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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사상』 2025년 가을호
【1】
김소월 『진달래꽃』의 서지 사항 고찰
맹문재
1. 『진달내ᄭᅩᆺ』 서지 사항
김소월 시인의 『진달내ᄭᅩᆺ』은 1925년 12월 23일 인쇄해서 사흘 뒤인 26일 매문사(賣文社)에서 발간되었다. 시인이 생전에 발간한 유일한 시집이다. 총 127편의 작품을 16장으로 구성해서 234쪽으로 수록했다. 시집 크기는 148*105*17㎜로 국반판 양장본이고, 정가는 1원 20전이다.
『진달내ᄭᅩᆺ』의 판권에 적시된 시집의 저작(著作) 겸 발행자는 김정식(金廷湜)으로, 주소는 경성부 연건동(현재 종로구 연건동) 121번지였다. 인쇄자는 노기정(魯基禎)으로, 주소는 경성부 견지동(현재 종로구 견지동) 32번지였다. 인쇄소는 인쇄자의 주소와 같은 한성도서주식회사였다. 발행소는 매문사로, 주소는 경성부 연건동 121번지였다. 저작 겸 발행자와 발행소의 주소가 같은 것으로 보아 소월은 시집 발간 일체를 매문사에 위임한 것으로 보인다.
『진달내ᄭᅩᆺ』의 총판매소는 중앙서림으로, 주소는 경성부 종로2정목(현재 종로구 종로2가) 42번지였다. 진체(振替)는 경성 7451번, 전화는 광화문 1637번이었다. 책을 주문하고 받는 진체(구좌번호)가 있는 것이 눈길을 끈다. 『진달내ᄭᅩᆺ』의 발행소, 인쇄소, 총판매소가 각각 다른 것은 당시의 매문사가 출판을 총괄적으로 운영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매문사를 대신해서 한성도서주식회사가 시집을 인쇄하였고, 중앙서림이 총판매를 맡았던 것이다.
『진달내ᄭᅩᆺ』을 인쇄한 한성도서주식회사는 1920년 장도빈(張道斌)이 중심이 되어 서북지역 출신 젊은 인사들이 자본금 30만원으로 창설한 출판사이다. 이봉하(李鳳夏) 사장, 이종준(李鍾駿) 전무, 장도빈 · 한규상(韓奎相) · 박태련(朴泰鍊) 등이 취체역(이사)이었다. 일간신문의 발간을 계획했으나 일제의 허가를 받지 못해 도서출판과 잡지 발간으로 목적을 바꾸어 김동환의 『국경의 밤』, 김명순의 『생명의 과실』, 김억의 『안서시집(岸曙詩集)』, 한용운의 『님의 침묵』 등의 시집과 노자영의 『영원의 몽상』· 『처녀의 화환』 등의 소설집, 오천석 번역의 『세계문학걸작집』, 김동인 · 이광수 · 심훈 등의 작품을 수록한 『현대장편소설전집』, 최남선의 『금강예찬』 등을 발간했다. 국내 독자들은 물론 간도를 비롯한 해외동포들의 주문도 많았다. 1944년 주주에 대한 이익금을 배당할 정도로 민족인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2. 『진달내ᄭᅩᆺ』의 이본
『진달내ᄭᅩᆺ』은 총판매소가 중앙서림 총판본(이하 중앙서림본)과 한성도서주식회사 총판본(이하 한성도서본) 두 가지가 존재하는데, 『등록문화재 등록조사보고서』에 따르면 그 차이는 다음과 같다. 일부 표기는 필자의 의견이 들어 있다.
① 중앙서림본 표지는 회녹색 바탕에 ‘진달내ᄭᅩᆺ -1925-’로 표기되어 있고 그림이 없지만, 한성도서본 표지는 연한 밤색 바탕에 ‘진달래꽃 詩集 金素月作’으로 표기되어 있고 진달래꽃 그림이 있다.
② 중앙서림본 속표지는 연한 남색 잉크로 ‘素月作 진달내ᄭᅩᆺ’이, 한성도서본 속표지는 붉은색 잉크로 ‘素月作 진달내ᄭᅩᆺ’이, 모두 세로글씨로 표기되어 있다.
