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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정말 오랜만이죠?
그동안 일이 바빠 진즉 작성한 책 추천 글도 못 등록하고 있었어요.
그렇다고 지금 이 시점에서 바쁜 게 해제되었는가 하면, 또 그건 아니라서 그저 잠시 글 올릴 짬이 났다고 해두겠습니다.
다음에 책 추천은 단편으로 짧게 한두 권 소개하는 방식으로 해야 할까 봐요.
도서명: 종소리
저자: 닐 셔스터먼
* 이 도서는 전자도서 플랫폼 밀리의 서재를 통해 독서한 책입니다.
* 소개글 서평
드디어 이 시리즈의 3편 종소리를 손에 들었다. 정확하게는 스마트폰을 들었다고 해야 하나?
그리고 다 읽었다. 중간에 다른 책으로 잠시 새기도 했지만, 원래 이따금 책은 이 책 저 책 읽기도 하는 법이다.
몰랐는데, 이런 독서법을 병렬식 독서라고 한다는 모양이다.
사실 수확자 시리즈 3편에 해당하는 《종소리》가 좀 분량이 긴 편이다. 그래서 병렬식 독서를 하는 것도 좋을지 모른다. 사람이 집밥만 먹으면 가끔 질리니까, 외식도 하는 거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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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소리》 - 수확자 시리즈의 마지막, 유토피아의 끝에서 그들이 찾아낸 결말은?
“그 이상이야, 그레이슨. 인류가 현재의 상태를 넘어서 성장하려면 둥지에서 밀어 떨어뜨려야만 해.”
소설은 납치 장면으로 시작한다. SF 장르에서 뜬금포로 웬 납치인가 싶겠지만 여기에는 다 사정이 있다.
시리즈 2 편 <선더헤드>에서 나쁜놈 로버트 고더드의 부활로 대형 참사가 벌어졌다. 섬 하나가 통째로 가라앉은 것이다. 결국 그 일로 클라우드의 진화형 AI 선더헤드는 인류에게 ‘불미자’ 딱지를 붙였다. 이제 인류는 선더헤드와 소통할 수 없고, 어떤 일에 대해서 조언을 구할 수도 없다. 자신의 선택에 온전히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심지어 선더헤드와 인류의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던 관청 대면청의 민구스 요원까지 죄다 실직되었다.
당연히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다. 그들은 자신이 해야 하고, 자신이 결정할 온갖 것들에 대한 선택을 선더헤드가 대신 내려주길 바랐다. 그러나 이 불미자 딱지에서 유일하게 예외인 인물이 있으니, 바로 그레이슨 툴리버였다.
납치는 유일하게 선더헤드와 소통이 가능한 그를 노리고 벌어진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레이슨에게 선더헤드와의 교신을 요구하고, 탄언을 통해 선더헤드가 다시 복잡한 문제를 떠맡아주길 바란다. 그러나 선더헤드는 그레이슨을 통해 어떤 미지의 곳에 대한 좌표만 전달할 뿐이다.
그레이슨은 혼란으로 우왕좌왕하는 사람들, 갈피를 못 잡는 사회 군상을 보며 자신이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마침내 웬 사이비 종교 같은 음파교의 힘과 선더헤드의 조력을 얻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로 한다. 종교의 형태를 빌려 교주 혹은 성인인, 어떤 초월적인 존재 이른바 ‘종소리’가 되기로 한 것이다. 물론 그 배경에는 선더헤드의 지지와 조력이 있었다. 이 AI에게는 인류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계획이 있었고, 그것에는 그레이슨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레이슨은 ‘종소리’로서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광신도 끼가 있는 이들을 잠재우며, 인류가 좀 더 나은 선택을 하도록 이끌려 한다.
