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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귀(旱鬼)
박 화 성
금성산(錦城山) 상봉에서 불이 일어나자 나주의 영산포의 넓은 들을 둘러 있는 각 산봉우리에는 일제히 불을 당겼다.
바람이라고는 풀잎사귀 하나 건드리는 실바람조차 없는 밤이라 불길은 퍼지지 않고 쪽달이 걸린 하늘로 곧추 훨훨 올라갔다.
동네 동네에서는 아이들의 ‘어어와아’ 하고 소리치는 환호성이 들려왔다.
조요(照曜)한 불빛에 어린애를 업은 여인들과 처녀들로 덮인 등성이 둥성이가 보였다.
불꽃이 툭툭 튀면서 불길은 점점 더 세어졌다. 크고 검은 산들이 다 타버리고 말 것같이 봉우리의 불길은 점점 더 커갔다.
“허…… 그것도 볼 만하네그러. 옛날에 봉화라고 있었더니 난리날 때면 동네 동네 전해가면서 알리던 봉화, 영락없는 봉화 같네그려.”
“자네는 좀 덜 알었네. 봉화는 봉화 피우는 산이 따로 있었지 저렇게 산봉우리마당 불이 났더 란가?”
“헤에 그 자식들 퍽 주전없다. 이놈들아 네까짓 놈들이 봉화라는 말만 들었지 언제 봉화를 본 일이나 있느냐? 그놈들이 제법 봉화를 본 놈들이 나같이 떠들어대네. ”
“허, 이 사람들 시끄럽네. 지금 기우제를 지내는데 그렇게 너무 떠들어대면 부정타서 못쓰는 게야. 지성스럽게들 그 볼꽃만 바라보소. 작년에도 기우제를 찰못 드려서 홍수가 났더라고 하는 말을 못 들 들었는가?”
육십이나 된 듯한 노인이 물 품던 두레를 놓고서 하늘을 우러러 합장을 하였다.
젊은 축들도 지껄이던 입을 다물고 잠잠히 이쪽저쪽의 불을 둘러보았다.
“정말 내일이라도 비가 와야지 어디 쓰겠는가? 모판에 모가 그대로 서 있으니 밤을 꼬박 새워가며 이렇게 물을 품어서 겨우 한 마지기씩이나 심어놓으면 뭣을 하겠는가?”
노인은 합장하였던 손으로 다시 두렛줄을 잡았다. 젊은 농군들도 두렛줄으로 잡고 마주마주 섰다. 그러나 불이 꺼지기를 기다리는 모양인지 노인의 시작하자는 영이 아직 떨어지지 않았다.
불이 타는 동안은 그것들을 보느라고 손을 멈췄던 농부들이 불이 꺼지자 다시 물 품기를 시작하였다. 여기저기서,
“어어.”
“어허어.”
하는 소리들이 맹꽁이 소리처럼 터져나왔다.
“자, 성섭이, 우리도 시작해보세.”
노인은 한쪽 발을 내어딛고 다리에 힘을 주며 두 손을 두렛줄을 잡아당겨 물을 품어 올리면서,
“열의 하나.”
하고 길게 소리를 빼니까, 성섭이가,
“어허어.”
하고 소리를 받으며 동작을 맞췄다.
“둘세 엣.”
소리가 더 길게 빼졌다.
“어허어.”
“서이너이.”
소리가 더 커졌다. 그러나 ‘어허어’ 소리는 강약과 장단에 아무 변동이 없이 소리만 받았다.
“일곱여덟.”
할 때는 높은 고비에서 멋있게 넘어내렸다. 그는,
“이오는 십.”
하고 열을 세고,
“열의 하나.”
“열의 둘.”
하고 세다가 스물을 셀 때는,
“사오는 이십.”
하였다. 이 모양으로,
“오륙은 삼십.”
“오팔은 사십.”
하다가 쉰을 셀 때는,
“이러면은 반백.”
하고 길게 뺐다. 어쩐지 처량하게 들렸다.
“환갑 육십.”
“인생 칠십.”
“임종 팔십.”
“구십 당년.”
하고 차례차례 세다가 백에 와서는,
“이러면은 일백이네.”
하고 성공한 듯이 소리쳐도 상대자인 성섭이는,
“어허허.”
하는 단순한 소리로 받아넘겼다.
노인과 성섭이가 깊은 웅덩이에서 물을 남의 논으로 품으면 두 사람은 그 논에서 성섭이네 논으로 품어 옮겼다. 그들은 천 두레를 품고야 쉬었다.
물을 삼천 두레나 품고서 부은 다리를 질질 끌고 집으로 돌아오던 성섭이는 어떤 집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방아질 소리가 덜거덕 들려나왔다.
“이때까지들 방아를 찧는구나, 우리 봉현 에미도 오직이나 팔다리가 아플까.”