③ 중앙서림본의 책등은 ‘진달내ᄭᅩᆺ 賣文社’로, 한성도서본의 책등은 ‘詩集 진달내꽃 金素月 作’으로, 모두 세로글씨로 표기되어 있다.
④ 중앙서림본 크기는 148*105*17㎜이고, 한성도서본 크기는 152*110*13㎜이다.
⑤ 중앙서림본 지질은 모조지이고, 한성도서본 지질은 갱지이다.
⑥ 중앙서림본의 진체(振替)는 경성 7451번이고 전화는 광화문 1637번인데, 한성도서본의 진체는 경성 7660번이고 전화는 광화문 1479번이다.
⑦ 두 시집은 동일한 원판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나, 한성도서본에는 일부 오류가 있다. 가령 중앙서림본 6쪽에는 시 제목이 「오시는눈」으로 인쇄되어 있는데 한성도서본에는 「오시의눈」으로 인쇄되어 있고, 중앙서림본 177쪽에는 쪽수 번호가 “-177-”로 인쇄되어 있는데 한성도서본에는 “77-”로 잘못 인쇄되어 있다.
위와 같은 사실로 보면 두 권이 다른 총판매소에서 동시에 발간되었다고 볼 수 없다. 중앙서림본이 먼저 발간되었고, 한성도서본이 뒤늦게 발간된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한성도서본은 1933년 한글맞춤법통일안이 마련된 이후에 발간된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 전문위원인 김종욱은 중앙서림본이 한성도서본보다 먼저 발간되었다는 근거로 ① 『동아일보』 1926년 1월 8일 3면 6단의 신간란에 시집의 제목이 ‘진달내ᄭᅩᆺ’으로 표기된 점, ② 매문사에서 3개월 전에 간행한 김억의 시집 『봄의 노래』에 수록된 신간 예고에 ‘진달내ᄭᅩᆺ’으로 표기된 점, ③ 앞표지, 책등, 내재지, 판권 등이 모두 ‘진달내ᄭᅩᆺ’으로 통일되게 표기된 점 등을 들고 있다.
따라서 매문사에서 처음 시집을 발간했을 때 중앙서림이 총판매를 담당했지만, 매문사의 출판 형편이 어려워지자 인쇄 지형을 보유하고 있던 한성도서주식회사가 시집을 새로 인쇄하고 총판매를 담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시집을 새로 제작하는 과정에서 겉표지(진달내꽃), 내재지(진달내ᄭᅩᆺ), 판권지(진달내꽃)의 표기가 일치하지 않은 실수를 했다. 『진달내ᄭᅩᆺ』을 새로 인쇄하면서 1933년 한글맞춤법통일안에 따라 표지를 새로 제작하는 과정에서 겉표지, 속표지, 판권지의 불일치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3. 등록문화재 『진달내ᄭᅩᆺ』과『진달내꽃』
2011년 문화재청은 『진달내ᄭᅩᆺ』의 판권을 인정하고, 희소성 및 도서의 양호한 점 등을 고려해서 2종 4점을 등록문화재 제470-1, 2, 3, 4호로 선정했다. 각각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① 제470-1호는 중앙서림본(윤길수 소유)으로 표제지의 글자를 복사해서 책등을 보수한 상태이다.
② 제470-2호는 한성도서본(화봉문고 소유)으로 소장인(所藏印)의 표시로 ‘尹錫昌印’이 날인되어 있고, 표지와 책등의 분리를 막기 위해 세 곳에 비닐 테이프가 붙어 있다.
③ 제470-3호는 한성도서본(이기문 소유)으로 뒤표지가 분리되어 있고, 책등 전체에 비닐 테이프가 부착되어 있다.
④ 제470-4호는 한성도서본(배재학당 역사박물관 소유)으로 뒤표지가 분리되어 있고, 권말의 두세 장은 부식되어 있다.
