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영식 교수 사태에 관하여, 서울신학대학교 교수님들에게
1.
먼저 이 글은 서울신대 교수님들에게 드리는 말씀이지만, 직접 말씀드리는 방식이 아니라 다수의 사람들도 이해 가능하게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쓴다.
2.
서울신대 교수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을 쓰기 전에 두 가지를 먼저 언급한다. 하나는 박 교수 사태의 최근 상황에 관한 것이다. 서울신대 교수들이 박 교수 사태의 상황을 웬만큼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집단에든 내게 직접 와 닿지 않으면 관심도 두지 않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고, 또 어떤 사람들은 최근 상황의 흐름을 모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내가 이 사안에 관여하게 된 까닭과 정황이다. 우리 교단에서 어떤 사람들은 지형은 목사가 이 일에 왜 그렇게 적극적으로 개입하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저런 추측에 근거하여 나를 비난하기도 한다. 내가 직접 이유를 밝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3.
먼저 박 교수 사태의 최근 상황이다. (나는 지난 주간까지는 이 사안을 ‘사건’이라고 표현했다. 이제부터는 ‘사태’라고 표현한다. 언론에서 어떤 일을 ‘사건’이라고 쓰면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의미다. ‘사태’라고 쓰면 부정적인 쪽으로 더 커지고 깊어지는 상황을 가리킨다.) 박영식 교수 사태가 ‘교권(敎權, 학교와 종교 집단의 권력) 갑질’의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서울신대 이사회의 징계위원회(이사장 백운주 목사, 총장 황덕형 목사, 징계위원장 오봉석 목사)에서 박영식 교수를 ‘해임’으로 결정했고, 이에 대해 박 교수가 교육부에 교원소청심사를 요청해서 지난 9월 11일에 교육부의 결정이 났다. 학교 측의 해임 처분을 ‘취소’하라는 것이다.
서울신대 이사회는 해임도 모자란지 박영식 교수를 총회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이하 ‘이대위’)에 고발했다. 박 교수가 이단이라는 주장이다. 사회법 등 통상 관례에서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법적 원칙, ‘이중 처벌 금지’에 위배되는 것이다. 이대위의 조사위원 2인(김한석 목사, 최원영 장로)이 고발자 서울신대 이사회와 피고발자 박 교수를 조사하여 보고서를 이대위에 제출했다. 내용의 요점은, 교단법에 따르면 서울신대 이사회가 고발 당사자가 될 수 없으므로 이 사건을 이대위가 다루면 안 된다는 것 그리고 내용을 보더라도 박 교수에게 이단 혐의가 없다는 것이다.
이대위는 이 조사보고서를 근거로 회의를 열었다. 기소냐 불기소냐를 결정하는 회의였다. 그런데 이 회의에서 조사보고서를 거부하고 돌연 조사위원 2인 중 목사 위원 1인을 교체했다. 김한석 목사 대신에 이창만 목사가 조사위원이 되었다. 새 조사위원은 황 총장과 동기일 뿐 아니라 황 총장의 총장 선거 운동을 돕는 등 절친이기도 하다. (교단 목회자들의 인간관계를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면 총장과 이 목사가 절친이라는 것은 다 안다.) 박 교수는 이대위에 공식으로 이 목사 조사위원에 대해 기피 신청을 했다. 이대위는 기피 신청을 공식 회의에서 다루지도 않고 그냥 조사를 강행했다.
지난 9월 20일 이대위 회의에서 신임 조사위원 2인은 서면 조사를 근거로 박 교수를 이단으로 기소 의견을 냈고 회의에서 기소가 결정됐다. 그리고 바로 한 주간 후인 이번 27일에 회의를 열어 재판할 예정이라고 알려져 있다.
4.
내가 이 사태에 왜 그렇게 적극적으로 관여하는지에 관한 얘기다. 내가 이 사태에 공식적으로 공개적으로 관여하기 시작한 것은 4월 20일자 한국성결신문(교단 신문)에 “박영식 교수의 징계 건에 관하여” 칼럼을 쓰면서부터다.
