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부족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이렇게 간증 문 을 쓰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옵니다.
저는 서울에서 18살 때 여름방학 때 저의 고향에 사시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뵙고 싶어서 내려가서 일손을 도와 드리던 중 당시에 몇 개 마을에서 10살 -20살 밑으로 장티푸스가 유행성으로 기성을 부렸었는데 그때에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동창생이었던 옆집에 여자 친구가 이병으로 신음을 하여서 잠깐 놀러가서 위로하고 난후 그 이튿날 밤부터 감기 같은 증상으로 차츰차츰 아프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고열에 코피를 쏟으면서 드러눕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병은 (왼병) 차츰차츰 온몸을 열이 오르게도 만들며 각 뼈 마디마디마다 통증도 더 심하게 진통을 동반하며 밥맛도 떨어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하도록 통증이 몰려왔었습니다. 그러자 저는 힘을 잃기 시작했고 코에서는 피가 나오기 시작하면 지혈이 되지를 않았었습니다. 그러기를 두 달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다른 것은 하나도 먹고 싶지를 않은데 찬 물이 그렇게도 먹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장티푸스에는 배부르게 먹는 것 기름기 있는 음식과 단 음식, 메운 음식 짠 음식, 냉수를 먹으면 절대로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만 잘 조절하면 우리 동네 개울건너 신현철 이라고 하는 형이 제일먼저 이 병으로 죽음을 맞이하였었습니다. 그러므로 먹는 것만 잘 조절하면 은 죽지는 않는다고 했습니?! ?.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장날이 돌아왔는데 송아지를 팔로 장에를 다녀오신다면서 혹시 물먹고 싶어도 냉수를 먹으면 절대로 안 된 다고 하시면서 우물에 나가서 물을 길어먹지 말라고 하셨는데 저는 그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고 우물에 나가서 두레박으로 물을 길러 실컷 마시고 말았습니다. 그러고 나니 그날 밤부터 온몸이 갑절로 통증과 고통이 오기를 시작하는데 불덩어리 같이 뜨겁게 열이 오르며 통증이 더 심해졌으며 열이 오르니까 코피가 또 다시 터지기 시작하는데 당시에 소변을 보는 요강에다 흥건 하게코피를 흘렸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밤낮없이 사경을 헤메이기 시작을 합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온갖 약을 다 수소문하여 약재를 구하여 저에게 달여 먹였으며 할머니는 저를 위하여 절간 찾아가 불공을 드리며 스님에게 저를 위하여 특별히 불공을 49일 동안을 들 여 달라고 부탁을 하셨으며 한걸음 더 나아가 경상도에서 서울에 있는 유명한 무당 3명을 불러서 1박2일 동안 대 굿판을 벌였으며 별의 별일을 다 하였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병세는 더 악화되어 갔습니다. 그리고 의사를 왕진케 하였으나 처음에는 잘 오더니 이제는 죽을 사람을 내가가서 무엇하려고 진료를 하겠냐고 만약에 그러다가 죽으면 자기의 명예만 실추된다고 왕진을 못 오겠다고 거절했다는 겁니다.