김소월의 『진달내ᄭᅩᆺ』은 이외에 몇몇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성도서본이 대부분이다. 『진달내ᄭᅩᆺ』이 등록문화재로 공개된 이후 복각본 출간도 이루어지고 있다.
2025년 11월 15일 도서출판 소와다리에서 『진달내ᄭᅩᆺ』 복각본이 간행되었다. 이 시집은 등록문화재인 윤길수 소유의 『진달내ᄭᅩᆺ』을 복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중앙서림본이기에 의미가 크다. 다만 윤길수 소유의 시집은 책등을 보수한 것이기에 아쉬움이 있다. 그에 따라 책등을 원래의 시집과 다르게 라운딩 제본으로 만들었다. 시집 크기는 105 * 148 * 15mm / 272g이다.
2025년 2월 17일 푸른사상사에서 『진달내ᄭᅩᆺ』 출간 100주년을 기념해서 복각한 것도 들 수 있다. 이 시집은 모 씨가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등록문화재에 등록하지 않았다. 중앙서림본인데다가 책등이 보존되어 있어 최고의 선본(善本)이라고 볼 수 있다. 시집 크기는 114 * 155 * 24mm / 351g이다. 시집 크기가 중앙서림본의 것과 다른 것은 당시 시집 제작을 수동으로 하므로 재단하는 과정에서 다소 차이가 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중앙서림본의 시집 크기와 푸른사상사의 복각본 시집의 크기 중 어느 것이 정본에 맞는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4. 『진달내ᄭᅩᆺ』의 문학사적 의미
권영민에 따르면 1923년에 발간된 김억의 『해파리의 노래』(조선도서주식회사)가 한국 시문학사의 첫 장을 여는 시집이다. 1924년 주요한의 『아름다운 새벽』(조선문단사), 조명희의 『봄 잔디밧 위에』(춘추각), 박종화의 『흑방비곡』(조선도서주식회사), 변영로의 『조선의 마음』(평문관), 노자영의 『처녀의 화환』(청조사) 등이 간행되었다. 1925에 간행된 김소월의 『진달내ᄭᅩᆺ』(매문사)은 김억의 『봄의 노래』(매문사), 김동환의 『국경의 밤』(한성도서주식회사) 등과 함께 한국 시문학의 초기를 이끌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진달내ᄭᅩᆺ』에 수록된 작품들의 형식적인 면으로는 우선 여성 화자를 내세운 면을 들 수 있다. 남성의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여성적 특성인 아니마(anima)는 슬픔, 이별, 애수, 죽음, 고뇌, 눈물 등의 비극적 요소들에 의해 충족된다. 여성 화자는 고려시대의 「가시리」는 물론이고 정철의 「사미인곡」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실패한 사랑을 호소하는 경우 보편적인 공감을 얻을 수 있다. 여성이 인간의 실패를 포용하고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하는 모태로서 더 자연스러운 것이다.
『진달내ᄭᅩᆺ』에 수록된 작품들의 내용적인 면으로는 한(恨)의 정서를 들 수 있다. 한이라는 글자는 마음을 뜻하는 심(心)과 가만히 멎어 있음을 뜻하는 괘 이름 간(艮)과의 회의 문자이다. 상처를 마음속에 가만히 간직하고 있는 상태로 미워하면서도 사랑하고, 부정하면서도 긍정하는 등 복합적인 감정이다.
소월의 한의 정서는 일본인들에 의해 폭행당해 정신이상자가 된 아버지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아버지를 폐인으로 만든 일제 식민지의 시대 상황에 대한 절망감을 나타낸 것이다. 소월은 관동 대진재를 목격하면서 개인 차원의 슬픔을 민족의식으로 확대하고 심화했다.
맹문재
시론 및 비평집으로 『한국 민중시 문학사』 『패스카드 시대의 휴머니즘 시』 『지식인 시의 대상애』 『시학의 변주』 『만인보의 시학』 『여성시의 대문자』 『여성성의 시론』『시와 정치』『현대시의 가족애』 등이 있음. 안양대 국문과 교수.