성섭이는 혀를 끌끌 차며 다시 걸었다.
지쳐진 사립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서니 검둥이가 꼬리를 내두르며 반갑게 맞았다.
처마에 달아놓은 희미한 등불빛에 멍석 위에서 가로 세로 누워 자는 아이들의 똥똥한 검은 배와 엉성한 갈비뼈가 보였다.
“뭣을 먹었다고 배들은 저리 똥똥한지.”
성섭이는 겉보리 섬 위에 꾸깃꾸깃하게 얹혀 있는 검정 홑이불을 집어들고 와서 아이들 위에 덮어주었다. 모기떼가 윙하고 날아났다.
“못된 놈의 모기새끼들. 보릿가루죽이남둥 배부르게 못 먹고 자는 새끼들에게 피를 빨아 먹으면 얼마나 먹겠다고 으응!”
그는 마당에 묻은 모깃불을 뒤적였다.
“불조차 아주 꺼져버렸구만.”
그는 성냥을 그어 불을 붙이면서 다시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갈기갈기 찢어진 홑이불은 아이들이 몸을 뒤칠 때마다 찍하고 찢어지는 소리를 냈다.
“후유, 없는 놈에게는 아들도 다 귀찮어.”
그는 다시 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맏딸인 봉이가 젖먹이 아기인 봉현이를 끼고 자고 있었다. 봉현이는 ‘으으 으으’ 하고 킹킹거렸다.'
“오오 자자 자자.”
잠결에도 봉이는 봉현이를 뚜덕뚜덕 치면서 ‘자자 자자’소리를 하였다.
봉현이는 도로 잠잠하였다.
그는 툇마루에 털썩 주저앉으며 뭉싯뭉싯 일어나는 모깃불 연기 속으로 네 아이의 자고 있는 모양을 멀거니 바라보다가 또,
“후휴우.”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들이 다섯, 딸이 하나, 여덟 식구가 무엇을 먹고 어떻게 살아간단 말이냐? 작년에는 홍수로 쌀알 하나 못 거두고 금년에는 이렇게 땅땅 가물어서 초복이 내일 모렌데도 모를 못 내고 있으니…….”
성섭이가 부어오른 다리를 슬슬 문지르면서 혼잣말로 한탁하고 있을 때,
“어서들 갑시다.”
하는 봉현 어머니의 소리가 들리면서 사립문이 삐꺽하고 열렸다. 검둥이가 주르르 마중 나갔다.
“인자사 오는가?”
성섭이는 마누라의 머리 위에서 보리가 가득 담긴 망태기를 내려다가 보릿섬 위에 놓으면서,
“오늘은 좀 그만두지. 닭이 두 홰나 울 때까지 방애를 찧다니 그러다가 더 아푸면 어쩔라고 그래? 오늘도 눈이 쑤시고 아푸던가?”
하면서 보릿겨가 머리에 수북하게 앉은 마누라를 돌아보았다.
“언제라고 안 아풀랍딩겨? 그저 눈을 딱 감고 방애만 찧었지. 몸이나 안 아팠으면 쓰겼두만 어찌 팔다리가 쑤시고 열이 오르는…….”
마누라는 손바닥에 입김을 획 불어보았다.
“글쎄 그러니깐 밤에는 방애를 찧지 말라고 그러지 않던가. 고집 세울 일에나 안 세울 일에나 마구 고집만 세우니까 못쓴단 말이어.”
남편은 혀를 차며 눈을 흘겼다.
“내가 고집을 부렸소 어디? 나도 편안하게 쉬면 오직 좋겠소? 낮에 찐 것은 다 저녁밥 해버리고 나니께 보리가 어디 있어야제. 놉을 셋이나 부리니께 보리쌀이 오직 많이 드요? 내일은 또 모를 심는다니께 그래도 내일 놉밥해 줄 것이나 찧어쌓지라우. 나는 고사하고 우리 품앗이 방애 찧느라고 다른 댁네들도 밤을 세웠는디라우. 모레는 또 품앗이 방애도 찧어야 쓰고 우리 방애도 찧고 콩밭도 매고 해야지. 아이고 빨래는 또 언제 할꼬? 새끼들이 거지꼴이 다 되었는데 풀할라면 또 쌀이 있어야 하는데 쌀은 어떻게 또 구할 것인가 몰라.”
마누라는 이맛살을 찌푸리고 한숨을 쉬었다. 봉현이가 엄마의 말소리를 듣고,
“엄마아.”
하고 일어나서 문턱을 짚고 내다보았다.
“아이고 내 새낀가?”
봉현 어머니는 봉현이를 안아다가 젖꼭지를 물렸다. 희미한 등불빛이건만 그는 불빛을 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거의 눈을 감 듯이 가느스름하게 떠서 봉현이를 내려다보았다. 봉현이는 젖을 몇 번인가 쭉쭉 빨아서 두어 모금 들이켜고 나서는 젖이 나지 않는다고 떼를 쓰며 발버둥질을 쳤다.