박 교수 관련 사안은 내가 초기부터 잘 안다. 당사자들 빼고는 아마 나만큼 이 사안을 잘 아는 사람이 드물 것이다. 내가 교단 부총회장이던 시기에 이 문제가 시작됐다. 내가 총회장일 때 이 일이 커지기 시작했다. 교단 총회장은, 다른 사람들이 (심지어 총회장을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하거나 그렇게 소통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교단 전반에 관하여 훨씬 더 많이 정보도 듣고 보고도 받는다. 서울신학대학교가 교단의 신학 교육 기관이니까 박영식 교수 사건에 관하여 이런저런 세세한 내용을 들었다. 그러나 총회장이 공적으로 개입할 상황까지는 아니어서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총회장이던 시기에 서울신학대학교의 조직신학 교수 임용에 관해서는 임용 절차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서 총회 임원회 결의로 학교 이사회에 공식 공문까지 보낸 일이 있었다. 교수 임용에서 한 지원자의 논문을 ‘자기표절’이라고 판단하면서 임용 과정에서 탈락시켰는데, 사실은 자기표절이 아니었다. 어떤 특정한 사람을 교수에 임용하기 위한 것이라고 충분히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지금 쓰는 이 내용을 보고, 총장이든 이사장이든 교무처장이든 사실이 아니라서 어떤 조치를 한다면, 해도 좋다. 그때 상황을 구체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자료가 있으니까, 어떤 대응 조치든 공개적으로 응해주겠다.) 그때 일을 총장 지휘 아래 교무처장(하도균 교수)이 위원장인 교원인사위원회의 부당한 처사에 관하여 총회장으로서 적극적으로 개입했던 적이 있다. 그 당시의 총장과 이사장이 현재 황덕형 총장과 백운주 이사장이었다.
만일 박영식 교수 사태가 학내 문제로만 머물렀으면 나는 개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독일에서 공부를 마치고 귀국해서 학교에서 강의도 하고 했지만 십 수 년 전부터는 서울신대뿐 아니라 어느 신학교에서도 일체 강의를 하지 않았다. 목회하면서 학교의 학사 일정을 도무지 맞출 수가 없어서였고, 내가 한 과목이라도 맡으면 후배 학자들이 강의할 기회가 줄기 때문이었다. 학내 문제에 내가 관여할 이유도 마음도 없었다. 더구나 박영식 교수는 이 사태 전에는 일면식도 없는 학자였다.
그런데 올해 4월 초부터 박영식 교수 사태가 학교를 넘어 신속하게 확산될 조짐이 보였다. 서울신대를 넘어 신학계 전체와 일반 학계까지, 학교를 넘어 교단의 문제 그리고 한국 교계 전체의 문제로, 더구나 일반 언론에서도 관심을 가지며 한국 사회에도 이 사안이 알려질 상황이었다.
나는 이십 육칠 년 전에 일간지 데스크와 논설위원으로 2년 가까이 있던 경험 덕분에 교계 언론을 포함한 일반 전체 언론의 속성을 조금은 안다. 현재도 한국기독교언론포럼 이사장으로 있어서 우리 사회의 전체 언론 동향, 특히 기독교에 관련된 언론 동향은 거의 주간 단위로 파악하고 있다.
올해 4월 초 정도에 박 교수 문제가 학교 밖으로 빠르게 넓게 확산될 상황이 내 눈에 명확했다. 당시에 징계위원장인 오봉석 목사와 여러 번 길게 통화했다. (오 목사는 나와 동기인데, 절친이기도 하다. 현재는 애매하지만.)
내가 말했다. ‘이 사안이 학교 밖으로 퍼질 거다. 그것을 감안해야 한다. 학자의 학문적 논의를 갖고 징계하는 거 아니다. ’유신진화론‘이란 이름 아래 각기 차이점을 가진 학설이 십여 가지도 넘는다. 오 목사가 학교 이사로 있으니까 잘 알지 않느냐. 손바닥만한 우리 교단, 그것도 좁은 학교 안에서 이 문제가 신학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뻔한 거 아니냐. 황 총장과 백 이사장이 박 교수를 괘씸죄로 치는 건데, 잘 생각해야 한다. 총장과 이사장이 칼을 뽑았고 징계위원회에 회부되기도 했으니, 학교 측 체면 적절하게 세우면서 사안을 되도록 빨리 원만하게 마무리해야 한다. 문제를 확산시키면 안 된다. 유신진화론이라고 하면 황 총장의 글이 박 교수보다 훨씬 더 진화론 쪽에 가깝다. 박 교수를 징계한다면 총장도 징계해야 한다. 박 교수의 저서를 갖고 징계하면 신학계와 교계에 교단이 창피해진다. 이 문제는 조금 후면 학교 내부의 문제를 넘어선다.’
징계위원장 오 목사의 반응은 간단했다. ‘징계위원회는 회부된 내용만 다룬다. 황 총장 고소도 올라오면 그때 다루면 된다.’ 말이 통하지 않았다.
