한다. 만성 간염이나 간경변 환자는 3~6개월 간격으로 규칙적인 검사를 하는데, 검사하는 목적은 간 질환의 악화, 합병증의 발생, 간암을 조기에 발견하기 위해서다. 검사 종류는 흔히 GOT, AST, GPT, ALT 등으로 알려진 간 기능 검사와 간암 표지자 검사, 초음파 검사 등 이며 검진 대상 환자는 B형 또는 C형 만성 간염 환자와 여러 가지 원인의 간경변증 환자이다. 알파 태아단백(간암 표지자 검사)의 수치가 오르거나, 초음파검사에서 혹이 보여 간암이 의심되면 C-T나 MRI 검사로 최종 확인한다. 간 혈관을 촬영해서 진단하는 경우도 있고, 간혹 확실치 않은 종양의 확진을 위해 조직검사를 하는 경우도 있다. 간암이 상당히 진행된 경우라면 다른 장기로 전이되었는지를 알기 위해 흉부 C-T로 폐 전이, 뼈의 동위원소 촬영으로 뼈 전이, PET 검사로 전신적인 전이 상태를 확인한다.
녹이고 떼어내고… 이런 검사로 간암인 것으로 확진되면 각종 치료를 해야 한다. 수술이 가능하면 수술을 하고, 종양의 크기가 2cm 이하이면 알코올 또는 동위원소인 홀미움(Holmium) 등을 간암에 직접 주사할 수 있으며 약 3cm까지는 고주파 열 치료(RFA)나 냉동요법이 행해진다. 이 외에 간 동맥 화학색전술(TACE)과 간이식이 있다. 각각의 치료방법은 간암의 크기, 개수, 형태, 진행상태 및 위치, 환자의 전신상태, 간경변증의 상태 및 초음파 검사로 접근이 가능한지에 따라 결정된다. 간혹 조기에 발견된 경우라도 경계가 명확지 않고 주위로 퍼지는 형태의 간암은 치료가 쉽지 않다. 이 외에도, 간암이 뼈에 전이되었을 때 주로 시행되는 방사선치료법, 초음파의 강도를 높여서 간암을 치료하는 초음파치료, 항암제를 투여하는 화학요법, 면역기능을 강화해 체내의 면역세포가 간암세포를 스스로 공격하게 해서 치료하는 면역요법 등이 있다. 대표적인 치료방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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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과적 수술 간암을 가장 확실하게 치료하는 방법은 수술로 암 조직을 떼어내는 것이다. 암이 크지 않은 상태에서 발견되어야 수술이 가능하다. 수술을 하려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일단 암의 크기나 위치상 절제가 가능해야 한다. 크기가 매우 큰 경우에는 떼어내기 어렵고, 수술 후 합병증이 생기며, 재발률도 높다. 또 간암이 중요한 혈관이나 구조물을 침범한 상황이면 절제하기 곤란하다. 다음으로 환자의 간 기능이 좋아야 한다. 간암은 대부분 간경변증을 동반하고 있는데, 간경변증이 심한 경우에는 전신 마취도 문제가 되고 간암을 떼어낸다 하더라도 나머지 간으로는 수술의 부담을 이겨내지 못한다. 끝으로 간 이외의 장기에 암이 퍼져 있지 말아야 한다. 간암은 폐, 부신, 뼈, 뇌 등으로 잘 전이되는데, 이미 전이된 경우에는 수술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여러 가지 간암 치료법 중에서 가장 확실하게 암 조직을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이므로 조건이 맞으면 수술하는 것이 원칙이다. ▼ 알코올 또는 홀미움 주입법 초음파검사로 간암을 보면서, 직접 바늘로 간암을 찌르고, 100% 알코올이나 홀미움을 주입하는 방법이다. 알코올은 간암을 녹이고, 홀미움은 방사성 동위원소로서 간암에 주입된 후 방사선을 방출해 간암을 파괴시킨다. 알코올 주입은 3~4회 시행해야 하나, 홀미움은 1회만 시행하기 때문에 간편하다. 문제는 드물게 홀미움이 혈액으로 유출될 경우 골수 기능이 저하되는 합병증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경우에도 제약은 있다. 우선 초음파 검사에서 간암이 잘 보이는 경우에만 시술할 수 있고, 횡격막 근처의 깊은 부분은 접근이 쉽지 않으며, 간암 주변에 중요한 혈관, 담도, 담낭 등이 있는 경우는 부담이 된다. 또 간암이 간의 표면에 있으면 주입한 물질이 간 밖으로 흘러나올 수 있으며, 크기가 큰 간암은 시술 후 재발하기 쉬우므로 2cm 이하의 간암에서 주로 시술한다.