【2】 김소월 시인 연보
1902년(1세)
9월 7일(음력 8월 6일) 새벽녘, 평안북도 정주군 곽산면 남단동(일명 남산동) 569번지에서 아버지 김성도(性燾)와 어머니 장경숙(張景淑)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나다. 태어난 곳은 외가인 구성군 왕인동이다. 2세 때 아버지가 처가 나들이를 가다가 철도를 설치하던 일본인에게 폭행당해 정신이상자가 되다.
1909년(8세)∼1915년(14세)
곽산면 남산동 소재 남산(南山)보통학교에 입학 및 졸업.
1915년(14세)
오산학교 중학부 입학. 조만식 교장. 영어와 작문을 가르치는 김억 선생의 제자가 되다. 체조를 제외한 15∼16과목을 90점 이상 받을 만큼 학업 성적 우수.
1916년(15세)
구성 출신으로 세 살 위인 홍실단(洪實丹, 일명 홍단실)과 결혼하다. 이후 2녀 4남을 두다. 딸 구생(龜生), 구원(龜元). 아들 준호(俊鎬), 운호(雲鎬), 정호(正鎬), 락호(樂鎬).
1920년(19세)
3월, 「그리워」 등을 필명 소월(素月)로 『창조』(2호)에 발표하다.
1921년(20세)
오산학교 중학부를 졸업하다.
1922년(21세)
4월, 3·1운동의 여파로 오산학교가 강제 폐교되자 배제고등보통학교에 5학년으로 편입학하다.
7월, 「진달내ᄭᅩᆺ」 등 만은 작품을 『개벽』에 발표했다. 10월, 소설 「함박눈」을 『개벽』에 발표했다.
1923년(22세)
3월, 배제고등보통학교 제7회 졸업생으로 졸업하다.
4월, 일본 동경상대 예과에 입학하다.
9월, 일본 관동 대진재(大震災)로 귀국하다. 서울에서 나도향, 염상섭 등과 어울리다. 영대(靈臺) 동인으로 참가하다.
1924년(23세)
10월, 「밧고랑 우헤서」 등을 『영대』에 발표하다.
1925년(24세)
5월, 시론 「시혼(詩魂)」을『개벽』에 발표하다.
12월 26일 시집 『진달내ᄭᅩᆺ』(매문사) 발간하다.
1926년(25세)
처가가 있는 평북 구성군 남시로 낙향하다.
7월 28일, 평안북도 구성군 남시(南市)에서 동아일보 구성지국 경영하다.
1927년(26세)
3월 14일, 동아일보 지국 경영해 실패해 문닫다. 고리대금업 시작하다.
1928년(27세)
7월, 「옷과 밥과 자유」를 『자유』에 발표하다.
1929년(28세)
5월, 산문시 「저급생활」 전문 삭제당하다.
1930년(29세)
4월, 「금잔듸」를 『삼천리』에 재수록되다.
1931년(30세)
2월, 「고독」 등을 『신여성』에 발표하다.
1932년(31세)∼1933년(32세)
작품 발표가 없다.
1934년(33세)
8월, 「생과 돈과 사(死)」 등을 『삼천리』에 발표하다.
11월, 「고향」 등을 『삼천리』에 발표하다.
12월 24일 오전 8시, 자택에서 타계하다. 묘소는 구성군 서산면 평지동 터진 고개.
1935년
1월, 서울 종로 백합원(百合園)에서 소월 추모회를 열다. 김안서 등 100여 명의 문인이 모이다.
2월, 김억 본명 김희건으로 「조시」를 『신동아』에 발표하다.
1939년
12월, 김억이 『소월 시초(詩抄)』(박문출판사)를 펴내다.
1948년
1월, 김억이 『소월 민요집』(산호장)을 펴내다.
1956년
1월 20일, 『소월 시집』(정음사) 간행되다.
1966년
12월 20일, 백순재 · 하동호가 결정판 소월 전집으로 『못 잊을 그 사람』(양서각)을 간행하다. 소월 시전집의 초석이 되다.
1977년
『문학사상』(11월호)에 소월의 창작시, 번역시 등 육필 유고를 다수 발굴하여 수록하다.