저는 어느 듯 몸 저 더러 누운 지 석 달이 지나갑니다. 제 몸의 상태는 피골이 상접하여졌으며 손발이 오 글어 들어갔으며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고개도 못 이겼으며 돌아눕지도 못하고 라디오 볼륨 하나 조절 할 힘도 없을 정도로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석 달 동안 깊은 잠을 한 쉼도 이루지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피골이 상접하게 되었으며 통증과 고통이 너무나도 심하여 참고 견디어 낼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정말 죽은 시체와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정신만은 너무나도 맑았습니다. 그때에 할아버지께서 하시는 말씀이 인명은 재천이라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 뜻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백약이 무효였으며 그 고통은 이루 말로 형언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어머니께서도 포기한 저를 할머니도 께서는 저를 포기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기어이 살리고 말지 절대로 죽도록 내버려 둘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더 이상 안 되겠으니까? 스스로 팔년을 추우나 더우나 하루도 빠짐없이 냉수로 목욕재개하시고 정한 수를 떠놓고 정성을 드려서 빌고 빌어서 칠성 불공 도통 했다고 하셨던 분이 바로 담과 담사이에 세워진 고향 교회인 구세군 신흥영문 (예배당)을 찾아 가시어 당시 여자특무 (전도사)님이 시무하셨는데 우리 손자 좀 살려 달라고 우리손자는 하나님 외에는 못 살 릴 것 같으니 제발 내가 지금까지 부처님만을 섬기며 칠성 불공 8년 동안 드려서 도통을 하였으나 이제는 우리손자를 못 살리겠으니 내가 이제 하나님을 섬기겠으니 우리 손자 좀 살려 달라고 애원을 하시었습니다.
그런데 후에 알게 되었는데 신흥영문 (교회)에서는 무당들이 우리 집에서 굿판을 벌일 때에 철야기도를 하면서 엘리야의 재단시합과 같은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제발 저를 통하여 우리 가정 같이 불교와 유교사상 미신에 찌들인 데다 황희 증성 자손으로 자신들이 양반이라고 교만하고 완고한 우리가정이 예수 믿게 해 주시어 이 지역이 복음화 되게 해 달라고 밤새워 온 교우들이 모여서 기도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할머니의 요청은 바로 엘리야의 갈멜산의 불의 응답과 같았으므로 온 교인들이 즉시 우리가정에 모여서 삼일동안 세 번 예배를 드린 후부터 약을 먹으면 약 효가 나면서 몇 달 동안 잠을 한잠도 이루지 못했었는데 잠이 오기 시작하면서 통증도 열도 차츰차츰 가라않으면서 매일같이 새벽기도에 아버지 등에 엎여서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으며 차츰차츰 회복이 되기 시작하여 오굴어 들었던 손발이 펴졌으며 그동안 닫혔었던 말문이 터였으며 고개도 들을 수 없었던 제가 고개를 들을 수가 있게 되었으며 엎치는 것도 못하던 제가 엎치게 되었으며 차츰차츰 일어나 앉게 되었으며 일어서서 걷기까지 이 모든 과정을 마치 어린 아이 때처럼 새로 다 배우게 되었으며 걸 엄마를 하기까지 6개월이 걸렸습니다. 저는 이렇게 하여 죽을병에서 낳게 되어 지역 주민들의! 한결같은 말씀이 천명이라고 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살려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우연히 낳게 되었다고 커다란 착각을 하였었나봅니다. 제가 완전히 회복된 후 저의 아버지를 따라 경기도 이천 장호원으로 올라갔었는데 그만 저를 아프게 했던 장티푸스가 저의 아버지에게 전염이 되어 아버지가 몸져누우시게 되었습니다. 약도 저처럼 백약이 무효였으며 아버지는 너무나 고열과 통증이 심하니까 헛소리를 하기 시작하시는데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경기도 이천군 보건소에서는 나와서 저의 집을 동리에서 격리시키고 소독을 하는 등 야단법석을 떨 정도였으니까요
그러자 어머니께서 무당을 찾아가서 점을 해보니 우리는 예수를 믿으면 안 되는데 예수를 믿어서 그렇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무당을 불러서 밤새도록 굿을 하게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무당이 성경책을 찾아내더니 이 책을 당장 불로 태우라고 하여서 우리는 어리석게도 성경책을 불태웠습니다.
그렇게 하면 낫는다는 아버지의 병세는 점점 더 악화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는 수 없이 또 다시 간호도 잘하시고 여러모로 아버지에게 도움을 주실 수 있는 할머니 댁인 고향으로 다시 내려갔습니다. 고향에서 이제는 제가 아버지 곁에서 간호를 하게 되었으며 아버지는 고향에 내려가시어 바로 교회를 나가시어 예배를 드리면서 차츰차츰 회복되었습니다.
