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10: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우리의 삶에는 피할 자리와 머물 자리가 있습니다. 운전하다 보면 고마운 일도 많으나, 때로 ‘똥이 무서워 피하나 더러워 피하지’라는 생각으로 그 자리를 벗어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상대가 무서워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감정 대립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할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이를 용납하지 못하고 이기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으나, 지금은 소모적인 논쟁을 펼쳐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서로에게 똑같은 수준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오히려 예의를 갖춰 적절한 거리를 두거나 자리를 피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 결코 피해서는 안 될 자리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함께하는 은혜의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 삶에 함께하시며, 우리의 인도자로서 책임을 다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확신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섬김과 순종의 의무를 다하는 믿음의 생활이어야 합니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
본문의 앞서 예수 그리스도는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40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를 기쁨으로 맞아 함께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영혼 구원을 얻은 사실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과 권위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사랑과 권위를 힘입은 하나님의 자녀로 당당한 삶을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마 10: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profhvth" (4396 프로페테스 NGMS profhvtou) 예언자
~ 앞에, + 말하다. 언급하다. 선언하다에서 유래 - 앞에서 말하는 자, 선포하는 자.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부여하신 권위로 선포하는 사역자입니다. ‘영접’은 선지자에게 부여된 영적 권위와 그 정체성을 수용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선지자의 이름으로’ 영접함은 하나님께서 선지자에게 부여하신 신분과 권위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와 선지자는 단순히 말씀을 전하고 듣는 수동적인 관계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함께 거하며 그 복을 나누는 ‘영적 동역자’입니다. 그래서 선지자가 예배를 통해 성도들 앞에서 말씀을 선포할 때, 성도들이 그 말씀을 받기 위한 수고와 정성은 하나님 나라의 복을 누리게 됩니다. 본문은 이것을 ‘선지자의 상을 받음’이라 말합니다.
오늘날의 선지자는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를 포함하여,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 모든 복음 사역자를 의미합니다. 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가정과 사회 등 삶의 모든 현장에서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 ‘복음의 사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사명을 펼치므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보상의 복을 누려야 합니다.
의인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
뉴스를 통해 전해지는 법정의 공방은 서로의 잘못을 따져 누가 악인이고 누가 의인인지 가려내려 합니다. 이를 보면 한때 당당했던 권세와 힘이 오히려 그 삶이 허무와 공허로 끝나, 오히려 그 삶을 고통스럽게 됨을 봅니다. 이러한 모습에 우리도 하나님의 심판대에 섰을 때를 생각해 봅니다.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을 멀리하는 악인의 길이 아니라, 하나님께 함께하는 의인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의인의 상’을 받는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마 10:41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divkaio" (1342 디카이오스 APGMS divkaion) 옳은. 거룩한.
‘의인’은 단순히 도덕적 성품이 착한 사람을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로, 거룩한 성품을 소유하여,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삶을 뜻합니다. 즉,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우선으로 하는 하나님의 말씀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우리 사회는 사람의 외모와 조건에 따라 영접의 태도를 달리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의 시각과 척도가 아닌, 성령 충만한 영적 분별력으로 ‘의인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올바르게 실천하는 의인을 알아보고 영접하는 거룩한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구원을 이룬 거룩한 보혈이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하기에 하나님 말씀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하며, 생활 속에 선지자와 의인을 기쁨으로 영접하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복을 누려야 합니다.
요 13: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의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나 의인은 모두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영접함은 곧 이들을 보내신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므로, 이에 따르는 책임과 보상을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을 영접함은 단순한 친절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헌신이며 수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우리의 수고를 보시고, 그에 합당한 보상으로 복된 삶을 이루게 하십니다.
상을 받을 것이요
며칠 전, 신호등이 빨간불인데도 뒷짐을 지고 유유히 횡단보도를 건너는 어르신을 보았습니다. 모든 차량이 멈추어 기다려 주었고, 어르신은 그 상황을 즐기시는 듯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습니다. 이는 누가 봐도 벌을 받을 행동이지, 상 받을 행동이 아닙니다. 그 광경을 보며 '우리나라에는 착한 운전자들이 많구나'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먼저 선지자와 의인을 영접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영접은 곧 그 사람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기쁨으로 맞이하는 상급이기에, 하나님은 이에 대한 보상을 아주 분명하게 약속하셨습니다.
마 10: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상’ misqov" (3408 미스도스 NAMS misqo;n) 품삯. 보상. 형벌.
우리는 ‘영접에 대한 상’을 받아야 합니다. 이 상은 단순한 선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정당한 품삯’이자 보상입니다. 이 사실로 우리가 신중히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 상을 받지 못했을 때의 결과입니다. 상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상 받을 행동을 하지 않았음을 의미하며,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보응 법칙에 따라 형벌의 근거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해 하나님과 영적 관계가 끊어진 상태보다 더 큰 불행은 없습니다. 그러하기에 우리가 영접의 상을 받는다는 것은 이에 대한 헌신과 수고의 보상이기에, 우리는 보상의 은혜를 당당히 누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접의 상을 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일꾼이 되었음을 뜻하며, 하나님께서는 그 수고를 잊지 않으시고 그에 합당한 보상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계 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의 말씀 중심으로, 말씀의 복을 누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 안에는 선지자와 의인을 기쁘게 영접함으로 받게 되는 보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의 이름이 하나님 나라의 생명록과 행위록에 기록되고, 우리는 천국에서 그 이름을 바라보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복된 믿음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항상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믿음이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