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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놈
1. 식기(食器) 도둑
나는 지금까지 남의 물건을 훔쳤다는 기억이 별로 없다. (훔치고서도 잊어먹었는지도 모른다.)
우리 작은형은 나를 파수를 보게 하고 곧잘 훔치곤 했다. (저 세상에 계신 작은형 미안해요)
어렸을 때 어머님이 반찬거리로 사 두셨든 멸치를 몰래 먹은 것과 쌀을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먹었던 생각이 난다. (그때는 먹을 것이 없던 때라 어머니께서 아시면 서도 별로 책망을 안 하셨으리라.)
1953.7.27에 6.25동란(動亂)이 휴전이 되고, 그때 나는 63육군병원에 입원되어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때의 육군병원의 형편은 참으로 어려운 때였다. 치료하는 일이나, 보급의 형편이 휴전직후라서 전방에서 밀려오는 부상병들 때문에 어떻게 손을 쓸 수 없는 때였다.
그때 대전 삼성초등학교를 징발(徵發)해서 사용하고 있었는데 (63육군병원 삼성분동) 매 호실마다 실장이 있고 식사당번이 있었다.
식사당번이 4명이었는데 나는 당번장(當番長) 이었다.
매 수요일이면 시내 영화관에서 육군병원에 입원중인 장병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초대하는 일이 있었다(자발적인 것은 아니리라) 물론 그 수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늦게나간 사람은 중간쯤에서 잘리곤 했었는데 언제나 점심 후에 이었다.
어느 날 간신히 끼워져서 재미있게 영화를 보고 돌아왔는데 실장이 험상궂은 얼굴로 호출을 한다.
이유인 즉은 점심 후에 식기를 씻으러 간 당번 병들이 그릇을 씻다 말고 영화관에 가버렸던 것이다.
그 와중에 식기가 3개가 없어진 것이다. (3개만 없어진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그러니 당번장인 네가 책임을 지고 속히 채워놓으란 엄명이었다.
만일 병원당국에서 알게되면 우리 병실로 나올 보급품을 그 값만큼 떼게 되기 때문에(실은 그 몇 배를 떼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채워놓으란 것이다. 여기서 무슨 수란 다른 병실의 식기를 쎄베(훔쳐)오란 뜻이다.
나는 전도사로 있다가 입대했었다. 양심상으로 그럴 수가 없었다. 또 그럴만한 능력도 없었다.
실장의 성화는 날이 갈수록 더해가더니 급기야 기합(구타)이 시작되었다.
날마다 빳따(업드러 뻐처를 시켜놓고 침대 마구라로 궁둥이를 때리는 것)를 치는 것이다.
매에는 장사(壯士)가 없는지라 하는 수없이 거사(擧事)(?)를 결심했으나 내 능력으로는 도저히 식기를 훔처오는 일은 불가능했었다.
매는 계속되지 능력은 없지 육체적 정신적 고통은 극(極)에 달(達)해 어찌할 방법이 없으므로 아무리 연구를 하고 궁리를 해도 탈영하는 수밖에 없었다.
탈영을 하려면 위병(衛兵)들의 감시가 소홀한 비 오고 바람이 심히 부는 밤을 택할 수밖에 없었는데 걱정거리가 생겼다.
회중(懷中)용 성경을 어떻게 비에 맞지 않게 가져가는가의 문제였다. (그때 몸에 입혀진 옷은 넌닝샷쓰와 펜티 뿐이었음) 매일 보급되는 화랑담배(하루에 10가치씩)를 5일분과 건전지를 싼 비닐(그때는 국내에는 비닐이 없고 미군의 지원되는 보급품에만 있었음)과 바꾸어 성경을 싸놓고 비 오고 바람 부는 밤만 기다렸는데 기도의 응답이었는지 태풍이 몰아치는 밤이 왔다.