아버지의 기력이 어느 정도 회복 되는 것을 본 저는 이제는 도시로 나아가 기술을 배워서 自手成家하여 錦衣 還鄕하겠다고 굳게 결심을 하고 대구로 갔습니다. 대구에서 송학염직이라는 섬유를 염색하고 가공하는 공장에 취업하여 열심히 일하던 중 손가락두개가 롤러에 끼어서 가운데 손가락은 한마디를 약지는 두 마디를 절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손가락을 다치는 순간 저는 마치 저 높은 곳에서 저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깊은 절망감을 느꼈으며 피가 억수같이 흐르고 통증도 무척 심하였지만 나는 손가락을 잃게 되었다는 절망감과 너무나도 큰 충격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회사에서는 한 푼의 보상도 받지 못하고 치료도 제대로 받지를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고용주들의 권세가 하늘을 찌르고 고용인 저는 아무런 권한이 없었으므로 한동안 그 회사 수위실에서 근무하면서 공부를 하게 되었으며 주경야독을 한동안 하다가 안전한 직장을 선호하여 양복점에 취직하여 기술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명절이 되어 고향을 갔는데 거기서 제가 읽고 있던 성경책을 저의 숙부가 빼앗아서 찧어내면서 예수를 믿어서 제가 이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생각을 해보니 양복점 사장들은 초하루 보름으로 돼지 대가리 사다놓고 시루떡 해다 놓고 고사를 지내는데 돈을 잘 버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보기에 오히려 믿지 않고 양복일하는 친구들보다 예수 믿는 저에게 더 가혹한 일들이 더 많이 닥치는 것 같아서 저도 그 순간 다짐하기를 이제부터 예수를 믿지 않고 절에 다니기로 작정하고 찧어진 성경책을 소각시켰었습니다.
그리고 몇 일후 어머니와 함께 절간을 향하여 쌀을 한, 두말을 어깨에메고 안고 온갖 씨름을 다하며 지고 갔는데 가다가 무거워서 쉬었다가 혹은 땅에 놓으면 그 공덕이 땅으로 새어 들어간다기에 이렇게 정성을 다하여 메고 지고 안고 갔습니다. 그리고 절에 얹을 돈을 가지고 반야사라는 절을 찾아가 부처에게 절을 2,000번하면 눈을 끔쩍 하면서 처다 봐 준다기에 한겨울에 땀이 날정도로 절을 하고 점심때가 되어 절밥을 얻어먹고 스님들과 주사위를 가지고 불교에서 하는 윤회설 놀이를 하다가 집에 돌아왔는데 그때부터 신경쇠약 (노이로제)라는 현대의학으로 치료 할 수없는 불치병을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때부터 저는 병원과 유명한 한약 양약 등을 전전긍긍하며 찾아다녔지만 신경성소화불량 에다가 축농증 비후 성 비염 불면증 빈혈 영양실조 증으로 시달리게 되었으며 신경외과 정신과 내과병원 등등을 찾게 되었지만 백약이 무효였습니다.
오히려 더 잘될 줄 알았던 일이 더 안 풀리고 꼬여만 갔습니다. 그러므로 한없는 절망감과 깊은 좌절감에 처하게 되었었는데 바로 그 밤 이었습니다. 너무나도 괴로워서 퇴근하면서 술을 한잔하고 들어와서 자려고 하는데 저도 모르게 찬송가 364장 내주를 가까이 하게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라고 하는 찬송을 부르게 되면서 자신도 모르게 하염없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였으므로 그 이튿날 성경 찬송가를 사들고 대구 봉덕동에 있는 기독교장로회 구남 교회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통하여 주님의 사랑과 평안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열심히 교회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이상한 것은 교회 나가면 평안하지만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든지 양복점에서 일을 할 때는 평! 안이 없어지고 왼지 불안에 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그의 대부분 아침 5시에 일어나서 청소하고 세수하고 아침식사를 하고 밤12시까지 일을 하였음에 도 불구하고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나도 고통 서러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밥은 굶어도 약을 먹지 않고는 살수가 없을 정도로 병원과 약국의 약을 7년 동안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과다한 약들을 복용하므로 인하여 저의 모든 장기는 망가져갔습니다.