간이식 성공률 70∼80% ▼ 고주파 열 치료 및 냉동요법 알코올 주입법과 마찬가지로 바늘로 찔러서 시술한다. 바늘 끝에 고주파를 통하게 한 후 열을 발생시켜 간암을 태우거나, 냉동시켜 치료하는 방법이다. 고주파 열 치료는 통증이 있을 수 있으나 냉동요법은 통증이 거의 없고, 두 방법 모두 바늘로 찔러서 시술하므로 알코올 주입법과 같은 제한점이 있다. 현재는 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시술비가 수백만원으로 비싸지만, 효과적인 치료방법이다. 간암의 크기가 3cm 이하인 경우에 주로 시행하고 있다. ▼ 간 동맥 화학색전술 정상적인 간은 주로 간 문맥(정맥)이 영양을 공급하지만, 간암은 깨끗한 피를 공급받기 위해 간 동맥을 끌어당기기 때문에, 결국 간 동맥이 간암을 먹여 살리게 된다. 이러한 성질을 이용해서 간 혈관 촬영을 통해 간암을 먹여 살리는 간 동맥을 찾아 항암제와 혈관을 막아버리는 색전물질(리피오돌, 기름성분)을 섞어서 주입하고, 마지막으로 간 동맥에 또 다른 색전물질(젤폼)을 주입하는 시술이다. 젤폼은 이미 간암에 주입한 항암제와 리피오돌이 빠져나오지 못하게도 하지만, 자체가 간암을 먹여 살리는 혈관을 막아 간암이 먹고 살지 못하게도 한다. 시술 후 간 부위의 통증, 구토, 발열, 간 기능 이상이 생길 수 있으나 90% 이상은 회복된다.
▼ 간이식 초기에는 뇌사자의 사체를 이용했으나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현재는 생체 부분 간이식이 주가 됐다. 생체 부분 간이식은 잘 알려진 것처럼 주로 가족이 간의 일부를 주는 경우가 많은데, 가족 중에 간을 줄 사람이 마땅치 않은 경우는 제3자의 간을 이식하기도 한다. 현재 70~80%의 성공률을 보이고 있다. 일반적인 치료가 어렵거나 재발하는 간암도 간이식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말기 간경변증도 대상이 된다. 일반적으로 3cm 이하의 간암이 3개 이하인 경우에 시행하는데, 근래에는 더 큰 간암에도 시도하고 있다. 상당히 진행된 간암은 새로 이식된 간에 간암이 재발할 확률이 높으므로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간암을 예방하려면 간암이 생길 위험이 높은 집단에 들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간암 발생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 B형 간염인 만큼 간염 항체가 없는 사람은 B형 간염 백신을 꼭 맞아야 하며, 특히 어머니가 B형 간염인 경우는 신생아에 대한 예방접종이 필수다. 간암을 조기 발견해 완치한다고 해도 근본적으로 간경변증이 있는 경우는 간의 다른 부위에 암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간암 치료 후에도 지속적으로 검사해야 한다. 검사 결과 다시 간암이 발견되면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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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간은 간 질환 시발점, 얕보다 큰코다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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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규 교수 전남대 의대 소화기내과 분과장 |
한 번 손상되면 여간해서 회복되기 어려운 간. 과음, 피로, 스트레스와 서구식 식습관 등으로 간을 혹사하는 현대인들은 간에 대해 더욱 민감해져야 한다. 특히 지방간은 쉽게 치유되는 가벼운 병으로 알려져 있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데, 관리와 치료에 소홀하면 심각한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간 질환의 진원(震源)이다.
