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된 평화
성경 말씀: 이사야 32:9-20; 로마서 5:1-11
요약
한글 성경에 “평안”으로 써왔기 때문에 평화의 뜻이 개인의 마음 상태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종교적인 전통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평화로 오셨지 개인의 평안으로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세상의 평화로 살아야 합니다. 교회로 평화가 열매 맺어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평정과 평화
“평화”는 성경에 중요하게 나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인사가 “샬롬(평화)”입니다. 그런데 구약은 그들이 평화를 그렇게 바랐음에도 평화롭지 않는 삶을 산 이야기로 엮어집니다. 그들은 메시아를 평화를 가져올 분으로 기다렸습니다.
평화를 메시아와 더불어 생각한 것은 평화를 개인적인 마음의 평안으로 여긴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임할 것으로 여긴 것입니다. 즉 삶으로의 평화이지 마음으로의 평안이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평화는 성경의 주제입니다.
예수님의 탄생도 하늘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고 땅에서는 기쁨을 누리게 된 사람들에게 평화로 말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영광을 보이시면서 세상에 평화를 이루실 분으로 탄생하셨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또한 편지를 은혜와 평화의 인사로 시작합니다.
개인이 마음으로 누리는 평안은 평정이라고 하겠습니다. 마음이 외부로부터 받는 자극으로 요동하지 않고 원래의 상태로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적인 명상으로 평정심을 갖는다고 합니다.
따라서 종교적으로 다루는 것은 평정이지 평화가 아닙니다. 개인으로는 평화보다 평정된 마음을 바랍니다. 그렇기에 종교는 개인의 평정심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세상, 혹은 땅의 평화는 종교적인 수양의 목표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으로 평화를 말합니다. 예수님의 탄생이나 죽음은 평화로 이야기됩니다. 예수님으로 이야기되는 평화이니 구원의 내용입니다. 즉 평화는 현상으로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닌 구원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나 종교에서 다루는 것은 현상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에서나 종교에서 이야기되는 평화는 현상으로 유지될 것입니다. 세상이 평화의 상태로 바뀌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바뀌게 하는 요인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으로 평화는 세상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평화는 예수님으로 세상에 임한 것입니다. 현상적인 내용이 아닌 구원의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특이한 현상이 아닌 구원자이십니다. 즉 예수님을 이야기하는 것은 구원의 내용입니다.
예수님으로 구원의 평화를 말하게 됩니다. 예수님으로 평화는 구약에서 보는 바라는 평화나 철학에서 다루는 이상의 평화와는 다릅니다. 세상에 예수님으로 임한 평화입니다. 구원의 평화는 성령님의 열매로 맺어집니다.
구원의 평화로 보면 힘으로 추구하는 평화는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려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힘에 의하여 묶인 채 갈등과 분쟁을 해소하며 사는 것입니다. 국가가 지닌 무력으로 보이는 것이 그렇습니다.
이루어지는 평화
구원의 평화는 이루어집니다. 세상에 이루어지는 것은 세상에서 만들어지는 것과는 다릅니다. 세상에서 만드는 것은 변화입니다. 변화는 힘에 의하여 야기됩니다. 그런데 분쟁에서 평화로 변화시키는 힘은 분쟁이 없는 상태로 유지하려는 것뿐입니다.
세상에서 사람이 노력하는 것은 세상을 바꾸는 것을 넘지 못합니다. 힘에 의한 평정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보이신 것은 평화의 이루어짐입니다. 힘의 표현이 아닌 평화, 곧 변화가 아닌 평화를 이루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평화를 심어셨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이 평화의 씨로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이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그것을 세상에 심으신 것입니다. 그로 평화가 열매 맺고 수확되었습니다. 교회가 십자가로 서는 것은 세상에서 예수님으로 열매 맺어짐을 보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로 심어진 곳에는 열매가 맺어집니다.
예수님으로 하나님의 뜻은 세상에 이루어짐으로 말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뜻은 열매 맺어짐이라고 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뜻은 세상에 이루어지고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생명은 세상에 열매 맺습니다.
하나님의 뜻으로의 평화는 이루어지고 하나님과 화해된 생명으로의 평화는 세상에 열매 맺어집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심어짐으로 열매 맺는 삶을 말하게 됩니다. 그 곳은 교회라는 생명의 밭입니다.