“아이고 이 철없는 놈아, 무슨 젖이 얼마나 날 것이냐?”
성섭이는 봉현이의 엉덩이를 철썩 때리면서 저녁 밥은 네 그릇만 지어서 상에 내놓고 따로 보릿가루죽을 꿇여서 반 사발씩 아이들과 나눠 먹던 그 마누라를 생각하고,
“봉현이는 인주소. 내가 달래께. 그리고 그리로 좀 누워보게.”
하고 봉현이를 받아서 추켜 안으며 마당으로 어정어정 돌아다녔다. 닭이 세 홰째 울었다.
“오늘 기우제를 지냈으니께 내일이라도 비가 와야 쓸 것인디 만약에 비가 여엉 안 오고 말면 어쩔 거라우?”
봉현 어머니는 툇마루에 모로 누우면서,
“작년에 농사를 못 지어가지고 작년 가을부터 올 봄내 보리 날 때까지 고생하던 을 생각하면 잇새마당 신물이 쭉쭉 돌고 지긋지긋해서 진저리가 나고, 아이고 징그러워라.”
하고 소름이 끼치는 듯 몸서리를 치며 다시 일어났다.
“설마 비가 안 오고 말라던가? 늦게라도 오기는 좀 오겠지…….”
“작년에도 비가 안 와서 기우제를 지내고 물쌈이 나고 안 그랬소? 그래서 겨우겨우 심어논께 그만 나중에는 물벼락이 내려서 홍수로 싹 씻쳐버렸지. 글로 보면 하느님이 꼭 계시다고 할 수도 없어…….”
“그런 소리 말게. 그래도 하느님이 계시길래 우리도 명을 부지하고 살지 않는가?”
성섭이는 아내에게 말은 하면서도 사실 자기 역시 작년 홍수 이래로는 하느님에게 대한 믿음이 훨씬 줄어졌다는 것을 자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느님을 믿어라, 믿기만 하면 저 산이라도 능히 옮길 수 있다. 하느님은 악한 사람에게 죄를 주시고 착한 사람에게 복을 주신다.”
이런 말은 그가 예배당에서 미국 목사에게 싫도록 듣고 배운 말이요, 집사의 직분이랍시고 가지고 있는 자기 역시 몇 명 안 되는 교인을 모아놓고 설교하던 말은 이 말뿐이었다.
‘그러나……작년에 보니 홍수로 못 살게 되는 사람은 나주 영산포에 사는 우리 농군들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악한 사람이란 말인가?’
성섭이는 늘 생각해왔다. 그의 눈에는 제일 착하고 순량한 사람은 농부들인 것 같이 보였다. 한 가지라도 하느님의 말씀을 어기는 노릇은 하지를 않은 사람은 농부들밖에 없는 것 같았다. 성경은,
“남을 대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하였다. 농부들은 남을 대접하기를 자기 몸보다 더 귀하고 후하게 대접한다. 우선 성섭이 자기로 볼지라도 모를 심거나 논을 매거나 물을 품거나 할 때, 놉(일꾼)을 부리게 되면 금년에는 예외로 곱살 보리밥만 해주었지마는(그나마도 집안식구들은 보릿가루죽을 반 그릇씩 먹고)해마다 그 귀한 쌀을 일꾼 밥에다만 섞어서 해주었고, 반찬도 고기를 못 사게 되면 고등어 갈치 같은 것으로, 그도 못 사게 될 때는 웅어새끼 말린 것이라도 사다가 지져주며 하다 못 하면 봉이가 하루 종일 시내에 가서 바지락(조개)을 캐어다가 국을 끓여서 그들을 대접하고 빚을 내어서라도 막걸리 한 잔 봉초 한 갑씩을 사주었다.
성섭이도 남의 일을 나가면 넉넉한 집에서는 닭을 잡아서 해주거니와 겨우 끼니 이어가는 집에서라도 하루에 밥을 다섯 번씩 반찬도 먹을 만하게 정성껏 대접해주는 일을 생각하면 가을에 곡수를 지고 온갖 봉물을 그 위에 얹어서 지주댁에 가져갈지라도 그 흔한 쌀밥 한 그릇도 주지 않고 보리밥을 일부러 지어서주고 반찬도 되는 대로 해서주는 그들보다는 몇 갑절 마음이 어질고 착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또 성경은,
“원수를 사랑하라.’
하였다. 농부들은 서로 원수를 지고 살 줄을 모른다.
