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발모습
아침 6시 10분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아빠 지금 몇 시야?"
"6시 12분이다."
나는 얼른 일어나서 세수하고 옷을 입었다.
아빠 차를 타고서 6시 50분쯤 오마초등학교정문 앞에 갔다.
비가 오고 조금 깜깜했다. 버스 안에 들어가니 표를 뽑지 않고 그냥 앉았다.
친구와 앉을 수 있다는 기쁨에 재빨리 앞에 앉았다.
난 아팠지만 드디어 떠나는구나 생각하니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룰루랄라."
앞에서 3번째 자리에 김규목과 않게 되었다.
한사람이 늦게 와서 출발시간이 25분 늦어졌다.
드디어 모두가 기다리던 출발을 하였다.
나는 아주 기뻤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궁금했었다.
버스 안에서 만재 7계명을 알려주었다.
◎ 만재 7계명
1. 개인시간과 전체시간을 구분하자
2. 시간을 잘 지키자
3. 개인시간이라도 뛰지 말자
4. 돌던지지 말자
5. 차를 타고 내릴땐 밀지 말자
6. 싸우지 말자
7. 장소에서 떠나기전 10분간 정리시간을 가지자
◎ 버스에서......
우리들은 자기소개를 하였는데 형, 누나,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모두 자신감이
넘치는 목소리였다.
화성휴게소에 도착하여 아침밥인 햄과 밥을 먹었는데 햄 맛이 이상해서 조금만
먹었다. 조금이라도 밥을 먹고 차에 타니 힘이 났다.
◎ 호남평야 풍경
버스 안에서 창밖을 내다보니 탁 트인 벌판이 보였다.
그리고 이번 기행에서 꼭 보고싶었던 호남평야 지평선을 보았다.
지평선이란 땅 끝이 보이지 않는 곳을 말하는데 어쩌다 한번씩 마을이 있고 모두가
논, 밭이었다. 그런데 만재 밭 흙 색깔은 연한갈색인데 호남평야의 밭 흙 색깔은
붉은 색 이였다. 만재 밭 흙은 거칠고 힘이 없고 약해 보였는데 호남평야 흙은 비료를
주지 않아도 식물이 잘 자랄 것 같은 부드럽고 건강한 흙으로 보였다.
◎ 맛없는 점심
부안에 들어선 후 우리들은 부안관광가든에서 점심을 먹었다. 밑반찬이 짜고 맛이 없었다.
점심을 먹은 후 밖에서 놀았다.
우리들은 마당 오른편에 소나무 숲이 있어서 솔방울을 서로 던지며 전쟁놀이를 했다.
버스를 타고 새만금간척사업을 반대하는 곳에 가던 중 오른쪽을 보니 회색인
갯벌이 나타났다.
◎ 해창갯벌을 둘러보자
차에서는 회색이라서 진흙 갯벌 인줄 알고 생물들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했는데 해창갯벌에 도착하여 들어가 보니 발이 푹푹 바지지 않는 펄과 작은 돌등이
고루 섞여있는 혼합 갯벌 이였다.
이 갯벌에는 따게 비와 갯비들이고둥, 작은 갯지렁이 밖에 없어서 실망했다.
해창 갯벌 입구에는 여러 가지 표어와 그림이 있는 컨테이너 집이 있었다.
새만금 간척사업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그 유명한 운동인 삼보일 배를 시작한 곳이라고
했다. 컨테이너에는 '새만금 죽음의 갯벌을 생명의 갯벌로'라는 글씨가 쓰여있었다.
그리고 갯벌에는 하늘을 향한 배와, 새, 그리고 장승들 있었는데 이것들은
새만금 간척사업을 반대하는 여러 단체들이 하늘에게 자신들의 뜻을 전하려고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내 생각에는 방조제를 만들면 또 갯벌이 생길 것 같은데 왜 반대하는지 이해가 안되었지만
나도 새만금간척사업을 반대하는 마음이 들었다.
◎ 새만금전시관이 뭘까?!
새만금전시관을 가보니 간척사업을 하면 좋은 점들이 있었다.
