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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영의 '페르샤 문화유적 답사기'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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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 김제영 / 2010-08-15)
한국소설가협회(회장 정을병)에서 8일간(1999.9.30 - 10.7)의 이란 페르샤 문화유적지 탐방이 있었다. 외교나 기업가의 개별 왕래는 있었지만 단체는 이번이 첫 시도로 이란항공(IRANAIR)이 주선을 했단다. 내 귀가 번쩍 뜨였었다. 경제학교수로 현재 미국 대학에 있는 내 맏사위가 이란 출신이다. 한때 그는 팔레비 축출에 열을 올렸었다. 호메이니가 입성하자 환호했으나 호메이니의 종파적 제정일치(祭政一致)의 극단적인 폐쇄정책을 우려했고 호메이니 사후에도 그의 뜻을 이어받은 하메네이를 중심으로 한 보수진들이 모하메드 하타미 현 대통령의 개혁의지를 꺾고 있다며 한탄하는 것을 어깨너머로 보아왔기에 이란항공의 관광유치가 이란 정국의 변화의 조짐으로 여겨져 반가웠던 것이다.
9월 30일 14시에 중국항공은 김포공항을 이륙, 15시 기내식 제공, 16시에 북경공항에 착륙했다. 넓고 우중충한 공항청사 창유리에 쏟아지는 빗줄기가 어릇거린다. 동양권 단체 관광객이 줄을 잇는다. 출입국 사정대의 외국인 줄은 굼뱅이 걸음인데 내국인을 담당했던 사정관들은 스스럼없이 자리에서 나와 농담도 하고 장난도 친다. 여유로운 그들의 모습이 신기하게 비쳐졌음은 공산주의 사회에 대한 ‘부자유’라는 그릇된 선입견 때문이었으리라.
북경이 경유지인 이란항공은 19시에 이륙했다. 승객 절반 이상이 이란인들이다. 검은 차도(Chador)가 발끝까지 덮은 스튜어디스의 자태가 감질이 나게 요염하다. 스튜어디스들의 외모 또한 아마샤리프에 버금가게 출중나다. 맏이가 이란 청년을 맞았다고 했을 때 맏이의 스승인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정진우 교수가 한 말이 생각나 웃움이 나왔다. 여인들의 차도로 하여 기내는 검은 색 일색이다. 우리에게도 스카프를 쓰라는 명이 내려졌다. 고도 10800m 그라운드 스피드 km/H 990 바깥기온은 섭씨 47℃를 오르내리다가 테헤란이 가까워지자 30℃로 떨어진다. 북경과의 시차는 5시간이란다. 테헤란공항에는 현지 시각으로 22시 30분, 반갑게 우리를 맞아준 한국대사관의 영사와 현지 가이드가 민첩한 서비스로 안내를 한다. 누구를 마중 나왔는지 빽빽이 서 있던 앳된 여인들이 우리는 일본인이 아니고 한국인이라고 하는데도 사요나라(안녕히 계세요), 오하요 고자이마스(안녕하세요)를 연발하며 즐거워한다.
Azadi Grand Hotel로 가는 길목에 Azadi 광장이 있고 거기에 AZADI(자유)탑이 서 있다. 유연하고 아름답다. 누구의 작품일까, 최첨단 감각으로 도시의 기능을 표출했으면서도 경박하지 않고 우아하면서도 오만하지 않다. Azadi탑으로 하여 이란에 대한 인식에 반란이 일어났다. 도시의 예술적 구조물 한 점의 영향이 이렇게 클 줄이야. 세계의 호텔이 다 비슷비슷 하지만 이란 호텔의 특이점은 방마다 천정 한 구석에 이슬람의 메카를 향한 화살표가 그려져 있음이다. 해가 뜨기 전, 점심, 오후, 그리고 해가 진 후, 이렇게 하루에 4회 화살표 방향에 절을 하며 기도를 한단다. 직경 3cm의 둥근 돌은 기도 시 이마에, 포는 깔개로 방마다 비치되어 있다. 이마 돌은 물론 메카의 것이라야 한단다. 그들은 그 돌을 신통력이 있는 것으로 믿고 있는 듯했다. 다음 날 아침에 맏이의 시동생이 아들을 데리고 호텔로 왔다. 아들은 고 3인데 의대를 지망하고 있고 테헤란의 의과대학을 보내야 할지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는 평이 좋은지 고민 중이라고 털어놓는다. 테헤란이라고 자녀들의 교육문제에서 부모들이 자유롭겠는가. 맏사위의 맨 누이와, 바로 아래(내가 만나고 있는)동생은 이란 국민으로 테헤란에 거주하고 있고, 바로 위 누이와 맏사위는 미국 시민권자로 미국에, 막내 동생은 캐나다, 그리고 사돈어른(사부인은 사망)은 일년의 반은 미국에 반은 이란에서 지내는 미국의 준 시민(미국 영주권)이다.
딸과의 긴 국제통화 끝에 마련한 구절판 세 개(사돈어른, 누이, 동생)를 전하고 나니 날아갈 듯 홀가분하다.
그러나 끝내 사돈어른의 단체초대에도, 맏이 시동생의 개별초대에는 응하지 못했다. 스케줄이 그렇게 빡빡하여 도저히 틈을 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조수(潮水)가 밀리고 들어오고 하듯 외침과 내분이 거듭되면서 형성된 이란 페르샤 문화를 보여주는 고증물(조각회화, 타일공예, 주물공예, 도자기, 자수, 벽의 부조 등)과 이슬람의 성전에 관한자료가 정연하게 정돈되어있다. 그 많은 자료를 어찌 다 소개할 수 있겠는가. 몇 점을 뽑아 박물관 소장품의 설명을 대신할 수밖에 없는 것이 지면의 한계이겠지만, 앞으로 찬찬히 소개하려 한다. 김제영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