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를 포기하다

[청한]

카메라를 새로 장만해야겠다는 생각은 네팔 쿰중히말 지역으로 교육봉사 및 트레킹을 떠나게 된 순간부터

가졌다.

평생의 한 번 만날까 말까한 장면을 카메라로 남기는 일을 인생샷이라고 하는데 나에게도

인생샷을 찍을 기회가 주어졌다는 생각때문이다.

히말라야 광대한 산맥이 주는 장엄함과 높이가 주는 위압감, 티끌 하나 없는 코발트 빛의 하늘이 주는 신성함

그리고 그 안에 깃들어 사는 인간들의 순박함

어느 하나 빠질 것 없는 조화가 줄 환상의 그림을 보리라는 기대와 그를 사진으로 담겠다는 염원이 빚은

욕망이 바로 카메라 구입이다.

기존에 있던 카메라는 CCD가 깨지고 케이스도 조각이 나 너덜거리는데다 반응속도도 느려져

카메라이긴 하지만 카메라로 대접받기가 어려운 상태이니 대안이 필요했다.

가지고 있는 휴대폰 카메라의 성능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렌즈의 한계로 과연 그림을 제대로 담아낼 수 있을까

염려스러운 점이 많다. 따라서 카메라를 새로 구입하는 것이 대안으로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때부터 어떤 카메라를 살까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평소 쓰던 카메라가 소니제품이었으니 마음은 소니로 굳혀놓고

똑딱이 카메라로 할 것인지 아니면, 미러리스 렌즈교환형 또는 반사거울이 있는 렌즈교환형일지를 고민하다

똑딱이면 중급 정도 아니면 하이엔드급, 미러리스는 35mm 1:1 카메라 등등

선택을 하는 것이 정말 어려웠다.

렌즈교환형은 렌즈를 여러 개 갖고 있을 때 필요한 제품이지 렌즈 하나 붙박이 사용한다면 의미가 없다.

그래도 셔터 속도나 조리개 값이 하이엔드 보다는 낳지 않냐 는 고민 속에서

렌즈 추가 구입이 가능한지의 경제적 상황을 고려해서 선택에서 제외했다. 

그러니 남은 것은 똑딱이 카메라인데 여기서 고려할 사항은 가격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 하는 점이 우선이었다.

똑딱이의 가격도 중간 급은 50만 원대이지만 하이엔드급은 200만원 정도이니 편차가 심한 편이다.

과거에 쓰던 소니제품이 하이엔드급이었고 그에 대한 기억도 좋았다.

결정장애란 말이 절로 떠오를 만큼 어려운 과정을 거쳐 마지막으로 굳힌 제품은 똑딱이 하이엔드급이다.

나의 경제적 능력에 비하면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닌 제품을 선택하고 나니 그 비용 마련을 어떻게 할지를 고민했다.

지금까지의 지출 중 불필요한 것 불요불급한 것들을 모두 정리하면 월 15만원 정도의 할부금을 마련할 수 있겠지.

남을 위해 쓴 지출-기부금이나 단체 후원금을 좀 줄이고 나를 위해 쓰는 것도 좋은 일이지.

얼마되지 않는 수입의 20% 이상을 그렇게 지출해왔으니 이제는 그럴만도 하지 않나

스스로 자위를 하면서까지 내린 결정.

이제는 인터넷 쇼핑에 들어가 가격을 비교하고 재고를 확인하고 구매만 하면 되는 단계

연말부터 수시로 가격비교 사이트와 인터넷 쇼핑몰을 드나들었다.

최종적으로 재고 확인 전화를 하기를 수차례

마지막 버튼을 누르는 순간, 전화가 걸려오면 다시 잠깐 유보.

그러길 수차례

마음속에선 여전히 경제적 압박의 크기가 남아있었나보다.

그러다 친구에게 어쩌면 좋겠냐?

다시 한 번 물으니

"인생샷 찍는다고 허둥대며 진짜를 놓치지 말고 그냥 인생샷은 마음 속에 담어와.

사진은 휴태론으로 찍고 여행 후기가 잘 써봐."

라는 답이 돌아왔다.

다시 고민 고민 하다가 그래 그 말이 맞다

사진도 좋지만 가는 것만도 인생의 기횐데 그것에 만족해야지.

나 보다 더 잘 찍는 사람들이 올린 사진을 보고 그곳을 추억하고 기억하면 되지

마음 먹었다.

결혼을 잘 한 덕에 어쩌다 주어진 행운

그것만 잘 간직해야지 그 행운에 따라온 고민에 행운이 퇴색할 수도 있겠다는 큰 경험을 했다.

때낀 마음에 이태리타올질을 해 준 친구에게 감사한다.

2018년1월4일

추신)

고산지대의 추운 날씨에 견디기 위해 입어야 할 옷이 없어 새로 구입할까

구월동 스포츠 전문점 거리를 헤애다 결국 결정을 못하고 집에 왔다.

화요일 출근한 사무실, 동료직원이 입고 있는 옷이 눈에 띄었다.

"그 옷 나 히말라야 가는데 빌려주면 안 돼?"

"그래요  빌려가세요."

흔쾌히 자신이 입은 옷을 빌려주겠다는 동료의 말에 입이 헤벌죽 벌어졌다.

그렇게 결정하고 하루가 지나니 드는 생각이

이주일 동안 추운 한국에서 이 친구는 무엇을 입을까 였다.

그래서 스포츠 전문점에서 보아 둔 옷을 구매할까 하고 마음먹고 출근했는데

그 친구가 두툼한 새 점퍼를 입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에게 빌려주겠다는 옷은 쇼핑백에 얌전히 넣어 두고서.

"당신 무슨 옷 입을까 걱정했는데. 지금 보니  다행이네 고마워"

여행은 떠나기 전 준비과정이 더 설레고 기쁘다는데

이번 여행은 많은 고민과 생각과 우여곡절을 많이 겪는다.

어떤 일들이 앞에 있을지 기대된다. 이제 4일 남았다. 

[새터]

새로 깨달은점.
사람들은 생각을 많이 하면서 사는구나

나도 생각좀 하고 살아야지
될려나

[청한]

새터님 아프실 때 경험했던 섬망을 글로 풀어 보세요. 소설 열권을 쓰실 수 있을 거라는 병실에서의 말씀이 귓전에 생생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한 모습으로 빠른 시일에 뵙기를 바랍니다.

[청한]

저처럼 결정장애를 가진 사람이나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죠. 새터님처럼 사시는 걸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합니다. 물론 저도 그렇구요

[플로라]

생각을 좀 덜하고 사는 방법이 있다면, 저는 그것을 꼭 배우고 싶습니다.
생각이 너무너무 많아서 이것들을 정리하고 덜어내는 데 많은 에너지를 쓰고 살다보니. . .
생각없이 사는게 얼마나 힘든일인지, 그저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부러울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