우리나라 땅이 넓어지고 새로운 도로가 생겨서 교통이 편리해지고 많은 사람들의
일자리가 생긴다고 했다. 그리고 만경강 동진강 상류에 침수지역이 없어진다고 한다.
새만금전시관을 둘러보니 다시 마음이 혼란스러워졌다. 왜냐하면 국가를 위해서는
간척사업을 해야하고 또 환경과 어민들을 위해서는 간척사업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좀더 생각을 해 보아야겠다.
◎ 바람이부는 방조제
우리들은 방조제로 갔다. 방조제에는 우리 모두를 날려 버릴만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설악산 미시령 휴게소 바람이 생각났다. 높은 산꼭대기 바람과 낮은 바다 바람이 모두
힘이 센 것 같다.
그런데 그때 건너편에서 공사중이였는데 트럭이 무작정 바다 물 속에 돌을 붇고 있는
모습이 재미있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우리들은 변산반도 국립공원에 대해 들었다.
변산반도는 경치가 아주 좋은 곳이라서 사람들이 훼손하지 못하게 나라에서
관리하는 국립공원이라고 했다. 우리들은 매서운 바람을 뚫고 나아가 차에 올라탔다.
차안은 시끌벅적했다. 버스는 다시 육지로 향했다. 김제에 있는 벽골제로 가는 것이다.
※ 사적 111호 벽골제를 찾아서
◎ 둑 주변 둘러보기
벽골제로 가는 창 밖은 또다시 호남평야 들판이 보였다. 벽골제 터에 도착하여 살펴보니
민속촌 수준이었다. 물을 퍼내는 용두래와 무자위부터 하늘로 솟았다가 땅으로 꺼지는
널뛰기, 직사각형 논에다가 일꾼들을 들여보내 가득 차면 500명하고 숫자를 세웠다는
되배미 까지 벽골제와 관련된 시설물들이 있었다.
벽골제에서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동산이 있었는데 그 산 이름은 "새야 새야 녹두새야"
책에 나오는 신털미산도 있었다. 많은 일꾼들이 짚신이 떨어지면 그곳에 던지고 새로운
짚신으로 갈아 신었는데 그 신발들과 신발에서 털은 흙이 쌓여서 만들어진 산이라고 했다.
우리고장에 있는 난지도도 쓰레기가 모여 산이 되었는데 신털미산도 그렇다고 하니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아니고 참말인 것 같다.
우리들은 벽골제 둑 위에서 만재 설명을 들었다. 만재께서 말씀하시기를 지금은 모두
없어졌지만 옛날에는 멀리 있는 산아래 까지 모두 저수지였다고 했다.
그런데 그곳에는 저수지는 아주 조금 남아있고 모두 논으로 변해 있었다.
새만금간척지처럼 물을 빼고 흙으로 메워 논을 만든 것이다.
둑 앞에 옛날 벽골제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놓았는데 일산 신도시보다도 더 넓어 보였다.
이곳은 평야지대이기 때문에 물이 부족하여 이 시설을 만들어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우리들은 벼농사를 지어보았기 때문에 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안다.
그리고 우리 팀은 만재밭에서 작은 저수지와 수로를 만들어 보았는데 3시간정도 걸렸었다.
옛날에 이런 공사를 하려면 아주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걸려서 했을 것 같았다.
오늘날 새만금간척지 공사 현장을 보면 많은 기계들이 공사를 하고 무거운 것을 트럭으로 운반하기 때문에 공사가 빨라지고 많은 사람 없이도 일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 박물관 안에서
우리들은 신털미산을 보려고 함께 걸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만재께서
"안되겠다 ! 돌아가자 위험해서 못 가겠어."
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들은 박물관으로 갔다. 박물관에는 여러 모형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대부분 수리시설과 관련된 것들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모형으로 꾸며져 있어서 재미있게 보는데 갑자기 긴급사태가 일어났다. 머리가 아프고 갑자기 어지럽고 미칠 것 같았다.
약기운이 다 떨어져서 그런 것 같다. 나는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빨리 뛰쳐나와서
찬 공기를 마시니 좀 살 것 같았다.
◎ 놀이천국
드디어 우리들은 개인시간을 가졌다.