한약 양약 온갖 약을 다 사먹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아무리 약을 사먹어도 효과가 나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제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갔습니다. 그러든 어느 날 제가 27살이 되던 여름이었습니다. 제가 당시에 고향에 가 있었는데 부모님이 저의 몸이 부실하여 약에만 의존하는 것을 보시면서 무심코 하시는 말씀이 너는 어째서 젊은 녀석이 교회 다니면서도 약만 매일 그렇게 먹느냐 저 건너 할머니는 교회 다니고 나서는 감기약도 안 먹어도 하나님이 다 치료해 주신다는 데 너는 왜 그러냐고 하신 후, 들로 나가셨습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그 소리가 충격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도랑건너 할머니는 교회 다닌 지도 얼마 안 되었고 아멘소리를 몰라서, 라면, 라면 이렇게 하실 정도로 한글도 모르고 그런데 그에 비하면 저는 얼마나 더 많이 신앙생활을 했는데 그래서 저는 저도 모르게 방안에 홀로 앉아서 이렇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아버지 정말 살아계십니까?
정말 살아계신다면 왜 내가 이토록 고통을 당하는데 도와주시지 않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은 살아계시지 않는데 사람들이 하나님이 살아계신다고 공연히 있지도 않는 하나님을 존재한다고 하면서 거짓말하는 것은 아닙니까?
그리고 이 성경책도 있지도 않은 사실을 가짜로 쓰여 져서 공연히 사람들을 현혹하여 믿게 하는 것은 아닙니까? 그렇다면 이 어리석음을 무엇으로 보상받겠습니까?
그리고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존재하시지만 하나님께서 예정 (선택)해 놓으신 자가 따로 있다는데 저 같은 자는 예정 (선택)되어 있지 않아서 이렇게 저는 버려졌습니까? 그렇다면 저는 더 이상 이세상의 존재 할 아무런 희망과 가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생을 포기하렵니다. 그런데 만약에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저에게 응답을 주시려면 3일내로 응답하여 주십시오. 만약에 삼일내로 응답을 안주시면 저는 죽음을 선택하겠습니다. 이렇게 기도를 하고 난후 저는 세상이 다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허전하고 공허한 것을 생전처음 느끼게 되었답니다.
아마 저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없는 것 같았는데 얼마나 크게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었는지 그때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틀 밤을 지나게 되었으며 바로 삼일 째 되는 새벽이었습니다. 꿈속에 아주 아름답고 화사하고 얼굴에 아름다운 미소를 지닌 한 여인이 사푼히 저에게 내려앉으면서 저에게 엽서 같은 편지를 전해주면서 읽어주었는데 뭐라고 했는지 기억은 없습니다. 그 꿈을 깨어 오늘 어디서 아름다운 자매에게 연애편지가 올라나 하고 있는데 고향의 신흥교회에서 새벽기도 종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마지막으로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와서 죽으려고 마지막으로 교회를 가는데 느낌이 허공 속에 떠서 가는 것 같았습니다. 교회에 들어가 기도를 하는데 죽음을 앞에 두고 기도를 해서 그런지 생전처음으로 뜨거운 눈물의 기도와 이상야릇한 감정으로 기도를 드렸으며 예배를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마쳤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예배 후 목회자님께 상담을 요청하여 저의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깜짝 놀라시면서 말씀을 하시는 도중 사모님이 뒤 따라들어 오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황 선생님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려고 그러시는데 오산리 순복음 금식기도원 가서 3일간 금식기도하세요 그러시는데 저도 모르게 예 정말 저를 죽으라고 하시는군요? 저는 지금까지 한 끼도 굶어 본적이 없는데 라고 중얼중얼 하는데 값 자기 제 속에서 벽력같은 음성?! ? 들리는데 “그것이 네 - 기도의 응답이니라.” 마치 이 소리는 세상에서 뭐라고 표현 할 수 없을 정도로 청천 벽력같은 소리였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우레 소리 같습니다. 그 음성을 듣는 순간 저는 값 자기 용기가 생겨서 예 겨우3일해서 되겠습니까? 일주일은 하겠습니다. 이렇게 확신과 용기에 찬 말로 순간적으로 바뀌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1980년 8월 12일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그때가 마침 여의도에서 민족 복음화 대성회가 열렸던 때였습니다. 저는 복음화대성회를 끝까지 참석한 후 서울 중림동에 위치한 모 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드리고 오산리 순복음 금식기도원을 찾아갔습니다.