혹 물쌈을 하였더라도 나이 지긋한 노인 농부의 두어 마디 훈계에 서로 풀어버리고 말며, 혹 심하게 척진 일이 있더라도 모깃불 가에서나 원두막에서 친구들의 화해로 사화를 해버리고 말아버릴 뿐 아니라 군에서나 면에서 정조식 (正條式) 모를 심으라고 감독을 나오는 때에 군 기수거나 면에서 나온 감독이 공연히 으르딱딱거리고 혹간 빰을 치는 일이 있을지라도 공손히 얻어맞기는 고사하교 성경 말씀대로 오른빰을 맞고 왼편 뺨까지 내돌리는 것을 보면 농부들같이 소처럼 순한 동물은 세상에 다시 없을 것이건마는 웬일로 작년의 홍수 같은 심한 벌을 받았을까?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하는 계명을 범한 까닭일까? 사실 농부들은 예배당에 나오기를 싫어한다는 것보다도 나올 틈이 없었다. 하루 종일 들에 나가서 모진 일을 하는 그들의 고달픈 몸이 밤이면 다시 짚신도 삼고 새끼도 꼬고, 그러다가 정신없이 아무 데나 쓰러져 잠이 들어버리니 어떻게 교회에를 나올 수가 있으며 밤을 낮으로 이어 품앗이 방아들을 찧는 여인네들인들 어느 틈에 한 시간의 여유를 잡을 수가 있을까? 이러기 때문에 주일날이나 삼일 예배에는 교회를 세운 지가 이십여 년이나 되는 이곳이건만 예배 교인이 남녀 합해서 열 사람을 겨우 넘는 때가 많고 교인일지라도 주일을 연달아 나오는 사람이 적었다.
이들은 해마다 기우제를 지냈다. 기우제를 지낼 때는 하느님을 부르지마는 그보다 몇 배나 귀신을 섬기기를 즐겨하였다. 작년만 하더라도 성섭의 아내는 기우제 지내는 것을 보고,
“저것도 다 쓸데없는 것이어. 하나님이 비를 주실래서야 주지, 저런 미신의 행동을 한다고 비를 주실까?”
하고 이따금 오는 미국 목사에게서 들은 지식으로 미신의 행동이란 말을 써가며 비난을 하더니 홍수를 지낸 후에 작년 가을부터 여름까지 줄곧 겨울에는 무죽이나 시래기죽으로 연명하였고 봄부터 풋나물죽으로 끼를 잇다가 풋나물까지 없어지자 쌀겨를 구해다가 거칠은 것은 돼지밥으로 고운 것은 양식으로 죽을 쒀서 보릿동까지 대어오면서는 끼마다 끼마다,
“아이구 하나님도 야속하지. 우리가 무슨 죄가 있다고 이렇까지 못 살게 하시는고.”
하고 종알거렸다. 그는 해마다 겨울에 열리는 부흥회 때면 만사를 젖히고라도 새벽 기도를 다니던 독신자이었건만 작년 겨울에는 그 노릇도 하지 않고 가족 예배를 보지 못한다고 항상 입버릇처럼 말해오던 것두 작년부터는 잊은 듯이 그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바로 며칠 전에도 성섭의 아내는,
“이 날 좀 봐. 비는 안 오고 푹푹 삶기만 하네, 참 어쩔라고 이럴까? 오냐 또 금년에도 흉년만 들어봐라. 나는 배곯아 죽기 전에 먼저 자살해 버릴 테니…….”
하고 멍석에 널어놓은 보리를 뒤적이던 미래를 마당에 동댕이쳤다. 성섭이가,
“거 무슨 소린가? 자살을 하다니, 자살은 하나님께 죄가 되는 줄 모르는가?”
하고 눈을 부릅떴다.
“흥 죄……죄는 대체 뭐이 죄라우? 죄 많은 사람들은 더 잘 살아갑데다. 글쎄 또 흉년이 들면 에미라도 잡아먹을라고 덤벼드는 새끼들하고 어떻게 살아간단 말이요? 시뉘네 집에는 아이들이라고는 남매밖에 없고 우리보다 몇 배나 넉넉해도 요새 가물어서 모를 못 내는 것 보고 또 흉년이 들면 어디로 떠나버리든지 해야지 못 살 것이라 하는디 우리는 새끼들이 여섯 아니오? 아이고 징그라서라. 한 해 지난 것도 끔찍꾹찍한디 또 흉년을 만나? 아이고 나는 정말 먼저 죽어버리지 어리석게 살아 있다가 또 흉년 꼴을 당하지는 않을라우. 풍년이 들어도 해마다 못 산다는 소리밖에 나올 리가 없는디 이태째 흉년이 들다니……아이고 징해라.”
그는 머리를 쩔레쩔레 내흔들며 몸서리를 쳐가면서 발악을 하였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성섭이는 아내를 위로할 말을 찾지 못하였다.
“그래도 자살한단 말은 하지 말게. 그런 악한 소리를 해서는…….”