나는 이 사안이 어느 정도 시기를 지나면서 우리 교단 신학교의 위상과 교단의 체통과 연관된 문제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서 한국 신학계와 교회 전체의 문제가 되었다. ‘교권 갑질’이 도를 넘어 횡포를 부리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 문제가 그리스도인의 정직성에 관한 문제라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이 사태의 발단부터 진행 과정을 다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침묵하고 있다면 그리스도인답지 못한 일이다. 더구나 총회장을 지낸 사람으로서, 또 나이도 60 중반이나 된 사람으로서 교단에 관한 공적인 책임도 있는 터이니, 교단 신학교와 교단 전체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이런 만행에 침묵하고 있을 수 없었다.
5.
이 글이 서울신학대학교 교수님들에게 말씀드리는 것인데, 글의 중심 내용이 너무 늦었다. 이제 교수님들에게 드리는 말씀이다. 이 사태의 진행 과정에서, 그리고 적어도 현재의 상황에서 나는 학교 교수들이 이 문제에 무관할 수는 없다고 본다.
1) 서울신대 교수 집단에 속한 사람으로서, 이 문제는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교수가 있다면, 그 사람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 문제가 괘씸죄니, 학교 교수로 있으면서 권력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사람들을 조심하면서 그렇게 교수로 살겠다는 것인가? 현재 이 사안은 거의 사상 검증 같은 상황인데, 학자로서 가르치는 내용과 글 쓰는 내용이 사상 검증을 당할까 조심하면서 그렇게 초라하게 살겠다는 것인가?
2) 서울신대 교수라면 (신학 계열뿐 아니라 모든 학과) 이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니다. 어느 교수의 학문적 논의가 문제가 되어서 해임 처분까지 받은 상황이고, 교육부에서는 해임처분을 취소하라는 결정까지 나왔다. 학교 이사회에서는 총회의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에 그 교수가 이단이라고 고발까지 했다. 남의 일인가? 이웃집 불이 내 집에는 옮겨 붙지 않았으니 괜찮은 일인가? 서울신대 교수 집단이면 한 집에 살고 있는 것 아닌가?
3) 적어도 서울신대 교수라면 누구나 박영식 교수의 ‘창조의 신학’을 읽어보았어야 마땅하다. 더구나 신학 계열 교수라면 더욱 그렇다. 신학 계열 교수들 중에서 연배가 많은 사람들은 더더욱 그렇다. 중요 보직을 맡은 교수라면 진짜로 더더욱 그렇다. 이것이 남의 일인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교수 집단의 한 사람으로서 맞는 일인가? 상식과 양심과 신앙에 비추어 생각해 보라! 하나님 앞에서는 어떤가?
4) 교수들 중에서 박영식 교수의 책을 읽어보지 않는 사람은 (박 교수의 책에서 110~120면만 읽어도 된다. “4장 창조와 진화 중에서 4절 유신진화론, 5절 유신진화론의 과제와 전망” 부분이다. 내 페북 글에 이 11면을 올려놓은 것이 있다.)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교수 집단에 속한 사람으로서 인간다운 소양이 없다고 볼 수밖에 없다. 교수들 사이에서도 남의 학문적인 글을 읽지 않으니까 한국 신학계가 힘이 없는 것이다. 교수들의 글은 겨우 자기 진급을 위한 업적일 뿐이다. 현재의 상황에서 박 교수의 글을 읽지 않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
5) 읽어보고도 전혀 말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1) 박 교수의 글을 읽고 그 글이 해임이나 이단으로 판단 받을 만하다고 진지하게 생각했다면, 뭐 괜찮다. 개인의 판단은 자기 몫이니까. 그리고 진짜 그렇게 판단했다면 서울신대 신학 계열 교수 25명이 동의해서 한국성결신문에 낸 성명서(입장문)와 관련하여 이름을 밝혀라. 내가 거기 동의한 사람이라고. 그러나 지금까지도 그 25명이 누구인지 공개되지 않았다.
(신학 계열 25명의 이름으로 한국성결신문에 전면으로 난 성명서에 관하여. 총장이 신학 계열 교수들을 소집했고, 박 교수를 비판하는 성명서 초안을 써가지고 교수들 앞에 내놓고 서명하라고 했고, 두 시간 정도나 논란이 있었고, 결국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끝났다. 그리고 총장이 개별적으로 연락해서 동의를 구했다고 한다. 교단도 손바닥이지만 학교는 더 작다. 어떤 상황이든 숨겨지는 것은 없다.)