모두가 잠든 후에 유심히 봐두었든 비교적 허술한 철조망을 빠저 나가려는 때나를 압도(壓倒)하는 간곡한 음성이 있었다. <너 때문에 예수님이 욕을 잡수신다>
탈영사건이 생기면 위병들이 연대기압을 받은 것은 물론이요 우리 병실의 모든 사람이 연대책임을 지고 고통을 받게된다. 전도사가 탈영을 했다면 그 결과는 더욱더 어떻겠는가?
나는 눈물을 머금고 병실로 돌아왔다 온 몸이 비에 흠뻑 젖었기 때문에 밤새껏 떨었다.
이제는 외길밖에 없다 죽기를 한하고 식기를 도둑질한 길뿐이다. 나는 실성한 사람처럼 날마다 10여 개 되는 병실을 염탐(廉探)하는 것이다.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바로 이웃 병실에서 식기를 훔쳐 왔다. 나로서는 007작전 이상의 대 모험이었다.
옆방에 졸고 있다 식기를 도둑맞은 당번 병은 내가 당했던 것보다 더 고통을 당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날마다 양심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얻어맞아 만신창이 된 궁둥이는 얼마 후에 치료되었지만 도둑질로 갈기갈기 찢겨진 영혼은 지금도 고통 중에 있다.
그때 차라리 맞아 병신이 되더라도 하지 말아야될 도둑질은 대한민국 군대제도가 없어질 때까지는 그 악순환(惡循環)이 계속되리라는 생각을 할 때 이 죄악을 어찌 하리요.
물론 하나님께서는 용서해 주셨지만 그 일로 인하여 수많은 당번 병들의 당했을 고통을 생각할 때 나 자신은 나를 용서할 수가 없다. 이름 모를 수많은 당번 병들에게 어떻게 속죄를 해야할지,-------? -------?
2. 하나님의 것 도둑질
나는 다섯 살 때부터 형수님의 등에 엎펴 교회(운림교회)에 다녔다.
1930년대의 시골(산골)교회는 조사(助師)(지금의 전도사) 한 분이 여러 교회(보통 5,6처)를 마따서 순회하면서 돌보고 계셨다. 목사님(미국선교사)은 일년에 한 번씩 오셨는데 온 동리의 구경거리였다.
우리들(아이들)은 미국목사님을 손을 곱아 기다렸다. 좋은 선물(지금 생각하니 크리스마스 카드를 수집하여(이미 사용된 것))을 주셨기 때문이다.
나는 그 종이를 벽에다 자랑삼아 부처 놓고 좋아했다. 그때의 우리교회 교인 수는 십 여명 정도였다.
조사 님이 안 오신 때는 더 적게 모였다. 우리교회에서는 예배를 볼 때 헌금을 드리지 얹었다.(드릴 줄을 몰랐다) 해방이 된 뒤에 광주에 유학(?)하여 비로소 연보 바친 것을 보았다. 그때 선교사들이 산골사람들이 하도 가난하고 어려운 형편에 거저 교회에 나와주는 것으로도 고맙게 역이지 않았는가 생각한다.
그런 형편이기 때문에 주일을 성수(聖守)한다는 것은 들어보지도 못하였다. 그렇게 오랫동안 습관화(習慣化)된 신앙이었는지라 감사헌금을 드린다거나 십일조를 바친단 것은 불가능했고 또 헌금을 안 한다고 해서 죄의식을 느끼지도 안 했다.
광주 고등성경학교에 다니면서 서경을 배운 가운데 신앙생활에 대하여 조금씩 알게되었는데 그래도 주일성수와 십일조를 드릴수가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훈련이 안된(습관이 굳어진)내게는 참으로 힘들고 어려웠다.
제대 후에 결혼 을하고 시골 개척교회(보성군 노동면 거석리 노동교회)에서 목회(牧會)를 시작했다.
(1958.5.28) 이후 40여 년 간 하노라고 했지만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못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감사해야할 일들에 비하여 지금까지 드린 헌금은 참으로 부족한 것이었음도 회개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의 마음에는 아직도 청지기로서의 의식보다는 소유주(所有主)의식이 더 강함을 깨다를 때 헌금을 얼마나 드렸는가가 문제가 아니라 피조물로서의 근본적인 문제요 종으로서 자질문제가 아닐 수 가없다. 아브라함이 그 외아들을 아낌없이 바쳤단 것은 그 중심을 받으셨단 것이다.
