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도 '후츠파'를 좋아하셨다:
이스라엘 문화 ...예루살렘에서 공공버스이용하면 그들의 문화을 잘알수 있다. 교통체증 탓에 부자 가난한자, 모두 “에게드” 버스을 탄다. 에디오피아 유대인, 러시아 할머니 , 대학생,군인 차림의 아가씨 ,,, 어린남자아이 ,,, 머리 긴 아주머니 ,,그냥 버스을 탄다. 기사 “어디 가시나요? 그녀 ”아무말하지 않는다. 아주 무례하게 시크둥하게 :히브리어로 속사포로 허공을 채운다... “ 기사 -버스표 사오세요...그녀는 요지부동,, 자리에 접착제라도 부친 듯... 버스는 세운다 온 시선이 그녀에게 솔려도,,,아무렸치도 안음. 버스기사 1차선에 차을 세우고 밖으로 내려와서 신문지 깔고 1면 기사을 본다. 뒤에 있는 차는 서서히 정체되면서 교통이 마비...
예루살렘의 절반이 이 여인 하나 때문에 멈춰버렸다.
광기의 경계선에 있는 "무례, 뻔뻔, 철면피 따위를 뜻하는 히브리어 '후츠파'다. "
완전한 배짱, 순전한 배포, 도전"과 같은 내용을 뜻하기도 하지요.
여자와 버스 기사 둘 다 자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한계선까지 압박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이스라엘이 이렇게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어쩌면, 이스라엘의 이러한 "후츠파" 정신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기도 합니다.
후츠파는 권력자 또는 권위자에게 자기 생각을 과감하게 표현하는 용기의 바탕이 되는 정신으로, 이스라엘에는 많은 스타트업이 있다고 하는데요.
2009년 자료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벤처사업가가 받는 투자금액은 미국인의 2.5배, 유럽인의 30배, 인도인의 80배, 중국인의 300배에 달한다고 하지요. 또한 이스라엘에는 세계 벤처 투자금의 35%가 몰려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벤처기업에 시도하는 정신 역시도 이스라엘의 후츠파 정신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닐까 하지요.
예수님 당시 이런식의 행동이 익숙했을 것이다.
예수님과 피로에 지친 제자들은 인파를 파하려고 두로 지방에 들어갔지만 , 수로보니게 여인이 여신 문을 두드려대는 바람에 거기에 숨어있는게 들통난 상황에 제자 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막7:25~30)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예수님의 당면한 사명은 오직 유대인을 향한 것이다.
그러나 절박한 여인은 대담하게도 큰 존경을 받는 랍비의 말을 반박한다. [ "무례, 뻔뻔, 철면피-완전한 배짱, 순전한 배포, 도전 , 그녀의 후츠파를 칭찬하셨다. ]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
예수님은 비유로 이런 종류의 대담 무쌍함 “후츠파” 를 칭찬 하신다.
(눅18:2~5, 눅11:5~8의)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의 본심은 무엇일까?
비유속에 재판장은 과부의 사정에 전혀 관심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과부를 열렬히 지지하신다.
하나님은 과부을 홀대 하는자 에게 강력한 경고..
출22;22-24절]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으리라 나의 노가 맹렬하므로 내가 칼로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의 아내는 과부가 되고 너희 자녀는 고아가 되리라“
이 말은 매정한 재판장이 자신을 계속 귀찮게 하는 나이든 여인을 돕는다면 하물며 과부와 고아를 열렬히 돌보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더 도우시겠는가 ! 즉 “후츠파”를 가지라 .
새벽에 한 남자가 “이제 막 먼곳에서 손님이 왔는데 대접한 음식이 없으니 빵 몇덩어리만 얻을수 있겠나?
고대 중동에서손 대접을 못하는 것 커다란 금기사항이었다.
집주인 그지없는 핑계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워으니 일어나 네게 줄수 없노라 ” 그런데 계속 , 뻔뻔하게 문을 두드렸습니다.
버스사건에서 보여 후츠파에는 더 큰 후츠파로 맞서야 한다.
두 비유에서 예수님은 전형적인 랍비 논증법인 칼 바호메르(작은[것] 전제에서 큰[것] 전제를 이끌어 내는 방식)를 사용하셨다..
예수님의 말씀은 [ 마7; 9-11]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즉 하나님은 우리가 신뢰 할만한 분이므로 하나님과 친밀한 믿음이 있다면 때로는 좀 밀어 붙인다 싶을 정도로 끈던지게 달라붙어야 한다.
왜? 하나님은 선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하나님도 , 사람도 두려워 하지 않고 불우한 과부를 나 몰라라 한 부패한 재판관과 같지 않다.
결국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결국 담대한 인내와 같다.
이런 배짱은 아브라함에서 시작 되었다.