(2) 그러나 박 교수의 글이 해임이나 이단으로 판단 받을 만하지 않다고 생각했다면, 그리고 현 상황에 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비겁한 것이다. 그 사람의 학문이나 신학은 아무 것도 아니다. 지식이 사람을 구원하는가? 제대로 공부한 학자는 다 안다. 자신이 아는 학문적 지식이 얼마나 알량한 것인지 말이다. 거기에 인간으로서 양심도 부족하고, 사람으로서 사회적 상식과 연대감도 없고, 학자로서 올곧은 정신도 없다면 그 학문은 뭐에 쓰겠는가!
현재 이 상황을 학생들도 알고 있다. 이 사태에 관하여 공적으로 한마디도 하지 않는 교수들을 보면서 학생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사회적으로 괜찮은 직업인 교수로 월급 받는, 자기만 직접적으로 피해보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볼 것 아닌가!
(3) 신학 계열 교수들과 그들 중에서 시니어들은 더 책임이 크다. 서울신학대학교의 상황에 관하여 오래 전부터 여러 가지 의견들이 많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는 서울신대의 상황은 신학 계열 교수들 그 중에서도 시니어들이 헌신하고 희생하지 않으면 답이 없다고 본다.
(4) 하나만 더 얘기하자. 서울신대 차기 총장이 되고 싶은 사람들이 현재의 이 사태에 관해서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총장의 기본 자격과 자질이 없다. 현재의 이 문제가 작은 문제인가? 서울신대의 이름이 한국 신학계와 일반 학계에까지, 교계 전체에서 온통 들먹이고 있다.
총장이 되고 싶으면서 자기에게 불리한 점이 있을까봐 한마디도 하지 않는 사람이 총장이 되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현재의 총장 쪽에 붙어서 그 힘으로 총장이 되어볼까 하는 사람들에 관해서는 말을 않겠다. 뭐, 그런 사람들이 가진 사고방식이나 삶의 천박함은 논할 가치도 없으니까. 그러나 적어도 이 상황에서 총장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무슨 얘기든 해야 한다. 그래야 마땅하다. 나중에 총장으로 출마했을 때 이런 질문을 받으면 무슨 낯을 들겠는가. ‘당신은 그때 어디 있었습니까?’
6.
페북 글로서는 아주 길게 썼다. 이 글에 관해서 사실 자체가 틀렸거나 또는 어떤 공적인 조치를 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얼마든지 좋다. 나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라. 어떤 것이든, 공개적으로 얘기하자.
내가 교단의 목사로서 2017년 이후에 몇 년 동안 이어진 서울중앙지방회 분할과 관련하여 교단 재판과 사회 재판 10여 건을 당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못되고 독한 사람들하고 상대할 때는 가장 기본적으로 두 가지가 필요하다.
(1) 되도록 모든 일을 가장 많은 사람이 알 수 있도록 공개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못된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쓰는 방법이 비밀리에 교활하게 일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2) 공적인 발언과 행동들 어느 것이든, 결국은 사회 법정까지 간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교계의 갈등이 심각한 것이면, 거의 예외 없이 사회 법정까지 간다. 슬픈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7.
내 글에 마음이 불편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특히 이 글의 대상이 되는 서울신대 교수들. 내가 서울신대 교수라고 생각하면 나라도 불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의 내용이 현재 우리 교단과 한국 신학계와 교계의 양식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라고 생각하고 새겨들으면 좋겠다. 학교 교수들 중에서도 박 교수 사태에 관하여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힘쓰고 있는 분들이 있는 것을 안다. 고마움을 전한다. 그분들 때문에 학교의 양심이 그래도 유지되고 있다.
나중에, 한참 나중에 말이다. 교수 여러분의 손자 손녀가 여러분에게 질문한다고 생각해 보라. ‘할아버지(할머니), 옛날에 교수로 계실 때 이런 일이 있었다는데, 할아버지(할머니)는 그때 무슨 일을 하셨어요?’ 서울신대 교수로 몸담고 있었다는 사실이 초라해진다면 얼마나 슬픈 인생인가?
학교에서 보직을 맡으면서 ‘학내 정치적으로’ 성공하고 싶은 생각만 없다면, 학자가 뭐 겁날 것이 있는가? 연구하고 가르치면 되는 것 아닌가? 대한민국의 법적인 상황에서 누가 교수를 쫓아낼 수 있는가? 정년이 보장된 교수야 더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마지막으로, 나까지 포함시켜서 기도한다. 기독교 이천 년 역사에서 아마 가장 잘 알려진 기도문이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Kyrie eleison!”
지형은 목사
첫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