지방간→지방간염→간경변증 간은 인체의 신진대사, 그중에서도 지방 대사에 중요한 기능을 하는 기관이다. 간의 구성 성분 중 지방이 차지하는 비율은 보통 3~5%인데, 간의 무게에서 이 비율이 5%를 넘을 때 의학적으로 지방간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간세포 속에 지방이 지나치게 축적된 상태를 일컫는데, 심한 경우에는 간의 50%가 지방으로 채워지기도 한다. 간세포 속의 지방 덩어리가 커지면 핵을 포함한 세포의 중요 구성 성분이 한쪽으로 밀려 간세포의 기능이 저하된다. 또한 세포 내에 축적된 지방으로 인해 팽창한 간세포들이 미세혈관과 임파선을 눌러 간 내의 혈액과 임파액 순환에 장애를 일으킨다. 지방간을 방치하면 간 기능 저하와 함께 간에 산화성 스트레스가 유발되어 간세포 괴사와 염증을 동반한 지방간염으로 악화되고 나아가 간경변증으로 진행될 수 있다.
비만, 음주가 주원인 흔히 지방간이라고 하면, 술을 자주 마셔서 생긴 질병이니 당분간 술을 끊거나 줄이면 자연스레 치유될 거라고 가볍게 여긴다. 물론 전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지방간도 분명히 관리와 치료가 요구되는 ‘질병’이다. 특히 술 때문에 생기는 알코올성 지방간 외에 비만, 당뇨, 고지혈증, 혹은 스테로이드나 항경련제 등의 약물로 유발되는 비알코올성 지방간도 현대인에게 쉽게 찾아오곤 한다. 지방간은 서서히 진행되어 증상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나 갑자기 심한 피로를 느끼거나 우상복부에 묵직한 불편감을 느끼면 한번쯤 지방간을 의심하고 정확한 검진을 받아야 하는데 특히 간 질환, 당뇨, 비만, 고지혈증을 갖고 있는 사람이나 평소 과음이 잦은 사람이라면 더욱 관심을 갖고 체크해보아야 한다. 지방간은 신체검사나 다른 병으로 진찰을 받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되는 경우가 많은데, 최근에는 초음파 검사를 통해 발견되는 경우도 흔하다. 지방간이라 해도 간 기능은 정상인 경우가 대부분으로 간 기능 검사치(AST, ALT)가 약간 높은 정도이다. 지방간의 원인은 과음, 비만, 당뇨병, 고지혈증, 약물, 단백 결핍 등이며 그중 비만과 음주로 인한 지방간이 가장 많다. 국내 40세 이상의 중년 남녀 중 7%가 지방간이며, 정상 체중의 12%를 초과하는 비만인 사람들 중 무려 15%가 지방간이다. 체내에 지방조직이 많은 사람은 지방산이 혈중으로 많이 유입되면서 간 속에 쉽게 지방이 축적된다. 특히 성인 남성에게 많이 나타나는 복부 비만은 지방간을 유발하는 대표적인 위험 인자이다. 국제기구 인정 체질량지수(Body Mass Index·BMI)가 25를 넘어가는 사람이라면 성인병 위험군(群)에 포함되며 지방간을 의심해보아야 한다. 사람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지방간은 알코올성 지방간인데, 지속적인 과음이 원인이다. 알코올에 의한 간 질환 중 가장 가벼운 것으로 술만 끊어도 정상으로 회복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애주가라고 말하는 사람의 약 4분의 3이 지방간이라는 통계가 있다. 체내로 흡수된 알코올은 80~90%가 간에서 처리되므로 지속적인 과음이 간에 무리를 주는 것은 당연한 일. 만성 과다음주자의 대부분은 지방간을 갖고 있으나 알코올성 간염은 10~35%, 간경변증은 8~20%에서만 발생한다. 하지만 아직도 이에 대해선 터무니없는 오해가 난무하는 실정이다. 그중 하나는 ‘술이 센 사람은 간이 튼튼해서 약한 사람보다 간암에 걸릴 확률이 낮다’는 것이다. 심지어 대한암협회 주최로 올초에 열린 환자와의 대화 시간에 이런 질문이 쏟아졌을 정도. 하지만 이는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로, 술이 간에 미치는 영향은 소주든 맥주든 술의 종류와 무관하며 그 독성은 동일하다. 오히려 마신 알코올의 양이나 음주기간이 간 독성을 결정하는 데 가장 주요한 요인이 되며 하루 40~80g의 술을 10년 동안 마신 사람은 알코올성 간 질환에 걸릴 확률이 매우 높다. 