“여보 그 착한 소리, 그 착한 짓 그만 하시오. 작년에도 모두 온 동네가 모여서 의논해 가지고 금년에는 홍수가 졌으니까 곡수를 들일 것이 없으니 곡수를 내지 말자 해서 다들 안 내고 말었는디, 어째 당신만 쏙 빠져서 등성이 논에서 쌀 석섬 나니께 딱 갖다가 바쳤소? 그 사람네 논이 물에 씻겨버렷으니께 줄 것 없어서 안 주면 말지 왜 홍수에나 쌀섬 얻어먹는 우리 논에서 난 쌀 석 섬을 딱 갖다줬느냔 말이오?”
“또 그 소리를 하네. 그럼 남의 논 벌어먹는 사람이 잘될 때나 곡수 주고 안 될 때는 영 안 줘버리고 말까? 어떤 논에서나 쌀이 생겼으면 갖다줘야지 꼭 그 논에서 난 것만 줘야 쓰는가?”
“듣기 싫소, 듣기 싫어. 나는 그 말만 나면 속에서 불덩이가 치밀어. 그래도 작년에 그 쌀 갖다주고 와서는 뭣이라 하더라, 남의 것을 탐내지 않았으니 그 착한 맘의 보복으로 하나님께서 복 주실 것이라고? 아니 복 ― 그래서 그 복으로 올봄내 ― 다리 앓어서 드러눠 있었구만. 참 기맥힌 큰 복도 받었구만.”
소리소리 지르며 대들던 일을 생각하고 성섭이는 은은히 앓는 소리를 내면서 툇마루에 모로 누워서 자고 있는 아내를 돌아다보았다.
성섭이가 그런 생각을 하고 마당으로 돌아다니는 동안에 추켜 안았던 봉현이는 쌕쌕 잠이 들었다. 그는 방으로 들어가려다가 아내의 발을 건드렸다. 아내는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나며,
“애기 자요? 인주시오. 벌써 날이 뻐언해오는디 당신도 좀 눈을 붙여 봐야지.”
하고 남편에게서 아기를 받아가지고 방으로 들어갔다. 성섭의 부어오른 다리가 푹푹 쑤셨다. 흙이 지적지적 발바닥에 밟히는 방바닥에 번 듯이 드러누우니 쑤시던 다리는 찌르르 저려왔다.
초복이 지나도 비는 오지 않았다. 물도 괴어보지 못한 논들이야 말할 것도 없지마는 모가 심겨 있는 논바닥도 쩍쩍 갈라져서 금이 났다.
모판은 누렇게 말라갔다.
“그래도 중복까지나 기다려볼까?”
그들은 하염없는 이런 희망에 날마다 하늘만을 쳐다보았다. 비가 금시에라도 쏟아질 듯이 검은 구름이 뭉게뭉게 모여오면 그들은 가슴을 졸이며 비를 기다리다가 그 구름이 두어 방울의 빗방울을 뿌려보는 체하고 저쪽 하늘로 몰려가버리고 여전히 이마가 벗어질 듯이 쨍쨍 내려쪼이는 해가 쏙 비어질 때, 그들은 일제히 해에게 눈을 홀기며,
“아이고 저놈의 해 또 나는구나.”
하고 해를 저주하였다. 작년 홍수 때에는 해를 보기를 얼마나 원하고 바랐던고? 그러나 그들은,
“젠장칠 것 차라리 비가 죽죽 쏟아져 홍수가 져버려라. 눈앞에서 바싹바싹 말라가고 타버리는 나락 꼴은 정말 못 보겠다.”
하고 비를 고대하는 나머지 그 무서운 홍수의 말을 되뇌곤 하는 것이었다.
구름 한 점 없이 훨떡 벗겨진 하늘에 달이 훤하게 밝은 밤과 구름은 하늘 저 꼭대기에 꽉 박혀진 채 해만 이글이글 타는 날이 며칠째 계속하는 동안 그들은,
“허 이 날이 사람 죽이네. 구름이라도 좀 끼어보기나 하면…….”
하고 흐린 날이나마 있기를 바랐다.
이제는 물을 품어서 벼이삭을 살릴 도리가 없었다. 웅덩이는 말라버린지 오래고 혀로 핥아버린 듯이 물 한 방울도 없는 시내에는 모래알이 지글지글 볕에 달아 있었다.
성섭이는 밤새도록 모래 바탕을 팠다. 물이 나올 때까지 파보려니 하고 삽으로 치고 괭이로 팠으나 새벽까지도 물은 보이지 않았다.
“아아 물쌈하느라고 밤이면 들판이 전쟁터가 되어 있던 때가 그립구나.”
성섭이는 괭이를 놓고 몇 번이나 하늘을 쳐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윗마을 김 선달네는 일꾼을 몇 사람씩 사가지고 모래관을 몇 길씩 파서 웅덩이를 만들었다. 그래서 밤낮으로 일꾼을 갈아 들여가며 물을 품었다.