찾아가서 등록을 바로하지 않고 첫 집회에 참석을 하면서 나름대로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천막 성전 안에 국내외적으로 시한부적인 불치병으로 그곳을 찾아 온 사람들로 가득 찼었는데 몇 천 명은 되는 것 같았습니다. 참석해서 보니 당시에는 마당도 포장도 안 되었으며 진흙탕 길이었는데 사람들의 모습은 피골이 상접하였으며 힘없이 흐느적거리며 겉 는 모습에 저는 두려움을 느끼게 되어 아 이렇게 해서 사모님이 3일간 금식을 하라고 하셨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사무실에서 3일간 등록 접수를 하고 표를 끊고 집회에 참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집회 참석 후 당시 옆에 있는 분에게 물었습니다. 몇 일간 금식을 하셨냐고 물었더니 27일째 금식을 한다고 하는데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오히려 저보다 더 건강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분이 지금의 윤석전 목사님이셨습니다. 저에게 형님처럼 아주 이, 삼 일 동안 잘 대하여 주셨습니다. 그가 그의 아버지에게 핍밖을 받아 죽을 라고 하다가 삼각산에서 은혜 받은 간증도 저에게 들려주었습니다. 난 생 처음으로 금식기도를 하는데 한 끼, 두 끼 금식횟수가 늘어나면서 저는 점점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며 전신이 싸늘해져갔으며 거동이 불편하고 잠자리에 누우면 땅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때에 최자실 목사님께서 집회에 참석하여 금식한지 3일이 되었는데도 성령을 받지 못 하였다면 본성전보다 작은 에베소 천막성전으로 오후2시에 ! 모이라고 하여 에베소 성전에 참석하여 성령 대망 회라는 집회를 최 목사님이 주관하여 인도하셨는데 집회 후 다 일어나서 방언을 받으려면 손을 높이 들고 할렐루야 할렐루야를 계속해서 하라는 겁니다.