우리들은 간식으로 가래떡과 음료수를 먹었는데 연못에 물고기들이 있어 누군가 떡을
던져주니 물고기들이 맛있게 먹었다. 재미있었던 일은 여자들은 그네와 널뛰기로 가고
누군가
"씨름할 사람 모여라!"라고 해서 남자들은 씨름판으로 모였다.
"씨름이랑 레슬링이랑 합쳐서 하기." 4학년 VS 5학년과 6학년 하기." "시이이작!"
우리들은 치고 박고 싸웠다. 하지만 몸집이 큰 5학년 형들은 탱크이고 4학년인 우리들은
쓰러져가는 나무들이었다. 우리는 거머리 작전을 썼지만 무리였다. 조금 뒤 만재께서
그만 하라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 5학년과 6학년이 치사했다. 팀 나누는 방법이 잘못된 것 같다. 무자위도 돌려보고 용두레도 해보았다. 연못으로 가서 낚시를 하였다.
갑자기 안상준이 클립을 들고 와 구부려 낚시바늘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나와 재원이가 실을 찾아와 묶었다. 승규는 미끼보스 나는 잡기보스 상준이는 도구보스였다. 우리들은 물고기들을 유인하는 미끼는 가래떡을 썼다. 낚싯줄에 기대를 걸고 "퐁당" 처음에는 썰~렁
하더니 왕건이 잉어가 물었다. 죽을힘을 다해 끌어올리니 왕건 이가 떴다가 다시 빠졌다. 우리들은 아주 안타까웠다. 벽골제 마무리하고 버스를 타고 모악산유스호스텔로 갔다.
◎ 세미나실에서 나눈 이야기
숙소 방이 넓었다. 대충 샤워를 하고 저녁을 먹은 뒤 우리들은 세미나실에서 하루동안
배운 것을 정리했다. 사회과부도를 펼쳐서 지도보기부터 했는데 정말 쉽고도 명쾌했다.
혼자서 사회과부도를 볼 때는 복잡하고 어려웠었는데 만재 설명을 들으며 우리들이
지나왔던 곳을 표시하며 살펴보니 정말 간다하면서도 쉽게 지도를 볼 수 있었다.
축척이란 말도 정확하게 알게 된 것이 무척 기뻤다. 3면이 육지이고 1면이 바다인 만과
3면이 바다이고 1면이 육지인 반도 그리고 우리나라 여러 곳에 있는 간척지들을 살펴
볼 때는 새만금 간척지만 있는 줄 알았는데 아주 많아서 깜짝 놀랬다.
그리고 서산에 있는 천수만도 가보기는 했는데 그때는 간척지란 말을 잘 몰라서
간척지가 아닌 줄 알았다.
모둠끼리 공부할 때는 여러 가지 생각이 많이 나오지 않아서 답답할 때도 있는데
형, 누나, 친구들 모두 모여서 하니 재미난 생각도 많이 나오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인 것 같다. 하루 정리를 하고 10시쯤 되자 모두 눈이 끔벅 끔뻑
움직이며 졸린 표정을 지었다.
◎ "쿨쿨" 하는 시간
숙소 방에 들어가자마자 우리는 옷을 갈아입고 이불을 펴고 누었다.
규목이가 불을 껐다. 어디선가 방귀소리가 시작되며 신음소리가 났다.
"부부부 뿌우웅."
"바바바바바바바바바바바빠아앙!"
"삐이이잉?!"
"냄시~"
"욱"
"아아"
규목이가 불을 켰다. 범인은 강성진과 장경한이었다.
경한이가 가짜 방귀소리를 내고 성진이는 굴러다니며 아이들을 찬 것이다.
만재가 와서 우리는 고요하게 잠들었다.
◎ 아침에 일어난 일
아침 5시 30분쯤 일어나 보니 모두 자고 있었다. 6시가 되자 몇 몇 친구들과
옷을 갈아입고 밖에 나갔다.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 이야기를 나눈 뒤 다시 밖으로
나가보니 보름할매와 몇몇 여자들이 나오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다가 훈련장 같은
놀이터를 찾아낸 우리들은 그곳에서 놀았다. 줄을 잡고 올라가는 기구를 탔는데
올라갈 때는 힘들지만 내려올 때는 스릴 있었다. 놀이터 옆에 개구리들이 짝짓기를
하고 건너편 작은 연못은 개구리들의 집단소 같이 많은 개구리들이 있었다.