성섭이는 어정어정 논가로 걸어갔다. 물맛을 보지 못한 벼끝은 서리 맞은˙ 것처럼 노랗게 되고 논바닥에는 주먹도 들어갈 만큼 크게 벌어진 금이 쩍쩍 갈라져 있었다.
논바닥에 들어서보니 발바닥이 뜨끈뜨끈하였다.
“허 이 뜨거운 지옥 속에서 풀잎인들 살아갈 수 있겠느냐? 지옥이다, 지옥!”
그는 부르짖었다. 지난 주일에 광주서 미국 목사가 왔을 때 농군들은 목사를 에워싸고 비 좀 내리게 해달라고 졸랐다 그때 목사는,
“형님들 죄를 회개하시오. 형님들 죄가 많은 고로 하나님 성내셨소. 옛날 옛날 소듬과 고모라 죄 많기 때문에 하나님 불로 멸하였소. 이 세상 말세 되었습내다. 그러므로 형님들 죄 회개하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 사랑 많습내다. 곧 비 주실 것이오.”
하고 파란 눈알을 굴리며 말할 때 농군들은,
“우리가 무슨 죄가 있단 말이오? 원 이때까지 죄라고는 모르고 사오.”
하고 소리지르니까,
“오오 그런 말 하는 것 죄 많은 증거요. 형님들 죄 때문에 죽어도 좋소.”
목사가 성을 내서 획 돌아섰다.
“저런 놈 보소. 하 우리보고 죽으라고? 엣 이놈 그러지 않아도 우리는 죽게 생겼다. 이왕 죽을 테면 네까짓 양돼지 먼저 죽이고 죽자.”
한 사람이 외치고 달려들자 농군들은 우하고 달려들어서 목사를 때렸다. 성섭이는 황겁해서 농군들을 말렸다.
“성섭이 비켜라. 이놈아 네가 비둘기집 같은 저 예배당 지킨다고 저 양돼지놈한테서 돈푼이나 받어본 일이 있는 것이로구나.
하고 성섭이까지 때리려고 달려들려던 일을 생각하니 성섭이의 가슴은 다시 울렁울렁 해졌다.
“흥, 돈푼을 받어?”
성섭이가 글자깨나 볼 줄 안다는 덕에 집사라는 직분을 가진 동안 깨달은 바가 없는 것도 아니었고 신념이 약하다고 할 수도 없건마는 작년 이래로 점점 교회에 대한 애착심이 엷어져가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여 오는 판이라 그는,
“흥 돈푼을 받어? 돈푼은커녕 칭찬 한 마디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
하고 그는 농군들에게 주먹으로 반항하던 목사를 생각하였다.
타는 햇볕은 농군들의 눈에도 볼을 켜주고 그들의 홧덩어리에도 불을 당겨준 듯이 전에는 비록 그들이 교인은 아니라 할지라도 미국 목사를 보면 생불처럼 존경하고 대우해왔건만 오랜 가믐으로 인하여 그들의 신경은 바늘 끝처럼 날카로워져서 모처럼 목사에게 향하여 풀으려던 화를 다 풀기 전에는 폭행을 그치려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만일 그때 벌건 채로 자빠져 있는 논에 다른 것을 심게 하기 위하여 붉은 논을 조사하러 나온 군청의 관리들(그들은 이렇게 부른다)이 아니었더면 그들의 달아오른 불은 그처럼 쉽게 꺼지지 않았으리라. 성섭이는,
“그때는 정말 관리 덕을 봤다니께.”
하고 중얼거리며 다시 논두렁에 올라서서 김 선달네 논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새 떼가 몰려 서서 물을 품는데 목청 좋고 먹이가 잘 하는 감나무집 노인도 벙어리 된 것처럼 입을 봉하고 물만 품어 올렸다.
“아저씨 어째 입은 다물으셨소?”
성섭이는 노인에게 말을 건네었다.
“성섭인가? 흥이 나야 소리를 내제. 기우제 지내는 날 저녁까치 마지막으로 소리 질러봤네.”
그는 두렛줄을 놓으며,
“좀 쉬어서들 하세.”
하고 소리쳤다.
“그래도 이 댁 논에는 물이 있으니께 제법 나락이 잘 되었소.”
성섭이는 논을 둘러보았다.
“며칠 갈라던가? 바로 물이 펄펄 끓는디 그 물 속에서 살면 며칠을 살며 웅뎅이 물도 좀 보소. 오늘도 지금 몇 번째나 괴기를 기달려 갖고 품네. 이것도 오늘이 마지막이어.”
그는 쌈지에서 담배를 내서 곰방대에 담았다.
중복도 넌짓 지났다. 그들은 비를 바라는 것도 단념하고 말았다. 모판은 누렇다못하여 벌겋게 타서 햇볕이 내려쪼이는 한낮에는 거기서 금시에 불이 일어날 듯이 보였다.