즉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이 못 마시는 사람에 비해 한 번 마실 때의 양이 많기 때문에 오히려 간암에 걸릴 위험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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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B·C형 간염 환자는 일반인과 달리 알코올이 간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크므로 반드시 금주해야 한다. 여성, 그리고 조직학적으로 심한 지방간 환자도 금주는 필수다. 적은 양 혹은 간헐적인 음주로도 병세가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허리둘레부터 줄여라! 지방간의 치료는 그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최선이다. 증세의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식습관 개선과 운동요법 등을 통해 지방간을 치료할 수 있다. 현재 시판 중인 간장약이나 지질 개선제는 보조적인 치료효과만 있기 때문에 여기에 의존하기보다는 원인에 따라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현명한 조치이다. 비만으로 인한 지방간 환자라면 총 칼로리를 적게 섭취하고 운동을 병행해 체내에 축적된 지방을 제거해야 한다. 따라서 이미 복부비만인 사람은 식이요법, 운동요법을 근간으로 체중과 허리둘레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시급하다. 체중 감량의 속도와 정도에 관하여 정확한 지침은 없으나, 점진적인 체중 감량, 즉 6개월에 걸쳐 10%의 체중 감량을 권고하고 있다. 체중을 감량할 때에는 담당 의사와 상의하며, 간기능 검사를 정기적으로 하는 것이 좋다. 당뇨로 인한 지방간은 적절한 당뇨 조절이 필요하다. 알코올성 지방간 환자는 술을 계속 마시는 한 간세포의 손상은 막을 수 없음을 명심하자. 금주와 식생활 조절을 통해 영양 상태를 개선하면 대개 3~4주 후에 증세가 호전되고, 수개월 안에 완치할 수 있다. 원인을 제거함과 동시에 식습관을 개선하는 것도 치료에 큰 도움이 된다. 충분한 비타민(특히 B군과 C, K)을 섭취하고 단백질과 미네랄이 들어 있는 식품도 좋다. 감미식품은 되도록 피해야 한다. 현대인들은 자동차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데 운동을 생활화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일상생활이 바쁘니 그 자체로 운동량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운동은 각자의 상황에 맞도록 선택하는데 빠르게 걷기, 자전거 타기, 조깅, 수영, 등산, 에어로빅 같은 유산소 운동이 좋고 승부를 다투는 운동은 금물이다. 유산소 운동도 심하게 하거나 오래하면 오히려 좋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 능력에 알맞은 운동을 조심성 있게 하되, 통상 1주일에 3회 이상, 한 번 할 때 30 분 이상 땀이 날 정도로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복식호흡이나 신진대사를 원활히 해주는 간단한 체조를 실시하면 간 질환으로 인한 피로감을 이기는 데 좋다. 지방간은 평소 몸 관리만 잘해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는 질병이다. 매일 체중을 재고 섭취한 음식을 기록하면 자신의 식습관을 알게 되고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세 끼를 꼭 챙겨 먹고 한 끼 분량을 조금씩 줄인다. 음식은 천천히 먹는 습관을 들인다. 과식하지 말고 균형 잡힌 식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야식을 피하고 기름에 튀긴 음식보다는 삶은 음식이 좋고, 당분이 들어간 음료수보다는 물이나 녹차 종류가 좋다. 특히 육류, 인스턴트 등 칼로리가 높은 음식은 지방간의 주범이다. 햄버거, 꿀, 사탕, 라면, 초콜릿, 케이크, 도넛, 삼겹살, 갈비, 햄, 치즈, 땅콩, 콜라, 사이다 등을 피한다. 