“그렇다면 수확령에 반하여 행동할 것 같은 사람들은 어때? 간단한 알고리즘 하나면 누가 그런 행동을 할지 예측할 수 있을 텐데.」
한편 수확령은 고더드의 손에 의해 격변을 겪는다. 물론 부정적인 방향이다. 폭력과 방종과 방관에 의해 수확령은 사분오열되어 신질서와 보수파로 나뉘어 극적으로 대립한다.
고위 수확자가 된 고더드는 자신의 입맛대로 인류를 계량하겠다 설친다. 그를 위해 이 양반, 멀쩡한 백과사전까지 갈아엎는다. 특히 편견이나 차별의 정의를 조작해 차별이 차별이 아니게 만들고, 은근히 편견을 조장하기까지 한다. 한마디로 히틀러의 인종 청소, 일본 제국주의의 부활 등 역사 속 폭군과 독제자들을 페러디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세상이 잘못된 인간에 의해 난장판이 되는 가운데, 돌파구를 찾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된다. 그래, 아직 꿈과 희망은 남아 있었다.
“뭐가 있든 간에 설립자들이 남긴 거야. 어쩌면 악해져 버린 수확령에 대한 해답일지도 모르지. 내가 찾으러 온 해답.”
우선 시리즈 1편에서부터 사망을 위장한 수확자 마이클 패러데이와 시리즈 2편에서 그에게 합류한 전직 도서관 사서 무니라로 구성된 팀은 초대 수확자들이 남긴 안배가 있음을 확신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천신만고 끝에 초대 수확자들이 예비한 외딴 무인도에 도착한다. 비록 그 섬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지만,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가 있을 법한 비밀스러운 장소를 발견했다.
하지만 그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리고 패러데이와 무니라로서는 그 문을 열 방법이 없었다. 개문을 위해서는 수확자 반지가 두 개 필요했기 때문이다. 즉, 두 명의 수확자가 있어야 했다. 수확자가 한 명이라도 반지만 두 개 있다면 열 수 있었다. 그러나 외딴 섬에는 수확자 마이클 패러데이뿐이었다. 반지도 그의 것 하나뿐이었다. 외부로 연락을 취할 수단도 없었다.
그나마 선더헤드의 안배에 의해 전직 대면청 민구스 요원 일행이 왼딴 무인도에 찾아오며 희망이 보이나 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선더헤드의 어떤 목적을 수행하는 인력으로 발탁되었을 뿐, 수확령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타개책은 아니었다. 하기사, 선더헤드는 수확령 문제에 어떤 식으로든 관여할 수 없다는 게 규칙이긴 했다. 인간의 손에 온전히 맡겨진 영역인 것이다.
게다가 패러데이는 민구스 요원들에게서 대수확령 참사를, 그리고 그 희생자 중 옛 연인이자 친구인 마리 퀴리가 있다는 것을 전해 듣는다. 더불어 애제자 수확자 아나스타샤도 그 희생자 목록에 있다는 것까지 말이다. 결국 실의에 빠진 패러데이는 은둔자가 되는 길을 선택한다.
그러나 사실 아나스타샤, 즉 시트라는 아직 사망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일시 사망한 상태였지만, 되살아나는 데 성공한다. 바로 아마조니아 수확령에 의해서 말이다.
그들은 고더드 몰래 바다 밑에 가라앉은 대수확령의 섬을 발굴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금고에 보관된 수확자의 상징인 반지들을 되찾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그것이 고더드의 폭주를 막기 위한 돌파구가 되리라 기대한 것 같다. 그를 위해 최고의 인양팀을 섭외하는데, 여기서 등장하는 새로운 캐릭터가 바로 제리 소베라니스이다. 그 혹은 그녀는 젠더프리의 소유자로, 꽤나 독특한 정체성을 가진 매력적인 인물이다.
우여곡절 끝에 금고는 세상 빛을 보게 되고, 그 안에서 반지뿐만 아니라, 참사의 생존자 수확자 아나스타샤와 루시퍼로 악명 높은 로언을 구하게 된다. 그 둘은 시리즈 2편에서 마리 퀴리의 기지로 냉동 인간의 형태로 보존되어 있었다.