도적질이란 자기의 능력에 따라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내 능력으로는 하나님의 것이나 도적 할 수 있었으니 능력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진정으로 하나님아버지를 경외하며 섬긴 것인지? 부끄럽고 송구(悚懼)함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이 죄악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누가 너희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앗슨 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같이 자랑하느뇨” (고전,4:7.)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 할 고” (시편116:12.)
3. 하나님의 영광 도적
우리는 입버릇처럼 모든 영광과 존귀와 감사와 찬양을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만 돌여 드려야 한다고 말한다.
또 그렇게 되기를 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나름대로 영광을 받고 자함이 깔려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하라” (고전10장31절)
이 말씀은 우리의 생존(生存) 그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생명임을 강조(强調)한 말씀입니다.
자신을 위한 삶이란 즉 육신만을 위해서 사는 생명이란 궤도(軌道)를 이탈된 생명이다.
이것은 무엇을 한 두 가지 도적 했다는(범죄 했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우상숭배적 성격의 문제입니다.
내가 흥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된다면 흥한 것이 좋고 내가 망함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면 그쪽을 택해야하며 살아서 그분의 뜻을 성취(成就)시킨다면 살아야 하는 것이며 죽음으로 그분의 영광이 된다면 기쁘게 죽어야 하는 것이 또한 피조물의 길이요 특히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길인데 오히려 하나님을 믿어(하나님 덕분에) 병 고침 받고 부자가 되며 사업에 성공하고 출세를 하고자함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 형편인 것 같다. 영광도적은 결국 주권(主權)도적으로 바뀌어집니다,
1969년 3월에 구례군 토지면 외곡교회서 처음 시작한 부흥집회를 햇수로 30년이나 계속하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 드리며 영광을 드립니다. 처음에 시작할 때는 가난한 농촌교회나 깊은 섬 지방에서 사역케 하시더니 지금은 국내(國內)에서는 서울 영락교회를 비롯하여 큰 교회 적은 교회 농어촌과 특수시설(결핵환자 수용소 나환자시설 크고 적은 학교와 방송국 등)에서 사역케 하시고, 외국(外國)으로는 일본(日本), 미국(美國), 캐나다의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케 하셨으며 한 교회에서 다섯 번(인천 신기촌교회 일본 동경 시부야 복음교회 시고꾸(四國) 마루가메(丸龜)복음교회 야나기하라(柳原)교회 규슈(九洲)의 오오이다(大分)그리스도의 복음교회 등)까지 부흥회를 인도케 하시는 등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감사 감격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전라남도 보성군 겸백면 운림리 옥천부락의 가난한 집에 태어나서 이렇게 놀랍게 쓰임을 받았다는 사실이 은총(恩寵)이요 기적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간 곳마다 천사의 대접을 받았으며 세계(世界)를 제돈 없이 구경을 하였으며(부흥회의 초청으로 인하여) 경제적인 축복은 말할 수 없고 전하는 복음을 통하여 구원(救援)받은 사람, 은혜를 받고 생활이 변화(變化)된 사람, 소명(召命)을 받어 신학을 하여 목사가 된 사람, 교회들은 부흥이 되고, 새로 건축한곳(예배당을 지을 여거든 박병돈 목사님을 모시고 부흥회를 하면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임) 그런 과정들 통해서 받은 은혜 축복 사랑 명예 다 말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바울 사도께서 고백한대로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고전,15:10.)이거늘 하나님께 돌려야할 영광을 온전히 돌여 드리지 못한 일이 많았다고 생각됩니다 고의적으로 악의적(惡意的)으로 라기 보다는 나의 영성(靈性) 자체가 그렇게 되어 있었다고 고백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존귀 영광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시고 멸시 천대 십자가는 제가 지고 가오리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4. 주권(主權)도적
1. 여호와 하나님은 천지 만물의 창조주(創造主)이심.