세상에 이루어짐이나 열매 맺어짐은 구원으로 말하여지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무얼 하는 것은 세상을 변화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의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구원되어야지 자신이든 다른 사람이든 구원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세상의 변화에 속하여 살 뿐입니다. 구원되어야 하니 사람은 세상에 평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평화는 세상의 구원이지 세상의 변화된 상태가 아닙니다.
언제나 자체로 요동하며 변화하는 세상에서 평화는 하나님과 화해로 보입니다. 즉 하나님과 함께하는 생명의 삶이 이루어짐으로 보입니다. 세상 자체만으로는 평화로울 수가 없습니다. 단지 요동이 줄어든 상태에 처하여질 뿐입니다.
물론 이런 말은 예수님으로 이야기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뜻은 예수님으로만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변화에 속한 사람으로서는 구원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단지 수양으로 자신의 마음이 외부로부터 오는 자극을 극단적으로 차단하게 하는 정도입니다.
구원을 의식하지 못하면 사람들은 평화를 생명으로 다루지 못합니다. 단지 요동이 적은 안정된 상태로만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상의 평화가 아닌 마음의 평화만 집착합니다.
교회는 생명의 밭
평화는 교회라는 생명의 밭에서 맺어지는 열매 가운데 하나입니다. 교회는 세상에 있는 기관과는 달리 하나님과 화해된 생명의 밭입니다. 그래서 교회로 하나님과 함께하는 생명의 열매가 맺어집니다.
사람들이 평화를 이루려고 하다가 더 분쟁을 일으키게 되는 것은 평화를 평정된 상태로 접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갈등과 분쟁을 없애는 방법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힘의 의한 평화로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정치적으로 추구하는 평화는 이런 형태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으로의 평화는 구원의 생명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의 평화는 삶에 씨로 자라며 열매 맺음으로 파급됩니다. 평화는 함께하는 것이지 모이는 것이 아닙니다. 갈등이나 분쟁이 없는 모임이 평화가 아니라 함께함이 평화입니다.
하나님과 화해됨이 없이는 함께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모임은 어떻든 세상의 조건적인 힘의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조건적인 힘이 화해되면 모임도 없어집니다. 그러면 혼란과 갈등으로 접어들게 됩니다. 그래서 세상의 모임에서는 힘이 필수적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의 삶만 하더라도 힘에 의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이 그렇게 평화를 바랐지만 평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삶은 모임을 벗어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나라가 망하면서 그들은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세상에 이루어진 것은 힘의 표현이 아닙니다. 함께의 생명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과 화해하는 생명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평화를 상태가 아닌 생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세상의 평화는 세상에 있는 것들의 상태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있는 것들로는 마찰이나 충돌이 없으면 평화롭다고 하게 됩니다. 그래서 조화나 통일로 평화를 생각해 온 것입니다. 그렇게 평화를 의식해 온 만큼 세상에 평화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평화는 새롭게 소산되는 것이지 변화된 상태가 아닙니다. 평화는 세상을 바꾸어서 이르게 되지 않고 새로운 열매로 맺어지는 것입니다. 즉 평화의 생명이 맺어짐으로 평화가 피어나 자랍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평화를 보려고 하기 보다 교회로 평화를 보려고 하여야 합니다. 세상을 바라보면 언제나 변화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교회로는 생명의 자람을 의식합니다.
세상만 바라보면 자연이라 할 것입니다. 자연은 평화롭다고 할 수 없습니다. 있는 것 자체에는 평화의 내용이 없습니다. 평화는 화해라는 이루어지는 내용에 담깁니다. 평화는 창조의 내용이 아닌 구원의 내용입니다.
따라서 평화는 질서, 조화, 통일과는 구별되게 생각해야 합니다. 평화는 이루어지는 것이지 있을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있게 하려고 시도하기 때문에 평화라는 이름 아래 더 문제를 만들어왔습니다. 독재자는 결코 평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세상의 평화는 세상 자체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뜻으로 오신 예수님으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으로 하나님께서 화해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와 화해된 평화의 터전이 교회입니다.
교회로 평화가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