1981년
11월 5일, 김소월 전집 및 평전으로 『꿈으로 오는 한 사람』(문학세계사) 간행하다.
1982년
12월 20일, 김종욱이 『원본 소월 전집』상·하(홍성사) 간행하다.
1996년
12월 30일, 김용직이 『김소월 전집』(서울대출판부) 간행하다.
2005년
8월 16일, 최동호가 김소월 전집으로 『진달래꽃』(범우(주)) 간행하다.
2007년
4월 17일, 권영민이 『김소월 시전집』(문학사상사) 간행하다.
(맹문재 정리)
【3】 김소월 시인의 시론
시혼(詩魂)
김소월
1
적어도 평범한 가운데서는 물(物)의 정체를 보지 못하며, 습관적 행위에서는 진리를 보다 더 발견할 수 없는 것이 가장 어질다고 하는 우리 사람의 일입니다.
그러나 여보십시오. 무엇보다도 밤에 깨어서 하늘을 우러러보십시오. 우리는 낮에 보지 못하던 아름다움을, 그곳에서, 볼 수도 있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파릇한 별들은 오히려 깨어 있어서 애처롭게도 기운 있게도 몸을 떨며 영원을 소삭입니다. 어떤 때는, 새벽에 져가는 오묘한 달빛이, 애틋한 한 조각, 숭엄한 채운의 다정한 치맛귀를 빌어, 그의 가련한 한두 줄기 눈물을 문지르기도 합니다. 여보십시오, 여러분. 이런 것들은 적은 일이나마, 우리가 대낮에는 보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하던 것들입니다.
다시 한 번, 도회의 밝음과 지껄임이 그의 문명으로써 광휘와 세력을 다투며 자랑할 때에도, 저, 깊고 어두운 산과 숲의 그늘진 곳에서는 외로운 버러지 한 마리가, 그 무슨 슬픔에 겨웠는지, 쉼 없이 울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 버러지 한 마리가 오히려 더 많이 우리 사람의 정조(情操)답지 않으며, 난들에 말라 벌 바람에 여위는 갈대 하나가 오히려 아직도 더 가까운, 우리 사람의 무상과 변전(變轉)을 서러워하여 주는 살뜰한 노래의 동무가 아니며, 저 넓고 아득한 난바다의 뛰노는 물결들이 오히려 더 좋은, 우리 사람의 자유를 사랑한다는 계시가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잃어버린 고인(故人)은 꿈에서 만나고, 높고 맑은 행적의 거룩한 첫 한 방울의 기도(企圖)의 이슬도 이른 아침 잠자리 위에서 듣습니다.
우리는 적막한 가운데서 더욱 사무쳐 오는 환희를 경험하는 것이며, 고독의 안에서 더욱 보드라운 동정(同情)을 알 수 있는 것이며, 다시 한번, 슬픔 가운데서야 보다 더 거룩한 선행(善行)을 느낄 수도 있는 것이며, 어두움의 거울에 비치어 와서야 비로소 우리에게 보이며, 살음을 좀 더 멀리한, 죽음에 가까운 산마루에 서서야 비로소 살음의 아름다운 빨래한 옷이 생명의 봄 두던에 나부끼는 것을 볼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곧 이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몸이나 맘으로는 일상에 보지도 못하며 느끼지도 못하던 것을, 또는 그들로는 볼 수도 없으며 느낄 수도 없는 밝음을 지워버린 어두움의 골방에서며, 살음에서는 좀 더 돌아앉은 죽음의 새벽 빛을 받는 바라지 위에서야, 비로소 보기도 하며 느끼기도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분명합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몸보다도 맘보다도 더욱 우리에게 각자의 그림자같이 가깝고 각자에게 있는 그림자같이 반듯한 각자의 영혼이 있습니다. 가장 높이 느낄 수도 있고 가장 높이 깨달을 수도 있는 힘, 또는 가장 강하게 진동이 맑지게 울리어 오는, 반향과 공명을 항상 잊어버리지 않는 악기, 이는 곧, 모든 물건이 가장 가까이 비치어 들어옴을 받는 거울, 그것들이 모두 다 우리 각자의 영혼의 표상이라면 표상일 것입니다.
