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포수같은 보컬'로 폭넓은 인기 몰이 ##.
오랜만의 여자 대형가수 출현. '그녀와의 이별'로 방송가는 물론, 나
이트클럽과 록 카페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여가수 김현정을 두
고 하는 말이다. 대중음악계의 전반적 불황과 '가요계 사정' 바람까지
불어닥친 현 상황에서 그녀는 단연 신데렐라다.
그녀의 음반 '김현정 1:그녀와의 이별'은 마치 90년대 한국 대중가요
카탈로그같다. 특별히 새로운 음악이 아니라는 뜻이다. 타이틀 곡 '그녀
와의 이별(Ivy Remix)'은 3∼4년 전 '댄스가요 천국' 때 하우스 혹은 레
이브로 스타일이다. 빠른 b.p.m.(beat per minute:1분당 박자 수) 정박
의 댄스 리듬 위에 고음의 멜로디가 결합된 한국형 댄스 가요의 전형이
다.
전주로 신시사이저 라인이 전개되다가 과격한 랩, 짧게 끊어치는 기타
리프가 나오며 보컬의 선명한 멜로디가 등장한다. 곡의 후렴이 끝나고
랩과 어우러진 간주가 나오다가 후렴이 반복된다. 편곡은 아주 단순하지
도 않고 그렇다고 난해할 정도로 복잡하지도 않으며, 적절하고 평균적이
다.
◆가창력에 '섹스 어필'까지 겸비
앨범에는 타이틀곡이 세 종류 버전으로 수록돼 있고, '변명' '혼자
한 사랑' 등 댄스곡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그 사이사이로 스탠더드 팝
(The End), R&B(내 안의 너를), 트로트(연) 등의 발라드가 섞여 있다.
때로는 록 비트나 현악기가 등장한다. 만약 그녀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여러 가수가 등장해 '신나는 댄스곡 중심이지만 가끔씩 감상적인 발라드
가 들어가는' 순위프로그램을 듣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음반은 90
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총체적 시뮬레이션이라고 할 만하다.
그런데 이는 그녀의 목소리가 없다는 가정 하에서다. 분명 그녀의 목
소리는 예사롭지 않다. '노래는 못 불러도 귀엽고 깜찍한 목소리를 가진',
대부분의 최근 여가수와는 달리 가창력이 뛰어나고 라이브가 가능할 것
같다. 댄스곡에서는 기교를 무시하고 시원스럽게 질러대고, 발라드곡에
서는 호흡을 절제하면서 칭얼거리기도 한다. 게다가 고교 시절의 헤비메
탈밴드 경력은 가창력을 입증하는 프리미엄으로 작용하고 있다. 길게 덧
붙일 이야기는 아니지만, '비디오를 통한 섹스 어필'이라는 자격도 충분
히 갖추었다.
그런데 이 음반은 1년 전쯤 발매되었다가 홍보 부족으로 사장되기 일
보 직전까지 갔다고 한다(지금 레코드점에 진열되어 있는 것은 뒤늦게
다시 발매한 다른 버전이다). 그리고 이 음반은 10대부터 30대까지 폭넓
은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이 중평이다.
사회경제적 상황이 급변한 것을 실감하지 못하는 10대들은 그녀를 보
면서 잔치가 계속되고 있다는 환상을 즐기는 듯하다. 20대들은 '좋은 시
절이 지나가고 있다'는 아쉬움을 달래는 것 같다. 상황 변화에 가장 민
감할 수밖에 없는 30대 이상에게 '그녀와의 이별'이 무슨 상징 작용을
가져올 지는 추측하기 힘들다.
어쨌든 난세라고 해서 순수한 연예가 화려하게 지속되는 것을 저어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김현정의 시원스러운 목소리는 미래도 과거처럼 화
려할 수 있다는 '불안한 자신감'의 표출로 들린다.
<신현준·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