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요약> 마태복음 16:13-20/ 반석 위에 세운 내 교회
총회 산하에는 69개의 노회가 있고, 우리가 속한 광주노회 안에는 시찰회가 있습니다. 평화목교회가 속한 광주시찰 안에 8개 정도의 교회가 속해있습니다. 시찰이란 영어로 visitation이라고 하는데, 종교개혁 당시에도 있었던 기관입니다. 시찰회가 하는 일은 여기에 속한 교회들이 건강하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관찰하고 지도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름이 달라도 “하나의 교회”입니다.
각각의 교회가 서로 다른 특징들이 있지만, 다양성과 함께 일치성도 존중되어야 합니다. 공동의 교회관이 존재한다는 말씀입니다. 노회와 총회의 규정이 있지만,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도 교회의 일치를 구성하는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따르는 교회여야 예수의 제자가 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교회가 해야 하는 사명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예배(leiturgia)입니다. 예배에는 순서가 있고 규칙이 있습니다. 하지만 형식은 잘 지키는데, 그 내용이 예수의 정신과 다르면 그 예배는 무용지물입니다. 예수는 요한복음4:24절에서 사마리아여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라!”고 말입니다. 영으로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예배를 드리라는 말인데, 진리와 연결이 됩니다. 진리로 예배드리라는 것은 자기를 속이는 예배를 드리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마음 그리고 진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는 예배를 드리라는 것이지요.
둘째는 교육(didache)입니다. 가르쳐 지키게 할 것은 “십자가 정신”입니다. 세상은 십자가를 어리석다고 생각합니다. 나약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지혜는 약하고 어리석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아주 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셋째는 전도입니다. 선교(missio)라고 표현하는 것이 좀 더 현대적입니다. 이 말은 예수께서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냈다는 의미입니다. 요한복음 20장에서 예수는 제자들을 보내면서 용서를 강조합니다. 저주하고 보복하는 세상 속에 나간 제자들이 용서를 가지고 나가는 것은, 분노를 이해로, 보복을 관용으로 바꾸어나갈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선교는 신자를 만드는 것이기 전에,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는 일입니다.
넷째는 봉사(diakonia)입니다. 봉사는 섬기는 일인데, 힘이 좀 드는 일입니다. 그리고 누가 알아주지 않으면 서운한 것이 봉사입니다. 하지만 바울사도는 자랑할 것이 있으면 주안에서 자랑하라고(고전1:31) 가르쳤습니다. 내게 봉사할 능력이 있는 것은 감사할 일이고, 내가 봉사한 것이 결실을 맺어 칭찬을 받으면 그것은 주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그래서 오른 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이 꼭 맞는 말씀입니다.
마지막 다섯째는 친교(koinonia)입니다. 모여서 재미있게 즐기는 것은 형식입니다. 하지만 그 내용이 더 중요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친교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친교입니다. 그래서 함께 모여 위로하고 용서하고 인내하는 삶이 주는 기쁨을 서로 나누는 시간이 친교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태16:16)라고 주님께 대답했을 때, 그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운다는 것은 교회의 머리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예수는 교회의 토대요 머리입니다. 머리라는 말은 캡틴(captain)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머리이신 그리스도라면 어떻게 하실까 우리는 늘 깊이 생각해야합니다.
동시에 예수께서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 죽음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16: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반석 위에 세운 교회는 “내 교회”입니다. 예수님의 교회입니다. 비록 우리가 “우리교회”라고 부르면서 교회를 사랑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우리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님 소유입니다. 그리고 죽음이란 말은 하데스를 말합니다. 지옥이지요. 그래서 교회는 생명을 살리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마치 죽은 것과 같은 생각이나 행동을 벗어 버려야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지친 어깨로 교회에 찾아온 사람이 기쁨을 회복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교회에게 준 “맺고 푸는 권세”를 바르게 사용할 결심을 단단히 해야 합니다. 교회라고 해서 다 교회일까요? 주님의 뜻이 살아있고, 그 안에서 죽음을 이기고 생명을 회복하는 교회다운 교회가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일 것입니다. 비록 십자가의 도가 세상 사람들의 눈에 어리석어 보여도 그것이 세상을 이기는 하나님의 지혜인 것을 안다면, 교회는 세상 속에 작은 희망을 전해주는 선한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