2
그러한 우리의 영혼이 우리의 가장 이상적 미의 옷을 입고, 완전한 운율의 발걸음으로 미묘한 절조의 풍경 많은 길 위를, 정조의 불붙는 산마루로 향하여, 혹은 말의 아름다운 샘물에 심상의 작은 배를 젓기도 하며, 이끼 돋은 관습의 기구한 돌무더기 새로 추억의 수레를 몰기도 하여, 혹은 동구 양류(陽柳)에 춘광은 아리땁고 십이곡방(十二曲坊) 풍류는 번화(繁華)하면 풍표만점(風飄萬點)이 산란한 벽도화(碧桃花) 꽃잎만 저흩는 우물 속에 즉흥의 두레박을 드놓기도 할 때에는, 이 곧, 이르는 바 시혼으로 그 순간에 우리에게 현현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우리의 시혼은 물론 경우에 따라 대소심천(大小深淺)을 자재변환(自在變換)하는 것도 아닌 동시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존재입니다.
어디까지 불완전한 대로 사람의 있는 말의 정(精)을 다하여 할 진대는, 영혼은 산과 유사하다면 할 수도 있습니다. 가람과 유사하다면 할 수 있습니다. 초하루 보름 그믐 하늘에 떠오르는 달과도 유사하다면, 별과도 유사하다면, 더욱 유사할 것입니다. 그러나 산보다도 가람보다도, 달 또는 별보다도, 다시금 그들은 어떤 때에는 반드시 한번은 없어도 질 것이며 지금도 역시 시시각각으로 적어도 변환되려고 하며 있지만은, 영혼은 절대로 완전한 영원의 존재며 불변의 성형입니다. 예술로 표현된 영혼은 그 자신의 예술에서, 사업과 행적으로 표현된 영혼은 그 자신의 사업과 행적에서, 그의 첫 형체대로 끝까지 남아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시혼도 산과도 같으면은 가람과도 같으며, 달 또는 별과도 같다고 할 수는 있으나, 시혼 역시 본체는 영혼 그것이기 때문에, 그들보다도 오히려 그는 영원의 존재며 불변의 성형(成形)일 것은 물론입니다.
그러면 시작품에는, 그 우열 또는 이동(異同)에 따라, 같은 한 사람의 시혼일지라도 혹은 변환한 것 같이 보일런지도 모르지마는 그것은 결코 그렇지 못할 것이, 적어도 같은 한 사람의 시혼은 시혼 자신이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산과 물과, 혹은 달과 별이 편각(片刻)에 그 형체가 변하지 않음과 마치 한가지입니다.
그러나 작품에는, 그 시상의 범위, 리듬의 변화, 또는 그 정조의 명암에 따라, 비록 같은 한 사람의 시작(詩作)이라고는 할지라도, 물론 이동은 생기며, 또는 읽는 사람에게는 시작 각개의 인상을 주기도 하며, 시작 자신도 역시 어디까지든지 엄연한 각개로 존립될 것입니다. 그것은 또 마치 산색과 수면과 월광성휘(月光星輝)가 모두 다 어떤 한때의 음영에 따라, 그 형상을, 보는 사람에게는 달리 보이도록 함과 같습니다. 물론 그 한때 한때의 광경만은 역시 혼동할 수 없는 각개의 광경으로 존립하는 것도, 시작의 그것과 바로 같습니다.
그렇다고, 산색 또는 수면, 혹은 월광성휘가 한때의 음영에 따라, 때때로, 그것을 완상하는 사람의 눈에 달리 보인다고, 그 산수성월(山水星月)은 산수성월 자신의 형체가 변환된 것이라고는 결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시작에도 역시 시혼 자신의 변환으로 말미암아 시작에 이동이 생기며 우열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며 그 사회와 또는 당시 정경의 여하에 의하여 작자의 심령상에 무시로 나타나는 음영의 현상이 변환되는 데 지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겨울에 눈이 왔다고 산 자신이 희어졌다는 사람이야 어디 있겠으며, 초생이라고 초생달은 달 자신이 구상(鉤狀)이라는 사람이야 어디 있겠으며, 구름이 덮인다고 별 자신이 없어지고 말았다는 사람이야 어디 있겠으며, 모랫바닥 강물에 달빛이 비친다고 혹은 햇볕이 그늘진다고 그 강물이 ‘얕아졌다’ 혹은 ‘깊어졌다’고 할 사람이야 어디 있겠습니까.