참개구리와 산개구리들이 있었다.
속소 에 돌아와 아침을 허겁지겁 먹고 차에 타니 안 좋은 소식이 들렸다.
비가 와서 금산사에 올라갈 사람이 많지 않아서 금산사 산책이 취소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이때 나는 노래를 작곡 해보았다.
비야 비야 보슬비야/ 호남평야에 않지마라/ 비가많이 오면은/ 만재팀이 울고간다.
◎ 판소리와 신재효
결국 우리들은 일정을 바꿔 판소리 박물관을 먼저 갔다.
내가 정리한 판소리에 대해서 만들어 놓은 박물관이라서 빨리 보고 싶었다.
도착해 보니 신재효 생가가 박물관 옆에 있었다. 신재효와 판소리 모두 조사했기 때문에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판소리 박물관을 만재 말씀대로 혼자보기 아주 좋은 곳이었다.
자료를 찾아 정리해 보았기 때문에 보고 이해하기가 쉬웠다.
특히 영상 실에서 본 비디오는 지루하지 않으면서도 설명을 자세하게 해주었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영상 실에서 신재효에 대해 발표하고 할 때는 자료집이 없어 기억을 되살려 말해야 했기 때문에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박물관을 둘러보고 느낀 점은 역시 나는 판소리가 듣기 좋다는 것이다.
◎ 맛있는 김치찌개
우리들은 식당에서 또 김치찌개를 먹었다. 하지만 나는 김치찌개를 아주 좋아하기
때문에 밥을 남기지 않고 먹었다.
◎ 고창읍성과 관아가 뭘까요?!
신호등을 건너가는데 신재효 생가가 보였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고창읍성을 둘러보았다.
고창읍성안에는 관아가 있었다.
관청과 내아 동헌을 보았다. 나라일 을 보는 곳을 모두 관아라 불린다고 했다.
사또가 일하는 감옥만 관아인줄 알았었는데 더 넓은 뜻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관청은 주방 같은 준비하는 곳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동헌은 사또가 정치하는 곳이고 내아는 사또와 가족이 생활하는 곳이다.
고창읍성은 다른 성과 달리 잘 남아있다는 점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 밟기의 전설은 가짜이지만 꼭 한번 성 밟기를 해보고 싶다.
재미있을 것도 같고 무서울 것도 같았다.
고창읍성은 고창에서 생산되는 기름진 쌀을 왜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쌓은 읍성이다.
우리들은 동헌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버스로 돌아왔다.
고창관아관청 고창관아객사
고창읍성북문 고창읍성 모습
태인동헌 김제내아
◎ 고인돌이 무엇일까?
목적지인 고창고인돌에서는 고인돌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을 배웠다.
두 개의 돌 위에 큰 돌 하나 있는 것이 고인돌이라고 하는 줄 알았는데 굄돌 없이 돌
하나만 있는 것도 있고 받침 하나만 있는 것도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알아온 고인돌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다.
'굄돌 없는 고인돌은 발이 없는 것 같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만재를 따라 올라갔다. 올라가 보니 꼭 고인돌들의 집단소 같았다. 만재는 친구와 산을 따라 올라갈 때 더 많은 고인돌을 보았다고 말씀하셨다.
문화재답사로 역사와 친해지는 방법 책에는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고인돌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다고 했는데 줄이 우리를 막고있다는 것은 훼손될 우려가 있었던 것
같았다. 고인돌 군에 있던 고인돌들은 탁자 식이 없어서 실망했지만 그 곳에 있는
고인돌들에게도 특성이 있어서 좋았다. 그 특성은 검은색이라는 점이다.
일광욕을 많이 한 듯하다.
버스로 돌아와 고인돌박사님의 말씀을 들었다. 도움이 많이 되었다.
영어로 고인돌은 돌맨인데 한글과 영어를 합쳐 돌맨은 돌 사람이라고 들렸다.
고인돌을 설명해 주실 때 배운 점이 있다.
