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아닌 춘삼월에 다이어리와 탁상 달력을 받게 됐다. 뒤늦은 선물을 주고 떠난 주인공은 울 업소에 10여 년 단골손님으로 오신 개척교회 목사님의 남매 중 오빠다. 온 집안 식구가 사회복지 관련 분야에서 일하는 '복지가족'이다. 녀석도 H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Y 단체에 팀장으로 있는데, 오늘 우리 집 근처에 있는 시 산하 단체인 청소년수련원에서 교육을 받는다며 지나는 길에 잠시 들러 연초 녀석과 덕담을 나누며 살짝 웃음으로 비췄던 이야기를 잊지 않고 챙긴다.
기특한 녀석. 우리는 그동안 가족처럼 지내왔다. 목사님이 형편이 어려운 개척교회에서 어르신들을 섬기기에 내가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은 목사님의 오래된 자동차를 최소한의 실비로 손봐서 굴러가도록 하는 정비사의 사명이었다. 그것이 곧 내가 소외된 이웃들에게 간접적으로 참여하는 봉사활동이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목사님 가족들과는 아주 살갑게 소통하는 사이다.
요즘 위용을 자랑하는 교회의 첨탑을 바라보면 그 교회 목회자의 능력을 가늠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가난하고 소외된 지역을 찾아다니며 종교의 본질에 충실하고 목회자로서 주어진 소명을 다하는 목사님을 보노라면 온 가족이 왜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세상에 작은 빛과 소금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울 엄니가 뇌출혈 후유증으로 7년 가까이 불편한 몸으로 휠쳬어를 타는 모습을 보시곤 교회의 소소한 행사 때마다 잊지 않고 떡과 음료를 챙겨 주시고 때론 교회 옆 자투리 텃밭에서 길렀다며 풋고추를 나눠주기도 하여 남달리 애정이 가는 손님이었다. 그러니 자녀들도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나를 가족처럼 따르고 챙긴다.
오늘도 녀석의 전화를 받고 급히 약속 장소로 나가며 빈손으로 돌려보낼 수 없어 며칠 전 마트에서 사 온 오렌지와 작은 누나가 텃밭 농사로 나눠준 고구마를 몇 개 비닐봉지에 담아 들고 나가니, 녀석 부탁했던 다이어리와 탁상 달력 등이 담긴 종이 가방을 내민다. 잠시 엔진룸을 열어 점검이라도 해 주려니 시간이 없다며 다음에 지나다 잠시 들르겠다며 차를 돌린다. 녀석의 애마인 K5 까망이가 아파트 출구로 향하며 녀석과 나는 손을 흔들어 짧은 만남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멍하니 서서 멀리 있는 친족보다 가까이 사는 이웃사촌이 훨씬 살갑게 마음에 닿는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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