많은 환자가 지방간의 원인에 대한 치료를 시행하지 않고 증세의 호전이 더디다는 이유로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 건강식품, 식이요법 등을 택하는데 사전에 담당의사와 상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단 간경변이 오면 정상 회복이 어렵고 간암 발생 가능성도 커진다. 따라서 지방간을 꾸준히 관리하는 것이 현대인의 현명한 간 사랑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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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의 ‘천적’ 술, 못 끊겠으면 꾀부리며 마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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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철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ftdog@donga.com |
간경변증이나 간암을 일으키는 원인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서양에서는 주로 알코올성 간 질환에 의한 간경변증이 많지만, 우리나라에서는 B형 간염이 약 68%, C형 간염이 약 15%이고, 알코올성 간염은 약 17%에 불과하다. 알코올은 바이러스성 간염 질환을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현재 B형 간염 환자 수가 예방 사업 등을 통해 꾸준히 감소하는 점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도 조만간 알코올성 간 질환이 만성 간염 및 간경변증의 주원인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물과 알코올이 주성분인 술은 칼로리는 높지만 영양분이 없어 장기간의 음주는 영양 결핍을 초래한다. 술은 원료나 제조 방법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지만 통설로 알려진 것처럼 그 종류나 마시는 방법에 따라 간 손상 정도가 다른 것은 절대 아니다. 간 손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요소는 섭취한 알코올의 양과 음주 횟수다. 물론 무조건 술을 다량으로 마신다고 모든 사람이 간 손상을 입는 것은 아니다. 술로 인한 간 질환은 유전적 요인과 관련이 있고 개인차도 있기 때문이다. B형이나 C형 간염 등 다른 간 질환을 앓았거나 앓고 있는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다만 술을 장기간 많이 마시는 사람들의 알코올성 간 질환의 빈도가 현저히 높아지며 술을 마시는 사람의 영양상태, 음주량, 음주방법에 따라 간 손상의 정도가 각각 다를 수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술 종류와 상관없이 마신 알코올 총량과 얼마나 자주 마시느냐에 따라 간 질환이 발생하며 특히 여성은 적은 양의 술을 마셔도 간이 손상될 수 있다.
간경변증 부르는 술 일반적으로 65세 이하 남성은 하루 알코올 40g 이하(포도주 2잔, 소주 반병 정도에 해당), 모든 여성과 65세 이상 남성은 하루 알코올 20g 이하(소주 2잔 이하)의 음주량이 안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람마다 알코올 대사 능력이 큰 차이를 보이므로 조금씩 다를 수 있다. 알코올성 간 질환은 지방간, 간염, 간경변증으로 구분되는데, 이 질환들은 환자에 따라 겹쳐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혈액검사만으로 알코올성 간 질환을 진단하거나 그 정도를 파악할 수는 없다. 특히 알코올성 간 질환은 아무런 증상 없이도 간경변증, 간암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알코올성 지방간은 술이 간세포에 지방을 과도하게 축적하게 해 발생하는 질환이지만 간세포 자체의 손상은 거의 없는 질환으로, 알코올성 간 질환 중 가장 흔하다. 