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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샘에서 공부하시는 분들 그리고 다른 분들과 함께 여주를 다녀왔습니다. 월요일에는 '영주', 금요일에는 '여주' 여기서 잠깐 --- '영주'에서 이야기하지 못했던 것이 생각이 납니다. 오덕만 선생님께서 " 영주에 신도시가 생기면 뭐라고 이름을 지을까요? " ......
신영주 선생님께서 강의를 하시면서 몇 번을 이야기하셨던 '고달사터' 이번에 처음 가보게 되었습니다. 널다란 고달사지를 보면서 상상의 나래를 펴 보았습니다. IT 시대에 걸맞게 '역사스페셜'에서 나옴직한 컴퓨터 그래픽의 효과로 슝슝 기단부터 차곡차곡 쌓여가다가 드디어 완성이 되는 .......... 그러면 멋지겠지만, 상상력의 한계를 느끼며, 남아있는 유물들을 가늠해 보는 정도로 만족했습니다.
석불대좌의 크기가 가늠이 되시나요? ~ 선생님 덕분입니다. ㅎㅎ 그 옆은 고달사원종대사혜진탑비 귀부및 이수 부분입니다. (보물 6호)
그 옆길로 오르면 국보 4호인 고달사지 부도를 만날 수 있습니다. 사실 그리 많이 오르지 않았음에도 숨가빠하느라 고달사지 부도의 웅장하고 세련된 모습에 감탄의 시간이 늦어졌습니다. 8각의 탑신에 자물쇠모양과 영창(창문)의 모양을 또 한번 새롭게 보면서 여름에 무령왕릉 모형관에서 보았던 등감 밑에 조각된 창문의 모습이 생각이 났습니다. 사후세계에서 창을 통해 보는 현실의 모습이 어떠할지 걱정이 되면서....
다음은 세종과 효종이 잠들어 계시는 영 , 영릉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의 영릉은 최초의 합장릉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세종대왕 사랑이 물씬 풍기는 주변 환경을 감상할 수 있었고, 현장학습나온 아이들이 삼삼오오 활동지를 가지고 다니며, 입구에 전시되어 있는 측우기, 해시계, 혼천의 등의 모형물 앞에서 그림을 그리기도 하면서 활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맨 앞에 더 많이 모여 있는 아이들은 어떤 활동을 하고 있었을까요? 정말 궁금해서 다가가보았습니다. ---> 답하시는 분 계시면 답해드리겠슴.
막 뛰어오는 두 소녀에게 " 영릉(효종)이 여기에서 머니?" 라고 묻자 " 아니요. 700m 정도 남았어요. 정말 멋져요 ! " 라는 대답을 들으며, 모두들( 들은 사람들 모두 ) 그 아이들의 영민함과 성숙함에 감탄을 하기도 하며, 또 하나의 영릉(효종과 인선왕후)으로 이동을 했습니다.
사람들의 눈과 궁금증은 비슷한가 봅니다. 영릉(효종과 인선왕후릉)은 동원상하릉의 형식으로 앞뒤로 조성이 되어 있습니다. 그 길로 올라가면서 앞에 있는 능이 효종의 능일까? 인선왕후의 능일까? 에 대한 내기를 했습니다. 전 그 순간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인 남하당 여당당의 멘트 " 어디 여자가 남자 앞을 가로막아 ! " 가 생각나며, 아마도 앞의 능이 효종능이 아닐까 했지만, 앞쪽에 있는 능은 인선왕후의 능이었습니다. 인선왕후의 석물 중 문신과 무신옆에 서 있는 말이 너무 작아서 문신과 무신들이 저 말을 타면 말이 뽀사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도 같이들 했습니다.
여주시내로 가서 2인분 정도 양의 버섯육개장을 먹고, 신륵사로 이동했습니다. 신륵사는 신라시대에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고려말 나옹대사가 머물렀던 곳으로 더 유명하고, 영릉이 조성된 이후 원찰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가을의 따뜻한 햇살과 넉넉해진 뱃심으로 가을을 맘껏 느끼며 신륵사의 여기저기를 돌아보았습니다.
[ 신륵사 입구에서 보이는 여강의 모습 ] [ 정자의 기둥에 서 계신 선생님 ]
통건물로 지어진 조사당을 보고, 통째로 없어져 보수되는 극락보전 자리도 보고, 석종형 부도도 보고, 신륵사 다층전탑도 보고, 석종비, 대장각기비도 보고, 신륵사 3층 석탑을 보며 드디어 여강이 펼쳐진 정자에 이르렀습니다.
오늘의 가을과 여정을 다시금 되새기며, 시 한수 읖조리기도 하고, 현대문명의 도움을 얻어 MP3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취해보기도 했습니다. 그 모든 것을 가슴에 촉촉히 적시며,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리고 전화버튼을 누르며 " 엄마야! 엄마 조금 있으면 도착하니까 숙제하고, 간식 먹고 ...."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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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ㅎㅎ 즐거운 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