밭곡식도 다 타버렸다. 논이나 밭들이 벌건 채로 있으니 남자들의 논을 매는 일과 여인들의 밭을 매는 일은 그들의 일과에서 빠지고 말았다.
그뿐인가, 동네에 오직 하나만 있는 우물의 물이 줄 대로 줄어졌기 때문에 동네에서는 하루에 세 동이 이상은 한 집에서 못 길어가게 하는 새 규칙을 세우고 밤이면 엄중하게 파수를 보았다. 이리하여 그들은 빨래까지도 마음대로 해 입을 수 없었다. 남자들과 아이들은 거의 다 웃통을 벗고 살았다.
여덟 식구가 되는 성섭이네 집에는 물 때문에 당하는 고생이 배고픈 것보다 더 큰 수난이었다.
“물까지 맘대로 못 먹다니…….”
성섭이는 별스럽게두 더 물을 찾고 찾을 때마다 아내에게 때를 맞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뜨물이나 구정물까지 다 받아 모았다가 윗국을 따라서 걸래도 빨고 하기 때문에 돼지까지도 목이 마른다고 꽥꽥 소리를 질렀다. 그의 아내는 밥 먹을 때마다 아이들에게,
“짜게 먹지 말아 잉? 짜게 먹으면 물 찾는다.”
하는 당부를 하였다.
웃통을 벗은 아이들의 몸이며 팔다리는 때와 땀에 절어서 얼룽얼룽하였다. 그들의 앙상한 갈비뼈가 여름 동안에 더욱 날카롭게 비어졌다.
성섭이는 세수도 하지 않고 누워 있다가 변소에 갔다. 물을 적게 먹는 탓인지 지나친 근심 때문에 똥이 탔는지 대변은 항문에 콱 걸려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 하기야 사흘째나 뒤를 보지 않았으니 (뒤를 만들 재료가 없었겠지) 쉽게는 안 나오리라마는 하고 그는 죽을 힘을 들여 기운을 썼다. 항문이 찢어졌는지 피가 주르르 흐르면서 뒤는 나왔다.
“아아 산 지옥이로구나, 이것이 지옥이지.”
그는 다시 방에 들어와서 누우며 중얼거렸다.
봉현이가 타박타박 걸어와서 성섭이의 배 위에 올라앉더니 엉덩이를 들썩들썩 까불었다.
항문 찢어진 곳이 고춧가루를 뿌리는 것처럼 쓰렸다.
“에라 이놈.”
그는 봉현이를 안고 일어 앉았다. 봉현이는 설사를 주르르 하였다.
“이놈 똥에 웬 보리알이 있어?”
성섭이는 흙 방바닥에 누렇게 내깔긴 물똥을 들여다보았다.
“아까 봉이가 큰댁에 가서 밥을 얻어 먹였다고 하더니 그것을 못 삭이고 쏟는구나, 워어리!”
하고 아내는 개를 불렀다. 검둥이가 우르르 달려들어와서 넓적 넒적 물똥을 핥았다.
“싹싹, 그 전에는 개새끼들도 보리밥 설사똥을 안 먹더니 흉년이라 보리알을 보더니만 감지덕지 먹는구나. 저것도 새끼 할라 밴 것이 요새는 너무 곯아서…….”
아내는 방바닥을 닦아냈다. 검둥이는 봉현이의 엉덩짝에 입을 대려다가 성섭에게 한 번 얻어맞고는 맛있었다는 듯이 혀로 입가를 핥아보며 방문턱을 넘어 나가버렸다.
성섭의 아내는 날마다 울지 않는 날이 없었다. 동네 부인들 틈에 끼여서 금성산에 분묘를 파러도 갔고 부인들의 하는 미신적 행동이란 행동은 다 따라가며 하였다. 성섭이가,
“여! 자네가 그렇게까지 변할 줄 몰랐네.”
하고 꾸짖는 말을 하면, 그 아내는,
“비만 올 일이라면 무슨 짓을 못 해보겠소? 하나님만 믿을 때는 무슨 복 받었소?”
하고 대어들었다.
“귀신 섬겨서 자네는 무슨 복 받았는가?”
“또 무슨 해 되는 일은 있었소? 하는 대로 할 대로 다 해보다가 그까짓 거 나 하나 죽버어리면 그만 아니오? 자실하면 지옥밖에 더 가겠소?” 아이고! 나는 지옥도 시들하오. 지옥도 이보담 더 악하지는 않으리다.”
하고 또 머리를 설설 내둘렀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성섭 자신도 하루에 몇 번씩,
“이것은 지옥이다, 산 지옥이다.”