증상은 거의 없고, 건강검진 등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지방간은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의 90%에서 관찰되며, 일반적으로 혈액검사에서 중성지방이 높게 나타나고, 간기능 검사 중 AST(SGOT)와 ALT(SGPT)에 비해 특히 r-GTP가 증가된다. 알코올성 지방간은 회복될 수 있는 질환으로, 술을 끊으면 수주에서 수개월 내에 정상으로 돌아온다. 반면 알코올성 간염은 알코올에 의해 간에 염증이 발생해 간세포를 파괴하고 결국 간이 손상되는 질환이다. 증상은 매우 다양하다. 증상이 아예 없거나 발열, 황달, 상복부 동통을 호소하는 경우가 있으며, 간이 심하게 붓고 복수가 차거나 수개월 내에 생명이 위험할 정도로 심한 경우도 있다. 음주 정도 조사와 간기능 검사 등을 통해 진단한다. 경미한 경우 술을 끊으면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지만, 심한 경우 입원해 스테로이드 투여, 간이식 수술 등 특수 치료를 받아야 한다. 알코올성 지방간이나 간염이 생긴 상태에서 계속 술을 마시면 알코올성 간경변증이 올 수 있다. 알코올성 간경변증 또한 처음엔 아무런 증상이 없으나 점차 전신 피로감 및 식욕 감퇴 증상이 나타나고, 좀더 진행되면 복수, 식도정맥류와 출혈, 간성뇌증 또는 혼수 등의 합병증이 나타난다. 일단 간경변증이 생기면 금주로 급속한 진행은 억제할 수 있으나 정상 간으로 되돌리기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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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주는 기름에 불붙이는 격 알코올성 간 질환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금주가 최선이다. 술을 마시면서 간이 손상을 받지 않을 수는 없다. 시중에 나와 있는 간 보호제나 숙취에 좋다는 드링크 등은 단순 보조제일 뿐 치료약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를 믿고 과음하다가는 오히려 심각한 간 손상을 초래할 수 있다. 알코올성 간질환의 예방은 간을 쉬게 하고 간 손상을 줄이는 것이 기본이다. 만약 금주가 여의치 않다면 간 보호를 위한 자기 나름의 ‘주도(酒道)’를 만들고 반드시 지켜야 한다. 이는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방에게도 마찬가지다. 먼저 개인차를 생각하고 상대를 배려하자. 내 간이 소중한 만큼 상대의 간도 보호해야 한다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술을 마실 때는 술로 인한 간 손상 정도가 유전적 차이, 성별, 간 질환 유무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며, 기존에 간 질환이 있는 사람은 술을 끊어야 한다. 개인 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주량을 인정해주어야 한다. 술자리에서 폭탄주나 술잔 돌리기와 같이 술을 강권하는 분위기는 간을 생각하면 반드시 사라져야 할 문화다. 비록 눈치가 보이더라도 안주를 골고루 먹는 게 도움이 된다. 술은 칼로리는 높으나 저장되지 않으므로 술만 마시는 경우 심각한 영양 결핍이 올 수 있다. 일반적으로 칼로리는 낮으나 비타민이 풍부한 과일 안주 등이 추천된다. 물을 많이 마시는 것은 기본. 술을 마시고 난 다음날 흔히 목이 마른 현상을 느낄 수 있다. 이는 알코올이 가진 탈수기능 때문으로, 술을 마실 때 물도 많이 마셔야 혈중 알코올 농도가 낮아지고 탈수현상을 예방할 수 있다. 일명 술을 섞어 마시는 ‘폭탄주’는 간 손상에 있어서는 기름에 불을 붙이는 꼴이다. 여러 종류의 술을 섞어 마시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알코올의 신체 흡수가 빨라지기 때문이다. 한 번에 다 들이켜는 이른바 ‘원샷’ 문화와 술잔 돌리기, 2~3차를 이어가는 음주 문화는 음주 양도 많아지고 알코올의 흡수도 빨라지게 해 간 손상을 촉진한다. 간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버려야 할 문화다.