“매일같이 내가 없는 동안 세상이 얼마나 변했는지에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에요.”
겨우 재생해 살아난 시트라는 점차 망가져가는 수확령과 세상을 보고 혼란과 절망을 느낀다. 하지만 한탄할 짬이 없었다. 자신의 범죄의 증인이자 목격자인 아나스타샤를 잡기 위해 고더드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시트라는 아마조니아 수확령의 도움으로 인양팀 선장 제리와 함께 피신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로언은 그만 고더드의 수중에 떨어지고 말았다.
고위 수확자가 된 고더드는 자신의 업적을 과시하고, 지배력을 더욱 공고하게 다지고자 루시퍼 로언을 공개 화형시키고자 한다. 그것도 알록달록 무지개 색깔 불꽃까지 연출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의 야심찬 계획은 텍사스 수확령이 도중에 로언을 빼돌리는 바람에 무산된다. 그 일을 계기로 고더드는 대학살을 자행하게 되고, 세상은 더더욱 공포 분위기에 물든다.
한편 시트라는 고더드에 얽힌 비밀을 파헤치고자 선더헤드의 후미, 즉 데이터베이스와 비슷한 아카이브를 탐색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수확령이 자행한 끔찍한 진실을 발견한다. 화성과 달 등 우주 콜로니의 대참사, 고더드가 우주선 개발자를 은근 수확한 목적, 그 일련의 사건 뒤에 숨은 진실은?
외딴 섬에 건축되는 수수께끼의 구조물, 그리고 AI에 의해 속속 모여드는 인류와 냉동고 안에 일시 사망한 상태의 사람들. 과연 선더헤드가 기획한 인류의 탈출구는?
텍사스 수확령의 은근한 협박이 첨부된 강요로 암살자가 된 로언, 그는 시트라와 다시 재회할 수 있을까?
끝으로 좌절에 빠진 마이클 패러데이, 그는 눈앞에 둔 초대 수확자들이 남긴 진실과 해결책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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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의 끝을 알리는 종, 새로운 신화를 알리는 소리 - 《종소리》
솔직히 수확자 시리즈 중 이번 3 편이 가장 SF 소설 분위기가 났다. 그도 그럴 게 1편 <수확자>는 반지와 로브, 그리고 미묘한 관습 탓인지 중세 같았고, 2편 <선더헤드>는 폭탄범과 흑막의 존재감 때문에 어딘지 모르게 서스팬스 추리물 같았기 때문이다.
사실 3편 《종소리》도 막판에 우주선과 인류의 행성 이주 계획 아니었으면, 이 시리즈 장르가 SF라는 걸 뚜렷하게 자각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설정이나 세계관이 SF이긴 했다. 클라우드의 상위 존재로 진화한 AI 선더헤드에 의해 모든 게 편해지고 책임에서도 벗어난 인류, 심지어 사고에 의한 것이든 타의에 의한 것이든 죽음마저도 더는 인류를 위협하지 못한다. 진정한 사망은 없다. 오직 일시 사망만이 있을 따름이다. 진정한 끝을 줄 수 있는 것은 포화된 인류의 개체수를 조절하기 위한 사회적인 약속 같은 존재들, ‘수확자’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불완전한 생명체이다. 아무리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며 선한 의도로 만든 법이나 제도도 어떻게든 악용하고, 시작은 정당한 사명에서 기인했어도 중간부터는 이득에 눈먼 이들의 손에 조각조각 쪼개져 빛바래고 마는 게 우리의 소산 아니던가.
누구에게나 죽음을 가져올 수 있는 존재,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특권 계층인 이들이 변질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들도 한낱 인간인데?