할렐루야는 세상 말 보다는 천국 말이라고 하나님께서 최 목사님에게 깨우쳐 주셨다면서 할렐루야를 계속 하다보면 성령께서 임하시고 방언을 받게 된다고 하면서 강조하시어 저도 일어나서 손을 들고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를 계속하다 보니까 오히려 저의 몸은 마비가 되어서 저는 하는 수업이 쓰러져서 아무런 은혜도 받지 못하고 성전을 나와야만했습니다. 당시에 많은 분들이 성령 충만을 받고 방언의 은사를 받았으며 뜨거운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통회 자복하는 역사가 일어났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히려 한쪽 옆구리 쪽이 마치 뭐가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이 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기서 더 이상 물러 날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금 사무실을 찾아 4일을 더 연장하겠다고 재등록과 등록금을 납부하고 성전으로 들어가서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여기까지 와서 하나님을 못 만나고면, 죽어서 시체가 되어서 내려갈망정 절대로 하나님을 안 만나면 절대로 내려가지 않겠다고 생명을 내어 거는 기도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목요일이 되었습니다. 목요일 낮 성회 때 최 자실 목사님께서 이르시기를 이 기도원을 공원묘지 가운데 세우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여기에 은혜 받으려고 오는 성도들에게 공동묘지 사이사이 엎드려서 이 무덤 속에서 죽어있으며 썩어있는 뼈들과 같이 우리의 혈기도 우리의 자아도 죽게 하고 저렇게 썩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하기위하여 이곳에 세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저에게 깊은 감동이 되어 저는 무덤사이에 엎드려 어려서 남의 밭에서 참외 따먹은 것 까지 다 회개하였으며 더 나아가 우리조상들이 하나님 섬기지 않고 우상숭배만한 것까지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금요일이 되었으며 금요철야기도회 간증시간이 되었는데 많은 분들이 나와서 간증을 하는데 각 종 암들을 고침 받은 것과 백혈병을 치유 받았다는 간증을 들었을 때 대부분의 공통점이 과거에 교회도 나가지 않았으며 예수를 믿지 않았는데 이렇게 하나님께서 이 기도원에 와서 기도했더니 고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백혈병환자는 군산에서 그의 부모님이 불교협회 신도 회 회장이고 그의 가족가운데는 병원을 경영하는 의사가 몇 분이 된다고 했는데 그는 서울대학병원에서 백혈병인줄도 모르고 입원을 오랫동안 했었는데 하루는 친가식구들이 찾아오고 하루는 외가식구들이 찾아오고 하루는 처가식구들이 돌아가면서 찾아와서 수혈을 해주고 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순복음 교회를 섬기는 8촌 누님께서 목사님을 모시고 심방을 오는데 예수님으로 보이더라는 겁니다. 그리고 목사님이 머리에 손을 얹는 게 아니라 예수님이 손을 얹고 기도하는 환상을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상하게 여긴 환자가 담당 의사를 불러서 내 병명이 뭐냐 라고 다 고치니까 백혈병이라고 하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강제로 퇴원을 강요하면서 나 지금 죽어도 좋으니 예수 믿고 천국이나 간다고 소원하면서 억지로 퇴원을 요청하니까 당신은 병원에서 나가면 40분 내로 죽는다고 하여 그래도 좋으니 나를 순복음 금식기도원으로 앰불란서로 태워달라고 하여 도착을 했는데도 죽지 않고 몇 시간이 지나가도 괜찮고 금식하면서 하루가 지나도 괜찮고 이틀이 지나도 괜찮고 사흘 나흘 닷새가 지나가도 안 죽고 있는데 갑자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기를 일어나라 너는 이제 다 낳았다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다 낳아서 친가. 처가. 외가댁의 가족 들이 간증을 하는데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저 자신을 들여다보니 다른 분들은 다 저렇게 은혜를 받아 병 고침도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나는 이게 뭐냐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저 혼자만 버림받은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엄청나게 외로웠으며 고독했습니다. 