그래도 못 끊으면 정신과 치료를 문제는 자신도 모르게 알코올에 중독된 사람들이다. 술로 인해 작업 능률 저하, 일상 습관의 변화, 교통사고 등 법률적 문제 발생, 위험한 상황의 재발 등을 경험했다면 알코올중독을 의심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을 필요가 있다. 치료와 함께 여러 가지 금주 예방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도 권장할 만하다. 만성 바이러스성 간 질환과 달리 술로 인한 간 질환(간경변증이 오지 않은 경우)은 술을 끊음으로써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 질환임을 다시 한번 명심하자. 술자리에서 개인차에 대한 이해를 적극적으로 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알코올성 간 질환이 왔음을 확인하고도 술을 도저히 끊을 수 없다면 정신과 치료 등 여러 가지 상담 프로그램을 이용하도록 한다. 잠시 부끄럽지만 간질환으로 사망하는 것보다는 훨씬 현명한 선택이 될 것이다. |
B형 간염 보유자의 호소 “병보다 사회적 차별이 더 아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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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구현 간사랑동우회 총무 www.liverkorea.org |
질병을 가진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게 된다. 신체적 고통, 치료비 등 질병 자체에서 비롯된 어려움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어떤 병들은 질병 자체보다 그 병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더 괴로움을 주는 경우도 있다. B형 간염은 간경변과 간암의 주된 원인이다. 그러나 B형 간염 바이러스를 가진 사람들(B형 간염 보유자)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병 자체보다 간염 보유자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 30대 이상은 1980년대 중반 TV 화면에 자주 나오던 ‘술잔을 돌리면 B형 간염이 전염될 수 있다’는 내용의 공익광고를 기억할 것이다. 서너 명의 직장인이 도란도란 모여앉아 술을 마시다 잔을 돌리는 장면에서 붉은색 경고 메시지가 뜨는 그 광고는 상당히 인상적이어서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이 그 내용을 기억하고 있다. 지난해 실시한 한 전화 설문조사에서는 조사대상의 약 75%가 ‘B형 간염이 음식이나 침(타액)으로 전염될 수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B형 간염은 타액으로는 전염되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와 보건당국의 일치된 견해다. 이런 오해로 간염 보유자들은 여러 곳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일부 회사나 학교 기숙사, 유치원, 어린이집은 간염 보유자를 아예 받지 않는다. 반면 일상을 함께 하는 군대는 B형 간염 보유자라도 제한 없이 입대한다.
터무니없는 사회적 격리 지금도 B형 간염은 ‘국민병’이라고 할 만큼 흔하다. 20년 전 우리나라의 B형 간염 보유자 비율은 전체 인구의 10%에 이르렀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숫자는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올해 보건복지부는 우리나라의 B형 간염 보유자가 전체 인구의 3.7%라고 발표했다. 이는 청소년 이하의 B형 간염 보유자 비율이 전체의 1% 정도로 매우 낮아졌기 때문이다. B형 간염은 주로 B형 간염 보유자인 산모에게서 신생아에게 전염됐는데, 1990년대 이후 병원에서 원천적으로 차단되고 있다. 또한 모든 신생아를 대상으로 예방접종을 하면서 만성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영유아의 B형 감염을 막고 있다. B형 간염에 전염되지 않을 가장 좋은 방법은 간염 보유자를 격리하는 것이 아니라 예방주사를 맞는 것이다. 예방주사를 맞고 항체가 생기면 평생 B형 간염으로부터 안전하다. 이들을 더 이상 피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간염 보유자에 대한 차별은 사회적 제약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국민건강보험에서는 모든 성인을 대상으로 1년 또는 2년마다 건강검진을 한다. 이 건강검진은 직장 건강검진과 연계되어 직장인들의 검진 결과가 회사에 통보되는데 간염보유자들은 자신의 검사 결과가 회사에 알려지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 검사를 피하고 어떤 사람들은 신체검사를 앞두고 회사를 그만두기도 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실시하는 건강검진은 B형 간염 보유자가 자신의 건강이 악화되는 것을 확인하고 치료 시기를 찾을 가장 좋은 기회다. 국민건강 영양조사 결과 건강검진을 통해 간염을 진단받았다는 대답이 가장 많다. 간염 보유자에 대한 차별은 이들의 건강관리를 어렵게 한다. B형 간염 보유자가 가장 중요한 정기검진을 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간염 보유자가 원하는 것 사회적 낙인은 치료에도 영향을 주는데, B형 간염의 치료는 수개월 또는 수년 동안 매일 한 알의 약을 먹거나 이틀에 한 번 스스로 주사를 놓는 것으로 충분하다. 진료도 통상 한 달에 한 번만 받는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치료를 받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지만 회사에서 모르게 병원을 다니려면 조금 어려워진다. 집이나 회사 근처 병·의원을 다니면 괜찮지만 대학병원은 보통 회사와 멀고 대기 시간 등을 생각하면 두세 시간이 족히 걸려 월차를 내지 않으면 다닐 수 없다. 회사에서 직원의 병을 이해하지 못하면 적절한 치료를 받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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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만성 간염에 갖는 또 하나의 오해가 만성 간염 환자 또는 만성 간염 보유자는 육체적인 활동을 심하게 할 수 없다고 알고 있는 것이다. 간염 보유자는 육체적인 활동을 제한받지 않는다. 또 간염 환자라고 해도 치료를 받아 상태가 안정되면 역시 육체적인 활동을 제한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과도한 안정가료보다는 적절한 사회활동이 건강에 더 좋다는 것이 최근의 의견이다.