나는 가끔 친구들과 내 말이 맞다고 우기다가 엄마께 많이 혼나는데 엄마는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또 잔소리를 하신다.
"재윤아 박사님은 어떻게 말씀하시니 이렇게 많은 공부를
하신 분도 겸손하게 그리고 더 많은 생각을 존중해주시지 않니 좀 배워라."
듣기 싫지는 않았다. 내 마음속에도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2004년 2월 27일 금요일에 광릉수목원에 다녀왔는데 그곳에 고인돌이 두 기 있었다.
남방식 고인돌인 바둑판식 고인돌과 북방식 고인돌인 탁자식 고인돌이 있었다.
기행에서 배웠던 것이라 눈에 정확하게 들어오고 정겹게 느껴졌다.
그런데 왜 광릉수목원안에 있는지 궁금했다. 누군가가 말들어 놓은것인지~지
옛날부터 있었던 것인지? 다시 한번 자료를 찾아보아야겠다.
북방식 고인돌(광릉수목원) 남방식 고인돌(광릉수목원)
◎ 맛있는 저녁 돼지갈비
고창 청소년수련관이라 모악산유스호스텔 보다 더 안 좋을 줄 알았는데 그 반대였다.
"실외 공설운동장에다가 실내 수영장과 배구장!"
"무엇보다 좋은 이불과 좋은 방!"
하지만 행복 뒤에는 불행이다. 텔레비전이 안나오는 것이다.
이걸 두고
'빛 좋은 개살구'
라하나 참 허무했다.
옷을 갈아입으니 만재가
"자, 저녁 먹으러 나간다."
괜히 옷을 갈아입었다. 잠옷 채로 옷을 하나씩 더 입었다.
버스를 타고 동백가든에 갔다. 저녁메뉴는 갈비 였다. 와우!
장호성형이 구워준 맛있는 갈비를 먹었다. 나와 만재는 체면을 버리고 아주 많이
먹었다. 금세 내배 에 언덕이 생겼다.
다시 버스를 타고 숙소에 도착했다.
요번에는 발표를 할 수 있다는 소리에 들떠
반소매 옷을 입고 다목적실로 향했다.
◎ 다목적실
고창청소년수련관은 숙소와 다목적실이 멀리 있어서 반소매를 입고 이동할 때는 조금
추웠다. 용협이와 대나무 발표를 하고 박수를 받으니 기분이 울트라슈퍼 캡 짱으로 좋았다.
만재와 이야기를 나누고 라면을 먹었다. 그것도 컵에 먹는 컵라면을......
여러 발표들을 듣고 내 발표에 보충할 점이 몇 가지 생겼다.
<내 발표에 보충할 점>
1. 좀더 부드럽고 지루하지 않도록 발표한다.
2. 더 많고 좋은 사진자료를 찾아온다.
3. 다양한 내용들을 포함시킨다.
셋째 날 2004년 2월 23일 월요일
일정
아침밥-전봉준생가터-전시관-황톳제-고부 관아터-점심-행담도휴게소-집으로
◎ 아무느낌이 없던 아침
아침에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나니 아침 먹을 시간이 되었다.
동백가든에서 백반을 먹으니 배가 든든 했다.
◎ 전봉준 생가터에 갔어요
전봉준 생가터에 가니 어떤 아저씨가 계셨다. 만재는 그분이 설명을 하실 거라고
말씀하셨다. 생가터는 대충 보고 그 아저씨께서 만드신 전시관을 둘러보았다.
전봉준의 태몽부터 죽을 때까지를 자세하게 조각해 놓으셨다. 조각과 사진이라서 보기도
쉬웠고 재미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안쪽에는 여러 농기구가 전시되어 있었는데 산촌지방 쟁기와 남부지방 쟁기가 함께 전시되어 있어서 구분하기가 쉬었다.
남부지방 지게도 있었는데 산촌지방 것과는 다르게 지게다리가 길었다.
나오다가 길이 좁아서 나오기 힘들었는데 이런 소리가 났다.
"라볶이!"
"아니야 떡볶이야!"
"나의 라볶이를 알리지 마라"
"아다다다다"
"우 웩!"
무슨 말인지 계속 그렇게 말했다.