3
여러분. 늦은 봄 삼월 밤, 들에는 물기운 피어오르고, 동산의 잔디밭에 물 구슬 맺힐 때, 실실히 늘어진 버드나무 옅은 잎새 속에서, 옥반(玉盤)에 금주(金珠)를 굴리는 듯, 높게, 낮게, 또는 번(煩) 그러히, 또는 삼가는 듯이 울지는 꾀꼬리 소리를, 소반같이 둥근 달이 등잔같이 밝게 비추는 가운데 망연히 서서, 귀를 기울인 적이 없으십니까. 사방을 두루 살펴도 그때에는 그늘진 곳조차 어슴푸레하게, 그러나 곳곳이 이상히도 빛나는 밝음이 살아있는 것 같으며, 청명한 꾀꼬리 소리에, 호젓한 달빛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보십시오, 그곳에 음영이 없다고 하십니까. 아닙니다 아닙니다. 호젓이 비추는 달밤의 달빛 아래에는 역시 그에뿐 고유한 음영이 있는 것입니다. 지나 당대의 소자첨(蘇子瞻)의 구(句)에 ‘적수공명(積水空明)’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이 곧 이러한 밤, 이러한 광경의 음영을 띠내인 것입니다. 달밤에는, 달밤에뿐 고유한 음영이 있고, 청려(淸麗)한 꾀꼬리의 노래에는, 역시 그에뿐 상당한 음영이 있는 것입니다. 음영 없는 물체가 어디 있겠습니까. 나는 존재에는 반드시 음영이 따른다고 합니다. 다만 같은 물체일지라도 공간과 시간의 여하에 의하여, 그 음영에 광도의 강약만은 있을 것입니다. 곧, 음영에 그 심천은 있을지라도, 음영이 없기도 하다고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영(英) 시인, 아더 시몬스의
“Night, and the silence of the night ;
In the Venice far away a song ;
As if the lyrics water made
Itself a serenade ;
As if the water's silence were a song,
Sent up in to the night,
Night a more perfect day,
A day of shadows luminious,
Water and sky at one, at one with Us ;
As if the very peace of night,
The older peace than heaven or light,
Came down into the day.”
라는 시(詩)도 역시 이러한 밤의, 이러한 광경의 음영을 보인 것입니다.
그러면 시혼은 본래가 영혼 그것인 동시에 자체의 변환은 절대로 없는 것이며, 같은 한 사람의 시혼에서 창조되어 나오는 시작(詩作)에 우열이 있어도 그 우열은, 시혼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요. 그 음영의 변환에 있는 것이며, 또는 그 음영을 보는 완상자 각자의 정당한 심미적 안목에서 판별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동탁독산(童濯禿山)의 음영은 낙락장송이 가지 뻗어 틀어지고 청계수 맑은 물이 굽이져 흐르는 울울창창한 산의 음영보다 미적 가치에 핍(乏)할 것이며, 또는 개이지도 않으면서, 비도 내리지 아니하는 흐릿하고 답답한 날의 음영은 뇌성전광(雷聲電光)이 금시에 번갈아 일며 대줄기 같은 빗발이 붓듯이 나려쏟치는 취우(驟雨)의 여름날의 음영보다 우리에게 쾌감이 적을 것이며, 따라서 살음에 대한 미적 가치도 적은 날일 것입니다.
그러면 시작의 가치 여하는 적어도 시작에 나타난 음영의 가치 여하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음영의 가치 여하를 식별하기는, 곧, 시작을 비평하기는 지난(至難)의 일인 줄로 생각합니다. 나의 애모하는 사장(師匠), 김억(金億)씨가 졸작 「님의 노래」
그리운 우리 님의 맑은 노래는
언제나 내 가슴에 젖어 있어요
.