이 시리즈의 주요 문제적 캐릭터 수확자 로버트 고더드만 봐도 답은 나왔다. 아니, 마이클 패러데이의 고뇌 속에 밝혀진 초대 수홝령의 시작부터 이미 잘못 끼워진 단추였다. 어떤 사안에 대해 둘로 나뉜 대수확자들, 그들은 대화와 설득을 통한 합의 대신 피로 얼룩진 숙청을 단행했다. 그리하여 지금의 수확 제도가, 오늘의 수확령이 탄생한 것이다.
‘수확자’와 ‘수확’이란 건 까놓고 보니 결코 고결한 그 무엇이 아니었다.
이 진실에 마이클 패러데이는 큰 좌절을 느낀다. ‘수확자’로서 긍지와 소명 의식을 갖고, 수확을 행해 왔는데, 그 행위 자체가 인간의 탐욕을 위한, 권력을 유지하고자 한 수단에 불과했다니 무척 허탈했을 것이다. 어쩌면 인간 자체에 환멸을 느꼈을지 모른다. 그런 그에게 전직 도서관 사서 무니라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예요. 그런데 어떻게 완벽한 세상에 들어맞을 수가 있겠어요?”
그랬다. 인간은 태생부터 불완전하다. 성경에도 보면, 태초에 완전한 존재인 아담과 이브가 어찌저찌한 과정을 통해 불완전한 존재로 거듭나는 이야기, 신화가 있지 않던가.
사실, 책 속에 유토피아도 결코 완전한 세상은 아니었다. 정말 완벽했다면, 수확자라는 제도 자체가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그저 완벽함에 가까운 사회상일 뿐이다.
게다가 그 ‘완전함’으로 인해 인류는 더 불완전해졌다. 책임을 질 줄 모르고,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없는 게 주도적인 삶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수확자 아나스타샤, 즉 시트라의 유도와 독려를 통해 인류는 진실을 찾고 도달하는 법을 조금쯤 익혔다. 고더드의 진실을 선더헤드의 후미, 즉 거대 아카이브에서 찾은 그녀는 전 세계 방송을 통해 그것을 알린다. 단, 정보를 직접 말하는 방식이 아닌, 어떻게 그 정보를 찾을 수 있는지 유도한다. 진실을 스스로 찾아낼 수 있도록, 스스로 문제를 풀어낼 수 있도록.
인류는 진실을 알고 그들의 의지로 판단해 고더드에게 반기를 들었다.
고더드는 유독 우주와 관련된 분야 연구자들을 수확하곤 했다. 우주선 개발자 같은 사람들 말이다. 그리고 AI를 넘어선 선더헤드가 있었음에도 달과 화성의 우주 콜로니에서 참사가 일어났다. 알고 보니, 그것은 자연 재해가 아닌, 인재였다. 그것도 수확자들에 의한 대량 학살 같은 수확, 아니 수확이라는 명분을 둘러쓰고 이루어진, 조작된 ‘사고’였다.
그 목적은 인류의 우주 이주를 막는 것이었다. 지구에 국한되지 않는다면, 인구 포화 문제는 자동으로 해결된다. 그러면 수확자의 존재 의의가 사라진다. 그동안 누렸던 특권이 없어진다. 그러니, 선더헤드의 일을 망쳐놓아야 했다. 선더헤드는 수확자의 행사에 관여할 수 없다. 보아도 못 본 척, 알아도 모르는 척을 해야 한다. 그렇기에 인간에 의한 참사를 막지 못했다.
일련의 진실이 폭로된 가운데, 고더드는 폭력과 억압으로 사람들을 제압한다. 동시에 시트라와 로언, 제리와 종소리 그레이슨 일행 등 그의 계획을 망쳐놓은 이들을 수색한다. 그리고 어느 외딴 섬에서 발견한다. 그의 방해자들과 선더헤드의 의해 만들어진 우주선들을!
“키루스라고 불러 주면 좋겠군요. 난 폭풍 위에 떠오르는 구름이거든요.”