아슬아슬하게 피해나가 겨우 황톳제로 출발할 수 있었다.
◎ 황톳제에서의 기쁨과 슬픔
나, 용협, 성준은 황톳제 사당에서 절을 한뒤 사당부터 황톳제 꼭대기까지
삼보일배를 하였는데 재미있었다. 만재의 설명을 들으며 꼭대기에서
황톳제에 대해 알아보았다.
황톳제의 기쁨은 관군을 물리 쳤다는 것이고
황톳제의 슬픔은 비석 뒤에 있던 두 노래 가사다.
♬ 새야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않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청포장수 울고간다. ♬
♬ 가보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되면 못가보리 ♬
노래의 뜻은
왜적아 오지 말아라 동학농민군들을 죽이지 말아라 그들이 죽으면 온백성이 슬퍼한다.
갑오년에 가보세 을미년도 늦지 않았다. 병신년 되면 못간다.
라는 뜻이다.
만재는 동학농민운동은 한마디로 줄여보면
"사람이 곧 하늘이다"라고 했다.
우리는 내려오며 동학농민운동을 재연해보고 고부 관아터로 갔다.
◎ 동학농민군 vs 조병갑
가자마자 고부초등학교를 보니 그뒤에 산에서 동학농민군이
우리에게 죽창을 던지는 것 같고 산이 쓰러질 것 같았다.
만재는
"이곳이 고부관아터이야, 뒤를 보면 산이 병풍처럼 둘려있지."
정말 그렇게 보였다. 학교는 공사 중이었다.
나는 그것이 꼭 동학농민군에게서 습격 받은 고부관아를 수리하는 것처럼 보였다.
조금후 만재는 식당사정을 보러갔다. 다시 한번 뒤를 보니 우리를 향해 산이
쬐려보는 느낌이
'번쩍'
하고 들었다.
우리들은 잠시 놀이터에서 놀았다.
뺑뺑이도 타보고 기와조각도 여러 조각 보았다.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한참 놀고 있는데 만재가 왔다.
점심시간이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래로 내려가 점심을 먹었다.
이번 기행에서는 먹는 마지막 전라도 음식이었다. 우리가 먹은 곳은 마당이라서
햇빛이 많이 들어왔다.
밥을 먹고 고부 관아터인 고부초등학교에서 또 놀았다.
고부초등학교에 있는 놀이터는 아주 재미있는 곳이다. 우리학교도 놀이시설을
고부초등학교처럼 바꾸면 좋겠다.
호남평야와 헤어질 시간이 되자 우리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출발했다.
집으로 돌아올 때 열심히 기행문을 쓴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땡판 잤다. ㅡ.ㅡZ~Z~Z~Z~.....(나도 모르게 잤음 ㅠㅠ)
돌아오는 길에 행담도 휴게소에서 와플과 델리만쥬를 먹었다.
자다가 먹었지만 꿀맛이었다.
나는 밀가루를 두 번 죽였다. 한번은 구워먹었고 한번은 쪄서 먹었다.
(하지만 맛은 역시 기막히게 좋았다 ㅋㅎㅋㅎㅋㅎㅋㅎㅋㅎㅋ)
행담도 휴게소를 떠날 때부터 소감발표를 했는데 내 차례가 되자 이산포에 들어섰다.
참고로 나는 마지막으로 두 번째로 발표했다.
이렇게 빨리 돌아왔다는 게 놀라웠다.
부랴부랴 컴퓨터 학원에 갔다와서 생각해 보았는데 만재와 다닌 기행들에서는
이해가 잘되고 지루하지가 않았다. 이유는 만재가 우리들이 이해하기
쉬운 어조와 우리 눈높이에 맞춰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노래한곡♬
만재 아더찌와 함깨가는 기행들, 은!
아주쉽고 재미있는 행복한 시간~!
용협이는 만재가 인생에 행복이라네~?!! 나도 또한 만재가 내 인생에 행운이라네~?!!
※ 호남평야에서의 정리 ※
<갯벌>
밀 물때는 바다이고 썰 물때는 육지가 되는 곳으로 진흙갯벌,암석갯벌,모래갯벌,혼합갯벌이 있다. 다른 갯벌은 모두 가 보았는데 혼합갯벌은 처음 가 보았다.
