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열린 북한 조선노동당 제7기 2차 전원회에서 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으로 이름을 올리고 이런 저런 가십과 함께 우리의 눈과 귀에 낯설지 않은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이 일요일인 21일 아침 서울에 왔다. 그녀가 이끄는 북한 예술단 사전점검단 7명과 함께다.
전 날 저녁까지만 해도 이들의 방남이 전혀 예견되지 못한 상황에서 전격 취소돼 깜깜이로 우왕좌왕 몸이 달아야 했던 우리 당국의 입장에선 천만다행(?)으로 한숨을 돌리며 이들을 맞아하겠지만 한마디로 대한민국이 어떻게 나오나 ‘간’을 보고자 우롱하고 조롱하는 처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느끼게 된다. 현송월 일행은 남북 실무접촉에서 합의한 날로부터 하루 늦은 21일 오전 9시 경 경의선 육로로 방남했다. 현 정부 들어 처음 경의선을 통한 입경(入京)은 처음이다.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에서의 북한 예술단 공연을 위한 사전 점검단의 행태를 보면서 다시 되새기게 되는 북한집단의 겉과 속이 다른 양면성은 지상 최고의 그 어떤 눈부신 쇼! 쇼! 쇼! 보다 더한 기대감을 주게 한다는 사실이다.
한편의 장르를 불문한 대서사시가 시현되려 하고 있다. 상상을 초월한 세기적 각본에다 연출력, 흥행 초대박 보증수표인 최고의 배우를 동원하고 있다. 김정은이라는 희귀의 각본과 시나리오를 쓴 작가 겸 연출 감독에다 조평통 위원장 리선권이라는 현장 지휘 조감독, 거기에 현송월이라는 최고의 배우를 내세워 아직 시사회 뚜껑이 열리기도 전부터 대한민국 전 관객의 시선을 한데 모아 울리고 웃기며 절절매게 하고 있다.
당연히 개봉 무대는 대한민국 5천만 민족은 물론 전 세계인의 눈과 귀가 한반도로 향하고 있는 평창 동계올림픽 특설 무대이지만 무대 현장에서 큐(개막식 선언)사인이 있을 20여일이 채 남지 않은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바로 지금에서부터다.
평창 동계올림픽에 삼지연 관현악단이 중심이 된 예술단을 이끌고 올 것으로 확실한 현송월 모란봉 악단장이 올림픽기간 예정된 한국에서의 공연을 위해 사전 점검단을 이끌고 20, 21일 방남해, 일정과 예비된 장소 등을 확인하기로 사전 협의돼 있었다. 그러나 북한은 하루 전인 19일 밤 10시 어떤 이유나 설명도 없이 일방적으로 점검단의 남한 방문을 취소, 통보했다. 한마디로 있을 수 없는 행동을 또 다시 우리 측에 내 보인 것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20일(한국시간 21일 새벽) 스위스 로잔에서 회의를 열고 북한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를 포함해 22명의 선수단을 확정했다. 임원24명까지 하면 총46명이다. 하지만 여기에 예술단과 응원단, 시범단 등을 더하면 전체 방한인원은 500명 선을 웃돌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한반도기를 앞세워 올림픽 개막식에 공동입장하고, 올림픽 최초의 여자 아이스하키의 단일팀을 구성키로 했다. 한반도기 입장을 놓고는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3수에 걸친 유치전쟁을 치렀느냐는 대립과 비아냥도 컸다. 여자하키 단일팀 구성과 관련해 해당 선수단은 물론 여론이 비등하자 대통령부터 장·차관, 청와대 고위급 인사, 교육감, 여당 정치인 등 힘 있는 사람이라면 다 나섰다.
말의 성찬도 이어졌다. ‘비인기 종목의 위상 높이기’에서 ‘개인의 욕망 잠재우기’ ‘위대한 역사에의 헌신’ 이라는 짜 맞추기에서 달래기, 실기 적 극언 강요까지 나왔다. 거기에는 지금까지 쌓아온 스스로의 노력과 땀과 눈물의 결실보다는 전체를 위해 개인을 바치라는 전체주의적 사고가 지배하기도 했다.
민족을 위해? 평양을 위해서? 북녘의 당국자들이 어떤 표정으로 지켜봤을지 궁금해진다. 당연히 모처럼 찾아온 절호의 기회를 활용해 얼어붙은 한반도 냉전 위기를 탈피하고자 하는 심정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핵과 미사일로 대한민국 국민과 세계를 향해 음흉한 흉수(兇手)를 멈추지 않는 집단에게 도(度)를 넘고, 분에 넘치는 행동으로 비위를 맞추며 빅 이벤트 산물에만 급급하려 한다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산간만 다 태우게 된다는 우(愚)를 범할 수 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친척집을 방문하거나 친구의 집을 갈 때도 미리 약속하거나 불가피 약속이행을 못하게 될 경우 이유를 설명하고 미안한 마음을 전하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북은 이번에도 역시 일방통행 식이었다. 그리고선 하루 늦게 평양의 예술단 점검단이 왔다. ‘점검단’이란 표현이 적절한지에 대해 논할 필요 없이, 우선 무엇을 점검하고, 또 어떤 것을 점검받겠다는 것인지? 당국자 간에 잘 알아서 할 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간과해선 안 될 일이 있다.
2015년 12월12일 현송월이 이끄는 북한 모란봉 악단이 베이징(北京) 공연 첫날 불과 두어시간 앞두고 공연이 취소돼 평양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이다. 공연취소 이유에 대한 공식 발표도 없었다. 다만 공연 전 날 리허설을 확인한 중국 지도부가 강한 불만을 나타내고 공연 내용 수정을 요구했으나 북한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라는 해석 때문이라는 설이었다. 공연 내용이 김정은 찬양 일색인데다 무대 배경에는 미사일 발사 장면 등이 나온 것을 중국측이 문제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공연취소의 앙갚음을 한 것인지 북한 김정은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다음해 2016년 1월6일 4차 핵실험으로 국제사회를 농락했다.
이번 북한의 사전 예술단 점검을 통해 우리 측에서도 공연장이나 무대 시설에 필요한 북의 요구사항을 철저하게 협조해 주어야 하겠지만 더불어 공연내용에 대해서도 체제선전장이 되지 않도록 분명하고도 명확하게 확인하고 짚고 요구해야 할 것이다. 예비안을 막론해 저들의 생트집 빌미를 허용치 않게 하는 것도 재론의 여지가 없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점검이고, 확인이며, 방남의 의미와 함께 평창 공연의 의의를 더하게 되기 때문이다.(konas)
이현오 / 코나스 편집장. 수필가(holeekv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