간염 보유자들이 원하는 것은 특별한 대우가 아니다. 다른 사람의 건강에 위협을 주지 않는 한 어느 한 개인이 무슨 병을 가지고 있는지 다른 사람에게 알려질 필요는 없다. 개인의 비밀이 공공연히 알려지는 것은 어느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 또한 의료 정보는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된다. 전문가가 아니면 특정 의료 정보를 근거로 올바른 판단을 하기 어렵다. 학교와 직장 등에서 이런 결정을 내릴 때는 의사의 판단이 우선해야지 일반 교사나 직원이 중요한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된다. 개인 건강기록의 비밀이 보호돼야 하고 또 건강기록이 그것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공개되어야 하는 것은 B형 간염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직장과 학교에서는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신장이나 체중, 허리둘레 등이 회사 동료에게 공개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혈액전문가들과 심리학자들은 성격과 혈액형은 관계가 없다고 하지만 많은 젊은이가 그것을 믿는다. 만약 내 자녀의 담임교사가 혈액형별 성격차이를 믿고 혈액형에 따라 아이들을 다르게 가르친다면 어떨까? 간염 보유자라는 사실은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데 영향을 준다. 내가 간염 보유자인 것이 부인 또는 남편과 자녀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알지 못한다면 결혼을 포기할 수도 있다. 어떤 일을 B형 간염 보유자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시도도 하지 않고 포기하게 된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근거로 이렇듯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우리의 병을 제대로 알게 해달라”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해 저렴한 비용을 쓰면서 비슷한 수준의 국민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질병 치료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를 얻는 데는 큰 어려움이 따른다. 우리나라에서 의사는 무턱대고 따라야 할 대상이지 의문을 갖거나 질문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이 때문에 ‘유사 의료시장’이 형성되어 환자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지만 이들의 상당수는 경제적인 이득을 얻기 위해 아무런 근거 없이 환자들을 속인다. 환자들이 자신의 병을 보다 잘 이해한다면 질병을 치료하는 데 더 적극적일 것이다. 나의 현재 상태는 이렇지만 이 약을 통해 나아질 수 있다는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치료를 선택하거나 치료를 유지하는 환자가 훨씬 많아질 것이다. 또 치료를 받지 않는 이유, 질병에 따른 여러 사회·심리적인 고민을 의논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면 평생 자신의 질병을 관리해야 하는 만성 질환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만성 질환은 한두 해 치료하고 마는 병이 아니라 평생 함께 가야 할 삶의 한 부분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숨어 있는 간염 보유자들이 인터넷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되었고 일부 의사들은 환자들의 질병외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도움을 주고 있다. 필자가 속한 간사랑동우회는 이런 활동을 하는 곳이다. 간사랑동우회가 활동한 지난 7년간 여러 면에서 제도적 개선이 있었지만 작은 단체가 활동하는 데는 아직도 어려움이 많다. 이런 활동은 간 질환뿐 아니라 다른 모든 질병에도 필요하지만 환자단체들은 전문가의 참여가 부족하거나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활동이 미약하다. 인터넷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게 하지만 도움이 필요한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자신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간사랑동우회 회원이 2만명이지만 이것은 전체 간염 보유자의 1%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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