창18;23-25] 아브라함이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그 성 중에 의인 오십 명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하지 아니하시리이까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부당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같이 하심도 부당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승강이 벌인다.
오십명의 의인이 있으면 어떡하죠?
오십명이면 용서해주시겠습니까?
의인 10명이면 충분 할까요?
하나님은 번번히 제안을 수락하시고 결국 열명만 가지고도 심판의 손을 거두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얼마나 놀란 만큼 불경스럽게 생각합니까?
유대 사상가들은 아브라함의 태도을 긍정적으로 본다 , 아브라함은 아버지의 바지가랑이를 붙들고 아버지가 두 손 두발들 때 까지 졸라대는 어린아들같다. 아버지는 근엄하시지만 온유 하신분 이다.
묻기를 두려워 하는것보다 묻는 것은 더 큰믿음이 필요하다.
답이 이해가 안되며 더 많은 질문을 던지고 물고 늘어지는 것도 믿음이다.
왜? 하나님은 답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가 질문안에 있기 때문이다.
진실한 질문은 하나님께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권능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다.
신실한 유대인들은 놀랄만치 직설적으로 자기 관심사를 하나님께 아뢰는 것을 본다.
모세가 바로와의 첫만남 에서 실패로 돌아간후 ...실망감을 피력한다.
출5;22-23] “모세가 여호와께 돌아와서 아뢰되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이 학대를 당하게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내가 바로에게 들어가서 주의 이름으로 말한 후로부터 그가 이 백성을 더 학대하며 주께서도 주의 백성을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다윗의 시편과 욥의 탄식 속에서 이와 동일한 거침없는 진솔함이 특히 많이 드러난다.
이런 태도 뒤에는 하나님은 선하시고 사랑많은 아버지라는 믿음 때문이다.
예수님 시대 이전 1세기 앞선때 유대 남자중 호니 라는 사람이 있었다.
대담 무쌍한 기도, 겸손과 탁월한 경건, 충만한 기도로 하나님과 동행 하는 사람 으로 널리 인정 받았다. 나라의 큰가뭄이 듣자 많은 사람들이 기도 부탁, 호니가 처음에 기도하자 비가 오지않았다. 그러자 호나가 원하나을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 “ 하나님 제가 하나님과 친한사이라고 기도 부탁하는데 당신의 자녀를 불쌍히 여기시기전 까지 여기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겠습니다. 비가 한두 방울 내리기 시작했다.
성이 차지 않았던지 제가 원하는 것은 항아리와 독과 우물을 가득 채울비 입니다. 그러자 폭우가 시작된다.
그러자 호니가 기도했다. 제가 원한 것 이런 것이 아니라 선의와 축복과 은혜의 비입니다.
그러자 곡식을 자라게 하고 땅을 소생시키기에 적합한 비가 알맞게 내리기 시작했다.
유대 지도자들의 호니의 커침 없는 태도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 다른사람 같으면 당신은 진작 파문 당했을거야... 그러나 하나님이 당신의 기도을 들으시니 우리가 뭘 할수 있겠나?
그러나 우리가 알 것은 호니는 기도로 도달할수 있는 한계점까지 기도를 밀고 갔다.
호니는 하나님은 사랑이 풍성하신 아버지 라는것을 믿었기에 아이같이 겸손함으로 나아갔음을 알았다.
세기의 저명한.. 랍비인 아브라함 헤셀은 다음과 같은 심오한 통찰을 전한다.
"기도의 관건[어떤 사물이나 문제 해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기도가 아니다. 기도의 관건은 하나님이다."
즉 당신이 어떻게 기도 하는가를 보면 당신이 어떤 하나님을 믿는지 알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의 사랑과 권능과 돌보심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길 원하시기 때문이다.
핵심은 하늘 아버지를 종처럼 부리는 것이 아닌 ,그분께로 겸허하게 나아가는데 있다.
이런 끈질기고 담대한 기도의 요청은 상당 부분 남을 위한 것이다.
호니도 절박한 나라의 가뭄.
아브라함도 소돔의 사악한 도시을 위한 기도 , 모세도 이스라엘이 죄을 범했을 때 하나님께 심판을 거두어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린다. 심지어 모세는 이스라엘대신 모세의 가족을 위대한 나라로 만들겠다는 하나님의 제안도 거절했다. [출32;10]
다윗 왕 역시 하나님의 기근 심판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간구하며 대신 자신의 가족을 쳐 달라고 구했다. [삼하24;17절]
하나님은 우리가 패역한 사람을 대신하여 간구하길 원하신다고 강조한다
예스겔22;30]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 내가 내 분노를 그들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들 행위대로 그들 머리에 보응하였느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심판이 임하는 것을 수수방관하는게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중간에 개입하여 그들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하나님께 매달려 자비를 구하길 원하신다,.
예수님도 아브라함, 다윗, 모세처럼 남을 대신하여 후츠파를 보여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