하고 부르짖지 않았던가? 어젯밤에도 총총한 별하늘을 바라보며 멍석 위에 누워서 살아갈 길을 곰곰히 생각해보노라니 귀신의 눈같이 총총히도 들어박혀서 반짝반짝 빛나는 맑고 맑은 그 하늘이 너무도 밉게 보여서
“엣 빌어먹을 것. 천지가 벌떡 뒤집혀서 저놈의 하늘이 땅이 돼버린다면 저 요물 같은 별들을 산산이 발로 밟아서 뭉그러뜨리겠구만.”
하는 죄 되는 말을 하지 않았던가? 남편이 고개를 떨어뜨리고 잠잠히 앉아 있는 것을 본 아내는,
“여보! 당신도 그 집사인지 무인지 직분을 내놓고 거짓 착한 체를 하지 말으시오. 내 처자 굶어 죽여가며 착한 짓을 하니 누가 알어줍데까? 또 그런 짓은 착한 것도 아니어, 안 줘도 아무 죄 되지 않는 것을 공연히 갖다주는 것은 천치 바보의 짓이지 어디 착한 짓이나 되오?”
하고 오금을 푹푹 박았다.
오랫동안 교회에서 자라난 그는 썩 유식하게 말을 잘하였다.
“집사 직분하고 그 일하고 무슨 관계가 있어?”
“아니 어째 관계가 없어? 당신이 집사이기 땀세 남의 물건을 탐내면 못쓴다 하는 생각 땀세 그런 착한 짓을 했거든이라우. 이번에도 또 동네 사람들이 모인답데다. 그래서 작년보다도 밭곡식까지 못돼버린 더 큰 흉년이니께 곡수 못 주는 것은 물론이고 어떻게 세전이라도 살아갈 도리를 사정해본다고 지주댁에 몰려간다고들 합디다. 그래도 당신을 쏙 빼놓는 것 보시오. 작년에도 그런 짓을 했으니께 으레 그런 사람이려니 하고…… 그래서 내가 가마고 했소. 지주댁 아니라 상감님 앞에라도 당장 가겠소. 아니 염라국에라도 갈랴먹 가겠소. 지금 어린 새끼들하고 무더기 죽음이 나게 될 판인디 무엔들 못 할까?”
막힘없이 말을 퍼내는 아내의 눈에는 살기가 등등하고 얼굴에도 푸른 독기가 질려서 마주 보기가 무서웠다.
입추! 성섭이네는 논 한 벌을 매본 일이 없이 여름을 보내고 입추날을 맞았다. 그 동안 동네의 물소동은 갈수록 더 해왔다. 우물의 물은 날마다 더 졸아들어서 이제는 한 집에서 두 동이 이상을 가져갈 수가 없게 되었다.
물만 먹고 자라가는 돼지의 끽끽 거리고 보채는 꼴이란 아이들의 보채는 것보다도 더 보기 어려운 꼴이었다.
성섭의 아내는 이제는 울지도 않았다. 눈물조차 말라붙었는지 설움이 복받치면 눈물은 나오지 않고 그 대신 피가 눈으로 몰려오는 것 같이 눈에서 불이 확확 나는 것 같았다.
검둥이가 마당으로 미친 듯 달려 왔다. 어디서 무엇을 먹었는지 입가에다 피칠을 해 가지고 부엌으로 쭈르르 들어와서 앞발을 넌지시 들고 물동이 속에 머리를 틀어박더니 철떡 철떡 물을 먹었다. 그것을 본 봉이는,
“아이 고매! 이놈의 개새끼 봐!”
하는 소리를 치고 부지깽이로 검둥이의 대가리를 힘껏 들이팼다. 그 순간 검둥이가 휙 돌아서며 봉이에게로 와락 달려 들었다. 봉이는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고꾸라졌다.
이 소리에 놀란 성섭이는 부엌으로 몰려 들어왔다.
검둥이가 성섭의 아내의 종아리에 철썩 부딪치는 듯하더니 그 아내도 비명을 지르며 팍 주저앉았다. 검둥이는 밖으로 튀어나갔다.
봉이의 여윈 빰에서는 붉은 피가 철철 홀렸다. 그들 모녀는 부엌바닥에서 몸을 뒹굴며 울고 부르짖었다.
아이들도 어머니를 붙들고 울었다.
그것을 내려다보는 성섭이의 눈이 벌컥 뒤집혀지는 듯하더니 머리털에 볼이 붙어 오르는 것같이 머리 속과 눈이 활활 달아올랐다.
“엑 나를 이렇게 사로 지옥에 잡어놓는 놈이 누구냐? 나는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이다. 왜 나를 이렇게 못 살게 하느냐? 웅?”
그는 두 눈을 부릅뜨고 주먹을 부르르 떨면서 이를 부드득 갈아 붙이더니 번개처럼 부엌 문턱을 넘어 쏜살같이 마당을 지나서 사립문 밖으로 달려나갔다.
(1935년)
2016년 12월 15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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