<간척사업>
방조제를 쌓은 뒤 바다나 호수에 있는 물을 빼내어 흙으로 메우는 일을 간척사업이라고 한다.
<방조제>
물이 못 들어오도록 쌓아 놓은 둑이다.
시화방조제, 남양방조제, 석문방조제, 대호방조제, 서산A지구,B지구방조제, 영암방조제,
금호방조제
<저수지>
1년 동안 눈, 비, 샘물, 하천 물을 저수지에 모아두었다가 농사철 물이 필요할 때 수문을
열어 농수로로 보내주는 수리시설이다. 농부들에게는 꼭 필요한 중요시설물이다.
<판소리>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장단에 맞추어 북을 치는 고수와 하는 민속예술이다.
수를 세는 단위는 마당이다.
<신재효>
판소리의 이론가이며 선생님이다.
업적으로는 판소리 여섯 마당을 정리하셨다.
<읍성>
읍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성으로 방어시설이 많다.
<관아>
각 고을마다 있는 시설이다. 내아, 관청, 동헌, 객사등이 있고
사또가 임금님을 대신하여 정치하며 생활하는 곳이다.
<고인돌>
옛 사람들이 무덤, 모이는 곳, 행사장 등으로 사용한 것이며 곳이다.
생김새는 지역마다 다르다. 무게가 많이 나가는 것은 500톤이 넘는다고 한다.
여러 방법으로는 탁자식(북방식), 바둑판식(남방식), 홀로식(전국식?)
<대나무>
벼와 성격이 비슷하단 이유로 벼과인 목본이다. 여러 가지 쓰임새가 있어서
좋은 식물이다. 주로 기후가 따뜻하고 습기가 많은 남쪽에서 잘 자란다.
첫댓글재윤이 아주 즐거운 여행이었구나. 글을 읽다보니 즐거운 마음으로 글을 쓴 것 같다. 많은 역사와 지식도 알게되고, 재윤이가 배움의 줄거움이 가득차 보여 좋구나. 이렇게 긴 글 쓰기가 쉽지 않은데 말야^^ 헌거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글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누구나. 무릇 어떤 일이든 사람이 하기마련이거든.
역사속에서나, 지금이나 이름 없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 오늘날 우리가 있는거지. 동학 혁명은 말할 것도 없고, 저수지 만든 일이나, 고인돌 무덤이나, 드넓은 평야도, 판소리도. 사람들이 살아내려는 간절함이 없다면 그 모든 것들이 이루어 졌을까? 이런 생각하기엔 재윤이가 아직 힘들겠지. 하지만 사람의
첫댓글 재윤이 아주 즐거운 여행이었구나. 글을 읽다보니 즐거운 마음으로 글을 쓴 것 같다. 많은 역사와 지식도 알게되고, 재윤이가 배움의 줄거움이 가득차 보여 좋구나. 이렇게 긴 글 쓰기가 쉽지 않은데 말야^^ 헌거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글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누구나. 무릇 어떤 일이든 사람이 하기마련이거든.
역사속에서나, 지금이나 이름 없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 오늘날 우리가 있는거지. 동학 혁명은 말할 것도 없고, 저수지 만든 일이나, 고인돌 무덤이나, 드넓은 평야도, 판소리도. 사람들이 살아내려는 간절함이 없다면 그 모든 것들이 이루어 졌을까? 이런 생각하기엔 재윤이가 아직 힘들겠지. 하지만 사람의
마음과 행동이 없다면 그 어떤 것도 이루어낼 수 없다고 봐. 앞으로도 마찬가지고.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것은 우리가 오늘의 세상을 바로보며 살기 위해서라고 보거든. 이번 여행에서도 많은 것을 배웠더구나. 그 속에서 우리의 주체성과 당당함을 같이 배웠으리라 생각해.
재윤이도 그런 역사속 사람들처럼 당당함이 함께 묻어 자란다면 더 좋겠지?^^ 남보다 많이 알고 적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사람들과 함께 사는 삶이 더 중요하겠지^^. 재윤아, 글 잘 봤어. 다음에 또 기행 갔다오면 또 올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