2. 여호와 하나님은 천지의 주재(主宰)이심.
3. 나의 주.
4. 생명을 주관하심.
5. 시간의 주인.
6.공간의 주인.
7. 역사의 주인.
8. 나의 모든 소유의 주인.
이것을 인정치 않은 자는 하나님의 주권을 부인한자다.
이것을 인정할지라도 주권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삶의 현장에서 진정한 주권자로 섬기지 않은 자는 자신이 주권자 행세를 하는 것이다.
-참된 섬김-
1. 마음을 비우는 일이다.
(심령이 가난해지기 위해, 자아를 부인하기 위해 자성하고 자각하고 많이 우는 일이다. 모든 욕심을 버리는 일이다. 모든 걱정 근심을 버리는 일이다.) 그리하여 우주의 실체 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비워진 마음의 보좌에 모셔 드려 나를 온전히 주장하시도록 전적(全的)인 자아 반납(返納)을 매듭지은 일이다. 그리고 그분과의 교제(交際)를 통하여 최고(最高) 최대(最大)의 삶의 의미 속에서 만족(滿足)과 충만(充滿)과 감사(感謝)와 감격(感激)하며 푯대를 향해 달여간 일입니다.
2. 삶의 의미를 깨닫는 일이다.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이 가장 옳은 것인가.
어찌 사는 것이 가장 현명(賢明)한 삶인가.
후회(後悔)함이 없는 삶이란 어떤 것인가.
가장 값있는 삶이 무엇인가.
천하보다 존귀한 생명.
한 번 밖에 없는 생명,
잠깐 되는 생명.
이 생명을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육신의 욕망을 위하여 살 수 없는 생명이다.
육신의 욕망은 한(限)도 끝도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욕망이란 그 자체가 정신적(精神的)인 것이요, 영(靈)적인 것이어서 물질(物質)이나 명예(名譽)나
향락(享樂)에 의하여 채워질 성질이 아닌 것이다.
솔로몬의 고백(告白)처럼 해 아래 모든 수고가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여, 다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은 것이다.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입니다.
3.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누가 말했던가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도다.
하나님의 그 큰사랑 어찌 말로 다 할까, 저 하늘 높이 쌓아도 채우지 못하리“라고.
어찌 생각하면 과장된 지나친 표현이 아닌가? 라고 말하겠으나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이 논(論)할 수 있는 차원(次元)이 아님을 말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나님이 나를 사랑 하셨고 지금도 사랑하시고 앞으로도 사랑하신다.
그 증거(證據)를 말하리라.(다 말할 수는 없지만)
(1) 천지만물(天地萬物)을 우리(나)를 위하여 창조(創造)하셨다.
만물이 말씀에 의하여 그 모습(模襲)이 드러나고 있을 때 우리아버지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 라”는 표현 속에는 우리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사무처 잇습을 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기쁨은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의 기쁨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자를 위한 일이란 어떤 희생적인 일까지도 기쁠 수바께 없습을 알게 되어진 것 같습니다.
(2) 이 벌레 같은 나를 위해 그 아들을 대속(代贖)의 제물(祭物)로 내어 주셨다.
주께서 나를 구원하시려고 하나님의 자리를 포기하시었네.
나의 생명을 위하여 당신의 생명을 대신 하시었네.
이해할 수도 믿어지지도 않은 소식이어서 오히려 불신(不信)하며 교만(驕慢)하고 방자(放恣)하였었네.
너무 너무 크고 놀라와서 믿어지지 않은 사랑.
오랜 세월을 그 사랑을 모르고 방황하면서 허세를 부리고 외식과 위선 속에서 범죄하고 제 마음대로 사라 왔습니다.
그런 나를 사랑하신 내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참고 또 참으시고 오랫토록 기다려 주셨습니다.
내가 어찌해야 된다는 말인가? “늘 울어도 눈물로서 못 갚을 줄 알아 몸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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