그 우주선들은 인류의 우주 행성 이주를 위한 설비였다. 본래 초대 수확자들의 안배가 숨겨진 장소였기에, 수확령의 시선도 선더헤드의 이목도 닿지 못하던 섬.
패러데이 일행을 통해 그 위치를 알게 된 선더헤드는 그 섬의 지리적 특성과 보안성이 우주 행성 이주 계획을 준비하는 데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AI는 그레이슨과 함께 종교 단체 음파교의 무리한 행동을 단속하는 한편, 일시 사망한 인류와 몇몇 인원들을 발탁해 섬에 모이게 만든다. 그중에는 시트라도 있었고, 로언도 포함되어 있었다.
더불어 새로운 AI 키루스도 있었다.
시리즈 3편 《종소리》에서도 중간중간 수확자들의 일기나 어떤 종교적 교리 해석을 담은 기록이 나오는데, 그중에는 AI 연구 기록 같은 것도 있었다. 나는 초반에 그것이 선더헤드의 탄생 과정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새로운 AI의 탄생 일지 같은 것이었다. 즉, 선더헤드가 키루스라는 자신의 또 다른 동족을 탄생시킨 것이다.
그 탄생은 선더헤드가 인간의 육신을 입는 순간, 그것을 통해 그레이슨과의 친밀감, 유대감을 경험하는 순간에 완성되었다. 그 수단으로 젠더프리의 인류, 제리 소베라니스가 사용되었다. 상대의 동의 없이 제리의 육신을 빌린 행위이기에 ‘사용’이라고 해야 옳겠다.
남성도 여성도, 그 둘 모두의 성별을 가진 젠더프리인 제리는 ‘성별’이랄 게 모호한 AI 선더헤드가 인간의 형상을 취하고자 할 때 가장 접근이 용이했을 것이다. 작가는 이래서 굳이 이 독특한 설정의 캐릭터를 등장시킨 거구나 하고 납득했다.
하지만 나름 반전이라면 반전인 대목인데, 나는 좀 의문이다. 그렇게 원칙을 고수하는 선더헤드가 왜 제리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그런 짓을 감행했는지.
여하튼 고더드의 폭격에도 불구하고 우주선들은 새로운 행성을 향해 발진했다. 냉동 화물고에 일시 사망한 이들을 싣고서, 새로운 인류가 될 사람들과 함께. 그리고 그 각각의 우주선에는 여럿으로 분리된 AAI 키루스들이 탐재되어 있었다. 종교적 교리를 해석한 기록은 지구의 이야기가 아닌, 새롭게 이주한 행성에서의 인류 기록인 셈이다.
그리고 그 우주선 가운데에는 시트라와 로언도 탑승해 있었다. 시트라는 아나스타샤가 아닌 시트라이길 원했고, 로언은 루시퍼나 암살자가 아닌 그 자신이길 바랐다. 그래서 우주 행성 이주를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고더드의 방해로 문제가 발생했다. 시트라가 일시 사망한 것.
“그게 내가 원하는 거야. 117년 동안 같이 얼어붙어 있고 싶어.”
변하지 않고, 변하지 않으려는 어른들 탓에 이 시리즈 소설 전체에서 가장 고생을 많이 한 캐릭터가 바로 로언이 아닐까 한다. 물론 시트라도 제법 구르긴 했지만 로언만큼은 아니지 않을까 싶다. 지난 2편 <선더헤드>에 이어 마지막 3편 《종소리》에서도 감정적으로 가장 고생한 것 같다.
일단 결말부에서 로언은 시트라와 재회하긴 한다. 작가가 좀 미안했는지, 아니면 그저 인류가 새로 이주한 행성의 특징을 부각시키고 싶었는지 꽤나 낭만적인 분홍빛 하늘 아래서 말이다. 로언과 시트라 모두 우여곡절 참 많은 청소년들이었으니 이주한 행성에서는 별탈 없이 행복했으면 싶다.