마치 엘리사가 엘리야를 쫓아가며 멸시를 받은 것처럼 제가 그랬었습니다. 너무나도 외롭고 쓸쓸하고 고독한마음을 가눌 길 없어 집회를 마치고 성전에서 소등을 하기에 누워서 약간의 눈을 부치고 일어나 깜깜한 밤에 양치질을 하고 대충 세수를 하고 기도 굴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왼 일일까요? 기도 굴마다 몸부림을 치면서 기도하느라고 기도 굴 하나도 비어있는 굴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힘없이 비틀거리며 쓰러지고 넘어지고 하면서 기도 굴을 찾아서 저 밑으로 엉금엉금 마치 다 죽어가는 사람이 최후의 몸부림을 하면서 비참하고 처절한 모습으로 기어가니까 마침 목사님이 40일금식기도 하는 굴이 있었는데 그 기도 굴이 비어 있어서 얼른 들어갔더니 촛불도 켜져 있었고 성경책도 펴져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 굴에서 주기도문을 계속 외웠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기도원 갈 때에 기도 굴에 잘못 들어가면 악령을 받게 된다면서 기도 굴은 좀처럼 들어가지 말며 들어가면 찬송하고 주기도문을 많이 외우고 기도하라고 하여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에 저도 모르게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저에게도 은혜를 주시면 이제는 세상일하지 않고 주의일하겠습니다. 그리고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를 입으로 하기 시작하여 불과 얼마 안 되어 갑자기 힘이 하나도 없었는데 두 손을 모아서 기도하는 손에 갑자기 굉장한 힘이 순간적으로 콱 하고 오더니만 몸이 불덩어리같이 뜨겁더니만 혀가 입천장으로 확 말려 올라가면서 방언이 나오더니 갑자기 뱃?! ? 깊은 곳으로부터 무슨 물줄기 같은 게 뿜어 나오면서 회개의 눈물이 터져 나오면서 진동을 하더니 무릅을 꿇었음에도 불구하고 막 뛰어오르면서 진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확신이 오기 시작하는데 저도 급기야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만나주셨다는 확신이 오면서 온몸과 마음에 희열이 가득 차오르면서 나에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다는 그 감격과 희열 속에서 감격의 눈물과 회개의 눈물이 뒤범벅 되어 얼마나 신비스럽고 황홀감에 도취 되었는지 정말 그야말로 제자신이 몸 안에 있었는지 몸밖에 있었는지를 모를 정도이며 세상에서 술 취한 것과는 비교가 되지를 않았습니다.
이 놀라운 은혜체험을 어떻게 말과 글로서는 형언할 수가 없음을 말씀드립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저를 깨우쳐주시는데 저를 18살 때 죽음의 길에서 살려주었던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주의 종이 되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확장하는데 쓰임받기를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깨닫지 못하고 은혜를 배신하고 세상길로 세속에 물들어서 사는 너를 이렇게 혹독하게 고통을 가하지 않았다면 네가 여기까지 찾아와서 나에게 굴복하였겠느냐 는 깨달음의 성령의 세미한 음성을 마음속으로 들려 주셨습니다.
저는 그 제서야 깨닫고 그 기도 굴 에서 얼마나 어리석음을 회개하며 통회자복을 하면서 울고 또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얼마나 큰 은혜를 받았는지 뭐라고 형언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그러면서도 그 강력한 은혜의 성령의 폭탄 같은 능력에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저도 모르게 오히려 하나님 저같이 부족한자에게는 이정도의 은혜 가지고는 부족하고 우리 가정같이 불교에 심취되어 우상숭배 잡신숭배에 찌들인 가정을 구원하려면 더 강력한 은혜를 받아야한다면서 더 강한 은혜로 역사를 해달라고 기도를 세 번이나 하게 되었는데 그때마다 더 강력 하게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그 당시 밤 2시경에 들어간 걸로 아는데 오전10시까지 기도하고 주님과 교제를 했는데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는데 장시간동안 기도를 했었습니다. 기도 굴에 들어 갈 때는 다 죽어가는 산송장 같았었는데 은혜를 받고 나올 때는 힘이 넘 처 났으며 평상시보다 더 강건해졌습니다. 저의병도 한꺼번에 노이로제 신경쇠약 불면증 위장병 페병 축농증 비후성 비염 신장 결석 증 동상까지 몽땅 다 고쳐 주셨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찬양 드리며 무한영광을 돌려드립니다.