긴 날을 문밖에서 서서 들어도
그리운 우리 님의 고운 노래는
해지고 저물도록 귀에 들려요
밤들고 잠들도록 귀에 들려요.
고이도 흔들리는 노랫가락에
내 잠은 그만이나 깊이 들어요
고적한 잠자리에 홀로 누워도
내 잠은 포스근히 깊이 들어요.
그러나 자다 깨면 님의 노래는
하나도 남김없이 잃어버려요
들으면 듣는 대로 님의 노래는
하나도 남김없이 잊고 말아요.
를 평하심에, “너무도 맑아, 밑까지 들여다보이는 강물과 같은 시다. 그 시혼 자체가 너무 얕다.”고 하시고, 다시 졸작,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그림자 같은 벗 한 사람이 내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많은 세월
쓸데없는 괴로움으로만 보내었겠습니까!
오늘날은 또다시 당신의 가슴 속, 속 모를 곳을
울면서 나는 휘저어 버리고 떠납니다그려!
허수한 맘, 둘 데 없는 심사에 쓰라린 가슴은
그것이 사랑, 사랑이던 줄이 아니도 잊힙니다.
를 평(評)하심에, “시혼과 시상과 리듬이 보조를 가즉히 하여 걸어 나아가는 아름다운 시다”고 하셨다. 여기에 대하여, 나는 첫째로 같은 한 사람의 시혼 자체가 같은 한 사람의 시작에서 금시에 얕아졌다 깊어졌다 할 수 없다는 것과, 또는 시작마다 새로이 별다른 시혼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좀 더 분명히 하기 위하야, 누구의 것보다도 자신이 제일 잘 알 수 있는 자기의 시작에 대한, 씨의 비평 일절(一節)을 일 년 세월이 지난 지금에 비로소, 다시 끌어내어다 쓰는 것이며, 둘째로는 두 개의 졸작이 모두 다, 그에 나타난 음영의 점(點)에 있어서도, 역시 각개 특유의 미를 가지고 있다고 하려 함입니다.
여러분. 위에도 썼거니와, 달밤의 꾀꼬리 소리에도 물소리에도 한결같이 그에 특유한 음영은 대낮의 밝음보다도 야반의 어두움보다도 더한 밝음 또는 어두움으로 또는 어스름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여러분. 가을의 새어가는 새벽, 별빛도 희미하고, 헐벗은 나무 찬비에 처젖은 가지조차 어슴푸레한데, 길 넘는 풀숲에서, 가늘게 들려와서는 사람의 구슬픈 심사를 자아내기도 하고 외롭게 또는 하염없이 흐느껴 숨어서는 이름조차 잊어버린 눈물이 수신절부(守臣節婦)의 열두 마디 간장을 끊어도 지게 하는, 실솔(蟋蟀)의 울음을 들어보신 적은 없습니까. 물론 그곳에 나타난 음영이 봄날의 청명한 달밤의 그것보다도 물소리 또는 꾀꼬리 소리의 그것들보다도 더 짙고 완연한, 얼른 보아도 알아볼 수 있는 것인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나는 봄의 달밤에 듣는 꾀꼬리의 노래 또는 물노래에서나, 가을의 서리 찬 새벽 울지는 실솔의 울음에서나, 비록 완상하는 사람에 좇아 그 소호(所好)는 다를는지 몰라, 모다 그의 특유한 음영의 미적 가치에 있어서는 결코 우열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다시 한 번, 시혼은 직접 시작에 이식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음영으로써 현현된다는 것과, 또는 현현된 음영의 가치에 대한 우열은, 적어도 기(其) 현현된 정도 급(及) 태도 여하와 형상 여하에 따라 창조되는 각자 특유한 미적 가치에 의하여 판정할 것임을 말하고, 인제는, 이 부끄러울 만큼이나 조그만 논문은 이로써 끝을 짓기로 합니다.
(『개벽』 1925년 5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