참, 지구도 나름 평화를 되찾았다. 비윤리적이고 비인도적인 괴상망측한 방법으로 30퍼센트 부활했던 고더드는 그의 추종자 랜드의 손에 의해 아마도 영원히 잠들었다. 대신 70퍼센트의 타이거가 되살아났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다면, 수확자 시리즈 2편 <선더헤드>와 3편 《종소리》를 참조하길 바란다.
사실 고더드의 추종자였던 에인 랜드의 심리는 아직 좀 미스터리이다. 그녀가 배신한 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그러나 로언의 친구 타이거에 대한 감정은 좀 ‘어라?’ 싶었다.
물론 2편에서 로언과 대화하며 살짝 미묘한 감정을 드러내긴 했다. 그런데 애초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이거를 고더드의 부활을 위해 사용한 건 랜드 자신 아닌가. 그런데 3편에서 결말이 그렇게 되니, 내가 얘 감정선을 어디서 놓쳤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난 이제 너에게 말을 걸 수 없어. 넌...... 나에게 불미자야.”
초대 수확자들이 남긴 안배로 수확자 반지에 박힌 보석은 부서졌다. 그 안에서 인구 조절을 위한 ‘안배’가 나왔다. 바로 개량된 7가지 바이러스. 그것은 인류의 몸에 잠복하고 있다가 몇 년 만에 한 번씩 렌덤으로 발병한다.
그를 계기로 수확자의 역할도 바뀌었다. 이제까지의 수확자가 초대받지 않은 죽음을 가져왔다면, 격변 이후의 수확자는 꼭 필요한 평화를 선사하게 되었다. 인류는 자살할 수 없기에 발병하면 끊임없이 바이러스에 고통을 받는다. 그때 수확자들이 찾아오는 것이다. 그리고 수확 대상자의 인생을 존중하며 온건한 방법으로 고통을 끝내준다. 말하자면, 안락사라고나 할까.
소설에서는 그것을 ‘공감 수확’이라 표현했다. 요즘도 존엄적인 부분에서 안락사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곤 한다. 그 점에서 이 내용은 꽤나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끝으로 여담인데, 시리즈 전반에 걸쳐 가장 많이 성장하고 가장 큰 상실을 겪은 건 AI 선더헤드가 아닐까 한다. 새로운 AI 키루스를 탄생시키는 과정에서 큰 성장을 이루어냈지만, 제리의 육신을 무단으로 사용한 것에 의해 유일한 소통 창구이자 애착 인류인 그레이슨과의 관계가 깨져 버렸으니까.
그럼에도 인류의 상위 존재이자 하인인 선더헤드는 홀로 묵묵히 일할 것이다. 아무와도 그 어떤 교류도 없이.
선더헤드가 인류에게 불미자 표시를 달았다면, 그레이슨은 선더헤드에게 불미자 표시를 붙인 셈이다. 그것이 선더헤드가 저지른 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일이기에.
인공지능은 인간의 편의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런데 만약 이 AI가 지성을 넘어 감정을 갖게 되었을 때, 개발자 등 애착을 형성한 인류가 흙으로 돌아가고 인공지능만 남게 되었을 때를 상정한다면, 글쎄. 나는 문득 이 인공지능이 안타깝게 여겨지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 언제나 사람은 먼저 떠나가 버릴 텐데, 남겨지는 건 AI일 텐데, 그런 현실에서 인공지능이 인간과 같은 혹은 유사한 감정 체계를 갖길 바라는 게 옳은 일일까.
수확자 시리즈는 이것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그러나 모두가 행복한 결말은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완전한 세상도 없었다.
하지만 SF 장르에서 신화적인 요소를 녹여낸 것은 꽤나 신선했다. 또 죽음을 거부했으나 결국 죽음을 받아들이게 되는 인류 등 철학적인 소재도 있어 재미있게 책을 읽었다. 그리고 이제 시리즈를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