이 귀한 은혜를 받고 보니 온 세상이 새로워졌습니다. 너무나 감격스러워서 저는 더 은혜로운 신앙생활을 지속하기위하여 대구에서 직장을 서울 명동으로 옮겨 여의도 순복음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새롭게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여의도 순복음 교회 청년선교회에 가입하여 전도부에도 가입하고 매주일 마다 노방전도를 하였으며 첫 주에는 여의도 서울역 그 다음 주는 남산공원 그 다음 주는 영등포역 그 다음 주는 서소문 공원 이와 같은 순으로 돌아가면서 주일날은 오전9시 청년선교회 예배와 오전11시 조용기 목사님 예배에 참석하고 은혜 받은 청년들끼리 모여서 전도를 저녁까지 하고는 밤에는 순복음교회 버스로 오산리 순복음 금식기도원으로 청년선교회주체로 열리는 성령 대망 회에 철야집회에 참석하고 여의도로 돌아와 각자 직장으로 곧바로 출근합니다.
은혜가 충만 할 때는 밤낮없이 3일 동안도 눈 하나 안 붙이고 매일철야집회에 참석하고 직장에서 일하고 하는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여기가 좋사오니 하면서 은혜 받을 때 하나님과 약속을 망각하고 서울명동에서 돈 벌어 순복음 교회 또는 영락교회를 나가면서 은혜로운 신앙생활 하는 게 저의 꿈이 되었습니다. 엄청난 은혜를 받으면서 신앙생활을 멋지게 할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의 꿈은 명동에서 크리스찬 양복점이라는 간판으로 양복점을 경영 하는 게 꿈이었는데 제가 1년 전에 삶과 죽음의 귀로에서서 하나님께 기도 했을 때 꿈속에 응답으로 저에게 편지를 전해준 천사가 또 꿈속에 나타나서 이번에는 저에게 모세가 받았던 십계명을 저에게 들려주었습니다. 그래서 여의도 순복음 교회 집사님이 경영하는 양복점에 취직하여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를 하고 있던 차에 1981년 여의도 순복음 교회주최로 전국대학생 청년금식기도회가 있었는데 그때에 제가 조장이 되어 함께 4일 동안 금식하며 서원기도를 하는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구세군을 떠오르게 하시면서 역대 담임사관님들의 모습을 회상케 하시더니 저를 보고 구세군으로 가라고하셨습니다. 한 때 저는 부족하지만 조용기 목사님 같은 종이 되어 여의도 순복음 교회와 같은 대?! 奐냠만? 목회할 수 있는 큰 그릇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린 때가 있었는데 느닷없이 구세군을 왜 가라고 하시느냐고 주님께 물었더니 구세군에 가서 성령의 운동을 일으키라고 하시면서 저의 마음을 뜨겁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 저를 얼마나 슬프게 울려주시는 지 정말 한없이 울게 하셨습니다. 저는 왜 그렇게 하시는지 당시에는 잘 몰랐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구세군에 와서 보니 성령님께서 미리아시고 저를 그렇게 슬프게 하셨던 것 같았습니다. 아마 22년동안 구세군에서 사역을 감당하며 걸어온 고비 고비 힘들게 넘어야할 산이 많다는 것이었나 봅니다.
끝으로 부족한 만삭되지 못 한자와 같은 미말의 종에게 이렇게 엄청난 은혜를 주신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옵니다. 실은 20 여년 전 부터 제안 내주하시며 역사하시는 주님께서는 기독교 방송 새롭게 하소서 프로그램에 저에게 간증을 원하셨습니다만 왼지 저 아닌 더 훌륭한 종들의 간증이 청취자들에게 더 많은 은혜를 공유하게 될 것 같았으며 이 부족한사람이 공연히 잘못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 우지나 않을까하여 지금까지 망설였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도리어 저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지 않으면 저에게 화가 미칠 것 같아서 이렇게 간증 문을 작성하게 되었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옵니다.
할렐루야!
첫댓글 아,은혜로워요ㅠ_ㅠ...감사합니다
간증 실감나네요...순종한 사관님 너무멋지세요..
좋은 간증 감사합니다. 퍼갑니다
넘 은혜스러운 간증입니다
나의 순복음교회에서 첫신앙 생활과 오산리기도원에서의 금식기도시절이 생각나네요^^ 결국은 하나님의 승리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